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26:15-19 

15. 너는 조각목(shittim, שִׁטָּה)으로 성막을 위하여 널판을 만들어 세우되 16. 각 판의 장은 십 규빗, 광은 일 규빗 반으로 하고 17. 각 판에 두 촉(tenon)씩 내어 서로 연하게 하되 너는 성막 널판을 다 그와 같이 하라 18. 너는 성막을 위하여 널판을 만들되 남편을 위하여 널판 스물을 만들고 19. 스무 널판 아래 은받침 마흔을 만들찌니 이 널판 아래에도 그 두 촉을 위하여 두 받침을 만들고 저 널판 아래에도 그 두 촉을 위하여 두 받침을 만들찌며

성막은 4가지 종류의 덮개로 덮었는데, 가장 안쪽에는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을 상징하는 4가지 색실로 그룹 천사들을 짠 덮개를 덮었고, 그 위에는 우리의 죄를 담당하여 속죄의 대속물이 되신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흰 염소털로 된 앙장을 덮었고, 그 위에는 우리를 구원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하는 붉은 물들인 숫양의 가죽을 덮었고, 가장 바깥에는 그리스도의 고난을 상징하는 비와 바람에 내구성이 강한 해달의 가죽으로 만든 덮개를 씌웠다.

성막 덮개는 안으로 갈수록 화려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성막은 밖에서 볼 때와 안에서 볼 때에 매우 큰 차이가 있다. 성막은 밖에서 보면 투박한 해달의 가죽으로 덮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성소 안에서 보면 찬란하게 빛나는 금빛 벽과 기둥들과 정금으로 만든 기구들, 그리고 4가지 실로 짜서 만든 아름다운 덮개를 볼 수 있다. 

성막 안에는 온통 금으로만 꾸며져있는데, 이것이 크리스천의 진짜 모습이다. 밖에서 볼 때에는 바보같고, 별볼일 없어 보이고, 밟아도 죽지않고 다시 일어나는 잡초처럼 억세보이기도 하지만, 그의 내면은 금빛 찬란한 빛이 있어야 한다.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어야 하며 그분의 영광을 내면에 항상 간직하고 살아야 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성전이신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한 사람은 참빛이신 그분의 영광을 모르기 때문에 항상 기뻐하며 감사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성막을 덮을 덮개에 대해 말씀하신 뒤에 성막의 골격에 대해 말씀하셨다. 성막을 세울 기둥은 조각목 널판으로 만들라고 하시는데, 각 널판의 크기는 길이가 10규빗(4.56m), 넓이는 1규빗 반(68.4cm)으로 하고, 각 판에 두 촉(tenon)씩 내어 서로 연결할 수 있도록 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은으로 받침을 만들어서 널판의 아래에 두도록 했다. 그리고 조각목으로 만든 각 널판은 금으로 싸라고 지시하셨다.

이렇게 만들어진 널판들은 북쪽에 20개, 남쪽에 20개, 서쪽에 6개와 모퉁이에 2개 모두 합해서 48개를 만들고, 또한 동쪽을 제외한 서쪽과 남쪽과 북쪽의 널판들을 고정시킬 띠(가름대)를 각각 5개씩 15개를 만들라고 하셨다.

성막을 만들기 위해 널판들을 만들어서 세우는 과정을 보면, 각 널판들이 서로 연결되어서 만들어졌다. 이는 오늘날의 교회를 상징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로 만들어진 교회는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고 고백하는 성도들의 연합으로 이루어진다.

