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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덕담 『 남 탓 이데올로기 』

DNA 염기배열에 건강과 질병과 그 외의 모든 것이 결정되어 있다는 의학적 설명이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DNA에 대한 이와 같은 설명이 인간의 책임인 윤리적 의무를 해제하게 될지도 모르다고 걱정합니다. 공부하기 싫은 아이들은 자기가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는 것은 DNA가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하게 될지도 모르고, 도박이나 마약에 빠진 사람들도 자신의 DNA를 탓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파렴치범이나 강도나 살인자까지도 DNA를 탓하게 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를 가르칩니다.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를 단순히 논리적으로만 이해하면 인간은 자기의 행동에 아무런 책임도 질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하나님의 예정을 이야기 하는 목적은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강조하기 위해서이지 인간이 스스로의 행동에 아무런 책임도 질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이야기 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예정과 인간의 책임의 관계가 논리적 모순을 일으키는 것은 사실이지만, 문제는 하나님의 뜻과 진리는 논리로 다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를테면 하나님의 뜻이 논리적으로 모순을 일으켜도 그것은 논리의 문제이지 진리가 논리에 의해서 진위가 결정되지는 않습니다. 전능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여기서부터 빗나가기 시작합니다.

무신론자들은 하나님을 비난하거나 탓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만약에 무신론자가 하나님을 비난하거나 탓하게 되면 하나님의 존재를 전제하는 것이 되니까 자기모순에 빠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무신론자들은 하나님을 비난하거나 탓하는 대신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를 비난하고 탓합니다.

기독교를 악의적으로 비난한 사람 중에 칼 마르크스가 있습니다. 그는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고 하였습니다. 종교는 인민에게 환각적 행복을 갖게 하는데 그 환상을 버리고 현실의 행복을 지향하라고 하였습니다. 종교를 인민의 아편이라고 한 사람은 마르크스가 처음은 아닙니다. 1797년 사드 후작의『줄리엣 이야기-악덕의 번영』에 ‘당신이 백성들에게 먹인 것은 아편’이라는 표현이 등장하고, 이어 1798년에 발표된 노발리스의 단편집 『꽃가루』에서는 ‘당신이 말하는 소위 그 종교라는 것은 단지 아편 역할을 할 뿐’이라고 하였고, 1843년 마르크스가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발언을 한 이후, 영국 성공회의 의전사제인 찰스 킹즐리가 『인민을 위한 정치』에서 교계를 비판하며 ‘성경을 마치 짐 나르는 짐승에게 과적을 견디게 하려고 투여하는 아편인 양’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그 이후 레닌이 마르크스의 표현을 인용하면서 ‘인민의 아편’이라는 표현은 반종교의 대표적인 표어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기독교와 성경이 이렇게 악의적으로 비난받게 된 것은 상당부분 교회에게 책임이 있음을 우리는 부인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교회가 제 역할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 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성경과 기독교 자체를 거부하고 부인하는 이유가 된 것은 심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중세의 교회가 저지른 잘못은 무신론자들이 교회와 성경을 비난하고 비판하는 에너지원으로 이용되었습니다. 교회를 비난하고 비판하는 자들은 그동안 교회가 저질러 온 잘못들과 함께 보편적 가치까지 폄하하고 파기하였습니다. 마르크스는 세계의 노동자들이 봉기할 거라 예언했으나 그 예언이 빗나간 것은 세계 대전을 통하여 확인되었습니다. 1919년이 되면 몇몇 마르크스 추종자들이 마르크스주의의 오류를 분석하게 됩니다. 그들 중에는 헝가리의 게오르그 루카치(Georg Lukács), 이탈리아의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가 있습니다. 1924년이 되면 그들의 뒤를 이어 신좌익 프랑크푸르트학파가 등장합니다.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대표적 인물로는 독일의 막스 호르크하이머(Max Horkheimer)와 헤르베르트 마르쿠제(Herbert Marcuse)가 있습니다.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사상적 계보를 계승하게 되는 것이 소위 68세대로 불리는 포스트모더니즘입니다.

