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장영생, 계간 국제문학 신인작가상 수상
산다는 것 2 장영생 익숙함도 때론 또렷하게 보아야 될 일 줄어드는데 프로는 고개를 들지 않는다 새로운 꿈으로 의욕으로 |
숲 속 친구들
작은 산새들 짹짹짹
산 입구를 지키면
산비둘기 구구구구
본막으로 들어가는 환영의 인사
깍깍대며 질러대는 까마귀
본 공연을 알리는 커튼을 올리고
야트막한 계곡에선 졸졸졸
높은 계곡은 절정을 못이긴 합창
산바람이 흔드는 숲마당은
나뭇가지마저
느릿느릿 흔들흔들
춤판으로 유인하는 피톤치트
한차례 불다가
숨을 고르면
몫 좋은 고갯길 지키던 바람
귓속으로 파고 들지
떼지어 기다리는
숲 속 친구들이 있어
혼자하는 산행도 외롭지 않습니다
현충일에
장영생 하루만으로도 좋으리 이념이 무엇이고 한 민족 한 피라는 형제가 굶주림과 추위로 떠는 막막한 두려움이 엄습하여도 기억을 꺼낸다면 지금 이 자리에 묻힌 것은 |
내 생애 가장 좋은 날
이 세상으로 두 분의 사랑이 시작이 내 생애 가장 좋은 날 은발을 물들이며 |
오월
장영생
오월은
도둑처럼 오지 않는다
간절한 기도도
무슨 바램도 없었지만
사는 일에 매여 있다는
그럴듯한 핑게로
사월이 숨으니
갑자기 눈 앞에 보일 뿐
한번의 늦춤도
어김도 없이 흐르는 시간은
아차하는 사이지만
누군가는 잊고 지난 사이로
오월이 찾아 든 것을
땅속까지 적신 봄비는
봄볕 울타리를 무너뜨리고
온통 초록으로 채운 것은
겨울 건너고도 한참 지난 일
오월은 도둑처럼 오지 않는다
기다리지 않아도
기대가 없어도
우리들이 소홀했다고
오월은 결코 도둑처럼 오지 않는다
봄 산행 장영생
제 몸 녹는 물소리로 묵은 해가 달빛 사모하던 목련 싫지 않은 찬바람이 |
안부
장영생
안부를 묻는 것은 관심이나
들리는 안부는 소식이다
안부를 묻는 사이는 아닐지라도
살아있는 나에게
어떻게든
들리는 안부는 기쁜 일보다
슬픈 일이 많은 것은
안부는 물을 때가 있다는 것
물어주는 안부가 소중한 이유는
목소리를 듣기때문이다
때로는 안부를 묻고 산다는게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지
김시천시인의 안부를 읽는 중에
메시지가 울렸다
알던 사람이 소천했다고
지는 해는 말없이 가나
그 사람은 안부를 남기고 간다
아! 유관순
장영생 부릅뜨지 않아서 어찌 그리 당당한가 힘 없다고 빼앗아 언제나 되면 |
아! 노동당사
장영생
한 때는 북쪽을
다음은 남쪽 하늘아래로
푸른 빛을 이고 있는
강원도 철원 너른 들
이념으로 싸운 흔적
몰골만 남긴 무너진 노래
겨우 겨우
아픔을 받치며 서있는 쇠파이프
소총으로
고사포로
대포를 만난 자리까지
고스란히 모아 둔 외벽
앙상한 상처가
시리도록 아픈 가슴을
선명하게 들어낸다
강대국에 휘말린 소용돌이
동족간의 상처가 말하는 곳
작은 방들에서 고문으로 울던 고통
견디기 힘든 시간들은
어디선가 신음으로 튀어나올 흉가
압제를 벗으려는 울분의 함성은
만세소리로 덮었어도
순한 백성들의 염원을 빨갛게 물들이고
당사계단을 짓밟은 탱크는 힘의 잔해
다르다는 논리에 말렸고
소수의 두려움은 뒤로 숨었다
자유를 바랬고
평화만 사랑했던 백의의 민족
부모 형제 친척들을
다시 볼 수 없는
이별로 갈라선 괴로움은
언제까지 이 땅을 다스릴건가
아! 노동당사
추억의 건물인가
기념하는 문화재인가
정(情) 장영생 질기네... 잊은듯해도 끄집어 내면 묻힌 것 파내 지피기 보다 |
겨울 가뭄
【장영생 詩】
그 해 겨울은
유난히 눈물이 말랐다
짧아지려는 봄보다
약해지는 겨울이 아쉽다며
눈물을 아꼈겠지
아닌 척 하지만
품은 것이 많은 겨울은
음큼하다는 소문에도
핑계는 점점 잃어가고 있다
소백산
계방산
선자령까지
덮었던 하얀 눈밭
마른 눈물은
맨땅에 드러눕고
느슨한 틈 메우는 미세먼지
빈곤 벗겠다는 몸부림
편하려는 욕심은
아예 겨울까지 밀어 내는가
오그라든 겨울
두꺼운 외투 벗어 들고
한걸음씩 멀어져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