에베소서 2:20-22을 보면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교회를 구성하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한 사람도 필요치 않은 사람이 없다. 모두 하나의 널판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서로 연결이 되어 하나님의 성전이 되어가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에 다니면서 “나는 이곳에 별로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안된다. 그런 생각이 바로 죄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필요로 하다고 하시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자신의 부족함을 보면서 교회에서 그의 은사를 사용할 필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부족하다며 극구 교회에 출석만 하고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이들이 있다. 많은 이들이 그것을 겸손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것은 자신을 도구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나님께 자신을 내어 드리지 않는 완고함이다. 성경에서 "완고함은 우상 숭배"와 같은 죄라고 말씀한다. 그래서 교회에 가서 예배만 드리고 오는 이들은 우상 숭배의 죄를 범하고 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어디에 있으며, 의인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죄인에서 의인으로 칭해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재판장이신 주님께서 다 용서했으니 이제 일하라고 하시는데도 그분의 말씀을 거역하고 자기 고집대로 완고함을 꺾지 않는 이들이 많다. 그렇게 자신을 부인하지 못해서 자신을 주의 도구로 내어드리지 못하는 것이 우상숭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가 우상이 되어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필요하다고 하시는데, 아니라고 하니까 그것이 죄라는 말이다. 자신이 하나님 자리에 서서 판단하고 결론 짓는 것 즉 선악 지식나무를 따먹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겸손이 아니라 주 앞에서 지극한 교만이다.

성막의 널판들은 성막을 튼튼하게 하는 말뚝과 같이 앙장(덮개)을 지탱하는 것들이다. 이 널판들은 장부촉(tenon)이 있었고, 이 장부촉들은 은받침들에 만들어져있는 장붓구멍들에 끼우게 되어 있었다. 장부촉(tenon)이라는 것은 한쪽 구멍에 다른 쪽 끝을 연결하기 위해 가늘게 다듬은 것을 말한다.

이는 교회인 우리가 각자 한 사람씩 매우 세심하게 잘 다듬어져야 하는 것을 말해준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잘 다듬어졌을 때, 그것이 연결이 되고 연합이 될 수 있다. 누구 한 사람이라도 잘 다듬어지지 않으면 다른 쪽 끝과 연결할 수 없다. 즉 다른 사람들과 하나가 되기 힘들다.

이 장부촉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이것이 없으면 널판이 은받침 위에 세워질 수 없다. '촉(tenon)'의 히브리어 '야아드'(יָד)는 ‘손(hand)’, 힘·능력(strength, power) 성별·봉헌·헌신(consecration, devotion) 등의 뜻을 갖고 있다. 즉 가늘게 잘 다듬어진 ‘촉’ 하나만 갖고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지만, 성막의 널판을 은받침 위에 고정시켜주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우리가 교회에서 헌신하는 것들이, 예를 들어서 부엌에서 다 만들어진 음식을 밖으로 나르는 일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도 없어서는 안 될 일이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도 그것을 식탁 위에까지 나르지 않으면 무용지물일 뿐이다. 그래서 가장 별볼일 없어 보이는 것이 사실 가장 중요할 수 있다.

"이뿐 아니라 몸의 더 약하게 보이는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고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요구할 것이 없으니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존귀를 더하사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하여 돌아보게 하셨으니"(고전 12:22-25)

교회를 위해 하는 모든 것이 손으로 하는 것이며 그 모든 것이 성별된 주님의 일을 하는 것이고, 그 모든 것이 하나님께 우리를 바치는 헌신이다. 그래서 별 것 아닌 것 같은 우리의 연약하고 부족한 손으로 하는 일들이 합쳐졌을 때, 큰 힘과 능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십시일반: 十匙一飯)

따라서 우리의 손은 오직 하나님만 붙잡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사용되어야지, 만약에 물건을 훔치는 데 사용하거나, 또는 사람을 때리는 데 사용하거나, 욕을 하기 위해 손가락질을 하는데 사용되면 안된다. 우리의 손은 오직 하나님만 붙잡고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일에만 사용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널판을 연결하기 위해서는 “띠”라고 하는 막대기들이 필요했다. 이 널판들은 금고리를 통해 위아래로 연결되었고, 각 널판에 있는 금고리 못들을 관통하는 막대기들(띠)로 고정되었다. 그리고 이 널판들과 막대기(띠)들은 모두 금으로 도금되었다.

