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삭 목사(Azusa Pacific Univ.,Calvin Theological Sem. )

 

서기 900년쯤 페르시아의 의사였던 라제스(865-925 Rhazes)는 커피를 ‘따뜻하면서도 진한,그러나 위장에 유익한 음료’라고 설명했다. 이어 서기 1000년경, 무슬림 의사이자 철학자이던 아비세나(980-1037 Avicenna) 역시 커피의 약리적 효과를 기술한바 있다. 커피에 관한 좀더 드라마틱한 스토리의 전개는 이탈리아의 언어학자인 파우스토 나이로니오 ( 1628-17 Banesio, Fausto Naironio ) 에 의해 1671년에 출판된 건강한 음료에 관한( De saluberrima potione cahue…  )책에서 절정을 이룬다.  

에티오피아의 목동 칼디(Kaldi)가 자기 염소들이 어떤 나무 열매를 먹고 밤 늦도록 잠을 못자고 뛰노는 것을 보고 그 열매를 수도원 원장에게 보였는데 원장이 쓸데없는 짓이라며 열매를 불 속에 집어 던졌고 그 열매가 구워지며 내는 향긋한 냄새에 취해 그 열매를 갈아 차로 마시니 정말 정신이 맑아지고 피곤치 않음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후 수도원에서 철야 기도를 할 때 커피를 마시고 밤새 맑은 정신으로 정진하면서 커피문화가 시작되었다는 것이 정설처럼 되었다.

어쨌든 커피는 기독교 문화에서 시작되어 이슬람 문화에서 꽃피운 음료로 이슬람 성지인 메카(Makkah), 메디나(Medina)에서 즐기다가 동서가 만나는 곳 콘스탄티노플 (현재 이스탄불)에 커피하우스가 탄생하게 되므로 그때 부터 일반화 되었다.

2017년 기준 한국인이 마신 커피는 1인당 한해 512잔으로 커피시장의 규모가 이미 10조원을 돌파했다. 한집 건너 교회가 아니라 이제 한집 건너 커피샵이 된 모양새이다. 정말 커피에 빠진(?) 한국인이라는 말이 몸에 와 닿는다.

커피의 맛은 무엇보다 적당한 농도, 적당한 온도에 의해 결정된다. 농도(Strength)는 용액에 들어있는 한 성분(용질)의 상대적인 비율, TDS (Total Dissolved Solid - 총 용촌고형물질) 즉 고형물질이 물속에 녹아있는 양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커피가 진하다, 연하다의 개념이 되는 것이다. 커피의 온도는 70C-85C가 적당하다고 한다. 그러나 커피의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매력은 아마도 독특한 향일 것이다. 커피의 향에는 왠지 모를 편안함과 동시에 묘한 설레임 그리고 삶의 깊은 욕구를 담고 있다.  

그래서 바하( 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 )도 “ 커피는 수천 번의 키스보다 달콤하고 와인보다 부드럽다 “고 노래했으며 그가 작곡한 세속 칸타타 211번 (Schweigt stille, plaudert nicht /Kaffeekantate BWV 211 )은 커피 칸타타로 작곡되었다. 이 곡의 초연도 커피하우스( coffee house in Leipzig ) 에서 했을 정도이다.   
고린도 후서 2:16에 보면 “ 우리는 구원(救援) 얻는 자(者)들에게나 망(亡)하는 자(者)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香氣)” 라고 표현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좋은 냄새라는 것이다. 과연 우리 교회는 좋은 냄새인가? 나는 좋은 냄새인가? 솔직히 말하면 오늘날 교회는 세상 뿐 아니라 믿는자에게까지 악취를 뿜어 내고 있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그 단적인 증거로 개신교의 전도율은 아예 계수할 의미가 없고 개신 교회를 다니다 염증을 느끼고 떠난 숫자만 벌써 1997년에 1,090만명을 기록하고 있음을 갤럽조사가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차세대들은 교회에 매력을 느끼고 있는가? 천만이다. 장년부의 신자가 수천, 수만 명일지라도 청소년과 어린이 부서의 숫자가 1~3% 미만인 기형적 교회들이 오늘날 대다수 교회들이다.
최근 문화선교연구원의 한 리서치 보고에 의하면 성도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를 한마디로 " 예수는 사랑하지만 교회는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 " 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많은 교회들이 세습,축재,분쟁으로 얼룩진 지팡이를 들고 양들을 내쫓고 있으며 그 역한 냄새로 그 누구도 들어갈 수 없도록 문을 막고 (마태23:13)있는 것이다 그 흔한 커피 한잔처럼 수천 번의 키스보다 달콤하고 와인보다 부드러운 교회의 냄새를 절실해 하지 않을 수 없다
어쩌면 교회는 교회에서 나야 할 좋은 냄새가 무엇인지 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고린도후서 2:14에 “ 항상(恒常)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各處)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感謝)하노라 “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 이것이 교회의 본질적인 냄새이며 목회자의 냄새이며 성도의 냄새여야 함이 확실하다. 

그러면 안다는 의미가 무엇인가? 안다는 뜻의 원문 그노시스의 어원 기노스코( ghin-oce'-ko )는 사실 유대인들에게는 성적인 교감으로 부터의 앎을 내포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는  그리스도를 지적으로 아는 수준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한몸이어야 하는데 오히려 세속, 명예, 물질과 간음(약4:4)하므로 그 사랑이 희석되어져서 농도도 열기도 떨어지게 되었고 그 결과 냄새도 맛도 잃어버린 교회가 되어버린 것이다.  짙고 은은한 커피의 향을 음미하며 교회향기의 회복을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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