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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칼럼] 당신의 고백에 빨간 불은 들어오지 않았는지기초가 부실한 것 위에 멋진 탑을 쌓아보라. 그것은 언젠가 무너지는 바벨탑이 될 것이다.
  • 발행인 최원영목사
  • 승인 2018.08.04 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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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영목사, 본푸른교회 담임, 서울신학대학교신학박사, 본헤럴드 대표, 본국제신학교학장, (재)본월드미션이사, (사)새길과 새일 부이사장, (사)국제NGO글로벌 비전이사. 등. 저서: 주기도문연구, 십계명, 팔복, 제자세우기 40일 영적순례 등.

21세기 성도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언어가 ‘나 시험들었어’, ‘나 상처받았어’, ‘나 힘들어’라는 단어라고 한다. 고백에 빨간 신호등이 들어온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고백이 많이 병들었다고 할 수 있다.

교육의 목표는 바른 생각, 바른 말, 바른 행동을 창조하는 것이다. 그러면 기독교교육의 목표는 무엇일까? 주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하나님이며 나의 구원자이며 나의 영원한 왕인 것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것이다. 이것이 기독교 교육의 가치이며 목표이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선택하시고 3년 6개월을 교육한 후에 마지막 종합구술시험을 봤다. 그 시험 문제는 “세상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더냐. 또 다른 질문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물었다. 시몬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베드로의 고백이 예수님을 감동시켰다. 베드로의 고백은 예수님의 본질 즉 예수님이 누구인지에 관한 정체성을 가장 선명하고 분명하게 대답한 것이다.

예수님이 선택한 종합구술 시험의 장소는 가이사랴 빌립보이다. 로마황제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도시이다. 그리고 도시 중앙에 가이사랴의 신전이 있다. 가이사랴는 살아있는 권력이며, 세계를 지배하는 신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선택한 시험 장소가 바로 가이사랴 신전앞이다. 살아있는 권력자앞에서 제자들에 물었다. 누가 진짜 신이냐?라는 질문이다. 베드로는 진짜 신은 로마 황제 가이사랴가 아니라, 바로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요, 기름부음 받은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임을 고백했다.

평화성결교회(최종인목사) , 수련회 기간에 함께 찬양하며 침례예식을 드리는 모습.  아릅답다. 천국의 자녀로 살겠다고 고백하는 현장, 그 자리는 언제나 귀하고 복되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고백을 듣고, ‘네가 복’이 있다고 칭찬했다. 바르게 대답하고 고백하는 신앙인이 복이 있는 사람이다. 기독교교육의 목표는 바른 고백을 창조하는데 진정한 목표를 두어야 한다.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셉을 알지 못하는 애굽왕의 출현’으로 존경받던 야곱의 후손들이 노예로 전락했다. 얼마나 큰 충격이겠는가? 지금 21세기 한국교회는 심각한 내적, 외적 도전앞에 서 있다. 전통사회에서는 교회가 지역사회의 존경의 대상이었다. 사람들이 잘 다니는 번화한 곳에 번듯하게 교회를 지어놓고 있으면, 교회 중심으로 사람들이 몰려왔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 사회에서 교회는 관심의 대상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교회는 점점 고독한 섬에 갇혀 있는 형국이다. 뿐만아니라, 기독교 유일신 사상과 기독교적 가치와 윤리에 도전장을 내밀고 파고 들어와 흔드는 주제들이 너무 많다. 퀴어축제를 문화의 현상으로 해석할려고 하는 무리들과 하나님의 말씀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악의 축으로 보는 구약적 개념과의 갈등, 성정체성에 관한 도전앞에 교회는 갈팔질팡하고 있다.

교회 교육의 목적이 무엇인가? 기독교 교육은 어디에 기반을 두고 해석해야 하는가? 바로 성경이다. 성경은 기독교의 존재 이유를 밝히는 경전이다. 이 경전은 곧 하나님이 저자이다. 모든 것은 성경에서 그 기반을 두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무너지지 않는다.

세상적인 프레임으로 교회를 보지 말고, 성경적 프레임으로 세상을 보라. 성경적 사고 훈련을 시키는 것이 기독교 교육의 목적이다. 신앙의 능력은 주님은 구원자요 하나님의 아들이며 진정한 왕이라는 고백의 터 위에 존재한다. 이 프레임이 무너지면 종교시장에서 기독교는 사라질 것이다.

