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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람서원] 마태복음 16장, 17장 강해마태복음 17장. 변화산 지식은 부활의 지식이고 겸손한 지식이다

마태복음 16장. 베드로 사도의 신앙고백 위에 교회를 세운다.

에클레시아(ἐκκλησία)는 복음서에 2회(마태 16:18, 18:17), 사도행전 20회, 바울서신에 64회, 공동서신 7회, 요한계시록에 19회, 신약성경에서 112회(개역개정 기준)가 등장한다. 70인역에서 히브리어 ‘카알’ 대칭어로 번역했다. 신약성경에서 에클레시아와 쉬나고게는 중요한 변곡점 중 하나이다. 마태복음만 에클레시아를 갖고 있기 때문에 독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신학화되었다고 규정되어 첫 복음서에서 제외되는 근거가 되기도 했다. 도올 김용옥은 바울서신에 예수가 아닌 그리스도가 등장하는 것도 신학화의 한 예라고 주장했다. 성경의 신학화된 산물, 신화의 한 작품 등으로 보려는 양식비평, 그리고 편집비평 등 다양한 비평학으로 본다면 예수를 죄에서 구원할 메시아(마 1:21), 임마누엘의 성취자(마 1:23)로 볼 수 없다. 성경을 계시문서로 믿고 볼 때만 예수를 그리스도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볼 수 있다.

1. 예수께서 표적을 구하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에게 하늘을 보고 날씨는 분별하면서 시대의 표적(the signs of the times)은 분별치 못한다고 책망하셨다(1-4절). 그들은 주님의 말씀대로 천국이 이미 왔다는 말씀을 도무지 깨닫지 못했다. 그래서 주님은, 주님 자신과 그 말씀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자들을 음란하다고 비난하시면서 요나의 표적, 죽으심과 부활 그리고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파됨을 표적으로 제시하셨다(4절). 이방인에게 복음이 선포되는데도 돌이키지 않은 유대인은 더 이상 유대인이 아니라 새이스라엘 밖에 있는 배도자이고 반역자이다. 유대인은 자존자께서 주신 성전뿐만 아니라 이름까지 망각했다.

2. 예수께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6절). 그 때는 이상하리만큼 제자들이 떡을 가져오는 것을 잊었을 때였다(5절). 제자들은 주께서 떡을 가지고 오지 않았음에 대해서 지적하는 것으로 알고 당황했다(5-7절). 예수께서 제자들의 오해(誤解)를 꾸짖었다. 누룩과 떡(빵)을 혼돈한 것이다. 한국 사람은 떡에 누룩을 넣지 않는다. 그러나 빵에는 반드시 누룩을 넣어야 한다. 누룩이 적당하게 들어가야 빵이 적당하게 먹을 만하다. 제자들이 누룩을 듣자마자 빵을 연상해서 스스로 걱정한 것이다.

예수께서 오병이어와 칠병이어를 제자들에게 회상시키셨다. 빵을 염려하는 제자들을 책망하신 것이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누룩(가르침)을 삼가야 한다(12절).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가르침은 같지 않았는데, 예수를 신성모독으로 판단하는 것에는 같았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 원수이지만 예수를 죽이는 데는 협력자였고 동맹자였다.

3. 가이사랴 빌립보에 도착하신 예수는 제자들에게 자신의 메시아 되심을 드러내시면서 죽임당하고 사흘에 다시 사실 것을 처음 언급하셨다(13-28절).

4. 베드로 사도의 고백은 개인의 고백이 아니라 12사도의 고백이다(배신자 가룟 유다 제외). 예수께서 빌립보에서 제자들에게 인자에 대한 세상의 평판을 질문하셨다(“Who do people say that the Son of Man is?”, 13절). 제자들은 세상의 평판(세례 요한, 엘리야, 예레미야, 선지자 중의 하나)을 그대로 말씀드렸다. 그런데 예수는 제자들의 평가를 물으셨다(15절). 사도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이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했다(16절). 예수께서 베드로의 대답을 기쁘게 여기셨고, 그 지식의 원천이 ‘아버지’임을 알려주셨다(17절). 그리고 베드로 사도의 고백 위에 교회를 세울 것을 선언하셨다. 예수께서는 21세기에도 주의 사역자들에게 질문한다. 세상은 예수를 무엇이라고 하는가? 혁명가, 사랑의 화신, 부처의 제자, 선지자 중의 하나, 그렇다면 너는 예수를 누구라고 하는가? 우리의 고백은 베드로 사도의 고백을 반복한다. “주는 그리스도이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 고백이 교회를 세우고, 삼위일체 신앙을 확립한다.

