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8:1-13

1 지금 우리가 하는 말의 요점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라 그는 하늘에서 지극히 크신 이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
2 성소와 참 장막에서 섬기는 이시라 이 장막은 주께서 세우신 것이요 사람이 세운 것이 아니니라
3 대제사장마다 예물과 제사 드림을 위하여 세운 자니 그러므로 그도 무엇인가 드릴 것이 있어야 할지니라
4 예수께서 만일 땅에 계셨더라면 제사장이 되지 아니하셨을 것이니 이는 율법을 따라 예물을 드리는 제사장이 있음이라
5 그들이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이르시되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따라 지으라 하셨느니라
6 그러나 이제 그는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그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시라
7 저 첫 언약이 무흠하였더라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
8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여 말씀하시되 주께서 이르시되 볼지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과 더불어 새 언약을 맺으리라
9 또 주께서 이르시기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그들과 맺은 언약과 같지 아니하도다 그들은 내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므로 내가 그들을 돌보지 아니하였노라
10 또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것이니 내 법을 그들의 생각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게 백성이 되리라
11 또 각각 자기 나라 사람과 각각 자기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주를 알라 하지 아니할 것은 그들이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라
12 내가 그들의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그들의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13 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으매 첫 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 가는 것이니라

스데반 황 목사 (그리스도의보혈교회, 연세대학교 전자공학, 미국 필라 웨스트민스터 목회학 석사, 비블리컬신학교 신학석사. 현재 인천 송도거주)

주 하나님의 뜻은 모든 성경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구속을 알림으로써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에 이르도록 하는데 있습니다. 그런데 구원을 이룬다는 것은 우리 인간 편에서는 주께서 주의 보혈의 공로로 우리 안에 이루신 구원의 목적을 두렵고 떨림으로 이루어가는 것을 뜻합니다. 즉, 하나님은 그분의 아들의 피로 우리를 구원하실 때 뚜렷한 목적이 있습니다. 그 목적은 다름 아닌 죄로부터 우리를 깨끗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때 깨끗하게 한다는 것은 죄 사함을 포함하지만, 또한 우리의 성품이 날마다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구원을 이루어가는 자들은 세월이 흘러가면서 그리스도의 성품을 뚜렷하게 닮아갑니다. 그리고 그 와중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많은 선한 열매를 맺도록 되어 있습니다.

8장 1절에, 요점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원어로는 (케팔라이온)이라고 하는데 ‘핵심’ 또는 요약이라는 뜻입니다. 즉, 히브리서 7장까지 언급한 내용의 핵심은 우리에게 ‘이러한’ 대제사장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대제사장은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시며, 
항상 살아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시고,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대제사장이라
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자기 자신을 단번에 제물로 드려 하나님 앞에서 영원한 희생 제물이 되신 그러한 대제사장이십니다. 이러한 대제사장은 모세의 율법에 따라 세워진 분이 아니라 하나님의 맹세에 따라 하나님의 아들이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대제사장이 되신 분입니다.

만왕의 왕이며 만유의 주이신 대제사장

그러면서 1절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하늘에서 지극히 크신 이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고 선포합니다. 지금까지 히브리서 기자가 대제사장에 대해 말할 때는 그분의 근원에 대해 말하였습니다. 즉,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히 4:14).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히 6:6).

그런데 1절의 선포에 따르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영원한 대제사장은 하나님의 나라의 왕이 되셨습니다. 따라서 그분은 현재 하늘에서 대제사장이지만 동시에 만유의 주와 만왕의 왕이십니다.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 2:9-11)

한편, 이러한 대제사장이 “하늘에서 지극히 높은 이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는 말씀은 시편 110편 1절의 성취이기도 합니다.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시 110:1).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사람이신 영원한 대제사장은 하나님의 아들이신데 또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신 왕이신 대제사장입니다.