여기에서 “띠”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상징한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탄생되었고, 그분 안에서 한 몸이 되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지, 예수님 이외의 그 어떠한 것으로도 하나가 되어서는 안된다.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띠로 연결해야 하는데, 그 띠가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리고 널판 밑에 있는 은받침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생명의 속전(ransom)으로 드려진 것을 의미한다. ‘속전’이란 말은 ‘몸값’이란 뜻이다. 옛날 노예를 사거나 그 노예를 자유롭게 해주려면 그 사람의 몸값을 주어야 하는데, 노예의 몸값이 성경에 보면 은 30개였다. 예수님을 가룟유다가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팔아 넘길 때, 은 30개를 받고 팔았던 것처럼 ‘은’은 어떤 거래에서 ‘댓가’를 뜻한다. 그래서 우리의 죄로 우리가 죽어야 마땅하지만, 우리 대신에 그리스도께서 생명을 속전으로 주신 것을 상징하는 것이 은받침이다.

우리의 몸값을 대신한 속전을 상징하는 은을 받침으로 사용한 이유는, 교회인 우리가 세상 속에서 바로 서야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즉 아무 것이나 받침(foundation, base)이 되면 안된다는 말이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목숨을 주고 산 것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보혈 위에 서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요즘 교회들과 교인들을 보면, 말씀 위에 서있지 않는 경우가 많다. 성경대로 가르치지 않고 자기들 생각대로 가르쳐서 오늘날의 교회가 소금과 빛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말씀대로만 가르치고 배우고, 말씀 위에 굳건히 서야 한다.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잘 모르니까 아무리 신학박사라고 할지라도 예수님이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것은 신화라고 하면서 불교와 천주교와 함께 모여서 목탁을 두드리며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절대로 목사라고 다 믿지 말고, 교회라고 다 교회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분별해서 교회를 다닐 수 있다. 말씀을 잘 모르니까 분별할 수가 없어서 아무데나 교회 이름이 걸려있으면 교회인 줄 알고 다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기반으로 세워진 교회인 널판들은 성막의 형태를 보전하고 유지하는 일을 한다. 이것은 세상 속에서 교회가 세상에 물들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보전해야한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가 주인인 사람들은 시대가 변했으면 시대에 맞추어서 살아야하며 구약은 율법이므로 지킬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즉 말씀을 보전하려고 하지 않고 말씀을 자르고 붙이고 자기 멋대로 해석한다. 이들은 다름아닌 빛을 가장한 어둠의 자식들이다.

그러므로 성막의 널판인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위에 굳건히 서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또 말씀을 더하지도 말고 빼지도 말고 성경 말씀을 그대로 잘 유지하고 지켜야한다. 요즘은 평화와 하나되는 것을 목표로 여러 종교가 손을 잡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평화를 외치고 하나가 되자고 할지라도 성경 말씀과 다르면 목표가 아무리 좋다고 할지라도 따라가면 안된다. 왜냐하면 마귀는 “평화의 사도”나 “빛의 일꾼”으로 가장하고 우리 앞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는 “양의 탈을 쓴 늑대”를 조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령 안에서 쉬지말고 기도하며 성경을 묵상하며 공부해야 한다. 기도도 힘쓰지 않고 성경도 잘 모르기 때문에 약간의 트릭을 쓰면 넘어가는 것이다. 

한국교회의 현주소가 어디인가? 교회에서 성경공부를 통해 성경을 가르치지는 않고, 세상 돌아가는 것만 설교하며 세상에 나가서 촛불이니 태극기니 하면서 싸움을 부추기니 교인들이 하나님과 예배보다 사회 참여를 참 신앙 생활로 잘못 생각한다. 성경공부는 관심도 없고 교회에 가서 예배드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데모 현장에 나가서 시위에 참여하는 것이 참된 크리스천이라고 미혹하고 있다. 

