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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두 주인을 섬기지 말라.

디모데전서 6:3-12

3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지 아니하면
4 그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5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 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6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7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8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9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11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디모데전서 1장 3-4절을 보면, 바울이 마게도냐로 가면서 에베소에 있는 디모데에게 이 서신을 쓴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 내가 마게도냐로 갈 때에 너를 권하여 에베소에 머물라 한 것은 어떤 사람들을 명하여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며 4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몰두하지 말게 하려 함이라 이런 것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라](딤전 1:3-4)

사도행전 19장과 20장 1절을 보면 에베소 도시가 어떤 도시인지 매우 상세하게 나옵니다. 바울은 에베소의 유대인 회당에서 석 달 동안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고 권면합니다. 그러자 유대인들 사이에 분쟁이 생겨났습니다. 이에 바울이 복음으로 제자가 된 사람들을 따로 세워 약 2년 동안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합니다. 그러자 그 기간에 수많은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이 주의 말씀을 듣고 거듭나 구원을 얻게 됩니다. 

그런데 어떤 사건이 터지는가 하면 유대의 제사장인 스게와의 일곱 아들이 시험 삼아 악귀 들린 자들에게 주 예수의 이름으로 축귀를 하였습니다. 그러자 악귀가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하며 그들을 짓눌러 이깁니다. 그러자 그들이 미칠 지경이 되면서 나체로 도망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더 많은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주 예수님을 믿게 되고, 심지어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들에게 돈을 벌어주던 마술책을 다 모아서 불에 태웠습니다. 
“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사르니 그 책 값을 계산한즉 은 오만이나 되더라.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행 19:19-20). 

이 후로 바울이 전하는 복음으로 인해 크게 피해를 보는 자들이 생겨났습니다. 특히 은으로 아데미 신상을 만들어 돈을 벌던 데메드리오라는 사람은 가장 큰 피해를 보았습니다. 그러자 그는 그의 직공들 및 같은 영업을 하는 사람들을 부추겨서 바울을 에베소에서 내쫓든지 아니면 죽여야 한다고 소란을 피우게 됩니다. 데메드리오가 외칩니다. 
[27 우리의 이 영업이 천하여질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큰 여신 아데미의 신전도 무시 당하게 되고 온 아시아와 천하가 위하는 그의 위엄도 떨어질까 하노라 하더라 28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분노가 가득하여 외쳐 이르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니 29 온 시내가 요란하여 바울과 같이 다니는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들어 일제히 연극장으로 달려 들어가는지라](행 19:27-29)

이 소란 때문에 에베소 서기장이 나서게 되고, 그는 성난 무리들을 향해 이렇게 무작정 소란을 피우지 말고 정식 절차를 통해 바울을 고발하여 재판하라고 제시합니다. 이에 그 소란이 잠잠해지고 모임은 해산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바울은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제자들을 불러 권면한 후 작별인사를 하고 에베소를 떠나 마게도냐로 가게 됩니다. 

우리는 여기서 에베소 도시를 붙들고 있는 사조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에베소 도시는 밧모 섬에서 가장 가까운 해안 도시였습니다. 그곳은 무역의 요충지로서 돈과 쾌락을 충분히 맛보는 도시였습니다. 그러므로 그곳 에베소 사람들은 돈을 대단히 사랑했으며 기회가 나면 돈을 축적했습니다. 그 이유는 돈으로 얼마든지 쾌락과 권력과 인기를 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에베소 사람들은 돈이 전부라는 가치관을 갖고 있었습니다. 은으로 아데미 신상을 만들어 돈을 벌던 데메드리오도 바울이 처음에 복음을 전할 때는 아직 자기에게 경제적인 손실이 오지 않았기 때문에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러나 복음으로 인해 경제적인 손실을 보게 되자 곧바로 난리를 치며 소요를 일으켰던 것입니다. 