구약의 스가랴 6장을 보면 하나님은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통해 장차 오실 영원한 대제사장에 대해 예언하여 주십니다. 그런데 그 영원한 대제사장은 놀랍게도 영원한 왕이십니다. 
[9 여호와의 말씀이 내(스가랴)게 임하여 이르시되 …12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싹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자기 곳에서 돋아나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라 13 그가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고 영광도 얻고 그 자리에 앉아서 다스릴 것이요 또 제사장이 자기 자리에 있으리니 이 둘 사이에 평화의 의논이 있으리라 하셨다 하고](슥 6:9, 12-13)

지금 스가랴 선지자는 주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예언하는데 언젠가 오실 메시아는 “하늘에서 지극히 크신 이” 앞에서 대제사장이시며 동시에 “보좌 우편에 앉으시는” 영원한 왕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의 1절은 스가랴의 예언 성취이기도 합니다. 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홀로 대제사장직과 왕의 직분을 영원히 가지시고 온 우주를 다스리는 분입니다. 따라서 우리 주님은 자기 백성의 죄의 문제를 완전하게 다루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평안과 복락과 안전을 영원히 지켜주십니다. 그분은 바로 우리를 위해 자기 생명까지 바치며 사랑하신 우리의 중보자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2절을 보니, 성소와 참 장막은 이 땅의 장막 및 지성소와 대조되고 있습니다. 이 성소와 참 장막은 사람이 세운 것이 아니라 주께서 친히 세우신 하늘의 성소와 장막을 나타냅니다. 즉, 영원한 대제사장이시며 영원한 왕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의 성막, 곧 하늘의 성소에서 섬기십니다. 우리 주 예수님은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에 앉으신 이후로 하늘에서 대제사장 및 만왕의 왕으로 섬기고 계십니다.

지금 히브리서 기자는 모세의 지시에 따라 사람들이 이 땅에 지었던 성막과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신 하늘의 성막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이 땅의 성막은 하늘 성막의 그림자일 뿐입니다. 히브리서는 언제나 상징과 그 상징이 나타내는 실체를 대조하고 있고, 상징물은 모형일 뿐이지만 상징이 나타내는 실체는 완전한 것임을 증거합니다.

언약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모세로 인해 주어진 옛언약은 죄악된 인간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옛언약은 장래 메시아로 인해 체결될 새언약을 예표할 뿐입니다. 모세로 인한 옛언약은 불완전하고 그리스도로 인한 새언약은 완전합니다. 물론 옛언약 가운데 도덕 계명이 불완전한 이유는 인간이 타락하여 죄인이 됨으로 인하여 불완전한 것입니다. 즉, 율법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입니다. 이에 바울은,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롬 8:3)이라고 하였고, 그것은 “율법의 요구”, 곧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율법의 요구는 오직 새 언약 안에서 성령을 따라 행할 때 이루어지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으로 인한 옛언약은 이미 타락하여 죄인이 되어버린 인간을 구원할 수 없으니 무능한 옛언약이 되어 버렸습니다. 따라서 사람이 죄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으려면 새언약이 반드시 존재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 주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 새언약을 제정하셨고, 새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에서 영원한 왕과 대제사장이 되셔서 하늘에서 우리를 위해 섬기고 계신 것입니다.

3절을 보면, 옛언약에서 제사장들이 예물과 희생 제물을 바친 것같이 새언약에서 하늘의 장막에서 섬기시는 대제사장 역시 뭔가를 바치셔야 합니다. 이는 모세의 율법에 따르면 대제사장은 속죄일 또는 대속죄일에 자신을 위해 송아지로 속죄하고 그리고 백성들을 위해 수염소, 수양, 비둘기 같은 제물로 속죄 제사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놀랍게도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은 동물이 아니라 바로 흠 없는 자기 자신을 속죄 제물로 단번에 영원히 드리셨습니다. 
“그는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라”(히 7:27).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계실 때 대제사장이 될 수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은 레위 지파가 아닌 유다 지파에 속하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이 땅이 아닌 하늘에서 대제사장이 되셔야 합니다. 주께서는 친히 자기 자신을 희생 제물로 바치시고 부활하셔서 하늘에 오르셨고, 하나님께서는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을 맹세 가운데 영원한 대제사장으로 삼으사 하늘 성막에서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 땅에서는 모세의 율법에 따라 오직 아론의 후계자들 가운데 대제사장이 되었지만, 우리 주님은 하늘로 오르셔서 하나님의 맹세에 따라 멜기세덱의 계통에서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신 것입니다.

