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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기도】인봉한 책을 펼친 그리스도(21)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
  • 김수경목사
  • 승인 2018.06.28 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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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아 2:8-10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은 내가 저에게 준 것이요 저희가 바알을 위하여 쓴 은과 금도 내가 저에게 더하여 준 것이어늘 저가 알지 못하도다 9. 그러므로 그 시절에 내가 내 곡식을 도로 찾으며 그 시기에 내가 내 새 포도주를 도로 찾으며 또 저희 벌거벗은 몸을 가리울 내 양털과 내 삼을 빼앗으리라 10. 이제 내가 그 수치를 그 연애하는 자의 눈 앞에 드러내리니 저를 내 손에서 건져낼 사람이 없으리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신부로 맞아들이기 위해 핏덩어리 아기를 데려다가 깨끗이 씻기고 보호하며 잘 양육하여 곱게 꾸며서 왕후의 자리에 앉혀 놓으셨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 모든 은혜를 기억하지 못했다. 하나님께서 주신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의 풍성함을 바알이 주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에게 있는 그 모든 것들이 주님으로부터 온 것을 잊은 채 바알과 이방 나라들로부터 왔다고 착각하고 은과 금 등을 바알에게 바쳤다.(겔 16:4-19)

이는 현재의 타락한 교회들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 오늘날 잘 살게 되고 원하는 것이 성취되었을 때, 하나님께는 형식적인 감사만 할 뿐, 감사헌금도 아깝지만 체면 유지상 바치는 반면, 은과 금 즉 가장 좋은 것들을 자신에게 명예와 권세와 물질 등을 얻게 해주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며 그들에게 더 잘 보이려고 애를 쓰며 진심으로 그들에게 고마와 하는 것을 보게 된다. 이는 이스라엘이 우상에게 은과 금을 바치며 우상을 꾸미는 것과 너무 흡사한 모습이다.

"그들이 은과 금으로 그것에 꾸미고 못과 장도리로 그것을 든든히 하여 요동치 않게 하나니"(렘 10:4) 

"저희 우상은 은과 금이요 사람의 수공물이라"(시 115:4)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을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셨다고 말씀하셨다. 성경 여러 곳에서 그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된 선물이다. 그래서 예레미야 31장에서는 그것을 "하나님의 은사" 즉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나의 명령을 너희가 만일 청종하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섬기면 여호와께서 너희 땅에 이른비, 늦은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 또 육축을 위하여 들에 풀이 나게 하시리니 네가 먹고 배부를 것이라"(신 11:13-15)

"그들이 와서 시온산의 높은 곳에서 찬송하며 여호와의 은사 곧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어린 양의 떼와 소의 떼에 모일 것이라. 그 심령은 물댄 동산 같겠고 다시는 근심이 없으리로다 할찌어다"(렘 31:12)

9절에서 하나님께서는 "그 시절에 내가 내 곡식을 도로 찾으며 그 시기에 내가 내 새 포도주를 도로 찾으며"라고 말씀하신다. 여기에서 "그 시절"과 "그 시기"는 추수 때를 말한다. 곡식과 포도를 수확하는 시기에 그 모든 것을 거두어 가신다는 것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 먹는 문제에 고통이 올 것이라는 말이다. 

이어서 "저희 벌거벗은 몸을 가리울 내 양털과 내 삼을 빼앗으리라"는 말씀에서 "양털(wool))"과 "삼(flex, linen)"은 각각 추울 때와 더울 때 입는 옷의 재료이다. 즉 벌거벗은 몸을 가리울 옷마저 빼앗아 가시겠다고 하신다. 이는 의식주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확실히 보여주시겠다는 것이며 또 모든 것의 공급자이신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다른 것에 관심을 갖고 그것을 따라간 결과가 어떠한 것인지를 보여주시겠다는 것이다.

"내 옷으로 너를 덮어 벌거벗은 것을 가리우고 네게 맹세하고 언약하여 너로 내게 속하게 하였었느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와 같이 네가 금, 은으로 장식하고 가는 베(fine linen)와 명주(silk)와 수 놓은 것을 입으며 또 고운 밀가루와 꿀과 기름을 먹음으로 극히 곱고 형통하여 왕후의 지위에 나아갔느니라"(겔 16:8, 13)