아무튼 에베소 도시의 사람들은 눈을 벌겋게 하여 돈을 쫓고 있었습니다. 특히 아데미 여신은 에베소 사람들에게 큰 돈을 벌어주는 우상 종교였습니다. 배를 타고 지나는 수많은 사람들은 아데미 여신의 여창들과 몸을 섞으면서 기념품도 사고 헌금도 했습니다. 따라서 에베소 도시에서는 우상 종교와 세상 사업이 탄탄하게 엮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바울이 전한 복음에 의해 우리 주 예수님의 교회가 선 것입니다. 하지만 교회는 잠시라도 깨어 있지 않다면 에베소 도시의 사조에 곧바로 물들게 될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교회의 위기이며 교회의 파산입니다. 

이러한 에베소의 세속적이고 타락한 사조 때문에 바울은 디모데전서를 쓰기 전에 에베소서를 썼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에베소 도시의 사조를 이해한다면 에베소서가 더 분명하게 와 닿을 것입니다. 

[5 너희도 정녕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6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 7 그러므로 그들과 함께 하는 자가 되지 말라 8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9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10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11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12 그들이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운 것들이라

13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은 빛으로 말미암아 드러나나니 드러나는 것마다 빛이니라 14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 15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16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17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엡 5:5-18)

이처럼 교회의 생명은 세상과 구별되는 것입니다. 세상에 물들지 않는 것입니다. 주 예수께서 교회를 이 땅에 세우신 이유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는 것이지 세상을 본받아 양적으로 커지고 세상의 권력과 인기와 영광을 누리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분명하게 알아야 하는 것은 만일 교회가 세상을 본받아 세상처럼 돈과 권력과 명예와 영광과 인기를 추구한다면, 그런 교회는 이미 죽은 교회입니다. 그러한 교회는 사데 교회이며 라오디게아 교회입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계 3:1).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계 3:17-18). 

교회가 세상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도록 변화시키는 일을 해야지, 도리어 세상의 상술과 거짓과 정치가 교회에 들어온다면 어찌 그런 교회가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교회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교회는 교회다워야 하는데 교회가 세속화된다면 어찌 그런 교회가 교회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교회는 세상을 향해, 정부를 향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선포하고 또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가 그 역할을 못하고 세속화되면 교회의 정체성은 무너집니다. 그런 교회는 아무리 사람이 많고 돈이 많더라도 주께서 보실 때는 교회라고 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은 어디서든 자기가 있는 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그릇된 교훈과 바른 교훈의 차이를 정확하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릇된 교훈은 왜 그릇되게 되는지 그 동기를 알려주고, 거기서 벗어나 바른 교훈으로 돌아오는 비결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만일 교회가 그릇된 교훈에 빠지면 그 교회는 세속화되어 사람과 돈은 많아질지 모르나 참 교회로서는 망한 것과 다름 없습니다.  

지금 이단 신*천*지와 안*상*홍의 하나님의 교회 등을 보십시오. 그들에게 돈이 많아졌고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에 참된 교회가 되는 것입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만일 바른 교리가 선포되지 않는다면 거짓 교회입니다. 참 교회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모이는지, 또는 돈이 얼마나 많은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바른 교훈이 선포되며 그리고 그 교훈을 따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교훈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 및 그러한 교회는 거짓 교회이며 거짓 신자입니다. 그러한 거짓 교회 또는 거짓 신자의 특징은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며,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을 하며 마음이 부패한 상태에 있습니다. 그들은 진리를 잃어버린 상태에 있기 때문에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누구든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를 때 그가 참 신자이며 그들로 구성된 교회가 참 교회입니다. 그리고 그 교훈은 바른 교리이며 진리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여기서 매우 중대한 한 가지를 지적합니다. 그것은 바로 돈에 대한 자세입니다. 바울은 바른 교훈 및 거짓 교훈을 말하다가 돈으로 연결합니다. 왜 모든 거짓 교훈이 발생하는가? 왜 사람들이 경건의 참된 교훈을 버리고 거짓 교훈을 따름으로 거짓 신자가 되고 거짓 교회를 세우는가? 바울은 그 동기를 ‘돈’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이에 바울은 “진리를 잃어 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이 참된 교회를 더럽히며 망친다고 알려줍니다. 즉, 교회를 세속화시키는 장본인은 돈을 추구하며 사랑하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른 교훈으로 돌아가 참 교회를 세우려면 돈에 대한 자세가 바뀌지 않고서는 가능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에 바울은 경건을 이루어야 마땅한 성도가 돈에 대해서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를 알려줍니다. 

