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은 선택이 아니라 절대적인 것]

욕구좌절은 공격성을 유발하는 원인이다. 욕구가 좌절되었을 때 반드시 공격적 행동만을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가장 빈번하게 나타나는 것이 공격적 행동이다. 이미 이전의 공격적 행동에 대한 강화도 하나의 공격적 행동의 원인이 된다. 예를 들면 교실에서 남을 못 살게 구는 아이들을 그대로 내버려두면 그 정도가 더 심해진다.

경우에 따라서는 벌을 주는 경우도 효과적인 강화제의 구실을 한다. 어떤 가정에서는 공격적인 아이를 칭찬하여 북돋아 주는 일이 있는데 이로 말미암아 그의 공격성은 증대되어 그것이 그의 생활스타일로 변한다. 부모가 공격성에 대한 잠재적 모델의 역할을 한다. 공격성이 강한 아이를 때리면 참을성 없는 부모의 행동을 모방해서 공격적 행동을 한다.

모델링이 공격성을 가르치는 데 효과가 있다는 것은 여러 심리학자들에 의해서 증명되었다. 만일 공격성이 모델로부터 학습되는 것이라면 TV의 화면도 모델의 효과를 가진다는 것이 실험적으로 확증되었다.

"텔레비전의 폭력묘사는 어느 한 나라의 문제가 아닙니다. 세계 곳곳 텔레비전에서 매일 폭력이 난무하는 게 지금 현실입니다"

제8회 맥브라이드 라운드테이블 서울회의에서 기조 연설한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언론대학의 조지 거브너 명예교수는 연설과 기자회견에서 TV폭력 문제를 중점적으로 언급했다.

그는 "현실세계를 왜곡하고 폭력을 미화하는 TV가 아이들의 사회화 과정까지 떠맡는다는 게 큰 문제"라면서 "미국의 TV프로그램을 보면 가난하고 교육 못 받은 사람은 전체 등장인물 가운데 1∼2%에 불과한데다 대부분 극악무도한 범죄자로 나와 '빈곤층=범죄자'라는 등식을 주입시킨다."고 말했다.

또 TV에서 폭력과 범죄를 지나치게 다루다 보니 미국인들은 실제보다 범죄에 대해 더 과장되게 걱정해 선거 때면 정치인들의 보수적인 법안을 그대로 승인하게 된다."고 TV가 정치에 이용되는 점도 꼬집었다.

이처럼 폭력이 TV에 자주 등장하는 원인을 거브너교수는 "매체시장을 더 확대해야 하는 자본주의 논리에 따른 것 이라고 단정했다. 폭력장면은 제작비가 싸고 어느 나라 사람에게나 이해가 가능하므로 수출하기 쉬워, 이윤이 남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거브너교수는 금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매스커뮤니케이션 효과이론 중의 하나인 '계발효과' 이론의 창시자로서 오랫동안 텔레비전 폭력에 관한 이론을 연구해왔다. 또 TV의 폐해에 공동대처 하고자 세계 57개국 1백50여 단체가 모인 '문화환경운동'이라는 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아동기의 아이들은 일찍부터 협동하고, 남을 사랑하고, 그리고 남을 도와주는 사회적 행동을 하는데 이것을 대행성 사회행동이라고 한다. 이 대행성 사회행동은 생물학적 기반 위에서 형성되는 것이지만 모델의 행동을 모방하며, 또 강화에 의해서 크게 영향을 받는다.

우리들의 일상생활에서 비행은 눈에 잘 띄는 것이 보통인데 아이들의 선행은 그냥 지나쳐버리는 경향이 있다. 어린아이들이 친절한 행동을 할 때 그것을 칭찬해 주면 그것이 곧 강화된다. 이와 같이 대행성 사회행동은 보상을 받게 됨을 알 수 있다. 오늘날의 TV화면에는 대행성 사회행동 모델을 등장시키는 프로가 점차적으로 많아지는 경향이 있다.

바람직한 사회적 특성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초등학교의 교사가 대행성 사회행동의 모델 역할을 과감히 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 같다. 아이들에게 협동정신, 상호협조, 그리고 자기 자신이 집단내의 한 사람이라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교사는 더 많은 세심한 노력을 하여야 하고 자기 자신이 그러한 역할을 해 보여야 한다.