본문 앞 5절에 보면, 이스라엘은 "나는 나를 연애하는 자들을 따르리니 저희가 내 떡과 내 물과 내 양털과 내 삼과 내 기름과 내 술들을 내게 준다"라고 말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그 모든 것들이 자기 것이며 또한 그것들이 그들이 연애하는 이방 민족들이 준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그 주셨던 모든 복을 다 빼앗아 버리겠다고 하신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가 현재 갖고 있고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이 "내 것"이라고 착각하거나 그것을 달라고 따라다니며 부탁했던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가는 큰코 다친다. 그 모든 것을 주신 분이 계시다는 것을 우리는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예수님을 찾아왔던 부자 청년이 근심하며 돌아간 이유도 그의 재산이 "자기의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라고 말씀하시자 그는 재물이 많으므로 근심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그가 왜 근심했겠는가? 그 모든 것을 주께서 잘 맡아서 관리하라고 주신 것으로 생각했다면 근심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가 가진 모든 것이 자기의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어리석은 부자' 역시 하나님께서 주신 풍성한 복을 다른 이들과 나누지 않고, 자기 사업을 늘리고 사유재산을 늘리는 일에만 힘썼다. 그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가난한 이웃과 나누라고 주신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자기 사업을 늘리는 일에 그렇게 신경쓰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가 갖고있는 것에 대해 너무 욕심을 부리지 말아야 한다. 조금만 더 늘리고 싶어서 늘리다가 오히려 빚더미에 올라앉거나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셨다. 즉 우리는 하루살이 인생이라는 말이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는 말이다. 내일은 내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만 필요한 단어이지, 현재를 살아가는 인간에게는 필요없는 말이다. 우리가 내일이라고 부르는 날이 하룻밤을 자고나면 내일이 아니라 오늘이다. 

그리고 하룻밤 사이에 주께서 우리의 영혼을 가져가실지 그냥 놔두실 지 모르기 때문에 내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내일 일을 맡기라는 것이다. 불과 1분 앞도 알 수 없으면서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무지한 인간은 내일에 대해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래서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라고 명령하신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항상 내일 일을 알고 싶어하며 또 알 수 없으므로 염려하며 살아간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큰 죄인 줄도 모르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면 왜 걱정을 하는가? 하나님께서 온세상을 창조하신 창조주라는 사실을 믿는다면, 내일 일을 걱정한다는 것이 오히려 기적이 아닌가? 어떻게 걱정을 할 수가 있다는 말인가? 오늘 밤 죽는다면 내일 일을 무엇 때문에 염려해야 하며, 염려할 필요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러므로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하신 말씀은, 하루에 필요한 먹을 양식을 달라는 것이 아니라, 오늘이라고 하는 현 시점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하늘의 만나 즉 말씀을 구하라는 의미이다. 어차피 우리의 의식주 문제는 주께서 알아서 다 책임져주시므로 의식주에 관해서는 기도하며 구할 필요가 없는 것이며, 영의 양식을 구하라는 말이다. 

내일 죽을지도 모르면서 내일과 일년 뒤에 필요한 것들을 왜 구한단 말인가? 

자식을 위해서? 그러나 내가 쌓아놓은 것들을 자식이 누린다는 보장은 어디에 있는가?

[적용]

우리의 삶을 한 번 되돌아 보자. 지금까지 '오늘'이라고 하는 날에 먹을 것이 없어서 굶은 적이 얼마나 있는가? 아무리 많아도 아직까지 굶어서 죽지않고 살아있지 않은가? 입을 것이 없어서 벌거벗고 밖에 나간 적이 한 번이라도 있는가? 지금 입을 옷이 하나도 없는가? 혹시 옷이 많아서 무얼 입어야할지 고르느라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는가? 그런데 왜 걱정을 하는가?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그 모든 것이 "자기의 것"이며 "자기의 노력"에 의해 생긴 것이며, 주변에 부탁을 받고 도와준 은인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모든 근원지가 하나님 아버지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우리가 갖고있는 모든 것 즉 생명까지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는 것을 다시 되새기자. 그것을 아는 사람은 아침에 눈을 떳을 때 죽지않고 살아있음에 감사한다. 또 하루라는 기간동안 생명을 연장시켜주신 하나님께 눈을 뜨는 순간 감사와 찬송을 올려드리며 하루를 시작한다. 

그런데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눈을 뜨는 순간 "아이고 죽겠다", "또 일어나야 돼?"라며 억지로 일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일어나기 싫으니까 침대 속에서 "조금만 더..."라며 게으름을 피우고 있는 것이다. 만약 그 말대로 하나님께서 "그러면 안 일어나게 해줄까?"라고 하신다면, 그래서 생명을 거두어 가신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과 에너지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따라서 하루종일 그 시간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사용해야 한다. 마치 나에게 빈 시간은 내 것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에 내 멋대로 시간을 떼우며(kill time) 허송세월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알기 위해 힘쓰라고 주신 시간에 충성하지 않고 내 시간인냥 내가 좋아하는 것과 내가 원하는 것을 하기 때문에 정말로 내가 원하는 것을 할 시간을 주지 않고 빼앗아 가시는 것이다. 계속 고생만 하며 허송세월 하도록 내버려 두시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만 되면", "~만 끝내면" 또는 "~만 생기면"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고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만약'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당장 하라고 하시는데, 마귀는 "나중에 해도 되잖아. 꼭 오늘 할 필요가 어디 있어?"라며 "만약 ... "(If)이라는 생각을 자꾸만 넣어준다. 그래서 우리를 점점 영적으로 게으름을 피우도록 유도하며 오늘을 살지 못하고 내일을 살게 한다. 즉 내일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처럼 살라고 선악과로 유혹한다.

