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1:19-25, 16.10.30, 박홍섭 목사

지난 한 주는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참 힘들었던 한 주였습니다. 대통령이 오래 전부터 사이비교주였던 최태민 씨와 연관되어 왔고 지금까지도 그의 딸 최순실을 통하여 국정이 농락되어 온 것이 드러나면서 전 국민이 거의 패닉상태에 빠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저도 그렇고 여러분도 그렇고 지금도 마음이 힘들고 어렵지 않습니까? 

더 안타까운 것은 이 일에 한국교회가 직간접적으로 무관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최태민이란 사람은 영세교라는 아주 저속한 사이비교의 교주였는데 정규적인 신학교육도 받지 않고 1975년도에 예장종합총회라는 듣보잡 교단에서 당시 돈 10만원을 주고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최태민에게 목사 안수를 준 예장종합총회는 미국의 사단법인 인가를 받았고 지금도 100여개의 교회가 소속되어 있다고 주장하지만 정상적인 한국교회의 교단이 아닌 사이비교단으로 봐야 합니다. 여하튼 최태민은 그때부터 목사로 활동하면서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던 박근혜를 등에 업고 구국선교단을 창설하여 박근혜 대통령의 정신과 사상에 큰 영향력을 끼쳐왔습니다. 최순실은 이런 최태민의 딸로서 박근혜 대통령과 40년 이상의 관계 속에서 온갖 비리와 축재를 일삼아 온 것이죠. 

놀라운 것은 10월28일자 시사인의 보도입니다. 믿고 싶지 않는 내용인데요 잠시 화면을 보십시오. 이것은 최순실가족과 그의 언니 최순득이 다녔다고 추정되는 교회의 주보에 실렸던 헌금 명단을 시사인의 기자가 발췌해서 기록한 것입니다. 이 기사에 의하면 최순실과 딸 정유연이 2000년경부터 강남순복음교회, 소망교회, 광림교회 등 여러 교회를 돌아다녔고 근래에는 압구정의 고신 측 A교회를 출석했다고 합니다. 주위 사람들은 절에도 다니고 뻔질나게 점치는 집을 들락거리는 사람이 왜 주일이 되면 교회에 나가는지 모르겠다고 증언하지만 이유가 무엇이든 압구정의 A교회에 다닌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제가 조직을 가동해서 알아본 결과도 동일합니다. 주보 헌금명단과 그 사람이 일치한다고 확인해줄 수는 없지만 그 사람의 가족들이 그 교회에 잠시 다닌 것은 맞다고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만약 시사인의 보도가 사실이라면 최순실은 영세교 신자나 통일교 교인이 아니라 소위 장로교 교인인 것입니다. 믿어지십니까? 믿고 싶지 않습니다. 

그럼 이런 질문을 해야 합니다. 이 사람이 교회에 나왔다고 하나님의 백성일까요? 아니죠. 그럴 수가 없죠. 이 사람은 거듭난 신자일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순실과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이 꽤 많이 한국교회 안에 포진되어 있다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와 그의 딸, 그리고 그의 언니가 감사헌금을 하면서 적은 기원의 내용을 보십시오. 성황당에 걸려 있는 기복의 수준이나 점집에서 점쟁이에게 물어보고 소원하는 내용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한국교회의 기도제목은 이 수준과 다를까요? 다르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죠. 그래서 우리는 오늘의 이 사태를 한국교회가 말씀을 떠나 기복화되고 무속화된 자리에서 돌이키지 않고 도리어 이 사회를 기복화하고 있는 것에 따른 하나님의 엄중한 경고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로 중생한 성도들의 특징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오늘 본문의 말씀으로 우리들의 상태를 점검해보면서 자신을 잘 돌아보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지난주에 말씀드린 것처럼 야고보는 예수 믿는 것을 하나님께서 진리의 말씀으로 낳아 자신의 소유 삼은 것이라고 표현했습니다(18절). 일반적으로 중생하여 예수 믿는 다는 것은 성령께서 하시는 사역으로 설명이 됩니다. 예수님도 니고데모에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했고 바울도 디도서 3:5에서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신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야고보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실 때 성령으로 한다고 하지 않고 진리의 말씀으로 하신다고 했습니다. 아주 독특한 표현이지만 다른 말이 아닙니다. 성령이 택한 자를 불러 거듭나게 하실 때 하나님의 말씀을 수단으로 해서 그렇게 한다는 뜻이죠. 

사랑하는 여러분, 진리의 말씀을 통하지 않고 거듭나는 방법은 없습니다. 그리고 말씀으로 거듭난 사람의 심령에는 하나님의 진리가 말씀의 씨앗으로 심겨져 생명으로 역사하여 그 사람을 자라게 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중생한 자가 말씀의 역사를 받는 모습인데 21절은 온유하게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중생한 자의 특징입니다. 

