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에 상원의원에 당선된 이후 30년을 넘게 공화당 상원의원을 지냈다.

포로에서 석방된 후, 제이 쿠프 쥬니어(Jay Coupe Jr.) 중위의 에스코트를 받는 존 매케인(John McCain). 베트남 하노이의 Gia Lam 공항. 1973년 3월14일 (AP Photo/ Horst Faas)

베트남 전쟁에서 전쟁포로로 5년간을 지내며 살아남은 전쟁 영웅으로 불리는 존 매케인(John McCain) 상원 의원이 지난 8월25일(토) 애리조나 주 히든밸리의 자택에서 부인 신디 매케인과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82번째 생일(29일)을 며칠 앞두고 사망했다. 그의 나이 향년 81세. 

매케인 상원의원은 지난 2008년에 공화당에서 대선 후보 지명을 받았으며 1986년에 상원의원에 당선된 이후 30년을 넘게 공화당 상원의원을 지냈다. 그의 마지막 시간에, 애리조나 공화당은 더 이상의 치료를 거절했다고 그의 가족이 성명서에서 발표했다.

매케인(McCain) 상원의원은 2017년 7월에 뇌암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왼쪽 눈 위에서 혈전을 제거하는 수술 중 종양을 발견했다. 그는 진단후 낙관적인 태도를 보였으며 상원의 건강 관리 논쟁에 참여하기 위해 눈앞에 보이는 커다란 흉터를 갖고 워싱턴으로 갔다.

매케인은 7월 20일 자신의 진단후 그의 트위터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저에게 아낌없이 지원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 불행히도 의회에서 내 스파링 파트너를 위해, 나는 곧 돌아올 겁니다, 대기하십시오!"(“I greatly appreciate the outpouring of support - unfortunately for my sparring partners in Congress, I'll be back soon, so stand-by!”)

그의 가족은 지난 금요일(24일)에 다음과 같이 성명서를 발표했다. "지난 여름, 존 매케인(John McCain) 상원 의원은 가족이 이미 알고있는 뉴스를 미국인들과 공유했습니다: 그는 공격적인 교아세포종으로 진단 받았고 예후는 심각했습니다. 그후 1년 동안 John은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생존에 대한 기대치를 능가했습니다. 그러나 질병의 진전과 나이의 냉혹한 진보는 그들의 판결을 가져옵니다."

"그의 평소의 의지에 따라 의학 치료를 중단하기로 결정했습니다"라고 그들은 덧붙였다. 매케인의 부인 신디 매케인(Cindy McCain)은 남편의 죽음 이후 그녀의 "가슴이 부서졌다"고 트윗터에 올렸다.

"나의 가슴은 산산히 부서졌습니다. 38년간 이 놀라운 인물을 사랑하는 모험을 살았다는 것이 정말 행운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장소에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살고 있는 자신의 생활 방식을 넘었습니다."

상원 의원의 딸 메간 매케인(Meghan McCain)은 "평생의 과제는 아버지의 모범과 기대, 그리고 그의 사랑에 부응하는 것"이라고 진심 어린 글을 온라인에 올렸다.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저는 아버지의 사랑하는 딸로 그리워하고 있습니다."라고 메간은 썼다. "아버지는 불타는 큰 불이었고, 우리는 그의 빛과 따뜻함 속에 아주 오래 동안 살아왔습니다. 우리는 그의 불꽃이 우리 각자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압니다. 아버지가 없이는 다가올 날들과 해들은 같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우리를 위해 본을 보이며 살으셨기 때문에 생명과 사랑으로 가득 찬 좋은 날들이 될 것입니다. "

매케인은 1936년 그의 아버지가 해군에 주둔했던 파나마 운하의 미 해군 항공기지에서 태어났다. 1958년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매케인은 베트남으로 갔다. 1967년, 그의 A4 스카이호크(Skyhawk)는 하노이 상공에서 지대공 미사일에 격추되었다. 매케인은 북 베트남인에게 체포되어 5년 이상 고문을 당했다. 그는 그 중 몇 년 동안 독방에 감금되어 있었고 이질로 인해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

"내 방은 꽤 적당한 크기였습니다. 약 10 X 10 정도."라고 매케인은 나중에 썼다. "문은 견고했고 창문은 없었습니다. 유일한 환기는 천장의 상단에 있는 2 개의 작은 구멍(약 6 인치 x 4 인치)에서 나왔는데 지붕은 주석이었고, 지옥처럼 뜨거워졌습니다. "

그의 아버지가 유명한 해군 장교라는 것을 알고 나서 북베트남은 그를 조기 석방하려고 했다. 그러나 매케인은 먼저 투옥된 사람이 먼저 나가야 한다며 그보다 먼저 들어온 이들보다 특혜를 받아 먼저 떠날 수 없다며 그 제안을 거부했으며,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갇혀있는 것을 알면서도 하노이에 공격을 명령했다. 그는 1973년 5년6개월만에 석방되었다. 매케인의 투옥으로 인한 부상은 남은 인생에서 눈에 두드러졌다.