수많은 교회의 리더들이 시위에 참여하지 않고 기도하며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주만 바라보는 자를 믿음이 없는 자로 잘못 가르치고 있다. 결국 교회마다 시위에 동원되어 연합이 아닌 분열만 더욱 크게 조성했으며 마귀와 싸우지 않고  자기들의 주장과 다른 자들을 적으로 만들어 한국 사회를 전쟁터로 만들었다. 결국 수많은 시민들이 싸움꾼들이 되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자신의 정욕을 못박고 그리스도의 띠로 하나가 된 참된 교회를 찾아보기 힘든 것이 오늘날 한국 교회의 현주소이다.

[적용]

△내가 속한 교회는 널판이 은받침 위에 잘 서있듯이 그리스도의 대속을 기반으로 서로 잘 연합되어 있는가?

△우리 교회는 성경 말씀을 열심히 가르치고 있는가? 또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반석위에 굳건히 서 있는가?

△우리 교회의 외면은 별 볼일 없어 보이지만, 내면은 그리스도의 빛으로 빛나는 왕같은 제사장들이 모여있는가? 아니면, 외모는 크고 훌륭하지만 정작 그리스도의 빛이 아닌 세상의 인스턴트 빛으로 꾸미고 있는가?

△우리 교회는 무슨 "띠"로 하나가 되는데 힘쓰고 있나?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를 부인하며 겸손히 서로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며 섬기는데 힘쓰는가? 아니면, 취미나 취향에 맞추어 인간의 행복을 이루며 하나님의 나라보다 인권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하나가 되어있는가?

△우리가 바라는 평화는 어떤 평화인가? 어떠한 종교와도 하나가 되기 위하여 손을 잡는 세계의 평화인가, 아니면 세계와 싸우더라도 주께서 주시는 평안인가?

△우리 교회는 성경 공부와 데모 시위 중 어느 것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는가?

△우리 교회 목사님은 주로 무슨 설교를 하는가? 성경을 강해하는가, 아니면 세상 돌아가는 일들을 이야기 하며 사회참여를 부추기는가?

△우리 교회는 한국 사회를 전쟁터로 만드는데 얼마나 기여를 했는가?

△모든 권세를 하나님께서 주시고 나라의 권력자들도 주께서 세우신다는 성경 말씀을 믿는가? 정말 믿는다면, 왜 악한 바로왕과 같은 대통령도 주께서 세우셨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가? 크리스천들의 죄악이 관영하므로 악한 자가 대통령이 되는 것이 주님의 징벌인데, 그 벌을 받을 생각은 안 하고 자신들이 하나님 자리에 앉아서 주권자들의 권세를 빼앗으려고 안달을 하는가? 그렇게도 성경과 하나님을 모르는가? 그러한 무지가 낳은 열매의 맛이 어떠한가? 온통 가시덤불과 엉겅퀴 뿐이 아닌가? 

그와 반대로 이슬람 문화를 들여온 대통령을 주께서 자리에서 쫓아내셨는데, 자기들의 잣대로 판단하여 아무 죄가 없다며 찬양하며 구치소 정문에 가서 꿇어 엎드려 경배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혹시 결백할지라도 이슬람 문화를 들여온 것이 정말 아무 죄가 없는 것인가? 예멘 난민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으면서 어찌 그들이 들어오도록 통로를 만들어 준 것에 대해 그렇게 관대한가?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으므로 지각이 없어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고 할 것인가?

(박근혜 대통령은 2015년 6월 5일 아랍에미리트(UAE) 모하메드 왕세제와 정상회담을 갖고,  ‘할랄 식품 양해각서(MOU)’를 체결하여 이슬람 식품의 한국 진출 기반을 마련했다. "이번 MOU는 중동 국가와 체결한 첫 번째 할랄 식품 협력 사례"라고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이 밝혔다.)

△우리 교회에서 나는 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나의 만족을 위하여 예배만 드리고 가는 존재 즉 무용지물이라고 생각하는가?

