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락 지음, 이레서원 / 간결하고 따뜻한 히브리서 안내서

저자는 한때 서울 내곡동의 ‘다니엘 새시대교회’에서 협동목사로 있었다. 한번은 히브리서를 본문으로하여 설교를 끝낸 후, 한 권사님이 “최소한의 설명만 곁들여서 히브리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훑어주면 좋겠다”라고 제안하셨다. 하지만 그 기회를 놓쳤고 그 권사님도 돌아가셨다. 그래도 그때의 제안이 이 책이 나오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히브리서가 가르치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mode of life)은 기다림”이라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기다림’이라고 하면 너무 정적인 개념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히브리서가 말하는 기다림은 결코 정적이지 않다. 히브리서에서 기다림은 여러 가지 다른 방식으로 표현된다. 때로 그것은 ‘오래 참음’이며 ‘인내’다.

저자에 의하면, 기다림은 신앙 고백(“믿는 도리”)을 굳게 붙잡고 그것을 살아 내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또한 기다림은 섬김과 예배의 삶이기도 하고 선행의 실천이기도 하다. 그 기다림은 행위를 수반한다.

기다림은 하나님의 일하심을 위하여 그 길을 여는 우리의 순종의 삶을 말한다. “얕은 여울이 아니라 깊은 강소에서 보이지 않게 휘감아 도는 그 큰 물줄기,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기다림의 힘입니다. 가벼운 잔재미만 차고 넘치는 이 시대에 우리는 이런 깊은 기다림의 능력을 다시 배우고 회복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7쪽).

송광택 목사(한국교회독서문화연구회 대표)

저자에 따르면, 히브리서만큼 설교의 힘을 강하게 느끼도록 해 주는 책도 없다. “오늘날 그 어떤 설교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설교의 진수가 녹아 있습니다. 그 설교의 메시지가 얼마나 장엄하고 풍부한지 모릅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것을 전달하는 글의 힘이 탁월하고 매혹적입니다. 히브리서는 그 자체가 설교입니다. 그래서 본서에서는 히브리서 저자를 히브리서 설교자라고 지칭하려고 합니다”(8쪽).

저자는 히브리서의 ‘종말론적 가르침’이 세상 변혁의 강력한 기폭제라고 말한다. 그것은 약속의 언어, 소망의 언어, 기다림의 언어는 변혁의 언어다.

히브리서는 ‘수수께끼 같은 책’이다. 그 고매한 내용이나 정교하고 아름다운 문체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누가 누구에게 전달하려는 것인지 전혀 밝히지 않는다. 마치 누가 이 글을 썼는지 알아맞혀 보라고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사도 바울이나 누가를 포함하여 여러 사람이 히브리서의 저자로 제시되었다. 하지만 오늘날에 와서는 히브리서가 바울 서신 14권에서 분리되어 독자적인 서신으로 취급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 서신을 누가 썼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합의된 견해가 없다. 심지어 바나바나 실라,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등이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이 문제는 영영 답을 찾기 어려운 문제로 남을 것 같다고 저자는 말한다.

히브리서에는 수신자의 정황을 알 수 있는 단편적인 언급들이 간간이 나타난니다. 예를 들어, 12:4은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아니하였다”고 말하는데, 이는 이 수신자공동체 가운데서 아직 순교자가 나오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이 상황은 스데반이나 사도 야고보 같은 순교자들이 이미 나온 예루살렘 교회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또 하나 고려할 본문은 13:24의 “이달리아에서 온 자들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이다. “이달리아에서 온 자들”이라는 표현은 사도행전 18:2에도 나온다.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칙령으로 로마에서 쫓겨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가리킬 때 쓰는 표현이다. “이달리아에서 온 자들”, 곧 로마 출신의 사람들이 히브리서 저자와 함께 문안 인사를 보낸다는 것은 이들이 수신자들과 친밀한 관계임을 나타내 준다. 따라서 이 서신이 로마를 향하고 있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로마의 클레멘트가 히브리서를 알고 있었고 그것을 축약된 방식으로 사용했다고 결론 내린다. 여러 정황을 고려하여 오늘날 많은 주석가들은 로마를 히브리서의 수신지로 본다. 본서에서도 이 견해를 따른다.

히브리서 저자의 설교의 방식은 1세기 당시의 랍비들이 즐겨 사용하던 미드라시(midrash) 방식이다. 즉 “적절한 본문[구약 성경]을 인용하고 그 진리를 청중에게 가장 실제적인 차원에서 적용하여 해설하는” 설교의 방식이다. 따라서 구약 본문이 저자의 모든 권면의 출발점이 된다. 그는 이 서신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구약 본문들을 인용하거나 암시하기를 쉬지 않는다. 롱네커(R. N, Longenecker)는 히브리서 속에 38회의 직접 인용과 최소한 55회의 암시들이 나타난다고 말한다. 레인(Williamı L. Lane)은 좀 더 상세하게 이를 구분해서, 명시적인 인용 31회, 덜 분명한 인용 4회, 암시 37회, 요약적 언급 19회, 이름이나 주제의 언급 13회로 세분화한다. 그만큼 히브리서 저자가 일관되게 그리고 다양한 방식으로 구약 본문을 사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저자에 의하면, 히브리서 저자의 설교는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그리스도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렇다고 해서 구약 본문에 억지로 예수 그리스도를 대입해서 읽는 것은 아니다.

히브리서의 전체 구조는 매우 정교하게 잘 짜여져 있다. 저자는 히브리서의 구조를 생각하면서 고려해야 할 세 가지 사항이 있다고 말한다.

첫째, 히브리서 저자가 자신의 논증의 흐름을 독자들이 잘 따라올 수 있도록 구조적인 장치를 빈번히 사용한다는 점이다. 둘째, 이 서신의 전체적 성격이 설교(“권면의 말”, 13:22)라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설교 안에서 선포와 권고와 경고가 하나의 사이클을 형성한다. 이 세 요소가 늘 같이 나오지는 않지만, 주기적으로 경고 부분들이 나오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셋째, 히브리서가 구약의 인용 본문들을 중심으로 전개된다는 점이다. 저자는 중요한 논제들을 다룰 때마다 구약 본문들을 인용하고 그 본문들을 중심으로 논증을 전개해 나간다. 다만 그가 사용하는 구약 본문들이 전체 글의 흐름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기 때문에 이것들을 중심으로 별도의 구조 분석을 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 인용 본문들이 지닌 무게에 대해서는 항상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히브리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약의 성취로 이해한다. 저자는 히브리서를 쉽고 간결하게, 그리고 따뜻하게 해설하고 해석한다. 성경 해석학자의 눈으로 히브리서를 들여다보면서 종말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히브리서가 주는 종말론적 가르침을 전해준다. 히브리서의 모든 권면의 핵심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자는 것이다.

이 책은 오늘날 히브리서 저자의 가르침을 어떻게 따라야 하는지, 또한 설교자가 어떤 내용으로 설교해야 하는지 방향을 제시해 준다. 또한 어렵고 권위적인 신학 용어 대신에 일상의 편안한 언어로 히브리서의 신학적 이해를 쉽게 풀어내고 있다. 설교자와 평신도 모두에게 일독을 권한다. 

송광택 목사(한국교회독서문화연구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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