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멋진 목사, 진짜 멋진 성도의 노빌리스(명예) 오블리제(의무) 정신이 절실히 요청된다

최원영목사. 본푸른교회담임. 본헤럴드 대표, 서울신학대학교신학박사, 변화산기도원 협력원장. 등 저서: 주기도문 연구 등

◐채워지지 않는 탐욕

파멸의 바벨탑 이야기가 성경에 나온다. 온갖 노력을 통해서 바벨탑을 쌓았는데 그 탑이 무너졌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탐욕이다. 권력에 대한 탐욕이든, 정욕에 대한 탐욕이든, 돈에 대한 탐욕이든, 지식에 대한 탐욕이든, 명예에 대한 탐욕이든, 소유권에 대한 탐욕이든, 탐욕의 형태는 다르지만, 탐욕의 끝은 파멸로 마무리된다는 분명한 사실을 성경은 가르쳐주고 있다. 성경뿐이겠는가? 인간 역사의 파멸의 결과는 항상 탐욕이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탐욕에는 끝이 없다. 항상 부족하다. 항상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허기진 배처럼, 굶주린 사자처럼 새로운 욕망의 대상을 끊임없이 찾아 나선다. 그리고 자기 것으로 빼앗아야 직성이 풀린다. 탐욕에는 오직 정글의 법칙처럼 적자생존의 룰만이 적용된다. 탐욕에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은혜와 깊은 사랑의 교감이 없다. 오직 ‘나’에만 집중되어 있다.

성경에 보면, 동생이 예수님께 찾아와서 형이 유산을 독식했으니, 유산을 분배할 수 있도록 중재자가 되어달라고 요청했다. 동생에게 주님이 한 마디 하신다.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함이 있지 아니하니라”(눅12:15).

주님은 형이나 동생이나 탐심으로 가득찬 인간의 마음을 보았다. 탐심보다 더 소중한 가치는 생명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가치를 설명해주었다.

주님은 ‘어리석은 부자’ 비유로 탐심의 결말이 얼마 허망한 것인가를 가르쳐주셨다. 어리석은 부자는 경영을 잘 해서 회사의 수익을 크게 냈다. 그래서 더 큰 창고를 건설하고 그해 거두어 들인 모든 곡식과 재산을 넣었다. 그리고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리라”고 행복한 꿈을 설계했다.

탐욕으로 가득한 현대인의 시각에서 보면, 부자는 경영을 잘해서 돈을 많아 벌었다. 그리고 자신을 위해서 쓰는 것이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되물을 수 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리석은 부자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오늘밤 네 영혼을 찾으면 네 것이 누구 것이 되겠느냐고 묻는다. 주님이 생명을 거두어 가시면, 우리가 애쓰고 모은 모든 저금과 주식과 부동산 등이 누구것이 되겠는가? 어리석은 부자의 부족함은 무엇인가? 많은 이익을 낸 것을 이웃과 함께 나누지 않았다. ‘부’를 오직 자기에게만 집중하고 있다. 나눔이 없다. 이웃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 한 마디로 노블리스(명예) 오빌리제(의무)에 대한 실천이 없는 것이다.

부모가 남긴 재산은 결국에는 자식들의 탐욕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다. 더 가지겠다고 싸운다. 유산을 독식한 사람은 기쁨이 넘치고, 유산을 찾지 하지 못한 사람은 불행한 감정에 자신의 소중한 삶을 쓰레기에 처박아 버리고 지낸다. 남겨진 유산을 더 가지려고 법정 싸움으로 이어지고, 어떤 경우에는 살인으로 가정이 풍비박산으로 전락하고, 평생 감정의 굴곡에서 서로 원한의 칼을 갈며 살아가는 처참한 풍경이 오늘날 이땅에서 진행되고 있다.

탐욕에 병든 사람들은 생명보다 더 귀하고 소중한 것이 재산이다. 재산이 생명보다 가족보다 형제보다 더 가치가 있기에 맘몬에 자신의 전 인격을 전 생애를 던져버린다. 탐욕의 정글이 얼마나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악마인가?

사람들의 마음 속에 하나님이 없기 때문이야

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이 탐욕에 지배를 받고 살아가고 있는가? 1970년대 노벨 문학상을 받은 소련의 반체제 작가 솔제니친(1918~2008)은 일생동안 러시아 혁명사를 연구했다. 러시아 혁명에 관한 수많은 자료를 수집했고, 많은 책들을 읽고, 8권이나 책을 썼다. 왜 혁명을 통해서 6천만명이 학살을 당했을까? 그 이유가 무엇일까? 혁명이란 이름으로 같은 형제자매들을 학살해야 했는가? 그 이유를 찾는데 자신의 평생을 받쳤다. 그 결론은 오직 하나였다. 자기가 어릴적에 어른들이 학살의 잔혹함을 보고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없느거야.’ 그는 평생을 러시아 혁명사를 연구하면서 마침표를 찍었다. 어릴적에  어른들이 했던 말이 맞다는 것을. 다른 말로 잔혹한 참상을 대치할 단어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없는거야’

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나,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나 오직 물질이라는 탐욕의 병에 다 갇혀 살아가고 있는가? 그 이유를 찾는다면 ‘마음속에 하나님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마음속에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사람들은 맘몬의 노예가 되지 않는다.