학령기의 아동을 상담하는 경우에는 이 시기의 어린이들에게는 독립성이 현저하게 자라나기 때문에 조금은 의도적으로 약속을 하게 되고 약속시간을 환기시켜 주기 전에 학생 스스로 약속을 지키는 책임감을 갖게 한다. 또한 상담자에 대한 공경심과 부모에 대한 효도심 등이 아동들에 대한 충성심과 갈등을 겪는다.

그래서 상담자가 친절하기만 한 인상을 부각시키거나 엄격하고 권위 있는 인상을 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예컨대 건전한 고학년 아동이라도 스스로 자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상담자에게 거짓말을 할 수 있고 부모나 상담자에 대한 불만을 좀처럼 털어놓지 않으려는 수가 많다. 즉 성인 기준의 규범에 저항하면서 독립적이기를 원한다.

이 나이의 어린이에게는 집단상담이 가장 적당하다. 즉 동성에 대한 동일시 욕구 때문에 모두 소년이거나 소녀로 구성되는 동성 집단상담이 바람직하다. 집단상담은 동등한 관계라야 하고 서로 상충되는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개인이 자기의 결점을 발견하고 교정하는 과정은 다른 구성원의 행동에서 무엇인가를 느끼고 또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집단상담에서 쉽게 성취될 수 있는 것이다.

집단상담은 성인의 권위에 대한 갈등도 쉽게 발견하여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또한 동료들로부터 지지를 얻을 수 있고, 자기 행동에 자신을 갖게 되고 협동적 문제해결의 태도를 배울 수 있다. 그리고 상담자나 동년배로부터 우수하다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 때문에 다른 어린이의 동기에 대해 무관심할 때는 다른 어린이의 동기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깨우쳐 주어야한다.

나사렛대학교에서 교수로 섬기다가 이제는 목회에 전념하고 있다. 그리고 기독교치유상담교육연구원 원장일을 보고 있으며 여러군데 세미나를 인도하고 있다. 늘 새로운 세계와 새로운 일에 관심이 있으며 어려운 문제 함께 의논하고 상담하기를 좋아한다. 미 공인상담사및 코칭 자격을갖고있다.

 

[구원은 선택이 아니라 절대적인 것]

 

옛날 독일의 나치스가 유대인을 마구 학살할 때이다. 어떤 비행장에 한 비행사가 비행기의 기계를 점검하고 있을 때 어떤 젊은이가 뛰어 오더니 급하게 하는 말이 "나는 지금 당신이 살려주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 비행기로 독일 점령지 밖으로 데려다 주십시오"하고 애원했다.

이 청년은 유대인이고 지금 독일 비밀경찰의 추격을 받아 도망하는 길이었다. 조종사는 불쌍히 여겨 얼른 비행기를 띄워서 그 청년을 안전한 곳까지 데려다 주었다. 그리고 얼마 후 2차 대전이 일어났다. 이 조종사 역시 독일 치하에 있을 수가 없어서 영국으로 피신하여 연합군의 공군 조종사로 전투에 참가했다.

한번은 전투에 참가하다가 불행히도 비행기가 추락하는 바람에 머리에 큰 상처를 입고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병원에는 조종사의 뇌를 수술할 만한 뇌신경 전문의사가 없어 방송을 통해 지금 머리에 상처로 죽어가는 한 조종사를 살릴 수 있는 의사를 찾고 있다는 호소했다.

그리고 성공리에 뇌수술을 해서 그 조종사는 살게 되었다. 그런데 바로 이 의사는 언젠가 이 조종사가 구해준 청년이었다. 이 청년은 자기의 목숨을 구해준 조종사의 이름을 외어 두었던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그 은혜를 보답하리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그 기회를 주셨다.

조종사는 자기가 뿌린 선의 열매를 이렇게 거두었던 것이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구원하다"라고 번역한 헬라 말은 "온전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사르바(sarva)라는 산스크리트어와 같은 어근에서 나온 말이다. "온전성"을 의미하는 그것은 상처받은 것의 치유, 깨어진 것의 고침, 속박된 것의 자유케 됨을 의미한다.

