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가 실증이 되는 나라

한명철 목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은혜와 평강교회를 담임하며 30권의 저술과 글쓰기를 통해 복음 사역에 애쓰는 목회자이다

 

공상(空想)과 가상(假想)의 세계가 현실이 된다면?

이 시대에는 색다른 이상향이 고개를 쳐든다. 증강현실과 가상현실이다. IT산업의 발달로 인간이 실제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오감의 감관 기능을 극대화한 것이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이라면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은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어떤 경험적 공간이다. 실재하지 않지만 기술력을 이용하여 실제처럼 삶의 환경이나 정황을 만들어내는데 가상현실에 몰입될수록 가장 현실적인 것으로 경험된다. 증강현실은 가상현실의 낮은 단계, 가상현실은 증강현실의 높은 단계로 보아 무방하다.

가상현실의 초기 작품에 해당하는 것이 영화 <매트릭스>다. 소설이나 영화 속에 그려진 허구의 세계가 먼 미래에 대한 공상 정도가 아니라 가능한 현실로 우리에게 다가왔을 때 우리의 삶은 어떤 변화를 보일까? 꿈과 현실의 경계를 종횡무진하며 두 세계의 삶을 살아야 한다면 무엇이 보다 실제적이고 실재적일까?

 

호접몽(胡蝶夢), 현실과 가상의 괴리

장자가 어느 날 낮잠을 자며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 자신이 나비가 되어 신나게 날다가 잠시 나뭇가지에 앉아 잠이 들었다. 그런데 잠에서 깨어보니 나비는 사라지고 장자만 있었다. 장자의 고민은 이렇다. 장자가 꿈속에서 나비가 된 것인가? 아니면 나비가 꿈속에서 장자가 된 것인가? 이것이 저 유명한 장자의 호접몽(胡蝶夢)이다. 장자가 낮잠을 자다 꿈속에 나비가 되었으니 무엇이 현실이며 무엇이 꿈인 줄 알고 그는 사상가답게 이를 통해 물아일여(物我一如)의 이치를 깨우쳤지만 현대인은 현실과 가상현실의 경계선상에서 혼란만 가중될 뿐이다.

가상현실이 진보에 진보를 거듭해 오감의 극대화를 경험적으로 인식시키며 인류가 꿈꾸던 먼 미래의 일들을 꿈같은 현실로 바꾸어 놓을 때 인간은 드디어 이상향에 이른 것일까? 아니다. 이상향은 여전히 먼발치에서 인류를 향해 손짓을 하고 있을 것이다. 5세대 통신을 지나 6세대, 7세대 통신이 현실과 가상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가상화폐를 비롯한 각종 가상기능들이 실재 이상의 위력을 발휘하게 될 때 인간은 최대의 만족을 느낄까?

 

이상향(理想鄕)에서 맞는 새로운 재앙

인공지능과 로봇과 컴퓨터의 급속한 발달로 대량 실직상태가 발생하게 되어 국가적 위기와 세계적 재난으로 대두하게 될 때에 현실화된 과학적 이상향으로 인해 인간은 위기에 처하게 될 것이다. 생명공학과 의학기술의 발달로 인간의 수명은 늘어나고 노동 시간은 갈수록 단축되어 한 주 노동시간이 10~20시간 정도로 줄어들게 될 때에 여가를 보내는 문제가 새로운 현안으로 부상하게 될 것이다.

청년 실업률 문제는 갈수록 늘어나는데 기계의 만능 능력에 밀려 한창 일할 나이의 세대들이 노동을 대체할 삶의 의욕 대상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국가적으로 새로운 형태의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정부 차원의 지원도 대상이 전체 국민으로 확대될 경우를 예상한다면 노동에서 자유로워진 인류는 전혀 엉뚱한 재앙 상황에 처하게 될 수 있다.

 

이상향(理想鄕)은 또 다른 신기루를 쫓아가게 해

석유 판매 수익에서 일부를 매년 주민에게 지급하는 알라스카 주의 정부 보조 제도처럼 국가가 매월 또는 매년 전체 국민에게 생활보조금을 지급할 경우에 소득은 분배되고 복지도 정부 차원에서 관리되어 결국 화려하게 치장된 신종 공산사회가 도래할 수도 있다. 설령 그 사회가 실패한 역사적 공산주의의 전철을 밟지 않고 초대교회의 원시 공산사회를 구현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인간의 이상향을 그리는 마음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가상현실이 아무리 매력적이어도 그것은 현대인이 찾는 이상향의 대안이 될 수 없다. 고도로 발달되고 완벽한 가상현실이 전개된다 할지라도 그것은 단지 유사(類似) 이상향에 불과하다. 지금 소개되는 다양한 가상현실의 내용이 언젠가 현실 속의 경험이 되어버리면 보다 진화된 형태의 가상현실이 인간을 향해 손짓할 것이다. 타르타로스(Tartarus)에 갇혀 과일과 음식을 목전에 두고서도 영원한 배고픔과 목마름의 고통을 당해야 했던 탄탈루스처럼 인간은 아무리 이상향이 실현된 듯한 환경에 놓여도 여전히 신기루처럼 그 자리에 서서 아른거리는 파라다이스의 환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리스도인의 이상향(理想鄕)은 하나님나라