[6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7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8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9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11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딤전 6:6-12)

심지어 디모데전서를 마무리하는 부분에서도 바른 교훈을 놓치지 않도록 돈에 대한 자세를 다시 한번 분명히 하고 디모데전서를 마칩니다. 
[17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18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19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20 디모데야 망령되고 헛된 말과 거짓된 지식의 반론을 피함으로 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라 21 이것을 따르는 사람들이 있어 믿음에서 벗어났느니라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딤전 6:17-21)

이로 보건대 교회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바로 5절에 나타나는데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이 바로 교회를 망치는 주인공들이며, 교회를 세속화시키는 장본인들입니다. 

만일 이러한 사람이 교회의 목사가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이런 사람이 교회의 장로나 지도자가 된다면 그 교회는 어떻게 변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반드시 교회는 세속화될 것이며, 이에 교회 및 교인들은 세상의 일반 단체와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시대에 돈 좋아하는 가짜 목사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반면 바울은 참된 교훈을 통해 참 교회를 세우는 자들의 특징을 말하는데 그것은 6절입니다.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디모데전서를 읽어보면 ‘경건’이라는 단어가 8번 나옵니다. 이는 바른 교훈의 목적과 뿌리는 경건이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리스도의 말씀, 곧 복음의 뿌리와 목적 역시 경건이라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이에 디모데전서 3장 16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려지셨느니라”(딤전 3:16)

여기서 보면 한없이 위대한 경건의 비밀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복음,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인 사실을 뚜렷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따르는 우리에게 바른 교훈은 경건과 연결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에 우리의 본문, 3절에서도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지 아니하면”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의 말씀인 복음과 경건에 관한 교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에베소 도시에서 목회를 하는 디모데에게 무엇보다 경건에 힘쓰며 경건을 가르치라고 알려줍니다. 
[6 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어 믿음의 말씀과 네가 따르는 좋은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 7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10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힘쓰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 11 너는 이것들을 명하고 가르치라](딤전 4:6-7, 10-11)

그러면 경건이 무엇입니까? 영어로는 Godliness 라고 합니다. 원어로는 (유세베이아)라고 합니다. 이 원어의 가장 중요한 개념은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입니다. 그리고 어근으로 따라가보면 살아계신 주 하나님을 “존중하다. 경외하다. 예배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즉, 경건은 참으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인식하며 보이는 반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되신 성삼위하나님을 뵙게 되면 우리는 예배하는 마음 가운데 주를 경외하면서 경건한 마음과 자세를 품게 됩니다. 즉,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뵐 때 하나님의 존전에서 우리 피조물인 죄인들이 갖는 가장 소중한 마음 상태와 자세를 경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경건의 상태가 지속되면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면서 성령으로 충만한 가운데 영광에서 영광으로 변화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겨지리라.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후 3:16-18). 

이것이 복음의 능력이며, 경건의 교훈을 받아 훈련하는 자들이 누리는 최고의 영광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최고의 영광을 누리는 자들은 그 자체가 만족이요 영광이기에 더 이상 부러울 것이 없으며 특히 재물에 대해 탐욕을 부리지 않게 됩니다. 

