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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기도】인봉한 책을 펼친 그리스도(27)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진 자

갈라디아서 5:4-6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5.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좇아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 뿐이니라 

오늘날 우리는 수많은 설교의 홍수 속에 살아가고 있다. 말씀이 없어서 기갈한 상태가 아니라 홍수처럼 범람하는 수많은 말씀 중에 진짜 말씀이 없어서 수많은 양떼들이 목이 말라 죽어가고 있다.

본문 4절에서 율법으로 의롭게 되려는 자는 그리스도와 은혜에서 떨어진 자라고 말씀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성령 안에서 믿음으로 의롭게 되기 위해 소망을 갖고 기다리지만, 율법의 행위를 통하여 의인이 되고자 하는 자들은 이미 하나님의 은혜를 거절한 자이기 때문이다. 

"행위가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는 말씀 때문에 수많은 이들이 율법의 행위를 통하여 자신의 믿음을 증명하려고 한다. 그러나 "믿음"은 성령의 열매이다(갈 5:22: '충성'으로 번역됨). 즉 믿음은 우리의 것이 아니다. 따라서 성령 안에서만 믿음의 행위가 나오는 것이지, 우리의 열심으로 행하는 모든 신앙생활은 믿음의 행위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종교생활일 뿐이다. 우리의 노력으로 의롭게 되려고 하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건 그 자체가 죄이다.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함도 없느니라"(롬 4:15)

그런데 수많은 설교자들이 "죄를 지으면 지옥에 가므로 믿는 자들은 죄를 짓지 말고 하나님의 의를 구하며 모든 율법을 행해야 한다"라고 가르치며 "의롭게 되는 것과 율법을 지켜서 천국에 가는 방법"에 대해 수십 또는 수백 가지 이론과 방법을 늘어놓으며 그렇게 살라고 한다. 

"가라사대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유전을 지키느니라. 또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유전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막 7:6-9)

과거에 장로의 유전을 지키기 위하여 하나님의 율법을 버리고 폐했다고 예수님께 책망받았던 것과 똑같이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문서와 교리를 성경 즉 하나님의 말씀보다 위에 놓고 그것을 지켜야 한다고 가르친다(막 7:6-9). 이는 그리스도와 은혜를 거부하라고 하는 것과 같다. 그렇다고 불의를 행하며 살라는 말도 아니며 율법을 지키지 말라는 말은 더더욱 아니다. 그들의 가르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롬 3:20)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롬 7:7)

율법은 우리를 결코 의인으로 만들지 못하며, 율법은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게 해주기 위해 주신 것이다.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이 밝혀져야만 구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건강한 자나 의인에게는 의사나 구원이 필요없다. 구원을 받기 원하는 자는 어딘가 아프고 문제가 있고 죄를 지어야만 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아담이 생명나무가 아닌 선악지식나무를 먹게하여 죄인으로 만드신 것이다. 그래야만 여자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원자로 임하실 것이기 때문이다(창 3:15).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담이 선악과를 먹지 않기를 원하셨으나 아담이 하나님의 섭리를 저버리고 자기의 의지로 먹었다며 하나님의 주권으로 작정하심과 섭리하심을 부인하는 거짓 선생들이 널려있다. 이러한 이론은 하나님의 전지하심을 부인하는 악한 것임을 그들은 모르기 때문에 자기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하나님의 의지보다 피조물인 아담의 의지를 더욱 위에 올려놓고 있다. 이는 성경보다 교황의 말과 교리가 더 위에 있다고 주장하는 카톨릭의 주장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선악과를 먹지 않기를 바라신 것이 아니라 이미 계시록의 새하늘과 새땅을 작정하셨기에 아담이 선악과를 먹도록 예정하셨던 것이다.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선악과를 먹을 것을 아시기에 그가 그것을 먹으면 "정녕 죽는다"라고 "죽고 또 죽는다(מֹות תָּמֽוּת׃)" 즉 "죽는다"라는 말을 두 번이나 반복해서 말씀하셨다. 그리고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은 후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 언약을 지키셨다.

