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완숙 집사, 포항충진교회

오랜 신앙생활가운데 참 귀한 목회자들도 많음을 알수 있었다. 그런데 그러한 목회자들은 대형교회 목사도 아니고 유명한 분들은 더욱 아니었고, 오히려 바른 설교 교리를 전하다가 힘든 목회를 하시고 있는 분들이 많았다. 물론 그 힘듬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이 드러나기에 감사가 풍성했다.

반면 대형교회가 아니라도 어느정도 자리 잡히고 잘 되고 있다는 교회를 보면
잘못된 신사도 신비주의도 용납하고 잡다한 프로그램으로 교인들을 끌어드리는 경우가 많은 것을 알수 있었다. 그 가운데에서 목사는 제왕적 위치에 있고 그 옆에는 간신장로가 반드시 있으며, 무지하여 목사 말이 곧 하나님 음성이라 생각하는 교인들이 꽤 많았다. 과도한 사례비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오히려 사례비를 적게 받는다고 공공연히 말한다. 그래도 맹신자들이 목사직은 힘든거라서 그렇다고 좋게 봐준다. 목사 사례비의 반도 못버는 교인들 중에서 목사님에게 이것저것 대접하고 선물하는 분들이 많았다. 그리고는 대접이나 선물받은 목사가 별로 감사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분들도 많이 보았다.

간신과 충신을 구별하지 못하는 왕들의 역사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또 참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를 구별하지 못했던 역대 이스라엘 유다왕들의 이야기를 성경을 통해서 알고 있다. 조선시대 왕들의 얘기는 역사적 교훈이며, 성경 속의 왕들의 이야기는 바로 영적인 교훈이다. 그럼에도 교회 안에는 간신들이 있고 이들은 교회 안에서 요직을 차지할뿐 아니라, 성도들의 동태를 바로바로 담임목사나 사모에게 고자질하여서 이간시키는데 한몫을 하고 있다.

그들은 당회나 제직회 공동의회에서 충분한 사례를 받고 있는  담임목사에게
좋은 차를 사줘야 한다거나 처우를 더 잘 해줘야 한다는 안건을 들고 나와서 반대하는 교인들을 마치 교회에 분란을 일으키는 자로 왜곡하고 목사와 신도 사이를 이간시키는 것이다. 또한 비성경적이고 잘못된 설교나 공부교재 프로그램에 대해선 관심도 없다. 그리고 그러한 것을 조용하게 지적하고 권면하는 장로나 교인들을 마치 교회에서 분란일으키는 자로 매도한다. 그들은 무조건 목사하는 일에 맹종해야 좋은 교인인양 떠벌이기도 하고, 바른 생각을 하는 교인들이 교회를 떠나도록 하는 역할에 애쓰는 것이다.

김완숙 집사, 포항충진교회

 

물론 이런 것들을 분별하지 못하는 목사에게도 결정적 책임이 있지만, 간신교인들로 인해 교회는 성경적 교회가 아닌 제왕적 목사중심 교회로 변질되는 것이다. 카톨릭의 변질은 교황의 성경을 넘어선 지나친 권위와 함께 성경교리를 왜곡하고, 대형성당을 지으면서 면죄부를 팔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개신교 특히 증대형교회 이상의 교회중 많은 교회에서는 카톨릭을 능가하는 변질이 자행되고 있음을 알수 있다. 교리무시ㆍ신사도 신비주의 수용ㆍ기복주의 번영신학ㆍ목사한테 잘해야 복받는다는 설교ㆍ자신의 개인적 감정을 설교에 늘 넣어서 자기변명 합리화 및 저주성 설교ㆍ유행가처럼 부르는 CCM위주의 찬양ㆍ과도한 목회자 사례비ㆍ과도한 건축ㆍ세습ㆍ거짓말ㆍ논문이나 설교표절 등은 교회 안에 있는 간신들에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들은 오직 담임목사와 사모와의 친밀함을 무기로 교회에서 열심을 넘어서서 설치는것이다. 갈수록 가나안 교인이 늘어남은 바로 목사의 책임임을 알아야 하며 간신들을 멀리해야 하고, 충언하는 교인들을 오히로 끌어 안아야 하지만 이미 옆길로 가고 있는 목사가 돌이키는 것을 거의 볼 수 없다.

한편 출중한 실력과 자질을 가졌음에도 목회를 하지못하는 목사도 있고, 작은 목회를 하시는 분들도 있다. 물론 그분들은 그럼에도 귀하게 쓰임받고 있다. 그런 분들을 보면서 위안받는 성도들도 없지 않으니 그 자체로도 감사한 일이다.

다수가 좋아하고 지지한다고 해서 올바른 길이 아님을 성경은 말한다. 특히 이미 세속화된 교회 안에서는 진리 편에 서는 자는 소수일 수 밖에 없다. 진리 편에 서는 길은 외롭고 좁지만 우리는 그 길을 선택해야 하며, 바른 길을 가며 그길로 인도하는 목회자를 존경하며 그 말씀에 따라야 한다. 하지만 간신과 한편이 되어있는 목회자를 위해선 돌이키도록 기도하면서 잘 분별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서울 서초동 사랑의교회를 반면교사 삼아서 중대형교회의 분립과 사례비의 상한선 하한선을 세워서 시골이나 어려운 목회하는 목회자에게 기본적인 생활비를 노회차원에서 지급해 주고, 억대이상 십수억까지 지불하는 사례비의 상한선 등을 제시함도 생각해 볼 문제이다. 자정능력이 없으면 제도가 꼭 필요한것이다. 칭의는 방종을 덮는  덮개가 아니라는 청교도 존 플라벨의 말이 떠오른다. 은혜를 방종으로 둔갑시키지 말고 자기를 쳐서 복종하라는 바울의 말씀을 생각하자. 그리고 주님을 위해 자신의 권리마저 포기했던 바울의 말씀의 의미를 기억하자.

(고린고전서 9장12, 24~27절)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리를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 

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26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마태복음 7장 13~20절)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15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16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19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20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