 

초기 마르크스주의 사상은 최초의 논리적 사회주의란 이유로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㺔세기 초반이 지나면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타나는 문제를 사회의 하부 구조인 경제 부분만을 언급하는 것으로 발전되었기 때문에 확실한 사회 정치 이론이 없다는 한계에 봉착하였습니다. 이에, 상부 구조인 사회 정치 이론을 정립하기 위해 이탈리아의 공산주의자인 안토니오 그람시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타나는 비인간적인 문화와 인간 소외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뤄 신마르크스주의 사상의 토대를 마련하였습니다. 신마르크스주의의 성립배경으로는, 근대자본주의 사회에서 국가의 역할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마르크스-레닌주의, 마오쩌둥주의 등 유사개념의 마르크스주의가 탄생하게 되고, 이 개념을 총칭해서 후속 마르크스주의라고 합니다. 신마르크스주의는 후속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무반성(無反省)적 태도와 사회 철학적 강제성에 대해 비판하며 태동하였습니다. 신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정의와 주장은 학자별로 조금씩 다르나 대체로 인간소외, 탈인격화, 개인화 등의 문제에 대한 Humanism적 요소를 강조하며 인간 중심의 인본적 사상을 주장한다는 점과 주관과 객관 및 이론과 실천을 통합하여 마르크스주의의 유물론에 대한 과학적 체계화를 주장한다는 점은 대동소이합니다. 사회 문제를 전문적으로 분석한 신마르크스주의는 이런 특징 때문에 사회 개혁에 중점을 두는 좌익 운동인 신좌익 운동의 토대가 되는 사상이 되었습니다.

마르크스주의와 더불어 신마르크스주의는 그 바탕이 유물론이고, 유물론은 그 이전의 기독교적 모든 전통적 가치를 비판하며 부정합니다. 프랑크푸르트학파는 1930년대 이후 등장한 프랑크푸르트암마인 대학교의 사회 연구소를 중심으로 한 신 마르크스주의 사회 이론가 집단으로 그들은 비판이론으로 유명합니다. 이들로부터 68혁명 세대가 출현합니다. 68혁명 세대에 오게 되면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사람들까지 혀를 내두르게 될 만큼 극단적 좌파의 특징을 드러내게 됩니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에서 신마르크스주의를 거쳐 프랑크푸르트학파로 그리고 68혁명 세대가 갖는 확실한 특징은 반기독교적이라는 점입니다. 이들의 목적은 서구의 문명을 해체하는 것입니다. 객관적 사실과 진실을 부인하고, 진실이란 피억압자의 주관적 경험과 인식이라고 하였습니다. 억압을 경험한 자의 세계관은 오류가 없고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에 의하면 억압자는 부르조아이고 피억압자는 프롤레타리아입니다. 서구문명과 기독교와 백인 그리고 남자와 이성애자는 무조건 억압자이고 비서구문명과 이슬람, 유색인종, 성소수자, 여성은 무조건 피억압자입니다.

독일 나치즘에 쫓겨 미국으로 건너와 콜롬비아대학에 둥지를 마련한 헤르베르트 마르쿠제는 미국의 대학과 지성계를 온통 좌익으로 물들게 하였습니다. 마르쿠제는 헤겔에게 큰 영향을 받았으며 사회철학자로 또는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사회주의 사회학자로 분류됩니다. 에리히 프롬과 함께 정신분석과 사회학의 공동연구서 『권위와 가족』등 여려 권의 책을 저술하였으며 학계에서는 마르크스주의를 사회적 변화에 맞게 재해석한 사회학자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는 현대사회에 대한 유토피아적 비판으로 20세기 후반에 정치적 좌파에 대한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사상가로 자리 잡게 되고 1960년대 후반에 이르면 그의 영향력은 세계적 규모의 학생운동의 이데올로기가 됩니다. 철학으로는 헤겔의 변증법, 사회이론으로는 마르크스의 노동의 소외 사상, 문명론으로는 프로이트의 에로스 사상을 통합하여, 현대의 고도산업사회와 산업문명에 대한 변증법적인 부정철학이론인 ‘비판이론’을 개진하였습니다. 그는 콜롬비아대학과 하버드대학 연구원을 거쳐 1965년 캘리포니아대학 교수가 되었고, 베를린 자유대학 명예교수로도 재직했으며,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철학을 강의한 이후부터 좌파의 지적 대부로서 68혁명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였습니다. 그는 현대 사회를 통제되고 있는 억압의 사회로 규정하였습니다. 이러한 주장은 급진적인 그룹과 학생들에게 크게 호응을 받았으며, 중·상류 계층에 속한 일부 젊은이들은 옳지 못한 방법으로 그들이 혜택을 받았다는 죄의식을 느끼게 하였습니다. 그는 학생과 지식인들은 혁명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으며, 젊은이들의 사명은 힘없이 버려진 사회 하층민으로 하여금 혁명에 가담하도록 인도하는 동시에 기존 질서의 평화적인 유지를 목표로 하는 현 사회에 저항하여 혁명을 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혁명의 주체는 사회체제 속의 버림받은 자인 소외자인데, 이 때 소외자란 사회 체제 속에서 밀려난 사람들로서 직장이 없는 자들, 정치적이거나 인종적이거나 출신지에 따른 이유로 박해를 받는 자들, 제3세계의 대중들, 소비성 사회에 염증을 느낀 학생이 포함된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그는 소외 자들이 기존 체제에 대해 사용할 수 있는 폭력 수단을 자연권적인 저항권이란 측면에서 강력히 옹호하였습니다. 마르쿠제는‘억압적 관용(repress tolerance)’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냈는데, ‘억압적 관용’이란, 표현의 자유는 그 자체로 선(善)이 아니며, 좌익의 진실을 확산시키고 혁명을 달성하기 위해 우익의 오류와 주장을 적극적으로 폭력을 사용해서라도‘억압’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그에 의하면 ‘세상에 어느 것보다 나은 가치는 없다. 모든 가치와 문화는 동등하다’는 절대적 상대주의(absolute relativism)와 비판이론으로 서구문명 해체를 목적으로 하는 문화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냈습니다.

