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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속되는 성(性)의 세속화를 보면서

12월 13~14일 미국 몬태나 주립대에서 제4회 ‘국제 로봇과 사랑 섹스 학술대회’가 열린다고 한다.

우리가 충격 갖기 시작한 성문화는 아마도 에스키모의 성문화일 것이다. “섹스올로지(Sexology)”, 네덜란드에는 Sexology학과가 있고, 미국에서는 Sexology가 인기과목이라고 한다. 성(性), 섹스(sex)는 금기사항을 넘어 학문과 유희와 확장 분야로 인식되어 있다. 이러한 사회 인식은 네오-마르크시즘(neo-Marxism)의 영향일 것이다. 네오 마르크시즘은 1920-30년대에 마르크스와 프로이트의 이론을 융합한 학파이다. 네오 마르크시즘은 프랑스 68 혁명의 근본 정신이다. 우리나라에서는 80년대 386세대가 마르크스시즘에 매료되었다가, 90년대 이후에 동일한 한계에 부딛혀 네오 마르크시즘으로 전환되었다고 볼 수 있다. 세계의 주도하는 정신 세계 중 하나가 네오 마르크시즘이다. 프랑스에서는 네오 마르크시즘을 결별하려고 한다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네오 마르크시즘이 절정에 다다라 있는 것 같다. 마르크시즘은 계급 투쟁을 기반으로 했는데, 네오 마르크시즘은 프로이드의 성(性)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서양 사회는 모두 동성애를 합법으로 규정했고, 동성혼인도 합법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교회들도 시대의 조류에 편승하며 성경해석을 만들어내서, 동성애자 사제, 목사가 있다.

우리나라는 2015년에 간통죄가 폐지되었다. 간통은 혼인 파괴의 결정적 요소로 인정하고 있지만, 국가에서 형벌 조항으로 보지 않는 다는 것이다. 간통죄 폐지는 부부의 성관계 범위에 대해서 형법적으로 관용을 주는 것이다. 간통죄 폐지의 문제점은 이혼의 증감에 있지 않고, 성관계의 범위를 국가가 확장시켜주는 것에 있다. 그것은 헌법 10조가 천명하는 “행복추구권”에 있다. 성(性)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의식 변화를 말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 곧 동성애에 대한 차별금지법 논쟁이 발생하고 있다. 소수자의 인권, 개별자의 행복추구권이 다시 대두되는 것이다. 간통죄 폐지도 세계적인 추이에 편승한 것이었고, 소수자 차별 금지법도 세계적인 추이에 동승해야 하는 것인가? 과연 대한민국의 주체적인 법률적 판단은 언제 볼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앞서서 동성애 혼인을 허용한 서구에서는 수간(獸姦)이 등장하고 있다고 한다. 동물과 성관계를 새로운 “생활방식의 선택”이라고 주장한다. 수간이 인간의 성적 탐욕의 정점인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상상하기 어려운 성적 양태가 있다. 성소수자의 종류는 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 Transsexual, 2/Two-Spirit, Queer, Questioning, Intersex, Asexual, Ally 등 증가하고 있다. 소아 성애증(小兒性愛症, pedophilia, 참고 현재 공식 용어가 “소아성애증小兒性愛症”인데, 단순하게 “소아성애”라고 어휘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그 외에도 다양한 성 성향이 있다. 이것이 성적 욕망의 끝인 줄 알았다. 그럼에도 매저키스트(masochist)에 대해서는 관용이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인간의 성 욕망은 시체를 향해서(Necrophilia, 시신애착증), 자동차, 오토바이를 향해서(mechanophilia, 기계성애증) 무생물까지 확대되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AI 시대에 섹스 로봇까지 만들었다. 섹스 로봇 ‘사만다’, 영화 ‘AI’에 나온 로봇 창남 ‘지글’이라는 이름까지 등장했다. 사랑과 섹스의 분리를 확정하고 있는 것 같다. 차라리 동성애, 수간은 대상을 사랑한다고 칠 수 있다.

성 관계를 부부 관계로 한정시키던 윤리 체계가 무너지면서 파생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동성애 반대 운동을 하는 것보다 혼전, 혼외 성 관계를 금지해야 한다. 복된 부부 관계를 이루고 이혼하지 않는 것이 동성애 반대 운동보다 훨씬 사회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성의 세속화는 가정을 무시하는 행동에서 발생한 것이다. 가정은 부권으로 유지되는 집단으로 판단한 결과이다. 가정은 남녀가 한몸을 이룬 사랑이고 결과물이다. 그 사랑을 부당하게 평가하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질서를 모욕하는 것이다. 우리는 성의 세속화를 막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일은 세속화를 막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젊은 그리스도인들이 힘써 혼인하고 복된 가정을 이루는 일을 두려워하지 말자. 청년 그리스도인들이 혼인을 회피하면서 성의 세속화를 걱정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인 행동이다. 청년을 둔 부모들이 자녀의 혼인을 보류하면서 성의 세속화를 반대하는 것도 이율배반적인 것이다. 성의 급진적으로 세속화되는 제1원인은 청년들이 혼인하지 않는 것이고, 혼인한 부부가 이혼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소금이 되는 것은 힘써 혼인하여 많은 자녀를 출산하는 것이고, 가정을 복되게 이루는 것이다. 

고경태  ktyhb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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