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말씀을 따라간 사람들

 

“세상의 역사는 누가 이끌어 가는 것일까?” 하고 묻는다면 결국 시간과 말씀을 따라간 사람이 세상의 역사를 써나갔다는 말씀이라고 봅니다. 지난번 말씀하신 핵심내용인데요 그렇다면 시간을 정복한 사람들의 예를 말해 줄 수 있나요?

 

민족 중에 하나의 예를 들라면 그것은 유대인을 들 수 있어요. 고대국가 중에서 유일하게 지금까지 살아남아 고대의 내용을 그대로 지켜나가면서 현대를 사는 민족이 유대인이지요. 제가 이스라엘에 갔을 때 경험인데요. 이스라엘은 크게 두 개의 도시가 공존하더라고요. 수도도 두 개가 있어요. 고대도시는 예루살렘이고 신도시는 텔아비브예요. 두 도시는 분위가 완전히 다르죠. 신도시 텔아비브는 첨단을 걷는 현대 도시라면 구도시인 예루살렘은 고대의 성이 존재하고 그 안에서 검정 모자를 쓰고 수염을 기르고 옛날 방식대로 사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 삶을 지향하는 유대인 전통마을이 지금도 그대로 존재하고 있어요. 약 30%가 고대의 전통생활을 고집하고 살아가고 있는 거죠. 과거와 현대가 교차하는 곳에 이스라엘인 것이 저에게는 아주 색달랐어요. 지금도 그런 곳이 존재한다는 것이 놀랍고 세계에 이런 나라가 없고 이스라엘이 유일해요.

 

이런 생활이 지금도 가능하다는 것이 신기하네요. 어떻게 해서 그런 전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시간적인 민족이라는 하나의 좋은 증거지요. 유대인은 과거를 보존하고 그것을 현대로 이어가는 민족이어요. 시간의 단절이 아닌 연속으로 보는 것이죠. 우리는 과거는 지나간 것으로 아예 관심이 없고 그것을 유지하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으로 오해를 하지만 유대인은 그렇지 않아요. 오히려 과거와 현대를 연결하는 힘은 시간적 세계관에서만 가능한 이야기이죠. 유대인은 지금도 안식일을 지키는데 완전히 고대 방식으로 지키죠. 아날로그 방식으로 돌아가서 안식일을 지키는 유대인의 모습은 현대인들이 볼 때 이해가 안 되죠. 가장 현대적인 컴퓨터와 인터넷을 유대인이 만들었지만 안식일에는 것을 모두 정지하고 사용을 멈추고 원래의 모습을 유지하는 민족은 유대인 밖에 없죠.

 

목사남 말씀을 들으니까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들은 시간에 대한 어떤 이해를 가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유대인은 성경에서 가르쳐준 시간을 그대로 믿고 그것을 지금까지 실천한 사람들이어요. 모든 세상 사람은 태양을 중심으로 하루가 시작 되잖아요. 즉, 태양이 뜨면 하루가 시작되는데 유대인들은 달라요. 그들은 거꾸로 태양이 지면 하루가 시작되지요. 그래서 시간 개념이 우리와 전혀 달라요. 유대인은 창세기에 나오는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의 말씀대로 하루를 살아가는 거지요. 유대인은 이것에 근거하여 안식일을 지키는 거예요. 저녁이 안식일의 시작인거죠. 어둠의 시간이 유대인에게는 절망이 아닌 시작이죠. 그리고 언제나 태양이 떠오르는 것을 바라보면서 살기에 긍정적이며 낙천적이어요. 미래에 소망이 있고 어떤 고난이 와도 그들은 아침을 바라보고 새벽을 기다려요. 유대인은 수많은 고난 속에서도 믿음을 가지고 끝까지 인내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런 시간의 이해가 우리와 달랐기 때문이죠. 시간을 바르게 이해했기에 가능한 것이에요. 시간은 태양에 의해 움직인다는 일반적인 생각을 넘어 시간은 하나님에 의해서 움직인다는 사고는 유대인의 삶을 바꾸어 놓았어요. 태양이 뜨는 아침만이 출발이 아니라 태양이 지는 저녁도 그들에게는 출발의 시간인데, 시간을 초월한 놀라운 생각은 바로 성경에서 나온 것이지요.

 

유대인이 시간 중심의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꼭 고난이 있었기에 생각한 것은 아니었으리라 보는데요. 그 외 다른 요인은 없나요?