옛언약에 따른 아론 계통의 대제사장들은 동물의 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피 흘리신 자기 몸으로 제사를 드리고 새 언약을 제정하셨습니다. 이때 하나님의 아들의 몸 된 제물의 효력은 영원하기 때문에 주께서는 몸 된 자신의 제물을 근거로 하여 영원한 중보 사역을 수행하실 수 있습니다. 즉, 자기 백성이 멸망하지 않도록 늘 그들을 위해 기도하여 주시고, 또한 그들이 용서를 구할 때마다 얼마든지 그들의 죄를 사하시고 깨끗하게 하여 주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히 9:12)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바로 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셨느니라”(히 9:24).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히 7:25).

하늘의 참 성소

5절은 지상의 성소는 하늘의 참 성소의 모형이라고 설명합니다.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은 지상의 성소에서 그들의 직무를 수행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성소는 하늘에 있는 참 성소의 모형에 불과했습니다.

지금 히브리서 기자가 하늘과 땅의 성막을 비교하는 것은 하늘에도 똑같이 생긴 물리적인 성막이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구약의 성막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하늘의 어떤 영적 실체를 우리 인간들에게 맞게 허용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늘 성막의 공간이나 형체 등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알 수 없습니다. 단지 우리가 아는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 및 왕으로서의 중보 역할 때문에 우리는 죄사함을 받으며 죄를 이기며 또한 이 땅에 사는 동안 완벽하게 안전하다는 사실입니다.

요한계시록 4장과 5장을 보면, 하늘의 예배 장면이 나오는데, 그 장면을 통해 하늘 성막을 상상해 보는 것은 허락될 것입니다. 하지만 구약에 있었던 이 땅의 모형으로 하늘 성막을 구체화하려는 것은 자칫 어리석음과 우상 숭배에 빠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늘 성막은 완전한 영광 가운데 계신 하나님 앞에서 예배하며 주 하나님과 성도들과 천사들의 완전한 화목의 상태라고 보면 될 것입니다. 따라서 하늘의 성막은 우리가 가히 다 말로 형용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가장 중요한 사실은 그러한 영광스러운 하늘 장막이 우리 신자들에게 열리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더라”(마 27:50-51).

이 기적은 하나님 보좌 앞으로 나아가는 길이 신자들에게 열렸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휘장이 찢어지는 이 사건 이후로 하늘의 성소가 열렸기 때문에 이 땅의 성소는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이는 실체가 오면 그 예표는 사라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새 언약의 중보자 되시는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 보좌 앞으로 아무 때나 얼마든지 나아가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교통은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의 목적의 절정으로서 우리 사람들에게는 최고의 영광이며, 최고의 희락이고 영생이며 감사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후 부활 승천하셔서 영원한 대제사장과 만왕의 왕이 되신 이후로 모세의 율법에 따른 아론의 대제사장직은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그 대신 우리를 대신하여 희생 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하늘 성소에서 대제사장의 역할을 하시니, 우리는 언제든지 죄 문제를 해결 받을 수 있고, 또한 하나님 보좌 앞에 나아가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히 9:14).

이에 예표로 존재하던 모세 율법의 제사장들은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카톨릭 경우처럼 사제, 곧 제사장 제도가 남아있는 것은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의 중보 역할을 불완전한 것으로 치부하거나 또는 그 실체를 거부하고 아직까지 그림자를 붙들고 있는 헛된 제도인 것입니다.

