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분별없이 사용하는 어휘들이 많다. 그 중 하나는 ‘결혼(結婚)’이다. 그래서 ‘결혼식’이란 말도 자연스럽게 사용한다. ‘결혼’은 때에 따라서 사용할 수 있지만, ‘결혼식’은 사용할 수 없는 어휘이다.

먼저 우리의 전통 어휘는 ‘혼례(婚禮)’이다. ‘혼례식(婚禮式)’이란 표현은 ‘예식(禮式)’으로 동일한 의미이다. 혼(婚)은 신랑(新郞)이 신부(新婦)에게 장가(丈家) 가는 것이다. 우리 전통 혼례는 신랑이 가마타고 신부의 집에 가서 혼례를 거행했다. 양(陽)과 음(陰)이 만나기 때문에 낮과 밤의 경계선에서 거행했다고 한다. 남녀가 만나는 것은 장가가고 시집가는 혼인(婚姻)이지만, 결합은 신랑이 신부에게 찾아가기 때문에 혼례(婚禮)를 사용한 것이다. 우리는 신랑과 신부가 함께 예식을 하기 때문에 '혼인식'이라고 해야 한다.

‘혼(婚)’은 ‘장가갈 혼’이다. 결혼은 ‘남자가 장가든다’는 뜻이다. 그래서 남자가 신부될 여자에게 ‘결혼합시다’라고 할 수 있다. 남자가 주장해서 여자와 맺어지는 예식은 ‘결혼식’이 아니라 ‘혼인식’이다. 결혼식에는 남자만 있는 것이고, 혼인식에는 신랑과 신부가 있는 것이다. 혹자는 ‘결혼식’ 어휘가 남존여비(男尊女卑)의 폐단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우리의 전통은 부부유별(夫婦有別)의 윤리를 가지고 있다. 부부유별은 서로의 인격을 반드시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부부에 상호 존댓말을 사용했다. 남편도 아내에게 함부로 행하지 않음이 전통 윤리이다. 그런데 왜 가정에서 우월의식을 갖게 되었을까? 그것은 부당한 식민 의식이다. 천박한 노예 의식이다. 노예 의식은 비인격적이기 때문에 좋은 부부 관계를 형성하기 어렵다. 우리 전통 윤리만 회복해도 좋은 부부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기독교 윤리에서도 부부 관계는 상호존중, 상호협력 관계이다. 우리의 지금 남녀맺음예식은 대낮에 행하고 제3의 장소에서 행하기 때문에 혼례(婚禮)라고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장가가고 시집가는 혼인예식(婚姻禮式), 혼인식(婚姻式)이라고 하면 좋겠다. ‘결혼식’이란 용어는 사용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우리 행정용어도 ‘혼인신고’라고 하고 있다. 결혼식하고 혼인신고하는 것이 아니라, 혼인식하고 혼인신고하는 것이다.

기독교 혼인식은 정부의 행정 신고보다 목사의 혼인 선언이 더 유효한 효력을 갖는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혼인은 하나님과 증인 앞에서 맺음의 선언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혼인신고한 뒤에 혼인식을 하지 않고, 혼인식 뒤에 혼인신고를 한다. 혼인은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에 혼인예식으로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하며 혼인의 성립을 고백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혼인예식을 목사의 성혼 선언이 중요하다. 그리고 자녀의 혼인에 부(父)가 주례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예(禮)에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부(父)는 혼인의 주무자이지, 혼인을 주례하는 것은 불가할 것이다. 혼인의 성립은 목사와 증인의 혼인 확인으로 성혼 선언을 한다. 그래서 혼인식에 증인으로 하객이 필요하다. 많은 하객이 아닌 증인으로 하객이 필요하다. 두 사람이 주인공이 되어 거룩하고 엄숙한 예식으로 힘있는 출발을 할 수 있도록 적당한 혼인식이 필요하다. 많은 하객이 가문의 위용을 나타낼 수 있겠지만, 두 사람이 아닌 혼주(婚主)의 위력을 뽐낼 수도 있다. 혼인식은 두 사람에게 집중해야 한다.

 

필자는 혼인식은 교회당에서 진행할 것을 제안한다. 모든 체계가 갖추어진 웨딩홀에서 진행하면 편리하겠지만, 그리스도인은 교회당에서 소박한 혼인식을 갖는 것이 좋겠다. 많은 하객이 오지 않는다면 교회당에서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혼인식에도 우리 전통의 구습(舊習)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화촉(華燭), 폐백(幣帛) 등 구습은 폐지해도 무방하다. 특히 화촉(華燭)은 청초와 홍초가 음양오행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에 지양해야 한다. 혼인의 주무가 혼주라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다. 혼인예식은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가정에 대한 고백이다. 폐백(幣帛)은 시댁 식구들과 인사하는 것으로 시(媤)집가는 것이지만, 미풍양속은 미신적 구습이 있다. 우리의 폐백은 혼인식장에서 한 날에 행한다. 신랑이 장가가 간 뒤에 신부가 시집으로 와서 행한 것이 폐백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결혼’이란 용어가 일상적으로 통용된다할지라도, 청첩장이나 순서지에는 ‘혼인식’이라고 사용해 보자. 그리고 혼인하는 신랑과 신부가 하나님 앞에 가정 이룸을 고백하며 한 가정을 이룸을 인지할 수 있도록 진행하자. 혼인은 신랑과 신부, 두 사람이 하나가 되는 복된 예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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