그런데 성령의 조명을 받지 못하는 자는 "아담이 선악과를 먹지 않았다면 새하늘과 새땅을 만들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하나님의 작정하심과 역사하심 자체를 부인하는 것으로 하나님과 성경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이에 제자들이 나아와 가로되 바리새인들이 이 말씀을 듣고 걸림이 된 줄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심은 것마다 내 천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니 그냥 두어라. 저희는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마 15:12-14)

선악을 판단하는 주권이 하나님께만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목사들이 아담처럼 하나님의 의지보다 인간의 의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주권을 빼앗고 자신의 지식으로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서 선악을 판단하며 성경 말씀에 더하고 빼는 큰 죄 즉 구원에서 제외되는 죄를 범하고 있다.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계 22:18-19)

이러한 자들은, 하나님께서 아담이 선악과를 먹지 않기를 바라셨는데, 아담이 자기의 의지로 따먹어서 어쩔 수 없이 예수께서 오시게 되었다고 가르친다. 그리고 아담이 순종했다면, 아담의 후손 중에서 누군가가 따먹었을 것이라며 감히 불꽃같은 눈으로 지켜보고 계시는 주님 앞에서 성경을 부인하며 성경에 없는 말까지 더하는 죄를 범하고 있다. 이렇게 하나님의 주권을 찬탈한 것이 바로 죄이다. 아담은 "사람"을 대표하는 이름이다. 성경은 모든 것을 대표성을 갖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그러한 것을 모르므로 엉뚱한 말을 한다. 

이사야 10장을 보면, 앗수르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범죄했기에 "하나님의 진노의 막대기이며 몽둥이"(사 10:5)라고 하는 앗수르를 사용하여 이스라엘을 심판하신다. 그런데 앗수르를 이스라엘을 심판하는 몽둥이로 하나님께서 선택하셔서 사용하셨을지라도 앗수르는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힌 일에 대한 책임을 지고 하나님의 벌을 받게 된다. 이것이 이해가 되는가? 우리의 상식으로 말이 되느냐 말이다.

다음은 웨스트 민스터 신앙고백 제5장(섭리에 대하여. Of Providence) 2항이다.

"물론 제1원인이신 하나님의 예지와 작정과 관계하여 만물은 변함없이 틀림없이 발생한다(행 2:23). 그러나 동일한 섭리에 의하여, 제2원인의 본성에 따라, 필연적으로나, 자유롭게, 또는 우연하게 일어나도록 명령하신다(창8:22; 렘31:35; 출21:13; 신19:5; 왕상22:28,34; 사10:6-7)."

"Although, in relation to the foreknowledge and decree of God, the first Cause, all things come to pass immutably, and infallibly; yet, by the same providence, He orders them to fall out, according to the nature of second causes, either necessarily, freely, or contingently."

여기에서 보면, 제1원인이신 하나님의 예지와 작정과 관계하여 만물은 변함없이 그리고 틀림없이 발생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동일한 섭리에 의해서 인간의 본성을 따라 그분의 작정하신 것이 다양한 방법으로 일어나도록 명령하신다고 한다. 즉 그분의 명령에 의해 그분의 작정하신 것은 틀림없이 발생하지만, 그 방법이 인간의 본성에 따라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는 말이다. 

그런데 어떤 이는 이것을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다 하실 수 있어도 제2원인이 되는 사람이 자유의지에 의해 할 수 있도록 하셨다"라며, 선악과를 먹은 것이 아담의 의지에 의한 것이지 하나님의 작정이 아니라고 한다. 즉 제1원인이신 하나님의 예지와 작정을 부인한다.

이사야 10장 6-7, 12절을 보면 하나님의 뜻과 앗수르의 뜻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내가 그를 보내어 한 나라를 치게 하며 내가 그에게 명하여 나의 노한 백성을 쳐서 탈취하며 노략하게 하며 또 그들을 거리의 진흙 같이 짓밟게 하리라. 그러나 그의 뜻은 이같지 아니하며 그 마음의 생각도 이같지 아니하고 오직 그 마음에 허다한 나라를 파괴하며 멸절하려 하는도다... 이러므로 주 내가 나의 일을 시온산과 예루살렘에 다 행한 후에 앗수르 왕의 완악한 마음의 열매와 높은 눈의 자랑을 벌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거리의 진흙 같이 짓밟을 도구로 앗수르를 선택하셨는데, 앗수르는 자기가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는 줄도 모르고, 수많은 나라를 점령하려는 그들의 생각과 의지로 이스라엘을 침략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앗수르의 교만을 심판하신다. 

