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믿는 자는 의인이되, 죄 짓는 의인이다.

김영복 목사가 티벳 라사 선교지 방문시 찍어 보내준 오체투지

히9:27에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정해진 것이라”고 했다. 인간이 왜 죽는가? 성경에 의하면 죄 때문이라고 한다(롬6:23). 죄가 없으면 죽음도 없다. 범죄한 아담 안에서 태어나는 모든 인간은 죄인이기 때문에 반드시 죽는다(롬3:10,롬3:23). 죽는 순서와 방식은 달라도 인간은 반드시 한번은 죽기 마련이다. 왜 인간이 죄인인가를 묻는다면 죄를 지어서 죄인도 아니고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짓는 죄인이 아니라 죽기 때문에 죄인이다.

그런데 인간이 이러한 죄인 됨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즉 인간은 성령께서 예수를 믿게 하실 때 그 십자가 안에서 자신이 지옥에 들어가도 마땅한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자기의 죄를 용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눈을 떠서 예수를 믿고 예수를 따라가며 감사하게 된다. 이렇게 예수를 믿고 예수의 피로 자기의 죄를 용서 받았다는 것을 믿는 사람이 죄인인가? 의인인가? 일반적으로 예수 믿는 사람을 보고 죄인임과 동시에 의인이라고 했다(루터).

양극단으로 가는 사람들은 한쪽은 그리스도인을 보고 죄인이 아니라 의인이라고 하고 다른 한쪽은 의인이 아니라 죄인이라고 한다. 그리스도인을 죄인이라고 하는 주장은 성도가 예수님의 피로 의롭게 되었지만 성도 자신의 입장에서는 죄인이라는 주장이다. 즉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없앤 것이 아니라 죄를 덮었다는 논리이다. 만약에 자신이 예수 믿고 의인 되었다면 죄인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의 말씀은 필요 없게 된다는 논리이다. 자신이 십자가 앞에서 죄인이라고 해야 죄인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의 말씀이 계속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마9:13).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의인으로 보는 사람은 예수님께서 용서하신 사람은 인간의 눈으로 자꾸 보고 죄인이라고 단정한다면 예수님의 용서하심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천국에 의인이 들어가지 죄인이 어떻게 천국에 들어가느냐는 것이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것이다(롬1:17). 그런데 의인과 죄인을 동시에 주장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을 의인이다 또는 죄인이다 그렇게 극단적으로 단정할 수 없고 그리고 그리스도인이 예수를 믿고 죄 용서를 받았지만 계속해서 죄를 짓고 있기 때문에 죄인임과 동시에 의인이라고 주장을 하는 것이다.

과연 어떤 주장이 맞는 것일까? 인간은 예수 믿기 전에는 자신이 지옥 불에 들어 갈 만큼 죄인인가를 모른다. 성령이 오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으로 인도했을 때 인간은 자신이 얼마나 무서운 죄인인가를 깨닫는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 살려달라고 구원을 요청하게 되고 예수님은 그 죄인을 용서하신다. 그런데 문제는 인간이 이렇게 예수를 믿고 자신이 죄인이라고 깨닫고 용서해 달라고 고백했고 그리고 주님으로부터 죄 용서를 받았는데 여전히 죄인인가? 아니면 의인인가?

만약에 여전히 죄인이라면 하나님께서 죄 없다고 선언한 성도를 죄인이라고 단정할 수 있는가? 만약에 의인이라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자신이 죄인된 것은 어떻게 되는가? 믿음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바울을 보자.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죄인 중의 괴수라고 했다(딤전1:15). 그런가 하면 바울은 롬8:33에서 “누가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라고 했다. 예수 믿는 사람인 바울이 자신을 죄인이라고도 표현을 하고 의롭게 된 자라고도 표현을 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되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예수를 믿고 죄인 됨을 발견했는데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그 죄인의 죄를 그리스도의 피로 덮어 주셔서 우리를 의롭다 하셨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죄인의 죄를 남김없이 없애 놓고 그 사람을 죄 없는 의인으로 만드신 것이 아니라, 죄가 있지만 죄를 예수의 피로 덮어놓고 죄가 없는 것으로 하겠다는 것이다. 만약에 죄인에게서 죄가 완전히 사라지면 의인이 된다. 그리고 의인이 되면 죄인을 구원하시는 예수를 더 이상 믿을 필요도 없고 죽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예수 안에서 감사와 찬송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성령 안에서 자신이 지옥에 가야할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께서 그 죄를 용서하시는 그 은총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버리신다 해도 우리는 아무 할 말이 없는 죄인일 뿐이다. 그러나 성도는 자신의 죄인 됨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죄인을 의롭다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믿고 바라보는 사람이다. 중요한 것은 내 자신의 실존의 죄인됨과 의인됨이 아니라, 죄인을 용서하시고 의롭다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선언이다. 그리스도께서 의롭다 하신 자를 어느 누구도 정죄할 수 없다(롬8:1-2).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은 믿음을 가진 자는 의인이라는 것이다(롬1:17). 여기서의 의인됨은 죄 없는 의인이 아니라 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께서 자기 피로 그 죄를 덮어 죄 없다 하신 성도를 말한다. 죄인에게는 믿음이라는 말이 의미가 없다. 믿음이라는 말은 오직 의롭다함을 받은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말이다. 성도의 시각은 예수 그리스도의 시각에서 보아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시각으로 볼 때 그리스도께서 의롭다 하신 자는 죄가 있다 할지라도 의로운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자는 의인인 것이다. 단 죄 안 짓는 의인이 아니라 죄 짓는 의인이다. 그리스도인의 옛사람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때 함께 죽고 장사되고 없다. 이제 사는 것은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의롭다 하시는 그 말씀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다(갈2:20). 바울이 자신을 죄인 중의 괴수라고 고백한 것은 자신을 의롭다 하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이다.

이 말씀의 초점은 바울의 죄인 됨에 있지 않고 죄인인 자를 의롭다 하시는 그리스도께 초점이 있다. 그리스도인은 죄인 됨 보다는 새사람 됨의 분명한 확증이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죄를 짓지만 죄가 왕 노릇하지 않고 의가 왕 노릇하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