입술의 고백이 살아있으면 병들지 않는다. 그러나 입술의 고백이 죽었으면 삶도 영혼도 죽는다. 야고보 선지자는 ‘한입으로 찬송과 저주’를 하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다고 했다. 우리의 입술의 고백이 살아계신 하나님만 찬양하며 영광 돌려야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로마서는 이론편과 실천편으로 크게 구분한다. 이론편은 1장에서 시작해서 11장 36절로 마무리된다. ‘모든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롬11:36). 이 말씀은 하나님의 주권에 관한 말씀이다. 왜 우리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해야 하는가? 창조의 시작은 From God(주에게서 나오고)이며, 과정은 하나님 섭리로 Through God(주로 말미암고)이고, 결말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To God(주에게로 돌아감이라)이다. 그리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것이다. 이것이 기독교 교육의 프레임이다. 기독교 교육의 목표는 하나님의 주권을 철저히 인정하고 고백하고 믿고 따르는 삶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여기서 모든 영적 에너지가 나오는 것이다.

평화성결교회(최종인목사). 청년 한명을 위해 하계수련회 기간에 침례를 집례하는 목사님과 공동체의 일원으로 축복하는성도들. 아름답다.

교회의 능력은 말씀되신 주님의 주권을 날마다 고백할 때 성령의 능력이 회복된다. 세상은 돈의 논리, 명예의 논리, 자리의 논리로 움직인다. 그러나 교회는 말씀되신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에너지로 움직인다. 말씀이신 예수님을 날마다 고백할 때 교회는 참다운 능력이 회복된다.

주님의 주권을 철저히 인정하는 기초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 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한다. 얼마나 위대한 선언인가? 우리의 믿음의 고백이 이렇게 대단한 능력을 품고 있다. 기독교교육은 시작도 과정도 결말로 오직 하나님이다. 이 기초를 고백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교육이다.

신앙의 기초가 견고성을 결정한다. 힘이 들고 시간이 걸려도 기초를 다듬는데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야곱은 기초가 무척 약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속이는 것을 아주 능수능란하게 했다. 그러나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나서는 속이는 인생을 거부했다. 철저하게 댓가를 지불했고, 성실함과 인내로 하나님의 주권을 고백하며 믿음으로 살았다. 그 세월이 자그마치 20년이다.

평화성결교회(최종인목사) 침례식

야곱이 20년간 삼촌 라반의 집에서 짐승을 길렀다. 14년간 두 아내를 위해 봉사했고, 6년간 월급을 받고 자기 기업을 세웠다. 삼촌 라반이 10번이 임금을 변경했지만, 야곱은 묵묵히 성실함과 인내심으로 하나님의 주권앞에 승복했다. 6년 만에 하나님이 그의 기업을 축복하니 무일푼에서 거부가 되었다. 부모의 품을 떠나서 20년간 그는 철저하게 부서지고 깨어졌다. 한마디로 험악한 세월을 살았다. 추위와 더위와 싸웠고, 잠자지 못하며 사나운 짐승들로부터 양들을 사막에서 지켰다. 형을 속이고 아버지를 속였던 야곱이 집을 떠나 철저하게 인생을 밑에서부터 새롭게 시작했다. 한마디로 20년간 그의 삶은 처절할 정도로 기초를 견고하게 놓았다.

머리로 속이는 인생이 아니라, 몸과 마음과 삶의 기초를 하나님 중심으로 성실함으로 정직함으로 기초를 다시 세웠다. 기초가 견고하니 하나님이 6년만에 거부로 만들어주셨다. 아브라함과 이삭을 이어 3대 족장으로 우뚝 세워졌다.

교회 교육의 목적은 기초를 바르게 놓는 훈련이다. 그리고 바르게 고백하고 바르게 행동하는 것이다. 기초가 견고하면 무너지지 않는다. 21세기 한국 기독교는 심각한 내우외환앞에 놓여 있다. 기초가 견고하면 교회는 무너지지 않는다. 또한 신앙을 일생동안 지키고, 다음세대에게 물려줄 책임이 기성세대에게 있다. 다시 기초를 점검해보라. 기초가 부실한 것 위에 멋진 탑을 쌓아보라. 그것은 언젠가 무너지는 바벨탑이 될 것이다.

 

발행인 최원영목사  jhoncho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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