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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이 복인 이유는 그 뒤에 계신 하나님 때문박신배 교수의 구약이야기(100) - 욥기(4)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그리스도대 구약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부회장 KC대 전 총장

 

“주께서는 무소 불능하시오며 무슨 경영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노니”(욥42:2).

욥기가 고난의 교과서라고 하면, 인생은 고해(苦海)이다. 이 세상은 고통의 바다이며, 믿음이 없이 사는 사람은 고통이 끝이 없는 세상이라 말한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백팔번뇌(百八煩惱)의 삶 속에 인간이 겪는 고난의 모든 세계 속에 헤매며 살다가 결국은 지옥으로 간다고 말할 수 있다. 친구 엘리바스의 말에 대해서, 변론하는 말에서 욥은 친구들의 말은 ‘번뇌케 하는 안위자’라고 말한다(욥16:2). 인간의 감각(6가지)에서 비롯되는 번뇌(18)가, 좋고 나쁘고, 그렇지 않은 느낌(36가지)으로 나타나고 또 이것을 과거, 현재, 미래의 고통을 말하고 있는 것이 백팔번뇌라 말한다. 이 번뇌는 마음의 평상심을 잃어버린 데서 비롯되어 발생하니 고통의 시작을 멈추려면 마음을 잡으라는 것이다. 그러나 욥기는 하나님이 고통의 원인과 결과를 가지는 분이라 말한다. “볼찌어다 하나님께 징계 받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그런즉 너는 전능자의 경책을 업신여기지 말찌니라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 손으로 고치시나니 여섯 가지 환난에서 너를 구원하시며 일곱 가지 환난이라도 그 재앙이 네게 미치지 않게 하시며 기근 때에 죽음에서, 전쟁 때에 칼 권세에서 너를 구속 하실 터인즉”(욥5:17-20). 욥기는 고난의 징계를 받는 사람을 복되다고 말하고 있다. 결국 고난이 복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고난 뒤에 계신 하나님의 역사(役事) 때문에 그렇다.

욥기 1, 2장에서 천상회의 장면에서 나누는 대화가 욥기 전체의 기조(基調)를 형성한다. 욥기 2장의 천상 장면은 사건의 결과(욥2:7, 욥의 몸 전체가 욕창에 걸림)에서 보면 혼란되지 않고 순조롭게 실행된 것이 불가능해 보인다. 물론 2장만에 대한 다른 관점에 따르면 1장의 이야기를 다시 말하며, 이중적인 반복되는 이야기(후에 첨가)를 제공한다. 욥기 42장 결론에 가서 주목할 만하게도 충분히 욥이 치유되었다는 것(욥2:7)은 언급하지 않는다. 그리고 욥의 아내(욥2:9)에 대해서도 침묵하고 있다. 그러나 욥기 1장은 자연히 2장 다음에 위치하지 않고 역으로 나중에 편집된다. 욥기를 편집한 저자가 마지막 작업에서 나중에 1장을 덧붙였을 것이다. 처음 부분에 편집해서 시대착오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래서 순서를 거꾸로 해서 욥기 1장을 놓았기 때문에 욥 자신의 인물만이 남겨진 것인가? 더욱이 하늘의 장면에서만 아니라(욥1:6-8, 11, 12b=2:1-2a, 5, 7a), 그곳에서 분리되어진 곳(욥1:22=2:10b)에서도 욥기 1, 2장 두 장은 상호 밀접하게 연결되었다. “욥기 기자는 이야기를 강조하며 부각하기 위해 두 가지 이중어를 사용하여 매우 예술적으로 표현하는 문학기술을 보여주었다.”(루프레히트)

욥이 고난이 심하고 고통이 크니 탄식할 수밖에 없는 가운데 어떠한 말을 할 찌라도 그의 중심에서 하나님께 대한 마음과 충성심은 계속되고 있고, 그 신앙은 변함이 없었다.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니라”(욥1:22).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 하겠느뇨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치 아니하니라”(욥2:10). 욥기의 중심은 바로 욥의 신앙심에 있다. 욥의 마음의 중심이 바로 하나님을 향하여 변함없는 마음이 있는 것이다. 욥기 1, 2장에서 고난이 가중되고 더욱 힘든 상황이 되어도 반석같은 믿음으로 욥이 요동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야기 속에 고르지 않는 다양한 이야기 부분이 있더라도 그것은 욥기 이야기의 구두 전승에서 여러 단계를 우리가 추론하게 하게 한다. 하지만 그 이야기의 통일성에 대하여 도전하는 것으로서, 어떠한 이야기도 거의 적절한 근거를 제공하기는 힘들다. 그 적절한 근거는 이야기의 본질 속에 그 이야기의 문학적 통일성에 도전하는 것인데, 욥기 1, 2장을 통해 보면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다.

여기에 대답하기 어려운 심도 깊은 질문이 있다. 고난 받고 있는 친구를 위로하기 위해서(그러나 뒤늦게만, 부적절한 때, 욥42:11) 욥의 친구들이 방문한 것에 대해서, 게다가 욥기 이야기가 항상 세 친구의 방문을 기록하는가?(욥2:11-13) 혹은 친구들이 계속되는 대화에서 이야기의 파트너로서 소개되는 사람이 그 친구들인 시인인가? “이에 그의 모든 형제와 자매와 및 전에 알던 자들이 다 와서 그 집에서 그와 함께 식물을 먹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내리신 모든 재앙에 대하여 그를 위하여 슬퍼하며 위로하고 각각 금 한 조각과 금고리 하나씩 주었더라”(욥42:11). 인생은 친구를 위한 삶, 친구의 들러리 삶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친구와 함께 살아가는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친구가 우리의 삶의 증인이자, 하나님의 소리를 전해주는 천사와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욥의 고난의 순간에도 친구 엘리바스, 빌닷, 소발이 있었고 후에 나타난 엘리후가 있었다. 이 친구들은 욥의 고난에 대하여 충고하고 훈계하며 그 고난에 직접 동참하지는 못하지만 도와주려고 애를 썼던 것이다. 물론 만족할 만큼 효과를 가지지 못했고 그래서 하나님께 꾸짖음을 받는 상태가 되었지만 그래도 인생의 하브루타 친구가 되었다. 그 친구들이 욥의 고난에 동참하며 대화의 파트너가 된 것은, 우리에게도 중요한 시사를 해준다. 친구가 고난의 원인과 해결책을 제시한다. 참 친구 예수가 구원의 길이다.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데만 사람 엘리바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노하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같이 정당하지 못 함이니라”(욥42:7).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예수)의 친구라“(요15:14)

 

 

박신배 박사  shbpae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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