5. 예수는 교회에 천국 열쇠를 주셨다(19절). 천국 열쇠는 그리스도인의 입에 있다. 그리스도인의 입에는 사도 베드로의 고백, “주는 그리스도이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가 있고, 그리스도인의 입에서 그 복음이 전파되면 천국문은 열리고, 입을 닫고 열지 않으면 천국문도 열리지 않는다. 천국문이 그리스도인의 입에 있다는 것은 풀고 매이는 주권자의 위용이다.

6. 예수는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고 하셨다(20절). 앞에 언급과 상치되는 것처럼 보인다. 예수께서 십자가 전에 그리스도인 것을 알리지 말라고 당부하신 것은 메시아가 병을 고치거나 약한 자를 고치는 일이 아니라, 죄를 구속해서 성령을 보내시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임마누엘의 성취를 메시아께서 수행해야 하는데, 사람들은 메시아하면 정치적 메시아만을 사모하기 때문이다(참고 행 1:5).

7. 베드로 사도의 고백에 예수께서 고난과 죽임당함 그리고 삼일에 부활을 가르치셨다(21절). 베드로 사도는 무모하게 주님의 경륜을 막았다(22절). 베드로 사도는 예수를 나무랐다. 예수께서는 베드로를 사탄이라고 규정하면서 심하게 꾸짖었다. 사람의 일을 생각하지 말고(23절),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명령하셨다(24절). 탐욕을 갖고 주님을 따를 수 없고, 세상 정의를 갖고서 따를 수도 없다. 주님을 따르는 길은 오직 십자가뿐이다.

십자가는 영생이다. 인자께서 아버지의 영광으로 천사와 함께 오실 것이다(27절). 죽기 전에 인자가 오는 것을 볼 자도 있을 것이다(28절). 27절은 마지막 시간의 때로 보고, 28절은 오순절 성령 사건으로 본다. 십자가 없이 영생이 없다. 십자가를 지는 행동을 해야 유익하며 하나님께 상을 받을 수 있다. 십자가는 영광이 아니라 영생이다(The Cross is not the crown but the life and eternal life).

8.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받은 지식의 소유자 베드로 사도, 그리고 성령으로 확증된 구원의 복음을 주시니 고맙습니다. 우리는 주께서 이루신 복음을 성령으로 받습니다. 굳건한 지식으로 나의 십자가를 지게 하옵소서. 주께서 나에게 주신 십자가를 매고 아버지 영광으로 가겠나이다. 주의 교회를 세우며 예수이름이 온 땅에 가득하도록 부족한 종을 사용하옵소서. 주께서 쓰실만한 더 정결한 그릇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주의 은혜와 경책을 주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마태복음 17장. 변화산 지식은 부활의 지식이고 겸손한 지식이다.

1. [마 17:1-13] 예수의 변형, 마태는 가이샤라 빌립보에서 엿새 후로 시간을 정확하게 제시한다. 그 때 예수께서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높은산에 올라가셨다(1절). 높은산은 헬몬산으로 추정한다. 혹 다볼산으로 추정하는 사람도 있지만, 가이샤라 빌립보를 기준으로 하면 헬몬산이 좀 더 유력하다. 예수께서 높은산에 올라 제자들 앞에서 변형되셨다.

예수의 얼굴이 해와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다(2절). 그리고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께 나와 이야기를 했다. 모세와 엘리야가 살아 있었고, 예수께 나와서 대화를 나누었다. 베드로는 예수께 그곳에 처소(장막) 셋을 지어 모두 함께 머물자고 제안했다. 베드로는 셋을 동격으로 보았을 것이다. 그 때 구름 속에서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고 했다(5절). 제자들은 그 음성을 듣고 심하게 두려워했다(6절). 예수께서 그들의 두려움을 사라지게 했다. 그리고 인자의 죽음과 부활 이전에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도록 당부하셨다(9절).