한편, 구약에 제사 및 성막과 관련한 구절들을 보면 이러합니다.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모양대로 장막을 짓고 기구들도 그 모양을 따라 지을지니라”(출 29:9)
“너는 삼가 이 산에서 네게 보인 양식대로 할지니라”(출 25:40).
“너는 산에서 보인 양식대로 성막을 세울지니라”(출 26:30). 
“제단은 산에서 네게 보인 대로 그들이 만들게 하라”(출 27:8).

이처럼 구약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지시하신 그대로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만일 이 부분이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주 하나님께서는 예배와 제사를 받지 않으셨습니다. 심지어 거룩한 진노 가운데 자기 백성을 멸하기도 하셨습니다. 대제사장 아론의 두 아들 나답과 아비후는 주께서 명하지 않으신 다른 불을 여호와 앞에 드리다가 거룩한 불에 타서 즉사하였습니다.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시지 아니하신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레 10:1-2).

이는 하나님은 오직 좁은 길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만을 통해 우리의 예배를 받으심을 알려줍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그러므로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해야 합니다. 즉, 성령 안에서 진리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예배해야 합니다. 이에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십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 4:24).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 승천하셔서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과 왕이 되셨습니다. 이에 주님은 자신의 몸으로 드리신 영원한 희생 제물을 근거로 대제사장 직을 수행하심으로 새언약에 속한 우리에게 더 없이 좋은 것들을 무한하게 주십니다. 즉, 죄 사함과 거룩의 능력, 사랑과 감사, 평강, 기쁨 등, 하늘에 속한 모든 것들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6절을 보면, 이제 주 예수님은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고 또한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가 되셨다”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맹세로 얻으신 대제사장직분은 지상의 성소가 아니라 하늘의 성소를 위함입니다. 또한 대제사장 자신도 완전한 대제사장이고 제물 자체도 그리스도의 의로운 몸으로써 완전한 희생 제물입니다. 그러므로 하늘 성소에서의 우리 주 예수님의 대제사장 직분은 감히 이 땅에서의 제사장들의 직분과 비교될 수 없습니다.

특히 구약의 대제사장 제도는 모세의 언약을 통한 것이며, 그 언약이 담고 있던 약속은 인간의 행위에 달려 있었습니다. 그러나 8절의 말씀처럼 “그들의 잘못”으로 인하여 옛언약을 지키지 못함으로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결과로 북이스라엘은 앗수르 제국에게 멸망 당하였고, 남 유다는 바벨론 제국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우리 주 예수님은 새언약을 통한 대제사장이며 그 언약의 주권자는 일방적으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새 언약에 속한 주의 백성은 안전합니다.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그 대신 엄중한 징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도다”(롬 8:1).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히 12:6, 8).

옛언약의 불능과 새언약의 골자

이제 히브리서 기자는 더 좋은 약속에 근거한 더 나은 언약인 새언약이 어떤 것인지 8절부터 13절에 기록합니다. 새언약은 우리가 알다시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중보자로 하여 우리와 맺으신 영원한 언약입니다.

먼저, 10-12절은 새언약의 골자입니다. 이 내용은 예레미야 31장 31-34절의 성취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새언약이 가능하게 된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완전한 희생 제물이 되시고 또한 완전한 대제사장이 되셨으며 또한 영원토록 왕이시기 때문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에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영원한 왕이시며 대제사장으로서 그분의 완전한 희생 제물에 근거해서 죄사함을 베푸시고 또한 성령을 보내심으로 새언약에 속한 자들의 마음을 새롭게 하십니다. 
[8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여 말씀하시되 주께서 이르시되 볼지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과 더불어 새 언약을 맺으리라
9 또 주께서 이르시기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그들과 맺은 언약과 같지 아니하도다 그들은 내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므로 내가 그들을 돌보지 아니하였노라
10 또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것이니 내 법을 그들의 생각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게 백성이 되리라
11 또 각각 자기 나라 사람과 각각 자기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주를 알라 하지 아니할 것은 그들이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라
12 내가 그들의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그들의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히 8:8-12; 렘 31:31-34 인용).

