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석헌 선생의 멘토이자 진정한 스승

인물탐방 – 오방시리즈(5)

함석헌 선생의 멘토 오방 최흥종 목사

해방후 귀국한 김구선생은 오방정에 있는 최흥종 목사를 찾아 일주일을 함께 머물기도 하였다. 그리고 김구선생이 남기고 간 휘호가 성자의 본색을 감추고 중생과 함께 한다는 뜻의 '화광동진(和光同塵)'이었다. 무등산 중봉으로 올라가는 중턱의 샘터 초막에 은거하던 최흥종 목사를 찾은 함석헌도 그를 '무등산의 은자(隱者)'라 불렀는데, 함석헌이 광주에 내려올 때면 반드시 무등산에 올라 오방 최흥종 목사에게 문안 인사를 하였다고 한다.

함석헌은 유영모선생의 제자이긴 했지만, 마음속에서는 오방 선생을 진정한 스승으로 모셨던 것이다. 물론 21살이나 많은 오방선생을 형님이라고 불렀는데, 무등산 초막을 찾을 때면 저 멀리서부터 “형님~~, 형님~~ 석헌이 왔습니다.”하고 큰소리로 외치었고, 이 고함소리를 듣고 초막 밖으로 나오는 오방의 모습이 보이면 함석헌은 가던 길을 멈추고 그 자리에서 흙바닥에 무릎 꿇고 큰 절을 올렸던 것으로 유명하였다.

1970년대 함석헌이 어려움을 당해 스승인 유영모 선생으로부터 버림을 받을 때는 아마도 오방선생이 너무도 그립고 보고 싶었을 터이다. 필자는 당시에 오방이 살아있었더라면 곤란에 처한 함석헌을 보듬어줄 수 있었을 것이고, 그 품에서 함석헌은 당대 최고의 선비이자 이 사회의 정신적 지도자로 자리매김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본다. 필자가 마지막으로 함석헌 선생을 본 것이 1985년 여름 동국대 교정에서 학생들 수십명을 앉혀놓고 하얀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강연하던 모습이었다. 당시 외롭게 고군분투하던 백발노인의 모습이 지금도 아련하다.

해방이후 이승만이 오방정을 찾아와서 간청하는 바람에 전남 건국준비위원회위원장, 미군정 도정 고문 등을 잠시 맡기도 했지만, 그의 관심은 여전히 걸인과 환자들에 있었다. 증심사 계곡에 빈민 자활촌인 삼애원(三愛園), 나주 삼포에 음성 나환자 자활촌인 호혜원(互惠園)을 만든 것도 그때였다. 당시는 한센병과 마찬가지로 결핵도 사회의 기피대상이었다. 그는 병원에서 마저 포기한 결핵환자들을 위해 무등산 골짜기(지금의 신양파크호텔 밑)에 송등원(松燈園)과 원효사 아래 공터에 무등원(無等園)이라는 움막 요양소를 마련해 주기도 했다.

그리고 최흥종 목사는 자신도 무등원 안에 '복음당(福音堂)'이란 토담집을 짓고 결핵환자들과 함께하였다. 무등산 성자로 불린 최흥종 목사의 장례식에 광주 인근 걸인들과 무등산에서 온 결핵환자, 여수와 나주에서 올라 온 한센병 환자들이 몰려와 "아버지, 아버지"라 부르며 오열한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오방 최흥종 목사의 감동적인 삶은 2000년대 들어서 뮤지컬과 연극으로 만들어졌고, 소설가 문순태는 '성자의 지팡이'라는 소설을 써 그를 우리 시대 마지막 성자로 기리기도 했다. 몇 년 전에는 '오방 최흥종'이라는 만화가 만들어지기도 했고, 2009년 광주광역시는 남구 방림1동 주민센터에서 봉선2동 무등아파트단지 입구까지의 도로를 '오방로'라고 지정하여 그를 기리고 있다.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