제자들은 세례 요한이 엘리야(말 4:5, 마 11:2-19)인 것을 깨달았다. 제자들이 아버지의 음성과 변형된 주님의 모습을 본 뒤에 세례 요한을 엘리야로 깨달았지만, 완전한 믿음 체계를 이루지 못했다. 인간 구조로 아버지의 음성을 들어도 예수께 직접 가르침을 받아도 완전한 영적 구도를 깨닫지 못한다. 하나님의 영(성령)이 내주하셔야 비로소 완전한 지식 체계를 이룰 수 있다. 제자들은 궁금해 했던 ‘엘리야가 메시아에 앞서 올 것이라’는 서기관들의 말의 의미를 묻게 되고 결국 세례 요한이 바로 그 엘리야였음을 깨닫는다. ‘깨달으니라’는 말은 마태복음에서 중요한 핵심 단어다(13절). 제자들이 실재로 경험하여 깨달은 것들은 오순절 이후에야 흔들림 없는 지식이 된다.

2.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와 무리에게 도착했을 때, 간질로 고생하는 아이를 남은 제자들이 고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아이의 아버지는 예수를 보자마자 간청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먼저 꾸짖으시고(17절), 귀신을 꾸짖어 추방했다(Jesus rebuked the demon, 18절). 제자들은 예수께 왜 자기들은 쫓아내지 못했는지 질문했다(19절). 예수께서는 믿음이 작기 때문(little faith)이라고 하셨다. ‘작은 믿음’은 부정적이고, ‘겨자씨 한 알만큼의 믿음’은 긍정적이다. 겨자씨 한 알만큼의 믿음으로 산을 옮길 수 있다(20절). 21절은 ‘없음’인데, 어떤 사본에는 '기도와 금식이 아니면 이런 유가 나가지 아니하느니라'가 있다. (Mat 17:21) Howbeit this kind goeth not out but by prayer and fasting. KJV에는 그 사본을 명시하여 (없음)이 없다.

3. 그리고 예수께서 갈릴리로 돌아와서 제자들에게 두 번째 고난과 죽임 당함 그리고 삼일에 부활을 말씀하셨다. 제자들은 매우 근심에 빠졌다(16:21-27; 17:9, 22-23). 고난과 죽음 뒤에 오는 부활이 무슨 유익이 있을까? 지금도 죽음 뒤에 오는 영생이 무슨 유익이 있을까? 공자 선생의 가르침대로 이 땅의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는 범인(凡人)인데, 현세에 충실해야 하지 않을까? 부활의 주 없이 보아도 노력해도 결코 부활과 영생을 붙들 수 없다.

4. 성전세(the two-drachma temple tax)는 20세 이상의 모든 유대인 남자가 해마다 내는 종교세였다. 가버나움에서 반세겔 받는 자들(종교세를 거두는 자)이 베드로에게 예수에 대해서 성전세를 요구했다. 예수께서는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성전세를 낼 필요가 없을 말씀하셨다(26절). 그럼에도 성전세를 내시려고 베드로에게 낚시를 시켜 고기 안에서 나온 한 세겔을 지불했다(27절).

2018년 대한민국에서는 종교인 소득 과세를 실시했다. 종교인이 세금을 내지 않아야 한다는 주장들이 있었지만 결국 설득하지 못했다. 왜 종교인들은 세금을 내지 않았을까? 종교단체가 세금을 내지 않은 것과 종교인의 세금 활동은 다른 것이었다. 종교인도 국민이기 때문에 세금을 내야 한다. 그러나 이전까지 종교인을 존경하기 때문에 세금을 부과하지 않았다고 본다. 그 존경심이 사라진 것을 보아야 한다. 이제 대한민국은 좀 더 체계적인 나라로 나가는 것 같다. 모든 국민이 동등하게 세금 활동을 해야 하지만, 종교의 자유를 위해서 종교 단체가 합법적으로 잘 지켜져야 한다. 국가가 종교를 평가할 수는 없다. 종교는 국가 이전부터 있었던 자연이고 생존양식이다.

프랑스 혁명 이후로 국가와 종교는 분리되어, 정교분리가 확고한 진리체계가 되었다. 정교분리 원칙은 시대에 따라 변할 수 있다. 포스트모던사회에서 국가와 국민은 국가가 국민에게 봉사(서비스)하는 기관으로 인식되고 있다.

5. 전능하신 하나님, 구주의 은혜로 구주를 온전히 믿게 하옵소서. 믿음을 주옵소서. 주의 부활을 믿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죄사함을 위해서 죽으시고, 우리의 영생의 소망을 위해서 부활하셨습니다. 겨자씨 믿음을 주셔서 성숙된 믿음으로 나가게 하옵소서. 세상에 무명하나 주의 나라에서 유명한 자녀가 되게 하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고경태  ktyhb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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