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쾌하게 핵심을 짚어주는 마태복음 해설서

신약학자 프란스(R. T. France)에 따르면, 마태복음은 ‘교사의 복음서’로 불린다. 이는 그 자료가 교육에 아주 적합하게 제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마 이 때문에 마태복음은 초대교회에서 사복음서 가운데 가장 널리 사용되었을 것이다. 마태복음은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와 그분의 말씀 가운데 특히 교회 생활에 관련된 이야기와 말씀을 수집하여 교회에서 가르치는 교사가 쓸 수 있게 정리했다.

마태와 마가가 같은 이야기를 전한다고 할 때 마태복음이 마가복음보다 훨씬 더 많은 자료를 포함하고 있지만 전형적으로 마태복음이 더 간결하다. 프란스에 의하면, 마태는 생생한 내러티브의 세부사항을 다 생략하고 전달에서의 모든 군더더기를 제거함으로써 핵심에만 집중한다.

마태복음은 공관복음서의 첫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초기의 기독교 전승은 만장일치로 이 복음서를 가버나움의 세리였던 사도 마태의 저작으로 돌린다.

마태복음의 구조는 다양한 방식으로 분석되어 왔다. 어떤 학자는 마태복음의 이야기가 마가복음과 똑같은 구성을 가지고 갈릴리의 초기 사역으로부터 예루살렘에서의 최종적인 대결을 향해 움직여 가는 지리적인 이동을 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이 구성을 책의 구조상의 원칙으로 본다.

송다니엘 목사가 심혈을 기울여 번역한 게르하르트 마이어의 <마태복음>(진리의 깃발)은 누구나 마태복음을 쉽게 이해하고 삶에 적용할 수 있는 주석이요 해설서다.

역자가 ‘역자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저자 마이어 박사는 독일 국가교회(Landeskirche) 내부에서 성경비평가들을 맹렬히 비판하면서 소수로 남아 있는 경건한 국가교회 신도들을 인도해나갔다.

저자는 성경비평가들의 잘못된 성경해석을 비판해야 하므로, 본서에 자주 이들의 의견을 논박한다. “간혹 독지가 생각하기에 지자가 너무 당연한 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것은 주로 독일 신학계를 점령한 성경비평학자들의 이론을 반박하기 때문에 그렇다”(10쪽).

서평자는 본서가 매우 탁월한 해설서라는 점에 큰 감명을 받았다. 또한 지난한 번역 과정을 통해 가독성이 높은 역서를 출간한 노고에도 박수를 보낸다.

게르하르트 마이어의 <마태복음> 주석은 다음과 같은 특징과 장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 마이어 주석의 특징은 성경영감론에 입각해서 학문적으로 주석했다는 점이다.

둘째, 마이어는 각 절마다 자세히 주석했다. 또한 한 단락을 주석하고 그 뒤에는 가르침을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지침을 만들었다. 성도들의 경건을 항상 염두에 두고 실제적인 영적인 문제를 다루었다. 즉, 적용 면에서 탁월하다.

셋째, 기독교 2000년간의 전통이 숨 쉬고 있는 학문적 주석이다. 최근까지의 학문 결과를 반영했다. 이 주석서를 읽으면 종교개혁 이후 근 600년 역사의 독일 성도의 경건이 그대로 내려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게 된다.

넷째, 말씀에 따라 실제적으로 어떻게 영적 생활을 해야 할지를 분명하게 지도한다. 시종 친근한 어조로 설명하므로 주석서 읽기가 부담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저자가 친형제처럼 느껴진다”고 역자 송다니엘 목사는 고백하고 있다.

서평자는 이 주석의 내용 중 눈에 띄는 대목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마이어는 마리아가 잉태한 사실에 관해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마리아는 얼마나 큰 부담을 느꼈을까? 그녀는 공개할 수도 없는 하나님의 비밀 속에서 살아야 했다. 심술궂은 사람에게 들키기라도 한다면? 그리고 요셉이 얼마나 실망할까? 마태는 예수님 이야기를 커다란 긴장과 함께 설명하기 시작한다”.

이어서 예수님이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자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라고 말씀하신 부분을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가 이와 같이 하는 것이 합당하다”라는 말씀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명을 받은 자로서 특별한 의무가 있다. 하나님이 요단강의 세례를 통해 이스라엘을 회개로 이끄시려고 하실 때, 우리는 이러한 기회를 놓치지 말고 순종해야 한다. 예수님은 벌써 여기에서 자신이 많은 사람의 죄를 지고 가셔야 한다는 이사야 53장을 생각하셔서 본인이 죄없는 자로서 죄인인 이스라엘 사람과 같이 되셨다는 것을 나타내려고 하셨을까?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은, 아마도 이러한 의미였을 것이다. 여기에서 “의”라는 말은 의롭다는 말과 관계가 없다. 의라는 말은 지금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말한다(참조: 마 5:17), 그분의 구원의 뜻은 바로 이사야 53장이 성취되는 것이다. 예수님이 하시고자 하는 것은 아버지의 이 뜻이 이루어지도록 모든 노력을 경주하는 것이다. 세례자의 말은 예수님을 하나님이 정하신 길로부터, 그리고 겸손한 순종으로부터 멀리하려는 시험과 같다. 이것은 예수님이 사탄의 시험을 받으시기 전에 받은 시험이다.

마이어는 예수님이 광야에서 받으신 시험에 관해 “이 마귀의 시험은 실제 일어난 일이다. 이 시험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시험하셨다는 데에 그 중요성이 있다”라고 강조한다. 하나님은 마귀가 예수님께 접근하는 것을 허용하셨다. 우리는 여기에서 히브리서 5:8의 예수님이 순종을 배우셨다는 말씀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배운다는 것이다(p.85).