비록 하나님의 작정에 의해 선택되어 악을 행하게 되더라도 피조물로 지음받은 존재는 그 악을 행한 것에 대한 책임을 반드시 지게 되어있다. 이는 토기가 토기장이에게 "왜 나를 이렇게 만들었느냐"라고 따지거나 질문할 수 없는 것과 같다고 성경은 말씀한다. 토기장이가 토기를 잘못 만들었을 때, 만들어진 토기의 잘못이 아니므로 토기장이가 토기를 보존하지 않는다. 또 만든 토기가 토기장이의 맘에 들지 않으면, 깨지는 것은 토기이다. 그것이 바로 주권이다. 모세가 바로에게 갔을 때, 바로의 마음이 강퍅했던 것 역시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강퍅하게 만드셨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셨으므로..."(출 10:27)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로라 하셨으니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뇨?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뇨? 하리니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롬 9:16-20)

아담이 선악지식나무를 먹을 것을 아셨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먹으면 죽을 것이라는 언약을 하셨고, 가인이 아벨을 죽일 것을 아신 주께서는 죄를 다스리라고 하셨으며, 에스겔에게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서 말씀을 전하라고 하시면서 그들이 그 말을 절대로 듣지 않을 것이지만 두려워 말고 나팔수의 역할을 감당하라고 하셨다. 세례요한도 광야에서 외치다가 목베임을 당했고, 마지막엔 예수 그리스도까지 죽임을 당했다. 

성경은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까지 죽이는 반역자인 죄인들의 역사와 그 속에서 의로우신 분은 오직 여호와 한 분이시며 그분이 어떻게 죄인을 구원하시는지에 대해 말씀하고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이미 작정하신 뜻대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씀한다.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대로 내어 준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 박아 죽였으나"(행 2:23)

사도행전 4장 25-28절을 보면, 시편 2편 1-2절 말씀을 인용하면서 그 말씀이 다음과 같이 이루어졌다고 기록한다.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동하여 하나님의 기름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스려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 (행 4:27-28)

헤롯과 빌라도와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이 합동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면서 그들은 그들의 뜻대로 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예정하신 것을 행하기 위해 모두 모여서 합심하여 하나님의 뜻을 행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의 목적에 의하여 악의 도구로 사용되었으나, 그들은 그들의 악한 행위에 대해 심판을 받아야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법이며 하나님의 주권이다.

"빌라도가 아무 효험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가로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백성이 다 대답하여 가로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찌어다 하거늘"(마 27:24-25)

인간의 입장에서는 말도 안되는 법이며 억울하다고 따지고 싶겠지만, 그것이 바로 주권이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의 모든 계획은 선하신 것이다. 선하다는 개념 역시 우리 인간의 개념과 너무 다른 것이 많아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따라서 우리의 생각과 주님의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시인해야 하며, 우리의 지식으로 선악을 판단하려고 하는 우리의 선악의 개념도 내려놓아야 한다. 즉 선악지식나무를 먹지 말아야 한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사 55:8-9)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고전 1:25)

따라서 인간은 비록 자신의 지혜와 지식이 바벨탑을 쌓을만큼 대단하다고 생각하더라도 하나님의 무한하신 지혜와 섭리하심을 결코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겸허히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렇지 않고 주 앞에서 교만하게 행할 때 즉 '자유 의지'라는 것을 들먹이며 마치 모든 것을 주님의 주권과 섭리보다 내 의지로 내가 하는 것처럼 행할 때, 토기장이이신 주께서는 그 토기를 던져서 깨뜨리신다.