[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라](빌 3:7-9)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재물을 얼마든지 청지기로서 다스릴 수 있는 자가 됩니다. 그들은 교만하지 않으며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지 않으며,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을 갖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그리고 경건에 이르는 비결을 알려줍니다. 물론 자신들 역시 경건의 훈련을 쉬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이 시대는 돈이 하나님이 되어 있는 시대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물질을 탐하며 살아갑니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이유도 결국 안정된 대기업에 들어가 돈을 많이 벌기 위함이고, 결혼도 결국 돈 많은 사람을 만나 잘 먹고 잘 살기 위함입니다. 가정에서든 사회에서든 대화의 90% 이상이 돈에 대한 대화이며, 끝없이 쌓아놓아도 그리고 아무리 벌어도 만족함이 없는 것이 돈입니다. 시장을 가도 돈 밖에 모르고, 어디서나 대부분의 싸움은 돈 때문에 발생합니다.  

심지어 그리스도인들조차 경건의 모양을 취하기 위해 교회를 다니기는 하지만,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지만, 심지어 성령을 불러대지만 사실은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헌금을 하는 것도 하나님이 더 많은 돈을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조는 세상의 사조로서 교회가 이런 사조에 물들 때 교회는 그 정체성을 잃고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이유는 교회의 정체성은 거룩이며 교회의 생명은 경건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언급한 것처럼, 경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참되고 영원하신 하나님 존전에 서서 그분의 영광을 보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이 우주에서 부러울 것이 없습니다. 지극한 만족이 그에게 함께 합니다. 그 만족은 이 세상이 주는 것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완전한 만족입니다. 따라서 세상의 것들에 그 마음을 빼앗기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경건한 사람은 세상 사람들과는 달리 탐심을 버리고 돈을 충분히 다스릴 수 있습니다. 즉, 돈이 그 사람의 우상이 되는 일이 없습니다.  

디모데가 목회하던 에베소 도시는 아데미 여신을 섬기는 종교와 상업이 철저하게 결탁하며 사회를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그곳 사람들은 오직 돈과 부에 미쳐 있었습니다. 돈이 있으면 해결되지 않은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따라서 돈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있는 도시가 에베소였습니다. 그곳에서 복음으로 세워진 주 하나님의 교회가 망하지 않고 서려면 그 능력은 오직 경건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경건을 훈련한 사람들만이 돈에게 휘둘리지 않고 돈을 다스릴 수 있었습니다. 

이 시대의 교회 가운데 돈과 권력을 추구하지 않는 교회가 몇이나 되겠습니까? 경건의 능력을 보이며, 참으로 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탁월하게 감당한다는 소문을 내는 교회가 있습니까? 참된 신자 한 사람 때문에 사회 조직이 부패하지 못한다는 소문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회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고 가르침을 받아온 것은 아닙니까? 그 교훈이 경건의 교훈과는 상반되는 거짓 교훈이라는 것을 의식하는 사람이 몇이나 됩니까? 사실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여러분들 중에도 세상 복을 받기 위해, 특히 돈 많이 벌 수 있도록 하나님의 복을 받을까 하여 이 자리에 나와 예배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는 경건을 위해 있습니다. 거룩함을 위해 있습니다. 정직과 의로움을 위해 있습니다. 세상이 다 썩어도, 불의로 가득해도, 교회만은 썩지 않아야 하고, 의와 정직과 성실과 진실과 사랑과 거룩함이 있어야 하는 곳이 교회입니다. 이러한 경건의 교회가 되기 위해 싸워야 하는 맨 처음의 싸움, 그리고 교회가 존재하는 동안 늘 싸워야 하는 최고의 대적은 돈입니다.  

그러므로 세속에 물든 교회는 더 이상 교회가 아닌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신자가 세상의 사조에 물들어 경건을 세상을 얻는 도구로 사용한다면 이미 그 신자는 그릇된 자리에 선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참 신자와 참 교회의 특징은 세상의 사조를 거슬러 쉬지 않고 경건의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거룩함을 실현해 나가는 것이 교회입니다. 

