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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규칼럼】 SNS와 인간관계

“사회 관계망 서비스”(Social Networking Service: 이하 SNS)상에서는 말투 하나에 따라 아무리 학식이 많은 지성인이라 해도 순식간에 어린아이처럼 변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왜 SNS상에서는 우리가 일반적인 성격과는 다른 행동이 나올까? 그 이유는 SNS와 인간관계에 대한 차이에 대한 착시 현상 때문임을 알게 되었다. 이런 착시 현상은 남녀노소, 지성인 모두 SNS하는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지금까지 대부분 사람은 인간관계는 오감(시각, 청각, 미각, 후각, 촉각)을 통해 발전해 왔다.

그러나 SNS는 오감 중 오직 시각(글)과 시청각(동영상)만으로 기계를 통한 소통 기관일 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SNS와 인간관계를 같은 거로 착각 현상에 빠지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무리 지성인이라 하더라도 순식간에 어린아이 같은 감정으로 변하게 되는 이유가 바로 시각(글)과 시청각(동영상)에 의한 판단이 오감으로 성장한 우리의 뇌를 순간 SNS와 오감을 통한 인간관계가 같은 것으로 인식하려는 현상 때문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SNS는 글이나 사진을 통한 시각과 동영상 같은 시청각을 통한 두 개의 감각 기관만으로 소통하는 관계이다. SNS 같은 경우 컴퓨터나 휴대폰 같은 기계를 통한 소통의 관계일 뿐이다. SNS의 글은 다양한 종류의 글이 있지만, SNS를 압축해 보면 심리학적으로 독자의 반응은 기분 좋음과 기분 나쁨, 이 두 가지 형태로 반응하는 경향이 많다.

그 이유는 SNS는 오감 중 시각과 청각만 존재하는 공간에서 독자들이 반응하기 때문이다. 어떤 심리학자는 진정한 인간관계는 오감을 통한 관계가 형성될 때 진정한 인간관계가 형성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 지금까지 인류사회는 인간관계는 오감을 통해 이루어져 왔다. 직장이나 교회 같은 단체에서는 대화하며 밥을 먹는 것 자체가 시각과 청각이 작동하며, 음식 냄새를 통해 미각과 후각이 작동하며, 서로 만나 악수하고 포옹하고, 운동이나 취미를 통해 촉각도 느끼게 된다. 이렇게 인간은 대부분 오감을 통해 인간관계를 발전시켜왔다.

그러나 SNS는 사람들이 올린 글이란 문자를 보는 시각을 통해 그 사람을 판단하게 된다. 그 시각도 문자를 읽는 정도의 시각은 단지 글이란 문자를 통해 인식하는 정도의 시각만으로 판단하게 된다. 인간관계에서 시각도 최소한 우리가 마주 앉아 표정을 보며, 목소리를 듣고, 눈동자와 몸동작을 통해 교감하는 정도가 이루어져야 원활한 인간관계로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트위터 등 SNS는 상당 부분은 글을 통한 문자를 읽는 시각만으로 제한된 소통을 하게 된다. 동영상을 볼 때는 시각과 청각을 통해 독자가 반응하게 된다. 어쨌든 SNS는 우리의 오감 중 오직 시각과 청각이란 소통으로 “좋아요”, “싫어요”라는 반응을 하게 된다. 여기에 위험성이 있다. 좋고 나쁨에 대한 극단적 결정에 익숙해질 때 앞으로 닥칠 사회적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인간관계는 대부분 오감을 통해, 때로는 상대가 싫어도, 때로는 회사, 학교, 교회나 절과 같은 종교단체 등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서 인간관계가 발전해왔다. 우리는 우리의 공동체 생활에서 힘들어도 오감을 통해 참고, 인내하며, 때로는 화합을 통해 내가 속한 공동체에서 봉사, 섬김, 사랑, 도움, 인내, 절제, 협력을 통해 함께 상생하는 사회를 건설하는 방향으로 나갈 수 있다. 

하지만 SNS는 시각(글)과 시청각(동영상)이란 기계를 통한 관계망을 거쳐 보고 들리는 관계망에 “좋아요”와 “싫어요”라는 독자의 기분 위주의 극단적인 선택만 익숙해지다 보니, 잘못하면 심리 장애까지 가져올 수 있게 된다. 특히 태어나면서부터 SNS에 익숙해진 세대는 미래에 폭력이 난무하는 성격으로 될 가능성이 이전 세대보다 클 수가 있다. 그 이유는 SNS 세대는 “좋아요”와 “싫어요”에 익숙해진 세대이며, 좋고 싫음이 분명하다 보니, “좋음”과 “싫음”에 대해 흑백 결정을 할 가능성이 점점 커지기 때문이다.

학교나 직장 등 내가 속한 공동체에서 함께 상생하기 위해서는 때로는 싫어도 화합할 줄 알아야 하고, 인내해야 하며, 협력하며, 돕고, 섬기며, 봉사하는 자세가 필요한데, “좋음”과 “싫음”에 익숙하다 보니 인내하며, 사랑과 봉사, 섬김을 통한 협력보다는 자기 자신의 기분에 따라 좋고 싫음에 대한 두 가지 반응에 익숙한 결정을 하기가 쉬워진다. 그럴 경우, 내 기분에 맞지 않으면 극단적 결정을 하기 쉽고, 싫음에 대해서는 인내와 화합보다는 싫음에 대한 극단적 결단이 난무할 수 있기 때문에 폭력성이 이전 시대보다 높아질 확률이 높아질 수 있다. 내 기분 위주로 살다 보니 사회와 국가의 미래에 대한 방향보다는 내 기분 위주의 삶을 살아가는 데 익숙해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SNS 시대에 익숙해진 세대는 인내와 참을성이 약해지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SNS를 많이 하면 할수록 적이 많이 생길 수도 있다. 또 SNS를 많이 하면 할수록, 폭력적일 수 있고 인내심도 줄어들고, 극단적으로 좋음과 싫음에 대한 흑백 결단에 익숙해지는 시각과 청각에 익숙해지는 기계를 통한 소통이 이루어는 사회로 발전해 갈 가능성도 있다. 그래서 아이들은 SNS를 오래 하면 할수록 참을성이 부족해지고, 부정적이고, 파괴적이고, 폭력적, 독단적, 비판적 성격으로 갈 확률이 높다.

그러나 미래의 SNS가 현재 시각과 청각을 뛰어넘어 촉각, 미각, 후각에까지 가능하다면 SNS는 새로운 국면에 들어설지도 모른다. 그런 날이 온다면, SNS는 컴퓨터나 휴대폰 같은 기계를 통한 사람 관계가 아닌 진정한 인간관계로 발전시키는 날이 왔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SNS라는 가상 공간에서의 사람 관계와 인간관계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SNS는 오감 중 시각과 청각에만 집중된 기계를 통한 소통방법이다. 진정한 인간관계가 형성되려면 오감을 통한 소통이다. 그래서 자신이 속한 학교, 종교단체, 소속 단체를 통해 인간관계 공동체 프로그램이 더 필요한지도 모른다. 멀지 않아 SNS에서도 오감을 통한 인간관계가 이루어지는 소통이 이루어질 시대가 오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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