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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기도】인봉한 책을 펼친 그리스도(36) 재앙에도 회개치 않는 음행

계 9:20-21 이 재앙에 죽지 않고 남은 사람들은 그 손으로 행하는 일을 회개치 아니하고 오히려 여러 귀신과 또는 보거나 듣거나 다니거나 하지 못하는 금, 은, 동과 목석의 우상에게 절하고 21 또 그 살인과 복술과 음행과 도적질을 회개치 아니하더라

🔺음행

문자 중에는 성경과 세상에서 말하는 단어의 뜻이 같은 것도 있지만, 세상에서는 전혀 생각할 수 없는 뜻으로 쓰인 것들이 많다. “음행”이나 “간음”이라는 단어도 마찬가지이다. 이 단어에 대해 설명하려면, 먼저 성경에서 정의하는 혼인과 이혼과 간음을 알아야 한다.

창세기 2장24절에 보면,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찌로다”라고 말씀한다. 여기에서 남자는 남편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그리고 여자는 신부인 교회를 말한다. 그리고 부모는 하나님 아버지를 의미한다. 

그래서 예수께서 하나님 아버지를 떠나 이세상에 오셔서 죽으심으로 옆구리에서 물과 피를 흘리며 아내를 탄생시키고 아내인 교회와 한 몸을 이룬 것이 교회의 탄생이며 성경은 그것을 혼인으로 설명한다. 그래서 성경은 창세기에서부터 계시록까지 혼인 이야기로 시작해서 어린양의 혼인잔치로 끝내는 것이며, 예수께서 행하신 첫번째 기적도 혼인잔치였고, 첫번째 전도 대상인 사마리아 여인에게도 주님은 남편 이야기를 하신 것이다.

남자 아담이 죽어서 탄생된 여자의 관계를 에베소서에서는 그리스도와 교회라고 설명하며 계시록에서는 어린양과 신부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1장 8-9절에서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라고 말씀한다. 여기에서 남자는 예수님을, 여자는 교회를 말한다. 남자인 주님을 위해 여자인 교회가 지음을 받은 것이다. 그런데 수많은 여자들 즉 교회들이 착각하는 게 있다. 주께서 우리를 위해 존재하시며 우리를 위해 일하신다는 엄청난 착각 속에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께서는 분명히 주님 자신을 위해 사람을 창조하셨고 제사장과 왕을 세우셨으며,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우리의 허물을 도말하시며 죄를 기억지 않으신다고 하셨다. 우리를 위하여 우리의 죄를 도말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위하여 그 모든 역사를 이루시는 것이다.

“내가 나를 위하여 충실한 제사장을 일으키리니 그 사람은 내 마음, 내 뜻대로 행할 것이라”(삼상 2:35)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사 43:21)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사 43:25)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노하기를 더디할 것이며 내 영예를 위하여 내가 참고 너를 멸절하지 아니하리라”(사 48:9)
“내가 나를 위하며 내가 나를 위하여 이를 이룰 것이라. 어찌 내 이름을 욕되게 하리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사 48:11)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 16:25)
“저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뇨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롬 11:4)

무슨 종교를 막론하고 인간을 위해 신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자기 자신을 위해 무언가 해 줄 능력자가 필요한 피조물들은 자기가 원하는 신을 만들어놓고 그 앞에 가서 기도하고 예배한다. 오늘날의 기독교 역시 세상 종교와 똑같이 자기만을 사랑해 달라고 빌고 있다. 그래서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하나님의 말씀과 반대되는 노래를 만들고 그런 노래를 부르며 듣기를 좋아한다. 

그 이유는 그 동안 목사들과 신학자들이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이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고 가르쳐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오신 목적은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인본주의에 빠져있는 자들은 그런 말을 듣기를 매우 싫어한다. 하나님의 존재 이유는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존재하며 나의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주셔야 한다는 매우 이기적인 생각에 빠져있기 때문니다.

