얼마 전 서울의 여중 3년생이 학교에서 출산한 사실이 밝혀져 충격과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이 학생은 하교 길에 집근처에서 성폭행을 당해 임신했다니 더욱 가슴을 아프게 한다.

어린 학생의 마음에 얼마나 큰 상처를 받았겠으며 또한 이런 사실이 알려질까 두려워 숨기느라 얼마나 마음을 졸여 왔겠는가. 학교에 알리자니 퇴학당할 것이 두려울 것이고 부모에게 알리자니 야단맞을 것이 뻔해 어린 마음에 숨긴다고 애간장을 태웠을 것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이제 기성세대들과 청소년들의 성교육에 일대 전환이 있어야 함을 통감해야 하리라 본다.

요즘 10대들의 성에 대한 태도나 형태가 급변하고 있음에도 학교나 가정, 사회에서는 대수롭지 않게 여겨 정상적인 성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10대들의 성은 무서울 정도로 확산되고 개방되고 있는 추세임에도 학교나 가정에서의 성교육은 단순지식 전달에만 그쳐 전혀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지 아니한가. 심지어 이들은 동성애에 대하여도 절반 정도가 개방적이다.

이번 여중생의 경우에도 성폭행을 당하고도 6개월간 자신이 임신한 사실을 전혀 몰랐으며 임신 사실을 알고도 이를 숨기기에만 급급했을 뿐 적절한 대처를 못했기에 결국 출산한 것이다. 여기서 교실의 황페함을 본다. 교사가 있고 친구들이 있는데 어떻게 전혀 몰랐을까?

성과 임신, 출산에 대한 가정과 학교. 사회에서의 보다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교육이 절실하며 특히 각 학교에서는 수업시간 외에도 별도로 특강시간을 만들어 실시하고 한 학기에 1∼2번쯤은 성교육 전문가를 초빙해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개방적인 성교육을 실시함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피고인'이라는 제목의 영화가 있다. 조디 포스터가 주연한 미국영화다. 이 영화에서 조디 포스터는 행실이 좋지 못한 여자로 노출이 심한 옷차림을 하고 술 취한 채 한밤의 유흥가를 서성이다가 집단강간 당한다. 이를 목격한 누군가가 전화로 신고하고 변호사가 나서 극도의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조디 포스터를 설득해 법정에서 증언하도록 한다.

조디 포스터의 피해의식은 성폭행 당한 것을 자신의 잘못으로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에 대한 것이고 실제로 법정에서 가해자들의 변호사는 피해자가 성폭행을 유발한 것으로 몰고 나간다. 즉 성폭행을 당한 조디 포스터가 거꾸로 피고인이 돼버리는 것이다.

성폭행 당한 여중생의 '교실출산' 사건 이후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는 성폭행 사건 보도를 보며 몇 년 전에 보았던 이 영화가 문득 생각났다. 지금 우리는 '한창 나이에 구김살 없이 커야 할 소녀들이 가장 더러운 범죄의 희생양이 되어 처참하게 내던져진 모습'에 분노하고 있다.

그러나 이 분노만으로는 이 사회에 만연한 성폭력 풍토를 고칠 수 없다. 미성년 피해자는 물론 조지 포스터와 같은 처지의 성인 여성에게도 따뜻한 시선을 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동안 우리사회는 성폭행 당한 피해자를 오히려 죄인 시(罪人視)해 왔다. 그 극단적인 예가 이웃주민 14명에게 성폭행 당한 초등학생 사건에서도 드러난다. "원래 행실이 바르지 못한 애"라며 사건의 책임을 11살짜리 초등학생에게 덮어씌우는 해괴한 발언을 그 마을 사람이 하고 있다.

문제는 그런 해괴한 의식을 우리 모두 정도만 다를 뿐, 모두가 의식적으로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교실에서 출산의 고통을 겪고 구급차 안에서 아이를 낳은 여중생이 학교를 그만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바로 우리들의 그런 시선 때문이다. "성범죄에 있어서는 우리 모두가 공범 "이라는 말이 그래서 나온다.

성폭력의 피해자가 더 이상 피고인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피해자는 침묵해야 되고 가해자가 더욱 기승을 부리는 사회에서는 성폭력은 절대 근절되지 않는다.

나사렛대학교에서 교수로 섬기다가 이제는 목회에 전념하고 있다. 그리고 기독교치유상담교육연구원 원장일을 보고 있으며 여러군데 세미나를 인도하고 있다. 늘 새로운 세계와 새로운 일에 관심이 있으며 어려운 문제 함께 의논하고 상담하기를 좋아한다. 미 공인상담사및 코칭 자격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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