△나와 우리 교회는 현재 무엇을 가장 의지하고 붙들고 있는가?

△나는 하나의 널판으로서 다른 널판들과 연합하여 거룩한 주님의 교회를 이루기 위하여 주께서 다듬으시는대로 온전히 나 자신을 드리고 있는가?

[기도 제목]

1) 혼과 육의 사람이 아닌 영의 사람으로 살도록 성령충만케 하옵소서

2) 죽어야 마땅한 이 죄인을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대속해 주시고 교회의 구성원으로 삼아주심을 감사드립니다.

3) 저희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기 보다 친목이나 인간의 즐거움과 티끌로 만들어진 인간의 권리와 가치를 더 추구하며 거기에서 기쁨을 찾는 경향이 짙습니다. 한쪽으로 많이 치우쳐 있음을 고백합니다. 외모에 치중하지 말고 내면을 말씀으로 채워서 그리스도의 빛이 나는 교회가 되도록 그리스도의 띠로 하나가 되도록 허락하여 주옵소서.

4) '평화'라는 말을 액면 그대로 해석하여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왠만한 일들은 성경과 반대로 흘러가더라도 타협하며 싸우지 않고 평화협정을 맺는 목회자들과 교회들이 너무나 많아서 한탄이 나옵니다. 또한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설교하지 않고 세상 돌아가는 정치 경제 사회 문제들과 이슈들을 설교 시간에 나열하며 마귀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적으로 만들어 그리스도의 군사가 아닌 육체의 싸움꾼으로 만들어가서 오늘날 한국사회가 각 분야별로 적군을 만들어 싸우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이러한 저희의 죄악을 인지할 수 있는 지각을 주시고, 지각을 사용하여 회개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5) 주일에 교회의 뜰만 밟고 출석 체크만 하고 돌아가는 무용지물이 아니라,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하여 주일 하루는 저자신을 온전히 희생하여 거룩한 산 예배를 드리는 주님의 예배의 도구로 사용하여 주옵소서. 저의 부족함이나 또는 성도들과 하나가 되는 것을 원치 않아서 모든 사역을 거절했던 것이 저의 교만때문이며 제가 우상이 되어 하나님을 반역하는 엄청난 죄를 지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는데, 그것을 깨닫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6) 종교다원주의라는 위장된 평화에 속았던 것을 회개하며 주님과 예배보다 시위에 참여하여 한국 땅을 전쟁터로 만들고 소금과 빛이 아닌 싸움꾼으로 살았던 것을 회개하며 기도와 성경공부를 통해 교회가 연합하는 것보다 시위에 참여하여 주께서 세우신 주권자를 몰아내기 위해 연합했던 것을 회개하며 주께서 저희의 죄값으로 악한 지도자를 세워서 내리신 징벌을 피하기 위하여 저희가 하나님 자리에 앉아서 주권자를 판단했던 것을 회개하며 이슬람 문화가 들어오는 통로를 마련한 대통령이 아무 죄가 없다고 감히 하나님 앞에서 떠들며 그를 찬양했던 것을 회개하며 성경공부보다 세상 뉴스에 더 관심을 기울였던 것을 회개하며 기도하고 찬송하며 성경을 공부할 시간에 시위에 참석하라고 미혹했던 것을 회개하며 주님의 섭리에 맡기지 못하고 저희가 세상을 바꾸려고 통치자이신 주님의 자리에 앉았던 것을 회개합니다. 

7) 오직 주님만 바라보며 주의 말씀을 깊이 상고하고 잘 보전하며 지키는 가운데 어떠한 상황과 환경 속에서도 결코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승리하게 도와주셔서 저희 가정과 교회가 오직 주님만 붙들고 영원히 주님과 연합된 삶을 살게하여 주옵소서.

†he 2nd Life Foundation 뉴 욕 퀸 즈 교 회       
Pastor Esther Soo-Gyung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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