마이어의 <마태복음> 주석의 진수 중 하나는 산상수훈 해설 부분일 것이다(마 5:1-7:29). “산상수훈에 접근하는 자는 거대한 첩첩산중에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을 가진다. 이러한 산맥에서 계속해서 새로운 산 정상과 깊은 골짜기에 발견하게 되어 도전이 끊이지 않는다. 산상수훈에 대한 완벽한 해설집은 아직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123쪽). 그는 개요에 관해서도 아직 논란이 된다고 말한다. “톨스토이가 말한 대로, 이 설교가 정치에도 적용되어야 하는가? 아니면 루터가 말한 대로 이것은 교회를 위한 특별한 지침인가? 예수님은 인간이 여기에 쓰인 대로 행동하시기를 원하시는가? 아니면 인간이 이것을 통해 율법을 성취할 수 없음을 깨닫기를 원하시는가?” 이러한 개요적인 문제 뒤에는 개관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작은 문제들이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산상수훈은 국가의 정치를 포함해서 모든 사람의 삶을 규정해야 한다는 톨스토이의 이해는 이미 처음부터 잘못되었다”고 주장한다. 산상수훈은 의인의 나라인 교회를 위한 가르침이라는 루터의 말이 옳다는 것이다.

마이어는 흔히 ‘팔복’으로 알려진 것을 아홉 개의 복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첫 “복 있다 하심”을 통한 초대는 자신의 죄로 말미암아 마음이 상한 겸손한 죄인을 초대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의 죄와 타인의 죄로 말미암아 겸손해지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영적인 가난을 깨닫는 자를 의미하고 계시다. 이들이 빈손으로 하나님께 나오는 자들이다.” 여기에 대해 살아있는 예는 누가복음 18:9 이하의 예수님 비유에서 나오는 세리의 모습이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마 5:10)라는 말씀을 주석하면서, 마이어는 “예수님을 생명력 있게 전하는 사람 중에서 세상의 미움을 받지 않은 사람이 있겠는가?”라고 묻는다.

그리고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마이어는 아홉 개의 “복 있다 하심”으로 분류하면서, 마태복음 5:11-12은 특별한 복 있다 하심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이로써 우리는 복 있다 하심이 여덟 개가 아니라 아홉 개라는 결론을 내린다.” 그에 의하면 “아홉째 복 있다 하심은 동시에 제자들을 격려하는 예언이 된다.” 핍박을 당하는 것은 진짜 제자의 특성이다. 그러므로 핍박을 당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기뻐해야 할 이유가 있다!((pp. 151-152) 세상은 제자들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괴롭힌다. 제자들은 사회적으로 혹은 정치적으로 손해를 입으며, 도덕적인, 종교적인 공격을 당한다. 마이어는 독일 루터교회 목회자이므로 ‘제3제국의 나치들이 교회를 박해할 때’ 사용한 방법을 언급한다. 그 가운데 하나는 교회나 교회 구성원에 대한 나쁜 소문을 퍼뜨리는 것이다.

산상수훈의 설명을 마무리하면서 마이어는 말한다; “산상 수훈의 제일 끝에 중요한 것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예수님에 대한 우리의 관계가 우리의 운명을 설정한다는 중대한 의미가 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자기 제자들을 미리 충분하게 준비시키신 것이다. 제자가 된다는 것이 어떠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을 감추지 않으셨다. 이 예언 하나만 가지고도 앞으로 이분의 이름 때문에 불에 들어갈 사람은 위로를 받는다. 그뿐 아니라 바로 우리가 받는 박해가 우리가 살아 있는 신자라는 표시가 되므로 위로를 받는다.”

저자는 “한글 번역본 발행에 대한 축하문”에서 다음과 같이 본서 출간의 뜻을 밝힌다. “본서는 저의 수십 년 간의 마태복음 연구 결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본서는 비록 학문적인 연구에 기반을 두지만 대학에서뿐만 아니라 교회 성경공부나 교회를 세우는 선교에도 도움을 주고자 합니다. 오늘날 모든 교회가 필요한 것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설교와 모든 종류의 사람을 마음에 두는 선교적 사랑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한국인 지인들은 늘 성경과 고난이 한국 기독교의 양대 지주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미래에도 이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본서가 성도님들을 격려하고, 세우고, 성경에 확고한 기반을 두게 하는 데 이바지하기를 진심으로 소원합니다.” 저자는 ‘하이델베르크에 사는 믿음의 반려자인 송다니엘 목사님’이 본서를 한국어로 번역한 것은 큰 업적이라고 생각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리차드 오스머(Richard R. Osmer) 교수는 “오늘날 교회 안에는 기독교 문맹들이 자라나고 있다”고 탄식을 했다고 한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성경말씀과 바른 교리에 대한 무지가 아니겠는가? 본 주석은 복음서 이해를 도울 뿐만 아니라 기독교인의 정체성을 일깨워준다. 뿐만 아니라 성경 진리가 삶에 적용되도록 구체적인 안내도 하고 있다. 모든 기독교인과 신학도와 설교자에게 강력히 그리고 널리 권하고 싶다.

송광택 목사 - (현)한국교회독서문화연구회(www.bookleader.org) 대표, (현)바울의 교회 글향기 도서관 담당목사, (현)크리스찬북뉴스(www.cbooknews.com) 편집 고문, (현)국민일보 마이트웰브(www.mytwelve.co.kr) 고정필자(시로 만나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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