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배 교수의 구약이야기(123) - 에스겔(15)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그리스도대 구약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부회장 KC대 전 총장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사망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게 하라 하셨다 하라”(겔37:9).

정전, 70년. 한반도에 희년은 도래할 것인가?

에스겔의 사랑의 방법은 특이하다. 심판이 사랑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심판과 징벌이 사랑일 수 있을까. 에스겔 예언자는 여호야긴 왕과 함께 주전 597년 포로로 붙잡혀가서 그발 강가에서 멸망당하고 있는 조국의 현실을 보면서 안타까워하며 하나님께 받은 예언의 말씀을 선포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 심판과 징벌 너머의 하나님의 세계를 바라보며 희망을 가지고 마른뼈 골짜기와 같은 심판의 상황이지만 그 뼈에 생기가 붙어서 생령이 되고 살아 움직이는 사람들이 군대가 되는 환상을 보며 예언하고 있는 것이다. 에스겔서 37장은 그 상황을 이야기 하고 있다.

한반도의 상황과 유사한 심판구조는 정전 협정(1953년.7.27)이 되고 66년이 지난 아직도 남북통일이 되고 있지 않는 상황이다. 예레미야의 입으로 했던 예언, 바벨론 포로 70년이 안식일이라고 하면(대하36:21), 4년 남은 한반도의 희년은 도래할 것인가. 하나님의 심판이 너무 길고도 혹독한 것은 아닌가. 하나님의 섭리와 뜻을 알 수 없기에 다만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보는 수밖에 없다. “그룹에 머물러 있던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올라 성전 문지방에 이르더니 여호와께서 그 가는 베옷을 입고 서기관이 먹 그릇을 찬 사람을 불러 이르시되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하라 하시고”(겔9:3-4). 에스겔서에서 6명 천사가 파괴하며 살육하는 기계로 죽이는 것을 막는 이마에 표하는 것은 오늘 무엇을 말하는가? 유월절에 10번째 장자 살해의 재앙이 애굽에 내려질 때 이스라엘 집 문설주에 피를 발라서 그 재앙을 넘어갔던 것과 같은 현상이 벌어졌다. 이는 제사장의 먹 그릇에서 회개하며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하는 일이있다. “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아이와 부녀를 다 죽이되 이마에 표 있는 자에게는 까이 말라 내 성소에서 시작할찌니라 하시매 그들이 성전 앞에 있는 늙은 자들로 부터 시작하더라”(겔9:6).

 

심판의 시대와 구원의 표

이 이마에 표하는 것은 요한계시록의 666 표시인가(계13:15-18). 짐승의 표를 말하며 우상 숭배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하지만 에스겔서에서는 심판의 와중에서 구원받는 표를 말하고 있다. 유월절 피의 액막이 의식을 회상하게 하는 장면(출12:23)이지만 여기서는 심판의 상황을 보여준다. “너는 터럭 중에서 조금을 가져 네 옷자락에 싸고 또 그 가운데서 얼마를 가져 불에 던져 사르라 그 속에서 불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로 나오리라”(겔5:3-4). 나중에 세례 요한에 의해 세례 행위를 통해 심판에서 구원받는 약속으로 성례전의 전승이 이어지게 된다.

이는 오늘날에도 구원의 세례를 보여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을 통해 구원의 성례로 이어지고 있다. 심판이 지배적인 상황에서 이마에 표를 받는 사람들이 구원받는 역사는 전체의 심판이라는 상황에서 개인들이 면제받는 특별한 상황을 보여주며 개인적인 구원은 오늘날 열려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믿음으로만 그 구원의 열쇠를 쥐며 그 소수의 구원의 길이 열려있는 것이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요6:54-55).

 

참된 말씀을 전하는 자와 그것을 듣는 자

“이 땅 거민아 정한 재앙이 네게 임하도다 때가 이르렀고 날이 가까웠으니 요란한 날이요 산에서 즐거이 부르는 날이 아니로다”(겔7:7). 심판의 날이 가까이 왔다는 것이다. 에스겔은 포로지 그발 강가에서 눈물 흘리며 조국이 완전히 멸망당하지 않기를 바라는 심정에서 선포하고 있다. “인자야 이스라엘 땅에서 이르기를 날이 더디고 모든 묵시가 응험(드러난 징조가 맞음)

이 없다 하는 너희의 속담이 어찜이뇨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속담을 그치게 하리니 사람이 다시는 이스라엘 가운데서 이 속담을 못하리라 하셨다 하고 또 그들에게 이르기를 날과 모든 묵시의 응함이 가까우니”(겔12:22-23).

이러한 심판의 날과 최후의 날을, 사람들은 대수롭게 여기지 않고 또 그러한 예언을 조롱하듯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이는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홍수인 시대에 참 예언을 분간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세태이다. 참 예언은 성령 충만한 소수의 하나님의 회의에 참여한 의인이자 주의 선지자가 하는 선포이며 참 말이다. 하늘에서 온 자, 아버지를 본 자만이 그 예언을 하는 것이다(요6:45-46). 이 영생의 말씀을 가지고 선포하는 참 선지자가 요구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 메시지를 들을 귀가 있는 자가 복 된 사람이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히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요6:4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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