 

좋은 질문이에요. 유대인이 시간을 중심으로 해서 모든 것이 움직이는 생각의 뿌리는 성경에 있어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하여 불러냈을 때 알려주신 삶의 원리가 시간이지요. 시간을 잊어버리지 말고 그 중심으로 살라고 알려주신 것인 절기예요. 사실 유대인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결국 하나님이 주신 승리의 비결인 시간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을 소홀이 하고 절기를 지키지 않아서 멸망했다고 볼 수 있어요. 나중에 유대인은 안식일. 안식년. 희년. 유월절. 부림절 등의 절기들을 지켰고, 지금도 유대인은 이것을 소중히 여기고 거기서 자기의 정체성을 찾고 있어요. 그 자리가 성경을 교육하는 자리요 그 속에서 유대인의 자손을 교육하고, 유대인은 거기에서 시간을 정복하고 세상의 역사를 이끌어가는 능력을 키웠어요. 성경에 나와 있는 말씀대로 믿고 그것을 교육하며 실천한 유대인들은 지금도 세계의 중심에 서 있는 거죠.

 

점점 흥미로워지는데요. 그렇다면 많은 세계사적 인물 가운데 시간관을 잘 정리한 사람이 있으면 예를 들어주시면 합니다.

 

 

중세의 성자라고 불리는 어거스틴을 들 수 있어요. 중세의 성자요 신학자인 어거스틴은 시간을 명쾌하게 해석한 사람이지요. 역사와 시간의 개념을 탁월하게 정리한 사람이고요. 이런 그의 시간관은 인간의 경험이 아닌 성경에서 나온 것이었어요. 성경의 원리를 그대로 적용한 것인데, 그의 시간과 역사관은 오늘날 신앙과 학문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지요. 그가 쓴 참회록에서 시간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원래 과거, 현재, 미래라는 세 가지 시간이 있다고 하는 것은 타당하지 못하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과거의 현재, 현재의 현재, 미래의 현재라고 하는 세 가지 시간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즉, 우리의 시간은 하나님이 주신 현재의 시간만이 존재하며 나의 시간이 내가 호흡하는 이 시간만이 나의 시간이 될 수 있고, 하나님이 주신 시간 안에서만이 나의 시간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시간과의 싸움에서 시간을 정복할 수 있는 통찰력을 주고 있지요. 또 그의 책 “하나님의 도성”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의 나라를 언급하면서 역사와 시간을 잘 정리한 책으로 유명해요.

 

다른 예를 들어주시면 더 이해가 쉽겠는데요?

 

 

 

아인슈타인을 말할 수 있어요. 유대인으로서 천재라고 불리던 아인슈타인은 시간의 중요성을 미리 간파하고 그것을 과학에 적용했어요. 당시에 시간이 절대적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뒤집어 시간은 상대적이라는 이론을 제시하면서 세계를 놀랍게 했지요. 시간의 상대성 이론으로 노벨상을 받았고 그것이 세계의 과학의 역사를 변화시켰어요.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이런 통찰력은 유대인만이 가질 수 있는 능력이며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가능한 일이었어요.

시간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고 사람이 느끼기에 따라 똑같은 시간도 달라진다는 것인데, 같은 10분이라도 사람에 따라 시간이 길이가 다르게 느껴진다는 것이죠. 정지된 시간인 것 같지만 이것은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시간으로 이해를 새롭게 했어요. 즉, 보이지 않는 시간 개념을 적용한 것이죠. 이것은 영적인 의미를 깨달을 때 보다 잘 이해가 돼요. 실제로 영적인 시간의 개념의 측면에서 볼 때 은혜를 받으면 시간이 짧아요. 그러나 은혜를 받지 못하면 정해진 시간보다 더 지루하게 느낄 수 있지요. 성경의 “천년이 하루 같은 시간”의 이해를 과학에 적용한 것으로 창조라기보다는 하나님의 원리를 찾아낸 것이죠.

 

성경의 인물들도 시간중심에서 말씀을 붙잡고 산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맞아요.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성경의 인물들은 모두 이런 사람들이죠. 믿음의 사람들은 모두 시간 속에서 살았던 사람이어요. 반면에 세상의 사람들은 장소에 매였던 사람들이고요. 믿음의 사람들은 영원한 하나님의 시간 속에서 현실을 보고 그 현실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갔어요. 아브라함에게 준 하나님의 약속의 비전도 알고 보면 본토 친척의 편안한 장소를 떠나 영원한 시간을 바라보면서 나아갔던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모세도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하여 편안한 애굽의 생활을 떠나 광야를 가로질러 앞으로 나갔어요. 다윗은 이 땅의 최고의 왕이었지만 그 왕에 머무르지 않고 영원한 왕 중의 왕을 섬기면서 언제나 그 왕의 약속을 믿고 살았어요. 이스라엘의 어려운 시대 속에서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 같은 대선지자 들은 한결같이 이 땅의 모습을 넘어 다시 회복될 영원한 나라를 바라보면서 메시지를 전했어요. 현재를 넘어 먼 미래의 역사를 바라보면서 백성들에게 비전을 제시하면서 오늘을 살았던 시간의 사람들이었죠.

 

오늘 목사님 말씀 감사했습니다. 우리를 새롭게 돌아보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아울러 작은 우리나라가 어떻게 미래를 그려야 하는지 분명한 방향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다음 시간에 그 부분에 대해서 자세하게 이야기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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