이때 경건을 추구하는 자에게 반드시 임하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만족’ 또는 자족입니다. 바울은 경건의 능력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1-13)

그런데 신기한 것은 이러한 자족과 함께 끊임없는 기쁨이 넘치는 것입니다. 왜 그러합니까? 이는 우리의 영이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기 때문이며 우리의 마음이 주를 경외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자족의 상태에서는 스트레스와 괴로움, 염려, 초조함 등이 순식간에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나 경건을 자기의 유익으로 이용하는 사람은 하나님과의 교통이 있을 수 없고, 따라서 하늘의 평강이 주어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이 느끼는 불안감을 그대로 갖게 됩니다. 이러한 때 그들은 그들의 불만과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자꾸 종교적인 열심을 냅니다. 그럼에도 참 평안과 하늘의 기쁨을 누리지 못합니다. 이는 하나님과 만나 교통하며 갖는 경건은 열심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바른 복음의 지식에 따른 믿음으로 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성경은 경건은 모든 면에서 유익하다고 알려줍니다. 
[8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9 미쁘다 이 말이여 모든 사람들이 받을 만하도다](딤전 4:8-9)

경건은 범사에 유익합니다. 이는 여러분이 참으로 경건하면 모든 일에 있어서 유익을 얻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물론 이 진리를 또 다시 사욕으로 이용하려고 한다면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저 경건에만 힘쓰면 될 것이지, 그 유익 때문에 경건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아무튼 성경은 경건이 가져다 주는 유익을 알려줍니다. 그 유익은 ‘범사’에 ‘모든 면’에서 나타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경건에 힘쓰는 자는 ‘매사’에 ‘모든 면’에서 유익을 얻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유익입니까?

첫째, 하나님을 의식하며 그분의 영광 앞에서 사는 자는 끊임없는 평강이 그 마음에 있습니다. 또한 어떤 상황에서도 만족함이 있습니다. 따라서 불평하는 자들에게만 생기는 어둠과 고립과 심판을 피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지시를 철저하게 받는 상태가 경건이기 때문에 삶에 큰 실수를 하거나 죄를 범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죄로 말미암은 가책과 자학, 그리고 비참과 공포와 삶의 실패를 피할 수 있습니다. 

셋째, 경건은 몸에도 유익이 됩니다. 마음이 맑고 고요한 사람은 그 얼굴부터 인자하고 그 몸은 늘 신선한 생기로 넘칩니다. 따라서 경건한 사람은 일반적으로 그 몸도 강건합니다. 

넷째, 경건한 사람의 생각은 하늘의 지혜와 총명으로 깊어지기 때문에 가정에서나 사회에서, 그리고 교회에서 화목을 이루어 냅니다. 이에 경건한 사람으로 인해 사랑과 감사와 평안이 넘치는 가정과 공동체가 서게 됩니다.  

다섯째로, 경건한 사람은 물질적으로도 지혜롭기 때문에 재물을 잘 관리할뿐더러 늘 여유가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은 경건한 사람의 삶에 무엇이든 부족함이 없게 채워주시기 때문입니다. 

여섯째로, 경건한 사람은 가까운 사람들일수록 더욱 신뢰하고 사랑하기에 그가 세워가는 대인 관계는 진리와 신뢰 가운데, 그리고 영원한 같은 소망 가운데 한없이 깊어갑니다. 심지어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을 나눌 수 있는 친구 관계를 맺게 되니, 주 안에서 든든한 삶을 살게 됩니다. 

그 외 무한하게 나열할 수 있지만, 더더욱 경건이 귀한 것은 이 땅에서뿐만 아니라 영원한 나라에로 이어지는 유익을 누린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온 마음과 뜻을 다해 경건을 이루려 할 것입니다. 이에 바울은 “미쁘다 이 말이여 모든 사람들이 받을 만하도다”고 외쳤던 것입니다. 