그것은 성경에서 여러 방식으로 말해지고 있는데 생생한 묘사들과 상징들을 그 수단으로 하고 있다. 모든 나라들과 종족들과 백성이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하나의 친교를 이룬 가운데 모여질 것이며, 모든 전쟁과 증오가 그칠 것이며, 심지어 맹수들이 평화롭게 살게 될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나라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될 것이며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거하시며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며 모든 나라들의 영광과 명예가 하나님의 거룩한 도성으로 모아지게 될 것이며 부정(不淨)하고 순수하지 않은 것은 어떤 것도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묘사가 바로 성경이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목적의 성취를 드러내는 내용들이다.

모든 인류는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거룩한 한 가족으로 함께 살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것의 전조와 첫 열매를 받았기 때문에 그것의 완성을 갈망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 전조를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이제 구원에 대해 조금은 알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가 시작하신 것을 완성하실 때까지 우리는 그것을 충분히 알지 못할 것이다.

구약의 경우 구원은 항상 하나님의 주권적 사역으로서(사 43:11)역사 안에서 성취되며(출 14:30), 단순히 위험한 상황에서의 구원이 아니라 구원자인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화롭게 하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서 종말론적인 성격을 지닌다(대상 16:23, 사 43:11). 결국 구약은 구원의 주권자는 하나님이시되 예언은 메시아에 의해 완성되고 성취된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신약에서는 사 복음서를 통해 예언된 메시아인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자체를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역사적 사건으로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기 위한 것으로 그의 생애, 고난, 죽음, 부활을 통해서 이 일이 완성되었다. 이 사건들에 내포된 구원의 의미는 일반적으로 순종과 희생, 화해, 구속을 이야기하며 이런 범주의 과정을 통해 그리스도께서는 속죄 사역을 완성시키신 것이다.

구원은 성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성자 하나님이 그 계획을 성취시키시며, 성령 하나님이 성취된 구원을 개개인의 삶에서 적용시키시는 삼위일체의 사역이다. 이 사역은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첫째, '칭의'이다. 인간은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공의로운 형별로부터 벗어나서 두려움 없이 하나님과 화목 되어야 한다. 그러나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기에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통한 피의 희생 제사로 하나님의 진노가 유화되었고 그것으로 인해 인간은 구원을 받았다(롬 5:9).

둘째, 현세적인 승리이다. 악에 대한 승리는 '여자의 후손'(창 3:15)을 통해서 약속되어졌었다. 이것은 우상과 이방 민족을 정복한 구약의 지도자들 가운데 역사하신 성령님을 통해 성취되었으며, 그리스도께서 사단을 이기심으로 결정적으로 성취되었고, 교회 시대에 성령께서 교회를 통해 역사하심으로 신자들이 악을 이겨 내는 것이다(눅 10:17-20).

셋째, 최후의 구원과 축복이다. 그리스도께서 장차 재림하셔서 사단에 대해서 완전한 승리를 이루시고 사단과 그의 추종자들을 멸망시키시며 신자들을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인도하실 것이다(히 9:28).

그럼으로 구원은 인간에게 선택이 아니라 절대적인 조건이다. 이 진리를 깨달은 사람은 전도자로 살게 된다.

1924년 4월14일 타이타닉 호가 빙산에 부딪쳐 침몰하고 1500여 명이 희생된 참사가 있었다. 이 사건에는 슬프고 아름다운 뒷이야기가 많은 교훈을 안고 여러 편 전해지고 있다. 그 중에 하나, 구사일생으로 생명을 건진 한 청년의 간증은 이러하다.

 

배가 파선된 후에 청년이 작은 나무 조각에 의지하여 물에 빠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 존·하퍼 목사가 파도에 밀려오더니 대뜸 "젊은이는 구원을 받는가?"라고 물었다.

"아니오"라고 대답을 하는 찰라에 파도가 두 사람 사이를 아득히 떼어 버렸는데 잠시 후에 다시 만나게 된 목사님은 "청년은 하나님과 화해를 했는가?"라고 묻더라는 것이다.
그 질문에 대답할 겨를도 없이 파도가 목사님을 덮쳐버리고 영영 다시 볼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죽음을 목전에 둔 급박한 상황에서 한 사람의 영혼이라도 더 건지려고 애쓰던 목사님의 마지막 말씀이 가슴 깊은 곳에 세차게 때려서 그는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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