여기서 ‘그 날 후에’는 완전한 희생 속죄가 치러지는 십자가의 고난의 날을 말합니다. 그 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이스라엘, 곧 구원 받은 주의 백성들 사이에 새 언약이 체결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백성은 새언약과 더불어 하나의 도시 또는 나라를 형성할 것입니다. 그 나라는 다름 아닌 우리 주 예수께서 왕으로 계시고 주께서 보내신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나라, 곧 이 땅에 임하는 천국은 새언약의 시대에 속하게 됩니다. 이에 10절과 11절은 하나님 나라에 속한 백성의 특징을 알려주는데, 
“나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게 백성이 되리라. 또 각각 자기 나라 사람과 각각 자기 형체를 가르쳐 이르기를 주를 알라 하지 아니할 것은 그들이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라”
고 말합니다. 이와 동일한 내용이 사도 요한의 글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요일 2:27).

즉, 성령께서 친히 역사하시는 새언약의 하나님 나라 시대의 특징은 성령의 조명하심인 것입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저자는 그 나라에 속한 각 성도에게 새 언약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구체적으로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레미야를 통해 주셨던 새언약에 대한 예언이 그대로 성취된 것입니다.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것이니 내 법을 그들의 생각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히 8:10).

이에 대해 가장 멋지게 설명한 내용은 고린도후서 3장입니다. 
[2 너희는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뭇 사람이 알고 읽는 바라
3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판에 쓴 것이라
4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하여 이같은 확신이 있으니 …
6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
7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율법 조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 때문에도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8 하물며 영의 직분은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9 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고후 3:2-4, 6-9)

즉, 새언약의 핵심은 성령께서 우리 안에 내재하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고 그 말씀으로 우리의 양심을 붙든다는 것입니다. 옛언약은 우리의 마음의 변화 없이 그저 부패한 생각과 양심을 가지고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 조문을 지키게 한 것이었지만, 8절에서 말한 것처럼 그들은 결국 실패를 하고 언약을 깨뜨리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새언약은 만왕의 왕이시며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신 주 예수께서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의 생각과 마음의 양심에 하나님의 율법을 새겨 넣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 안에 있는 하나님의 법을 성령을 따라 행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영원한 대제사장으로 말미암아 언제든지 죄 사함을 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하나님의 법에 따라 계속 변화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성령께서 친히 우리 안에 와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새 언약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며 효력입니다. 곧, 성령께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셔서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게 하시고,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고 기억나게 하시고, 심지어 우리의 마음 양심을 붙들어 주셔서 죄를 짓지 않도록 도우신다는 사실입니다.

아무튼 옛언약은 상징일 뿐이기 때문에 결코 사람의 마음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거나 직접 옛언약에 속한 제사로 인해 죄사함을 받게 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구약 시대에서는 단지 상징이 가리키는 실체의 효력을 주께서 미리 당겨서 죄를 사해 주시고 또한 마음을 붙들어 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새언약에 속한 자들에게는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그 마음이 변한 상태에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그리스도의 생명의 능력을 소유하며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이 사실이 히브리서가 알려주려는 가장 중요한 핵심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완전한 순종과 삶을 통해, 특히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신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새언약의 시대를 여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마음과 생각 안에 하나님의 법을 주신 것입니다. 이는 다름 아닌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셔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또한 하나님의 법을 깨닫도록 조명하여 주시며 나아가 성령을 따라 행할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삶에는 성령의 열매가 맺히며 그리스도 예수님을 뚜렷하게 닮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나아가 교회 공동체 및 하나님 나라에 선한 유익을 주는 복된 삶을 살게 되어 있습니다.

