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마태복음은 “유대인을 위한 복음서”라고 한다. 그렇다면 무엇을 위한 것이 유대인을 위한 것일까? 그것은 유대인들이 구약성경의 의미를 바르게 인지하고, 참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1세기 유대인들은 구약성경을 율법화하여 율법주의(바리새인)로, 성전지상주의(사두개인), 현세지상주의(세리), 현세기회주의(헤롯당), 현세회복주의(열심당) 등이 산재했다. 당시 유대인의 모든 현상의 원인은 현세만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새관점학파(NPP)는 1세기 유대인들은 다양한 성향 속에서 하나님 나라, 아브라함의 언약 회복(God's single plan)을 기대했다고 주장한다. 마태복음 1:1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다윗의 후손인데, 아브라함의 후손이기도 하다. 마태복음에서 말하는 “아브라함”은 “이방인으로 아브라함”으로 볼 수 있다. 갈대아 우르에서 부르신 여호와께서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만드셨지, 아브람이 스스로 아브라함이 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그 돌같은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만드셨다(마 3장, 창 22장). 마태복음을 “유대인의 복음서”라고 하는 것은 유대인에게 강력한 징계와 함께 회복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에 착념해야 한다. 인간의 가르침은 언제나 과장되거나 축소되기 때문에, 문자로 진리를 전달하는 것이 하나님의 방편이었다. 1세기 유대인들은 기록된 말씀(70인경 혹은 탈굼)으로 하나님을 알 수 있었다. 당시 구약의 의미를 알면, 메시아가 ‘예수’인 것을 알고 믿을 수 있었다. 마태는 구약성경에 풍성한 이방인에 관한 계시를 유대인에게 알려주는 것을 한 목표로 하고 있다. 예수께서 요나의 표적을 보아서, 자신이 메시아인 것을 제시했다. 그것은 요나 선지자께서 물고기 뱃속에서 나온 뒤에 니느웨에서 사흘 동안 회개를 선포하자 이방인이 회개하여 구원을 받은 역사이다. 예수께서 죽으심과 부활, 승천하시고 성령을 보내셔서 오순절에 3,000명의 사람이 세례를 받았고, 한 순간에 이방으로 복음이 전파되었다. 예수가 보내신 성령으로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파된 것을 보았다. 요나의 표적을 본 유대인은 예수를 믿어야 했다. 마태복음은 70년 전에 유대인을 향해서 마지막 경고와 회복의 복음을 증거하고 있다. 그러나 유대인은 예레미야의 계시를 무시하고 처절하게 멸망된 것처럼, 로마에 1차 독립전쟁(반역, 66-73년), 2차 유대-로마전쟁(바르 코크바의 반란, 132-135)하여 철저하게 멸절되었다.

구약성경에서 고레스를 필두로 수 많은 이방인들은(참고 마 1장)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위해서 목숨을 건 헌신과 충성을 했다. 유대인들은 무엇을 했는가? 율법을 지키지 않았고 선지자를 죽였다. 1세기에는 율법을 잘 지킨다고 하면서 율법을 지키지 않는 거짓까지 보였다(막 7:9-13).

마태복음의 놀라움은 다윗 왕조가 이방인 헷 사람 우레아에 의해서 지켜졌고 유지된 것이고(1장), 이방인이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러 온다는 것이다(2장). 예수 오심을 이방인이 결정적으로 기여했고, 이방인이 알아보고 축하하러 왔다. 유대인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마태 사도가 강하게 질문한 것이다. 이두메(에돔) 사람 헤롯과 결탁해서 왕(메시아)의 탄생지를 고지한 고발자가 아닌가?

2. 예수님을 경배하러 동방에서 온 박사들(magi)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동방박사는 바사(페르시아)에서 온 것으로 추측한다. 천문학적으로 “베들레헴의 별” 연구가 있다. 첫째, 케플러는 BC 7년 5월, 10월 12월에 목성과 토성이 만나는 현상(행성의 합 현상)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둘째, 혜성이라는 견해이다. BC 12년에 나타났던 핼리혜성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당시에는 화성까지 접근했다고 한다. 셋째, 요세푸스는 잔인한 헤롯왕은 월식이 일어난 후 곧 죽었다고 기록했다. 이 때는 BC 4년 3월 13일이다.(참고, 레이모든 브라운, <메시아의 탄생>, CLC, 2014)

3. 박사들은 점성술사로 국가의 향방을 결정하는 유력한 사람들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소격서(昭格署)라는 곳에서 유사한 일을 했다. 그들은 직접 왕궁에 들어갈 정도로 유력한 사람들이었다. 동방박사의 옴은 메시아 알현(謁見)이 목적이지만, 사적인 방문이 아닌 정치적이고 외교적인 행위까지 포함될 것이다. 동방에서 최고의 왕을 알현하러 예루살렘으로 왔는데, 예루살렘에서는 베들레헴에서 탄생할 것을 알았다. 그러나 이방 사람은 메시아를 알현하고 경배하는데, 이두매 사람 헤롯의 통치 아래 있는 유대인들은 함께 베들레헴 유아 살해를 동조하거나 방조했다(마 2:16-18).