'의'란 내가 부인되어 내가 없고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어 주께서 역사하시는 것이며, '죄'란 내가 살아있어서 주권을 내가 행사하는 것이다. 내가 죽어야 순종하는데 내가 살아있어서 순종할 수 없는 것이다. 즉 '죄'란 4절에서 말씀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와 은혜에서 끊어진 상태로 그리스도의 역사가 아닌 나의 역사로 내가 율법을 행하여 의롭게 되려고 하는, 내가 살아있어서 나를 드러나는 상태를 말한다.

"사울이 가로되 내가 범죄하였을찌라도 청하옵나니 내 백성의 장로들의 앞과 이스라엘의 앞에서 나를 높이사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나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삼상 15:30)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롬 5:13)

'법'이 없으면 '죄'도 없다. '법'은 주권자의 뜻대로 제정하는 것이므로 주권자가 만든 '법'에 불순종하면 무조건 '죄인'이 된다. 주의 말씀과 주의 법이 아닌 내 생각과 내가 원하는 것을 하는 순간이 바로 죄인된 순간이다. 예수께서는 "하나님만이 선하신 분"이라고 하셨다. 즉 하나님만 의로우신 분이며 인간은 모두 불의한 존재라는 것이다.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약 4:17)

"구스인이 그 피부를, 표범이 그 반점을 변할 수 있느뇨? 할 수 있을찐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렘 13:23)

야고보서 4장17절에서는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않으면 죄"라고 말씀한다. 즉 우리가 선을 행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예레미야 13장23절에서는 에디오피아 사람(흑인)이 피부를 하얗게 할 수 없고, 표범이 그 반점을 변하게 할 수 없듯이, 악에 익숙한 우리 인간도 선을 행할 수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성경이 모순일까?

율법을 다 지킬 수 있는 자는 한 사람도 없다. 즉 선을 행할 수 있는 자는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선을 행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행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신 그분께서 친히 우리를 통해 일하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선을 행한다면, 우리 속에 선하신 주님께서 계시기 때문이며 율법을 지키려고 하는 우리의 행위 때문이 아니다.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만 가능하다. 우리의 믿음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만 가능하다. 그래서 우리는 오직 성령 안에서만 믿음으로 의의 소망을 갖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육신에 속해있다면 즉 율법을 행하여 의롭게 되려고 하면 죄가 우리를 주관하게 되지만, 은혜 아래 있다면 죄가 우리를 주관하지 못한다.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롬 7:14)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롬 6:14)

마태복음 25장44절과 7장22절은 행위로 구원을 받은 줄로 착각하는 사람들에 대한 말씀이다.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하며 마귀도 내쫓고 병자도 고치며 수많은 일들을 했다. 즉 그들은 정말로 열심히 주의 일을 한 자들이다. 대강대강 신앙생활을 한 자들이 아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교회의 충성된 리더들이다. 그런데 주님은 그들을 알지 못하며 그들이 행한 자칭 의로운 일들을 불법이라고 하시며 쫓아내신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요 6:37)

성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께 주시는 자를 주님은 결코 내어 쫓지 않으실 것이라고 하셨는데, 마태복음 7장에서는 그렇게 열심히 사역한 이들을 쫓아내신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구원하기 위해 선택하여 그리스도께로 보내신 것이 아니라 마귀라는 것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 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에 한 사람은 마귀니라"(요 6:70)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뇨?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롬 3:27-28)

그러나 주의할 것은 율법으로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지 율법을 폐하며 율법을 지키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율법을 온전히 지키려고 노력해본 사람만이 율법을 다 지킬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거기에서 좌절감을 느끼며 스스로 죄인임을 깨닫게 되므로,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해보지도 않은 사람은 구원의 길이 멀고도 먼 길이다.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롬 3:31)

"율법을 버린 자는 악인을 칭찬하나, 율법을 지키는 자는 악인을 대적하느니라." (잠 28:4)

그러므로 사랑이신 주님 안에 온전히 거할 때, 우리는 "율법을 완성하러 왔다"라고 하시며 "다 이루었다"라고 하신 주님께서 율법을 완성하셨기에 우리도 율법을 지키고 선을 행하게 되는 것이다. 행함은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믿음의 조건이다. 행함이 없는 것은 믿음이 아니기 때문이다(약 2:17). 또 사랑이 없는 행함(충성)은 진짜 믿음이 아니라 가짜 믿음이다.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롬 13:10)

[적용]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인이나 의인으로 칭하실 때에는 하나님께서 심판자이시며 주권자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나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가? 감히 피조물이 창조주를 "인정한다"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지만, 의로우신 재판장 앞에서 내가 죄인임을 인정하는가?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가?

