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에 대한 해석과 선포는 오직 교회만이 가지는 독특한 권위이다.

하나님은 자신을 인간에게 보여 주심에 있어 먼저 창조주로서 권위를 가지고 우주 만물과 자연 현상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표시하신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기 계시에 대하여 인식하고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함에 있어 이미 죄로 인해 그 양심이 무디어져 있으므로 하나님을 두려워하거나 경외하는 일이 없다.

송영찬 목사, 기독교개혁신보 편집국장 역임. 도서출판 교회와성경 편집인 https://www.facebook.com/ChurchAndBible

 따라서 하나님은 사랑하는 당신의 백성에게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을 갖게 하려면 적극적인 방법으로 자신을 계시하실 필요가 있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의 백성에게 죄로 오염된 자리에서 구원되었음을 인식하여 더는 죄 아래 있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바른 지식을 얻음으로써 진정한 자유인으로 이 세상에서 살 수 있게 하도록 하나님은 자기 계시를 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기 계시는 그의 백성에게 하나님의 구원에 참여하였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하는 일에 유효한 능력을 발휘하는 은혜의 수단이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서 주신 계시를 통해서만 비로소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계시의 극치가 바로 로고스(말씀)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누구이신가를 드러내는 계시의 극치이시다. 이런 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삶과 행동은 계시적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 행적, 활동, 말씀 등은 모두 계시로서 의미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는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드러내고 있으며 이 세상을 창조하신 목적을 밝히셨다. 그뿐만 아니라 마침내 그 목적을 자신의 삶과 십자가를 통해 완성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참된 계시의 극치를 볼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 이후에 이 계시는 말씀으로 기록되어 교회에 위탁되었다. 최초로 말씀 해석을 위탁받은 사람들은 사도들이었다. 그리고 사도들이 터가 되어 세워진 교회(앱 2:20)는 사도들을 통해서 위탁받은 말씀에 대한 보존과 해석과 선포의 권위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므로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계시인 말씀에 대한 해석과 선포는 오직 교회만이 가지는 독특한 권위이다.

여기에서 교회와 말씀과의 관계, 즉 계시로서의 말씀과 그 계시를 보존하고 해석하고 선포하는 교회와의 관계를 생각할 수 있다. 교회의 권위는 말씀으로부터 나온다. 그리고 말씀은 교회를 통해서만 보존되고 해석되고 선포되어야 한다. 교회 없이는 말씀이 보호받지 못하며 교회만이 말씀을 정당하게 선포하고 시행하며 보전할 수 있는 지상의 유일한 기관이다.

 말씀 계시와 더불어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에게 성도들로서 살아야 할 구체적인 삶의 터전으로 교회를 주셨다. 그리고 성도들로서 성령님의 부르심과 인치심을 공식적으로 확인하는 것이 교회에서 행하는 세례이다. 또한, 교회 안에서 거룩한 성도들의 삶을 추구하기 위한 공식적인 표시가 성찬에 참여하는 일이다. 세례와 성찬은 주님께서 제정하셨기 때문에 이 역시 계시적 의미가 있다. 이를 행위 계시라고 한다. 따라서 교회는 말씀 계시인 성경과 행위 계시인 성례를 하고 있으며 이를 보존하고 해석하고 선포해야 한다.

성도들이 성례에 참여한다는 것은 거룩한 주의 백성으로서 각성하고 우리의 주이시고 왕이신 그리스도의 군사가 되어 이 땅에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나가는 일에 친히 참여하고 있다는 신앙고백의 성격을 가진다. 이러한 의식 없이 세례와 성찬에 참여한다는 것은 아직 신앙이 어린아이와 같은 상태가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도 교회는 세례와 성찬 예식 자체가 하나님의 계시 행위에 속한다는 점을 중시해야 한다.

우리가 구원받은 사실이 분명하고 교회의 가르침 안에서 장성하였다면 언제까지든지 철부지 아이처럼 교회의 보호 아래 있다는 사실만 가지고 만족할 수 없다. 이제 우리는 장성함으로써 거룩한 교회의 군대가 되어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나가는 일에 헌신해야 한다. 바울 사도가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빌 3:13-14)고 명백하게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바울 사도는 거룩한 주의 군사가 되어 적극적으로 이 땅 위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나가는 일에 헌신했다. 그런데도 바울 사도는 ‘오직 한 일’을 위해 나머지 생애를 초개와 같이 불사르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바로 그 일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함이다. 곧 구원의 완성을 위해 경주를 절대 포기하지 말 것을 성도들에게 당부하고 있다.

우리의 구원은 부르심의 단계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 장성하는 성화의 단계에서도 끝나지 않는다.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받는 그 날까지 끊임없이 나아가야 한다. 바로 이 상이 구원의 완성을 인정하는 증표이며 이 상태를 가리켜 ‘영화’(靈化)라고 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은 마침내 우리가 부활하여 ‘영화’의 몸을 입는 것으로 완성된다.

바로 그 일을 위해 우리는 교회의 회원이 되어 신자로서 주의 군사로 장성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나가야 한다. 그런데도 우리가 예수를 영접하고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에 안주하고 그것으로 마치 구원의 완성을 이룬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면 그것은 여전히 어린 아이의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가 과연 그리스도의 군사인가? 그렇다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 바로 그 한 가지 일을 우리 삶의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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