매케인은 1979년 하와이에서 앤하우저-부쉬(Anheuser-Busch) 맥주의 배급자인 제임스 윌리스 헨슬리의 딸이며 교사인 17살 연하의 신디 루 헨슬리를 만나게 되었고 1980년 4월 2일 아내 캐롤과 이혼을 하고, 5월 17일 신디 헨슬리와 결혼하였다. 결혼후 피닉스에 있는 장인의 회사인 앤하우저-부쉬(Anheuser-Busch) 맥주 배급회사에서 부사장으로 일하면서 찰스 키팅과 같은 조력자를 만나게 되었다. 1981년 대령으로 예편한 그는 군복무를 하는 동안 은성무공훈장과 동성무공훈장, 레지온메릿훈장, 퍼플하트 훈장과 우수비행사기장을 수여받았다.

매케인은 1976년 상원에 대한 해군의 연락 담당을 역임하면서 정치를 맛 보았다. 그후 1982년 애리조나 제1선거구의 공화당 하원의원 존 제이콥 로즈 주니어가 은퇴를 하게 되면서 매케인은 공화당 후보로 나가 하원의원에 선출되었다. 4년 후인 1986년 애리조나주의 보수당인 배리 골드워터(Barry Goldwater) 상원 의원이 은퇴하면서 애리조나 주 상원의원에 도전하여 골드워터 상원 의원의 자리를 대신하면서 1987년부터 상원의원의 길이 시작되었다.

그후 매케인은 링컨 저축·대부은행(Lincoln Savings and Loan)의 대표인 찰스 키팅(Charles Keating)으로부터1982년부터 1987년까지 약 11만2천달러의 정치자금을 받았다. 그런데 연방규제위원회가 키팅을 11억 달러 사기 죄로 고소하면서 키팅으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은 4명의 상원의원과 함께 1989년 '키팅 5 스캔들'(the Keating Five Scandal) 사건에 연루되어 1990년에 청문회에 출석하기도 했다. 그러나 1991년 걸프전쟁이 발발하면서 그의 5년간의 힘든 포로생활의 경험이 그의 위치를 단단하게 만들어주었다.

매케인이 신디와 결혼한 후 그들은 1990년부터 노스 피닉스 침례교회에 다니면서 신디와 두 자녀가 그 교회에서 침례를 받았다.

매케인은 두 번 대통령에 출마했다. 2000년에 그는 뉴햄프셔 예비선거에서 승리했지만 조지 W 부시에게 낙선했다. 2008년, 그는 공화당 후보들을 물리치고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다. 그는 알래스카 주지사인 사라 페일린(Sarah Palin)을 러닝 메이트로 내세웠으나,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된 버락 오바마 (Barack Obama)에게 패배했다.

수 년간 매케인(McCain)은 페일린에 대한 자신의 선택을 실수라고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매케인은 곧 출간될 그의 책 "휴식없는 파도"(The Restless Wave)에서 자신의 친구 조셉 리버만(D-Conn.)을 러닝메이트로 선택하지 않은 것을 유감스러워하며 "다른 친구"라고 쓴 것으로 알려졌다.

2008년 패배 후 매케인은 상원 군사위원회 위원장의 역할을 수락하며 상원으로 복직했다. 지난 몇 년간의 정치 기간 동안 그는 공화당(GOP) 예비 선거 중에 매케인을 공격한 트럼프(Trump) 대통령과 복잡한 관계를 가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포로가 됐기 때문에 영웅이 된 것이다"라는 발언을 하면서 두 사람은 정적 관계가 되었고, 매케인은 트럼프 대통령을 "미국의 가치를 타락시키는 인물"이라고 비난했으며 트럼프 대통령을 앞장서서 비난하는데 열정을 다했다. 

그는 오바마가 무슬림이 아니라고 했으며, 오바마케어를 지키기 위해 당론을 거스르며 표를 던졌다. 2017년에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에서 오바마케어 폐지 법안을 추진할 당시 매케인은 종양 수술 직후임에도 표결에 참석해 건강보험개혁안에 반대표를 던지면서 52대48로 이 법안이 부결되도록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이 멕시코 이민자들을 범죄자라고 표현하는 것에 대하여 "광기를 부채질한다"라고 비난했으며 트럼프에 대한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그로 인해 건강보험개혁안이 부결되자 매케인의 이러한 행위에 대해 비난했다. 

매케인은 워싱턴 국립대성당에서 있을 그의 장례식에서 2000년 매케인의 대선 경쟁자인 조지 W 부시와 2008년 대선 경쟁자인 버락 오바마 두 전직 대통령이 조사를 해줄 것을 부탁하여 두 전직 대통령이 조사를 할 예정이다.

1965년 사진

 

그러나 뉴욕 타임스(NYT)에 따르면, 매케인은 트럼프 대통령이 본인의 장례식에 참석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며 대신 마이크 펜스 부통령을 초청한다는 의사를 그의 가족들이 백악관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따라서 백악관에서는 트럼프 대통령 대신에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장례식에 참석할 예정이다. 