자, 우리는 본문에서 경건을 수단으로 삼아 돈을 포함한 세속적인 유익을 얻으려는 자들과, 이와는 정반대로 다른 것을 다 잃더라도 무엇보다 먼저 경건을 추구하는 자들을 볼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전자는 그 열매가 비참과 죄악이지만, 후자는 풍성함과 선한 아름다움입니다. 이 둘은 겉으로 볼 때 매우 비슷할 것입니다. 기도의 모양도 같을 것이고, 신앙의 열심도 같은 모양일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만이 아시는 그들의 동기는 정반대입니다. 하나는 자기의 영광 및 세상의 것들을 위함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영광 및 영원한 것들을 위함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는 과연 어떤 자리에 있습니까? 여러분 각자는 어떤 자리에 있습니까? 경건이 수단입니까? 아니면 경건이 목적입니까? 

그 차이는 내면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경건이 수단인 사람은 질투와 미움을 드러낼 것입니다. 경건 그 자체가 목적인 사람은 사랑과 화목함을 가져올 것입니다. 경건이 수단인 사람은 불만과 거짓을 토할 것입니다. 그러나 경건이 목적인 사람은 진리 가운데서 감사를 말할 것입니다. 참으로 경건으로 인한 아름다운 유익들을 맛보며 누리고 있습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아름다움에 빠져들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경건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풍성하심과 자비하심과 선하심을 맛보기 바랍니다. 그것이 경건입니다. 무엇보다 십자가를 통해 입증된 하나님의 사랑과 배려와 풍성하심과 지혜를 알게 될 때 우리의 경건은 한없이 깊어만 갈 것입니다. 그러할 때 우리는 십자가 앞에서 경건의 최고의 본이신 그리스도를 닮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경건을 누리는 가운데 우리의 마음은 감당할 수 없는 감사와 사랑과 거룩의 힘과 찬양과 평강을 체험하며 살게 될 것입니다. 

이에 경건한 자의 얼굴은 천사의 얼굴과 같을 것이며 경건한 자의 삶은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태양과 같은 밝은 미소와 따스함을 선사할 것입니다. 더 나아가 경건한 자의 삶은 죄와 구별되는 뚜렷한 거룩함의 향기가 나타나니 수많은 불신자들에게 복음의 향기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경건한 자를 통해 흐르는 향기를 맡으며 그리스도께로 나아와 구원을 얻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세상과 하나님을 겸하여 사랑할 수 없습니다. 
[1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2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3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4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5   너희는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냐  6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7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8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약 4:1-8)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마 6:24-25).

이 구절이 말하는 바는 내가 누구의 다스림을 가장 많이 받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재물은 서로 상반되는 대적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마귀는 서로 원수이지만, 하나님과 재물은 서로 원수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의도 가운데 재물이라는 것이 인간 사회 속에서 사용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재물 그 자체가 악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재물은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있어서 하나님과 경쟁이 될 정도로 강력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위험합니다. 

이에 우리가 재물의 노예가 아니라 재물을 다스리는 자가 되려면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을 거꾸로 하면, 재물을 얻기 위해 하나님을 섬긴다면 그는 이미 재물의 노예이며 재물을 하나님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에 대한 의식, 그리고 우리 주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것들에 대한 의식이 없이는 결코 이 땅에서 재물을 탐하는 마음을 버리고 사는 것이 불가능할 것입니다. 즉, 경건이 없이는 이 땅에서 우상과 탐욕을 버릴 가망은 전혀 없다는 말씀입니다. 

오늘도 믿음 안에서 경건의 교훈을 따르므로 하늘의 만족을 늘 누리기 바랍니다. 오직 그 상태에서만 세상에 속한 것들을 우상 삼지 않고, 특히 돈을 다스릴 줄 아는 가운데 주께서 주신 재물을 하나님의 나라와 의, 그리고 영원한 사랑을 위해 사용함으로 썩지 아니하는 영원한 보화를 얻게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pyright@스데반 황 목사,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

스데반 황  thebloodofx@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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