여기 받으라는 말은 끌어안으라는 뜻입니다. 거듭난 자의 심령에 심겨진 말씀의 씨앗은 말씀을 들을 때마다 내가 어떻게 구원을 얻었으며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이며 어떻게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해야 하며 남은 생애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깨달을 수 있도록 역사합니다. 온유하게 말씀을 받는 다는 것은 그렇게 듣고 깨달은 말씀의 진리를 마음을 다해 끌어안듯이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마음을 다해 말씀을 끌어안는 것이 무엇일까요? 22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말씀을 온유하게 받는 것, 말씀을 끌어안고 사는 것은 듣고 깨달은 그 말씀을 행하는 것입니다. 교회에 오면 누구나 말씀을 듣습니다. 최순실 같은 사람도 듣고 중생한 그리스도인도 듣습니다. 그런데 차이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들은 말씀을 행하고, 어떤 사람은 듣기만 듣고 행하지 않습니다. 둘 다 예배를 드리고 둘 다 헌금을 하고 둘 다 말씀을 듣지만 거기서 차이가 납니다. 말씀을 받는 다는 것, 말씀을 끌어안고 사는 것은 그 말씀을 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이 진리의 말씀으로 낳음을 입은 사람의 생명의 특징입니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여러분, 야고보는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 자는 자신을 속이는 자라고 말합니다. 거듭난 자 안에 심겨진 하나님의 말씀에는 생명의 역사가 있고 이 생명은 반드시 행함으로 연결되는데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으면서도 생명이 있는 자라고 말하고 생각하는 것은 자신을 속이는 것입니다. 믿음이 들음에서 나기 때문에 교회 와서 말씀을 듣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그러나 말씀을 듣는 것만으로 다 되었다는 생각은 마귀의 속임수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귀를 즐겁게 하고 마음을 편하게 하는 말씀이 아니라 우리를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게 하는 말씀이며 생각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행동을 바꾸고 삶을 바꾸는 생명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으면서 자신이 말씀으로 거듭났다고 하는 것은 스스로 자기를 속이는 것입니다. 

이것을 확실히 하기 위하여 야고보는 거울의 비유를 듭니다. 23-25절을 보십시오.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리거니와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거울을 보면 자신이 보입니다. 무엇이 묻었다면 떼고 잘못되었다면 고치는 것이 거울을 제대로 본 사람의 마땅한 반응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거울과 같아서 우리가 말씀을 들으면 말씀을 통해 자신을 볼 수 있습니다. 아 내가 이렇구나. 이런 것은 잘못되었구나. 이것은 하나님이 싫어하시는구나. 또 마땅히 이렇게 해야 되는 것이구나. 그것이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이구나. 들으면서 알게 됩니다. 그런데 돌아서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 똑같이 자기 욕심에 몰두 한 삶을 산다면 그게 거울을 보고도 고치지 않는 것처럼 자신을 속이는 것이라는 비유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진리의 말씀으로 낳음을 입은 사람들은 그 심령 안에 말씀의 씨앗이 있어서 생명의 시스템이 가동되는 존재들입니다. 이 시스템은 들은 말씀을 행하지 않고는 괴로워서 견디지 못하는 시스템입니다. 그렇다면 말씀을 듣고도 행하지 않는 삶을 사는 사람들은 왜 그런 것일까요? 왜 최순실 같은 명목상의 교인들이 생기는 것일까요? 그 사람 안에 이 시스템이 없어서입니다. 거듭나지 못해서입니다. 거듭난 사람들은 완전하지는 않지만 말씀에 순종합니다. 그것이 특징입니다. 구원받기 위해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자신을 새롭게 낳아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순종하려고 합니다. 거듭난 자 안에 있는 말씀의 씨앗, 곧 생명의 시스템이 그렇게 이끌어갑니다. 그렇게 말씀에 순종하려고 할 때 깨닫게 되는 자신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가난하고 애통한 마음으로 구하면서 들은 말씀을 끌어안고 순종하려고 애쓰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거듭난 자들이죠. 

이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구원받기 위해 억지로 순종해야 하는 구속이나 억압의 말씀이 아니며 지키지 못하면 벌을 받고 저주를 받는 두려움의 말씀도 아닙니다. 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죄에서 자유 함을 맛보게 하고 욕심과 더러움과 악한 것에서 해방되어 진리로 이끌리는 기쁨과 자유의 율법이 됩니다. 시편 1편의 말씀처럼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 말씀을 끌어안고 온유하게 받는 자가 되는 것이죠. 물론 이것이 하루아침에 되지 않고 단번에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생의 전체에 걸쳐서 죄와의 투쟁 가운데 은혜로 되어 가는 것이지만 쉬지 않고 늘 작동되는 시스템이라는 것이 구원받은 자의 특징입니다. 

이 말씀에 근거해서 우리 자신을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입니까?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이 우리 마음속에 생명의 시스템으로 심어져 작동되고 있는지요? 그래서 말씀을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행하는 자리로 나아가고 있는지요? 그렇다면 참으로 복 있는 자입니다. 단순히 무엇을 하고 결과를 복으로 얻는 정도가 아니라 그런 사람이 된 것 자체가 복입니다. 

반대로 말씀을 들으면서도 계속 더러움과 넘치는 악을 버리지 못하고 욕심을 잉태해서 죄를 짓는 삶을 반복하는 분이 있습니까? 그것은 아직 말씀의 씨앗이 생명의 시스템으로 자기 안에 심겨져 있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만약 자신이 그렇다면 가슴을 치면서 하나님의 자비를 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나에게도 진리의 말씀으로 거듭나는 은혜를 허락하시고 그 말씀의 씨앗이 심령에 심겨져서 생명의 시스템으로 작동되는 복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긍휼을 베풀어 주옵소서. 그래서 교회 다니지만 말씀만 듣고 행함이 없는 교인이 되지 않도록 불쌍히 여겨달라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주께서 이 가슴 아픈 시대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을 불쌍히 보시고 한국교회와 대한민국을 불쌍히 보시고 다시 새롭게 되는 은혜를 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