그러나 주께서는 지금 당장 주님을 찾으라고 말씀하신다. 내일이 은혜받을 때이며, 내일 무엇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하지 않으시고 지금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때이며 지금이 구원의 날이라고 말씀하신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 6:2).

따라서 우리는 그 동안 생명과 햇빛과 공기와 집과 음식과 옷과 가족과 건강과 시간 등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사람과 환경을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순간, 그것이 영적 간음을 행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 결과는, 하나님께 대하여 감사를 모르는 짐승과 같은 생활을 하게 되어 이스라엘에게 주셨던 그 모든 복을 거두어가신 것처럼 우리의 삶 속에서도 모든 것을 빼앗기게 될 수 있다.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감히 이길 수 있는 자는 하나도 없고, 그분이 하시는 일에 대해 왜 그렇게 하느냐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 자도 없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10절에서 "저를 내 손에서 건져낼 사람이 없으리라"라고 말씀하신다. 모든 것이 허무로 돌아갔음에도 불평하지 않고 찬송을 했던 욥처럼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므로 가져가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라는 고백을 하며 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므로 지금까지 혹시라도 내가 갖고있고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남용하거나 낭비하며 살아왔다면, 지금 곧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회개하자. 그리고 그것을 거두어가시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바치자. 

"이 모든 것을 주신 분도 여호와시요, 취하시는 분도 여호와이십니다. 이 모든 것이 주께로부터 온 것이오니 주님 뜻대로 사용하여 주옵소서"라는 고백을 하자.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그러한 고백이 얼마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지 한번 상상해 보자. 여러분의 자녀가 여러분에게 만약 그런 고백을 한다면, 여러분은 얼마나 감격할 것 같은가?

[기도 제목]

1) 혼과 육의 사람이 아닌 영의 사람으로 살도록 성령충만케 하옵소서

2) 오늘도 저에게 새로운 날을 허락하여 주시고 하루를 더 살 수 있도록 생명을 연장시켜 주심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3) 저에게 이렇게 귀한 하루를 선물로 주셨는데 저는 하나도 기쁘지 않고 억지로 살아갈 때가 너무나 많았음을 고백합니다. 지금껏 저는 하루라는 시간을 주시고 그 시간동안 어떻게 작은 일에 충성하는지를 불꽃같은 눈으로 지켜보고 계시는 주님을 거의 의식하지 않고 살아왔으며, 주님께 충성하기 보다(주의 일에는 관심도 별로 없고) 제가 원하는 일에 열심으로 살아왔음을 고백합니다.

4) 주님께서는 매일마다 일용할 양식으로 먹여주시고 사시사철 옷을 입혀주시고 잠을 잘 수 있는 공간을 주시는데도 불구하고 저는 닥치지도 않을 내일에 있을 불안한 미래를 생각하느라 오늘이라는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며 살아왔습니다. 무엇만 해결되면 그때부터 주의 일도 열심히 하겠다는 결심도 수없이 했지만, 해결되는 일이 없었고 설사 해결되더라도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5) 제가 갖고있는 것들... 솔직히 저는 제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말로는 주께서 주셔서 감사하다고 립서비스를 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에 습관적으로 해왔던 것이고 실제로는 모든 것이 제 것인 것처럼 생각하고 살아왔습니다. 가족도 제 소유이고 시간도 제것이고 제 옷장 속의 옷들과 부엌에 있는 음식들과 제 지갑에 있는 돈과 특히 저 자신이 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 시간과 제 입과 제 표정과 제 몸을 주께서 원하시는대로가 아닌, 제가 원하는대로 제 기분대로 사용했으며, 제 가족들에게 제 마음대로 귀를 막고 큰 소리치며 온갖 이웃사랑과 거리가 먼 언행을 해왔음을 고백합니다.

6) 욥의 인내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지만, 그는 특별한 사람이므로 성경에 까지 나온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만 했고, 저도 욥처럼 살려고 애를 쓰지 않았습니다. 영적으로 매우 게으르게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제가 원하고 추구하는 것을 얻기 위하여 하나님보다 사람들을 더 의지할 때가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그 동안 무지해서 우상 숭배의 죄를 저질렀사오니, 주여 긍휼을 베풀어주옵소서.

7) 이제부터는 게으르지 않고 오늘이라고 하는 날 동안,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그 시간동안 주께서 원하시는 일... 주님을 알아가기 위해 애쓰며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기를 원합니다. 저에게 성령 충만함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그래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오늘도 겸손히 주시는 분도 주님이시요, 가져가시는 분도 주님이시라는 고백을 하면서 살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김수경목사  kimsoogyu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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