모세로 인한 옛언약은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는 기능만 할 뿐이었습니다. 옛언약은 죄인된 인간을 변화시킬 수도 없고 또한 죄를 사하여줄 수도 없었습니다. 즉, 옛언약으로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옛언약은 우리 인간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새언약을 가리켰고, 따라서 옛언약에 실패한 자들은 옛언약이 지시하는 새언약의 주인공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사함과 구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새언약 시대에 사는 우리는 성령으로 구원을 얻은 직후부터 언제든지 어느 곳에서든지 하나님과의 교통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생명의 역사로 말미암아 우리의 신앙 양심을 일깨워 하나님께 반응하도록 만드십니다. 더 나아가 새언약에 속한 자들은 결코 구원을 잃는 일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영원하신 대제사장이 그들을 위해 중보 기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에 그들의 죄는 하나님께서 다시는 기억도 하지 않으시고 그들의 불의를 긍휼히 여기십니다. 나아가 그들에게는 성령께서 임하시기 때문에 죄의 세력이 사라지고 하나님께 기쁨을 드릴 수 있는 거룩한 성품과 삶을 소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새언약이 뜻하는 바가 새생명을 얻은 자들은 성경을 공부할 필요가 없고 회개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는 성령의 역사를 위해 더욱 성경을 가까이 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내 마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법을 우리의 삶 가운데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언약이 뜻하는 바는 그들의 죄가 다 사함 받아서 지옥에 떨어질 수 없으며, 또한 그들에게는 그리스도의 생명이 주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영생입니다.

그러므로 새언약에 속한 자들은 더욱 진정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 하나님께 제대로 행동해야 합니다. 실제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관계가 맺어졌으니 그분을 인격적으로 알아가야 합니다. 특히 그들은 인생 가운데 여러 모양으로 하나님을 체험하며 알아가게 될 것입니다. 또한 그분은 우리가 죄를 고집할 때 결코 그냥 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새언약에 속한 자들에게는 주께서 허락하신 고난과 회초리가 분명하게 임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주의 회초리와 고난은 우리가 새생명을 지닌 자요, 완전하게 죄사함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임을 입증할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 편에서는 대단히 아프고 힘들 것이며 말로 다할 수 없는 비참을 겪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늘 깨어서 새언약 안에 거하셔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새언약의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상에서 자기 몸을 희생 제물로 드리셨을 때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특히 주께서 부활 승천하시어 성령을 보내실 때 그분의 대제사장 사역과 왕으로서의 사역이 공식적으로 시작되었고, 이 땅에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공식적으로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성령이 내재하는 신자들마다 거룩하게 되었으며 또한 거룩한 생명까지 얻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새언약 안에 있는 자들은 뜻하기만 하면 거룩한 삶을 살 수 있고 나아가 그리스도를 닮아가면서 거룩한 성품을 이루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새 언약을 붙들고 그리스도 예수께 나아갑시다. 이 죄 많은 어둔 세상 속에서 하나님 보좌 앞에 나아가 거룩한 생명력을 얻으며 한없는 위로와 힘을 얻도록 합시다. 왜 이러한 특권을 가지고서 여전히 죄 가운데 머물며 어둠 속에 거하려 하십니까? 우리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새언약을 받은 자들입니다!

물론 새언약의 궁극적인 약속은 유대 땅 가나안이 아니라 영원한 새하늘과 새 땅에서 다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새언약에 속한 모든 좋은 것들, 곧 영생과 능력과 기쁨과 의와 사랑 등은 이미 이 땅에 임한 하나님의 나라, 곧 성령 안에서 얼마든지 현재적으로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 14:17).

우리 모두가 새언약의 중보자이신 하나님의 아들이요, 영원한 대제사장이시며, 완전하고 영원한 희생 제물이시고, 나아가 영원한 왕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 오늘도 그분과 동행하며 하나님 나라의 평안과 안식과 의와 기쁨을 누리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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