안타까운 것은 크리스천이라고 하는 그가 죽는 순간까지 트럼프 대통령을 원수처럼 생각하며 장례식에조차 오지 못하도록 했다는 사실이다. 죽으면서까지 그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미국의 국가 기도의 날을 동성애자의 날로 바꾸며 미국이 더이상 기독교 국가가 아니라고 선언한 오바마 편에 서서 영적으로 엉망진창이 된 미국을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다시 일으키려는 트럼프와 죽는 순간까지 대립했던 고 매케인 상원의원의 마지막 모습을 바라보며 우리 자신도 그러한 마지막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참고로 미국은 1952년 트루먼 대통령이 "국가 기도의 날'을 법으로 제정한 이후 1988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5월 첫째 주 목요일을 기념일로 지정하면서 백악관의 연례행사의 날이 되었다. 그러나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면서 '국가 기도의 날'을 폐지하고 "6월을 성소수자의 달[LGBT(레스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성전환자)의 달]"이라고 선포하였고, 6월29일에 250여 명의 동성애자를 백악관에 초청해 "나는 여러분의 친구이며 여러분을 위해 싸울 대통령"이라며 그 날을 '동성애자의 날'로 선포했다. 이어 종교 특히 기독교 탄압을 위한 법이 통과되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2017년5월4일에 백악관에서 오바마 행정기간 동안 사라졌던 '국가 기도의 날' 행사가 열렸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그곳에 모인 청중들을 향하여 "여러분이 이곳에 결코 오지 못할 것처럼 보였으나, 그러나 여러분은 여기에 서 있습니다... 우리 나라는 신앙인들의 나라입니다. 믿음은 우리나라 역사에 깊숙이 뿌리 박혀 있습니다. 우리는 단순히 믿음의 나라만이 아니라 우리는 또한 관용의 나라입니다. 전 세계의 폭력을 바라볼 때 우리는 그들보다 나을지 모릅니다. 우리는 진정으로 예배의 자유를 존중하는 나라에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일인지를 인정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 정부는 우리가 미국에서 종교적 자유를 보호하기 위하여 역사적 발걸음을 내딛으며 본보기를 보이려고 합니다."라고 했다. 

또 "믿음의 사람들이 더 이상 위협을 당하거나 표적이 되거나 침묵 당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며 "우리는 결코 종교적 차별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은 "자유는 정부로부터 받은 선물이 아닙니다. 자유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신앙 공동체에 대한 재정적 위협은 끝났습니다. 아무도 설교를 검열하거나 목회자를 표적으로 삼아서는 안됩니다"라며 오바마에 의해 종교 특히 기독교가 탄압받아왔던 것을 더 이상 허용하지 않을 것임을 표명했다.

백악관은 25일부터 조기를 이틀간 달았다. 이는 연방의원이 사망하면 그날부터 이틀간 조기를 달도록 미국 국기법률이 정하고 있는 것에 따른 것이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과 고 매케인 의원간의 불화를 잘 알고있는 사람들과 언론 매체는 과거의 다른 예와 비교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27일 성명서를 발표하면서 장례식을 하는 9월2일까지 조기를 게양하도록 했다.

고 매케인 상원의원의 장례식은 9월 2일 애나폴리스의 미해군사관학교 교회에서 가족들만의 예배 후 해군사관학교 묘지에 안장된다. 

유족으로는 아내 신디(Cindy)와 7명의 자녀들과 5명의 손주들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국가의 대통령으로서 정치인인 매케인의 장례식에 초청을 받지 못한 이례적인 일을 당했으나, 그의 트위터에서 “존 매케인 상원의원의 가족에게 깊은 애도와 존경을 보낸다”며 “마음과 기도로 함께 한다”고 밝혔으며, 27일 백악관에서 발표한 성명서는 아래와 같다.

Statement from the President (대통령 성명서)

Despite our differences on policy and politics, I respect Senator John McCain’s service to our country and, in his honor, have signed a proclamation to fly the flag of the United States at half-staff until the day of his 

정책과 정치에 대한 우리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저는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 우리나라를 위해 봉사한 것을 존경하며, 그를 기리기 위하여 그의 장례식날까지 성조기를 조기로 게양할 것을 성명서에 서명했습니다.

I have asked Vice President Mike Pence to offer an address at the ceremony honoring Senator McCain at the United States Capitol this Friday.

저는 마이크 펜스 부통령에게 이번 주 금요일 미국 국회의사당에서 매케인 상원의원을 기리는 연설을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At the request of the McCain family, I have also authorized military transportation of Senator McCain’s remains from Arizona to Washington, D.C., military pallbearers and band support, and a horse and caisson transport during the service at the United States Naval Academy.

매케인 가족의 요청에 따라, 저는 매케인 상원의원의 유해를 애리조나에서 워싱턴 D.C.로 옮기기 위하여, 미국 해군 사관학교에서 군사 무기와 밴드 지원, 그리고 말과 탄약상자 운송을 허가했습니다.

Finally, I have asked General John Kelly, Secretary James Mattis, and Ambassador John Bolton to represent my Administration at his services.

마지막으로, 저는 존 켈리 장군, 제임스 매티스 장관, 존 볼튼 대사에게 우리 정부를 대표하여 봉사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