4. 예수 공생애 이전 행적에 관해서는, 누가복음 2장에서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 정결 의식을 거행하는 장면이 있다(눅 2:22-40). 그리고 12세의 예수님이 나사렛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장면이 등장한다(눅 2:41-52). 마태복음 2장은 그 전에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애더스하임은 누가복음은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서 빠진 부분을 보완하는 기능이 있다고 제시했다.

5. 동방박사들이 예루살렘을 방문했을 때, 방문 목적을 밝혔다. 그래서 예루살렘이 소동했다(마 2:3). 그러나 베들레헴에서 아기 예수께 경배하고 돌아갈 때에는 주의 사자가 일행에게 헤롯을 보지 말고 돌아가도록 했다(마 2:12). 우리는 여기에서 많은 질문을 할 수 있다. 대표적인 난해 부분이기 때문이다. 예수의 탄생과 함께 베들레헴 2세 이하의 죽음의 관계이다(마 2:15-18). 왜 주의 사자는 처음부터 베들레헴으로 인도하지 않았고, 왜 베들레헴의 아이들이 죽어야 했는가? 마태는 단순하게 구약의 성취로 제시했다(마 2:15, 18). 구약의 성취가 그렇게 중요해서 아이들을 죽여야 했을까? 필자는 역(逆) 출애굽 현상으로 이해하려고 한다. 애굽의 장자를 죽이고 출애굽을 했듯이, 베들레헴의 자녀들을 죽이고 “출-이스라엘”을 하신 것이다.

요셉은 헤롯을 피해서 애굽으로 내려가야 했고, 헤롯은 왕좌를 위협하는 다윗의 후손을 서기관의 도움을 받아 죽여야 했다. 그래서 베들레헴의 아이들이 죽었다. 예수께서 유대 땅을 “출-유대”해서 애굽으로 들어가서 이방인을 구원하는 도식이다. 마태 사도께서 애굽에서 나와서(마 2:15) 나사렛에서 거주하는(마 2:23) 이중 의미를 두었다고 생각한다. 다윗의 후손을 거부한 주체는 헤롯 왕과 예루살렘과 베들레헴이다. 레위인을 구별하는 원리는 장자 대속의 원리이다. 그래서 예수는 장자 대속의 원리로 제사장이다. 그리스도의 삼중직 중 하나는 제사장이다. 예수님은 이두매 사람 헤롯에 의해서 애굽으로 쫓겼고, 로마 사람 본디오 빌라도에 의해서 죽으셨다. 그 때 유대인들은 예수를 죽이는데 주도했고, 동의했고 동참했다. 예수는 유대인과 이방인 협잡해서 죽으셨고,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함으로 유대인을 구원하는 방편을 취하셨다(롬 11장).

6. 동방박사는 아기 예수께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렸다(마 2:11). 그 때 요셉과 마리아는 베들레헴에 정착하려고 했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누가복음의 베들레헴 구유의 상황과 다른 상황으로 보아야 한다. 그런데 나사렛에서 거주하는 상황이 되었다(마 2:22). 마태 사도는 이것이 구약에서 메시아를 ‘나사렛 사람’이라고 예언했다고 제시했다(마 2:23). 예수께서 나사렛 사람이 되신 것은 신비 중 하나이다. 다윗의 후손이고 베들레헴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베들레헴 사람이라고 해도 충분한데 나사렛 사람이라고 자기를 밝히셨다. 멸시받는 이방 갈릴리 땅이 메시아로 말미암아 빛의 땅이 되기 때문이다(사 9:1-2). 갈릴리에서도 나사렛은 가장 외진 곳이다. 그래서 나사렛에서는 선한 것이 나오지 않았다. 그 어둠에서 빛이 나왔다.

7. 전능하신 하나님, 주 하나님께서 베들레헴에 육신으로 오심을 믿습니다. 주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으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경륜의 신비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믿음으로 오심을 고백하며 찬양합니다. 주 예수 믿음의 도를 굳건하게 하여 생명의 도를 밝히 전하게 하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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