마르쿠제의 영향으로 미국의 대학 강단은 심각하게 왼쪽으로 기울어지게 되었고 정치, 경제, 학문, 예술, 언론 등 모든 분야에서 지배적 세력으로 자리 잡게 되었지만 무엇보다 문화적으로 미국을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미국의 정치와 언론도 심각하게 왼편으로 기우러졌지만 좌파가 완전히 장악한 곳은 대학들입니다. 미국의 대학에 보수적 강사가 강연을 하려면 개인 경호원을 대동해야 할 만큼 기울어졌습니다. 좌파들은 언제나 좋은 일들을 전면에 내세우기 때문에 생각 없는 우파들까지 그들의 주장에 동조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기득권을 증오하고 소수자와 소외 자를 옹호하기 때문에 그들의 저의를 간파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집단 간의 차이와 소외 현상은 오직 승자의 차별과 억압에 기인하는 것으로 매도하고 폭력적 저항까지 도덕적 우월감으로 정당화합니다.

이제 우리는 저들의 이론과 주장에 중요한 한 가지가 결여되어 있음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좌파 지식인들의 이론과 주장에는 일체의 긍정적 요소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저들의 이론과 주장을 관철 한다는 것도 불가능하거니와 설사 그렇게 된다고 해도 발전을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근본적으로 발전이란 인간의 개인적 욕망이라는 에너지를 긍정적으로 활용하여 가능하게 되는데 욕망 자체를 악하게 보고 정죄하며, 가능하지도 않은 평등한 분배만을 강조한다면 결국 평등하게 분배할 이익 자체를 불가능하게 하므로 진보와 발전은 불가능하게 되고 맙니다.

성경을 통해 볼 때 타락한 인간은 모든 문제를 남 탓으로 돌리는 부정적 경향이 있습니다. 인류 초기부터 아담은 하와를 탓하고 하와는 뱀을 탓하였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믿지 못할 때 남을 의심하게 되고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를 의지하며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힘을 구가하며 폭력을 정당화 하였습니다. 남을 탓하는 것이 종교적으로는 하나님께 대한 불신앙이고 학문적으로는 남탓이데올로기가 되어 그 패러다임을 벗어나지 못하게 합니다. 패러다임은 대규모 인식 체계이고, 프레임은 소규모 인식 체계인데 하나의 프레임이 나타나는 데는 패러다임이 결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합니다. 남탓이데올로기가 이 시대를 포괄하는 패러다임이고 경제민주화, 환경운동, 소수자 우대, 보편 복지, 평등주의, 차별 금지, 다문화 옹호 등 좌파들이 주장하는 거의 모든 것들은 남탓이데올로기에 종속된 프레임들입니다. 명분상 좋은 일들의 프레임들은 거의 모두 남탓이데올로기 패러다임의 지배를 받고 있고 남탓이데올로기는 하나님께 대항하는 불신앙입니다.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창 4:9)

황상하목사, 뉴욕 퀸즈제일교회 담임

황상하  joseph195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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