그리스도인의 입장에서 천국의 삶을 가장 현실다운 현실이라 간주한다면 미래에 우리가 누릴 천국에서의 지복은 실상 감춰진 현실이요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의 삶은 가상현실이 되어버린다. 바울은 자신을 포함하여 모든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와 함께 보좌에 앉아 있는 모습을 영원의 관점에서 보았으나 우리는 여전히 죄와 투쟁을 벌이며 고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이미 이루어졌으나(already) 아직은 아닌(not yet) 이 긴장은 마지막 종말의 시간까지 지속될 것이다. 유사 이상향, 사이비 이상향이 판치는 세상 한가운데서 그리스도인의 이상향은 주님의 품속이다. 주님의 옷자락이며 주님의 날개 그늘이다.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되는 삶의 시공(時空)이다.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하고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하게 됨은 세상이 개벽하고 난 이후의 현상이 아니라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삶에서 시연되어야 할 구체적인 삶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 곧 천국이 모든 이상향의 원형이요,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곳이 곧 하나님의 나라이면 하나님의 통치 속에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일상 자체가 천국의 향기를 내뿜는 것이어야 한다. 현재에 그림자로 보이지 않는 미래의 실체는 허망하다. 이성봉 목사님의 표현처럼 천국이 본점이라면 교회는 천국의 지점이어야 한다.

 

경제 강국, 군사 강국이 코리언 파라다이스?

코리언 파라다이스는 경제적 번영을 통해 삶의 질이 높아지는 데 있지 않다. 코스닥, 코스피가 연일 상승폭을 키워 여러 차례 고점을 찍는다 해도 그것은 단지 주식을 보유한 자들의 잔치에 불과하고 일반인들의 삶은 여전히 고달플 수 있다. 남북문제가 잘 해결되어 긴장이 해소되고 주변 강대국들과도 원만한 관계를 바탕으로 국격이 가파르게 상승한다 해도 체감으로 느끼는 평화와 행복은 미미할 수 있다. 범죄율이 줄어들고 국민 의식이 고취되어 사고공화국의 오명을 완전히 벗어버리게 되었을 때 그래서 세계인들의 부럼을 한 몸에 사게 되면 국민의 행복지수도 덩달아 오를까? 아니다.

남북의 끊어진 철도가 이어져 부산에서 출발한 통일 열차가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 야로슬라브스키에 이르고, 한라에서 백두까지, 백두에서 땅 끝까지 바닷길 하늘길이 다 열려 사통팔달하면 이상향의 한 티끌이라도 만질 수 있으려나! 어쩌면 민족의 숙원이 이루어지고 세계 초일류의 강국, 부국을 이루어도 이 나라의 이상향은 사무엘 버틀러(Samuel Butler)의 풍자소설 <에레혼>(Erewhon)의 원래 철자처럼 “어디에도 없는”(nowhere) 한 여름 밤의 꿈으로 끝날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는 코리언 파라다이스를 꿈꾸며 바라본다.

 

코리안 파라다이스의 실제(實際)와 실체(實體)

정치가는 정치가다운, 군인은 군인다운, 선생은 선생다운, 일군은 일군다운 세상, 목사는 목사다운, 신자는 신자다운 교회가 교회다운 세상, “~다운”이 한 아름 가득하여 아름다운 세상, 일한 대로 정직하게 보상되며 이웃을 가족처럼 살뜰히 보살피는 애린(愛隣)이 일상인 사회, 이방인과 난민들이 삶을 보장받고 크고 작은 나눔이 서로 실천되어 부족함을 느낄 수 없는 나라,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가 생활에서 실증되는 나라, 그 나라가 코리언 파라다이스라면 얼마나 좋을까! 다만 꿈과 바람일지언정 내내 꿈꾸며 바라고 싶다.

코리언 파라다이스는 현실적으로 통일 한국이다. 155마일 휴전선이 철폐되고 태고의 자연 환경이 문명의 도시들 사이에서 보존됨으로 평화의 심벌, 지구촌의 문빗장이 될 때 한반도는 부탄 왕국처럼 21세기 세계인의 이상향으로 부각될 수 있을 것이다. 빈부의 격차는 철폐되고 갑돌이와 갑순이만 한 마을에 사는 것이 아니라 을돌이와 을순이도 함께 살면서 갑돌이와 을순이가, 을돌이와 갑순이가 서로 사랑하고 가정을 이루는 신분의 장벽이 무너진 사회가 코리언 파라다이스의 진면목이어야 한다.

강도와 도둑이 사라져 경찰관과 교도관이 일자리를 잃고 경찰서와 교도소가 관광명소가 되는 날, 곳곳에 세워진 교통 신호등을 제거해도 자동차와 사람들이 원활히 소통되는 거리의 모습이 구체화되는 날, 사자와 소가 같이 풀을 뜯고 어린아이가 독사의 구멍에 손을 집어넣고 무기를 녹여 농기구를 만들어 평화의 기운이 하늘땅 두루 가득하게 될 때 극동의 작은 반도는 세계를 환히 비치는 등불로 일어서게 될 것이다. 하늘이 이 나라를 여셨으니 태평양의 거센 물길을 박차고 저 광활한 대륙을 향해 드높은 기상으로 비상해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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