유한양행을 설립한 창업주 유일한 박사는 자신의 주식을 전부 재단법인에 귀속시켜 사회 환원했던 믿음의 걸음을 실천했다. 그런 위대한 삶을 살았던 목회자, 장로, 권사, 집사님들이 많다.

역사의 위대한 유산을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짓밟아 버리고 있다. 왜, 교회까지 맘몬에 노예가 되어가는가?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신앙인들까지 탐욕에 물들어서 하늘의 영적 가치를 버리고 세속의 가치에 자신을 더럽힐까? 무엇이 문제일까? 그 원인은 하나님이 그 마음에 없기 때문이라고 밖에 다른 말로 대치할 수가 없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믿는 성경의 가치를 삶으로 살아내야 한다. 이것이 이 시대를 밝히 비출 소금이요 빛이기 때문이다.

변화산 기도원 기도굴,  기도의 깊이와 시간이 탐욕을 나눔으로 ....

◐탐욕을 극복하는 성경적 가치

탐심을 극복하는 길은 아주 간단하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다. 여호와를 경외한다는 것은 내 삶의 첫 번째 자리를 주님께 내어 드린다는 결단이다. 목회를 하든, 사업을 하든, 인생에서 무엇을 하든 첫 번째 자리는 오직 주님이심을 고백하는 것이다. 구약에서 강조하는 사상이 무엇인가?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끊임없이 강조하고 명령하고 있다.

생명보다 사명이 더 소중한 가치이다. 내 인생을 보람되게 아름답게 끌어가는 힘은 오직 사명에 대한 온전한 헌신과 바른 순종에 있다. 사명이 거룩하면 삶도 거룩해진다. 자신의 생활에 목을 매면 인생은 점점 힘을 잃어간다. 사명을 버리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에만 전전긍긍하면 어느 순간 소중한 가치들을 잃어버리기 시작한다. 탐심을 극복하는 길은 사명에 대한 온전한 헌신과 순종이 그 해답이 된다. 사명이란 오직 하나님의 이름을 존귀하고, 명예롭게 지키는 것이고, 하나님의 나라와 뜻에 집중하는 사역 방향과 태도를 말한다.

이웃 공동체를 항상 염두에 둘 때 탐욕을 극복할 수 있다. 어리석은 부자의 특징은 오직 부를 자신에게만 사용하려고 했다. 탐심의 결말은 헛된 삶으로 끝나게 된다. 나에게 주신 재능이나 부를 통해서 이웃을 보석으로 만들어주라. 그러면 그것이 자신을 보석으로 만든다는 필연적적 사실을 우리는 보게 된다.

다양한 사역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주머니를 끄집어내서 내 사역을 하려고 한 적이 없다. 항상 나에게 주신 것을 최대한 주님의 나라에 드려서 헌신의 길을 걸어왔다. 그래서 때로는 가는 길이 더디고 답답할 수 도 있지만, 내 안에는 늘 주님의 부유함이 자리 잡고 있다. 탐심을 극복하는 길은 간단하다. 복잡하지 않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나를 위해서만 쓰지 말고 공동체를 위해 과감히 헌신할때 극복할 수 있다.

예수님의 리더십은 자기희생정신이다. 천국 백성다운 삶의 기준을 제시했고 실천했을뿐만 아니라 최후에 생명까지도 세상에 주셨다. 그 결과 모든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으며 주인으로 왕으로 섬김의 대상이 된 것이다.

탐욕은 자신과 공동체를 황폐하게 만든다. 그러나 탐욕의 바벨탑을 극복하면 진짜 부요한 사람이 되고, 부요한 공동체가 되고, 영원한 영적 정신적 가치를 유산으로 공동체에 물려준다. 오늘날 멋진 그리스도인이 더 많이 필요하다. 영원히 사는 길을 선택하는 진짜 멋진 목사, 진짜 멋진 성도의 노빌리스(명예) 오블리제(의무) 정신이 절실히 요청된다. 탐욕의 길을 극복한 섬김의 사람이 이땅의 거룩한 씨앗이며 역사의 유산이다. 우리의 삶을 통해서 주님의 이름을 회복시키라. 이것이 이 땅을 거룩하게 하는 길이다.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