△죄인이어야만 의롭다하심을 받을 수 있고, 또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죄인임을 알기 위해 율법을 지켜야 하는데, 나는 얼마나 율법을 지키려고 애를 썼는가?

△율법을 다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알기에, 지키려고 애를 써보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도 굳이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가르치지는 않았는가?

△선을 행하기에 나 자신이 전적으로 무능력하다는 것을 인정하는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선을 행할 수 있고 의롭게 된다는 것을 믿는가?

△성경이 나를 판단하도록 하는가, 아니면 내 지식과 상식과 경험과 지혜로 성경을 판단하고 있지는 않은가?

△성경을 내 맘대로 빼고 더하며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끔찍한 죄를 짓고있지는 않은가?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의지 중 어느 것이 더 위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피조물인 인간이 감히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과 심판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죄를 지으면 지옥에 가므로 천국에 가기 위해 성경을 열심히 보라고 하지 않았나? 즉 성경을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한 책이 아닌 구원받는 지침서나 문제를 해결해주는 책으로 보도록 사람들을 미혹하지 않았나?

△내 삶의 주인은 정말 누구인가?

△성령의 법과 내가 원하는 법 중에 나는 주로 어느 법을 따라가며 어느 법대로 살기를 원하는가?

 

[기도 제목]

1) 혼과 육의 사람이 아닌 영의 사람으로 살도록 성령충만케 하옵소서

2) 율법을 지켜서 의롭게 될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는데, 수많은 죄인들 가운데 저를 선택하여 주시고 주님을 믿게 하여 주시고 죄인임을 깨닫게 해주셔서 회개의 길로 인도해주심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3) 건강한 자나 의인에게는 주님이 필요 없지만, 죄인을 찾아 회개시키러 오신 주님께서 친히 죄인인 저를 찾아와 주셔서 대신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제 삶의 구세주가 되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4) 행위가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는 말씀 때문에 교회의 모든 예배와 행사에 빠지지 않고 오히려 더욱 열심을 다해 봉사를 했으나 아무런 기쁨도 없고 오히려 마음이 허탈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 모든 열심이 제 속에 계신 그리스도 때문이 아니라 종교심으로 인한 육신의 정욕으로 한 것임을 고백합니다. 또한 주님의 주권보다 인간의 의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며 주님의 뜻보다 제 뜻을 구하며 살았던 모든 죄악을 내려놓사오니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5) 오늘도 제가 죄인임을 감사드립니다. 죄인임을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했다면 주님과 전혀 관계없는 사람으로 살면서도 영생을 소유한 자가 아님을 모르며 열심히 종교생활을 하며 살아갈텐데, 의로우신 주님 안에서 죄인임이 밝혀져서 구원받을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6) 그 동안 잘못 믿음생활을 했고 또 잘못된 교리를 배워왔고 가르쳐온 것들을 생각나게 하셔서 고백하도록 인도하여 주시므로 선을 행하기에 제 자신이 전적으로 무능력함을 고백합니다. 저에게 긍휼을 베풀어주셔서 그리스도 안에서 천국을 소유한 자로서 성령 안에서 믿음으로 산 소망을 갖고 살아가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다시는 저의 제한된 지혜로 선악을 판단하지 말게 하시고 오직 주님께서만 선악을 판단하시며 주님의 주권하에 모든 것을 하게 하옵소서.

7) 행위로 구원받으려는 마귀의 미혹에 더이상 현혹되지 말게 주님의 사랑을 기초로한 굳건한 믿음을 주셔서 오직 성령안에서 성령의 소욕을 이루며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매일 승리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김수경목사  kimsoogyu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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