따라서 에덴동산에서 여자가 선악지식나무를 따먹은 사건은 하나님을 떠난 독단적인 행위로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는 분리를 의미하며 그것을 성경은 음행 과 살인 그리고 이혼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잠언과 계시록에서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자기가 머리 행세를 하는 교회들을 음녀라고 표현하고 있으며, 음녀가 된 교회들이 하는 것은 영혼을 사냥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음녀를 계시록에서는 애굽 또는 바벨론이 된 예루살렘성전이라고 한다. 그래서 주님은 애굽과 바벨론이 된 예루살렘 성전을 허물고 새 예루살렘 성전을 만드신다고 하는 것이 바로 옛사람이 죽고 새피조물이 된 성도들을 일컫는 것이다.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자신의 머리를 주님께 내어드리지 못한 종교인을 음녀라고 하며 고멜이라고 한다. 그래서 주님은 죄인인 우리를 음녀나 고멜로 또는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붙잡혀온 여인과 사마리아 여인으로 밝히 드러내신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남편을 우습게 여기며 자기의 몸을 자기 마음대로 주장한다는 것이다. 
“아내가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이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고전 7:4)

남편이 있기에 현재의 자기가 있는 것을 망각하고 남편 없이도 얼마든지 살 수 있다고 자신의 주권을 외치는 페미니스트들은 하나님과 전혀 관계없는 자들이다. 이들은 하나님과 분리되어 나간 자들로 그것을 음행 또는 이혼이라고 한다.
“음행”이라는 헬라어 "포르네이아스"(πορνείας)의 동사형은 “포르뉴오”(πορνεύω)이다. 이 단어는 “팔다”(to sell)라는 “피프라스코”(πιπράσκω)에서 유래됐다. 즉 음행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아닌 우상에게 또는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에게 자신의 영혼과 몸을 파는 행위이다. 

특히 살인과 복술과 도적질은 복수로 쓰였고 음행만 단수로 쓰였는데, 이는 음행은 일대 일로 하는 것이며 개인적으로 자신과 한 몸인 남편에게 죄를 짓는 것임을 말해준다.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네가 나를 잊었고 또 나를 네 등 뒤에 버렸은즉 너는 네 음란과 네 음행의 죄를 담당할찌니라”(겔 23:35)
“내 백성이 나무를 향하여 묻고 그 막대기는 저희에게 고하나니 이는 저희가 음란한 마음에 미혹되어 그 하나님의 수하를 음란하듯 떠났음이니라”(호 4:12

마태복음 5:27-28  또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8.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마태복음 5장 27-28절의 말씀은 남자가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그런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다. 여자는 교회를 말하며, 벙어리 개들이나 이리떼와 거짓 선생들이 교회를 넘보는 것을 여자(교회)를 보고 음욕을 품었다고 하는 것이며 이를 간음 또는 음행이라고 한다. 

교회를 자기의 이익의 수단과 방편으로 생각하여 교인들이 듣고싶어하는 인본주의 설교나, 보이는 세계에서 잘 먹고 잘 사는 복의 개념으로 설교하여 교인들을 끌어모으려고 하는 것을 여자(교회)에게 음욕을 품었다고 하는 것이며, 그렇게 설교하고 가르쳐서 영생과 거리가 먼 곳으로 끌고가는 것을 음행이라고 한다.
“그 파숫군들은 소경이요 다 무지하며 벙어리개라. 능히 짖지 못하며 다 꿈꾸는 자요 누운 자요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니 이 개들은 탐욕이 심하여 족한줄을 알지 못하는 자요 그들은 몰각한 목자들이라. 다 자기길로 돌이키며 어디 있는 자이든지 자기 이만 도모하며 피차 이르기를 오라. 내가 포도주를 가져오리라. 우리가 독주를 잔뜩 먹자. 내일도 오늘 같이 또 크게 넘치리라 하느니라”(사 56:10-12)

마태복음 12장 39절을 보면, 예수께서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한다”라고 말씀하신다. 표적이란, 눈에 보이는 것을 말한다. 우상숭배는 헬라어로 “에이돌로라트레스”(εἰδωλολάτρης)라고 하는데, 이는 “형상”(image, idol)이라는 “에이돌론”(εἴδωλον)과 “섬기다, 예배하다”(serve, worship)라는 “라트류오”(λατρεύω)가 합성된 단어이다.

즉 우상숭배는 보이는 세상을 섬기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음란한 세대가 무언가 눈에 보이는 표적을 구하는 것이다. 보이는 세계를 통해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를 알려주어야 하는데, 영의 눈이 열리지 않아서 성경을 문자대로만 해석하여 가르치는 자를 거짓 선생이라고 하며 그러한 자들을 간음하는 자, 살인하는 자, 우상숭배자라고 한다. 왜냐하면 영이신 하나님이 아닌 자기 눈에 보이는 가짜 하나님을 예배하게 인도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깨끗한 것을 좋아하시며, 섞이는 것을 매우 싫어하신다. 거룩한 분이시므로 더러운 것과 혼합되는 것을 견디지 못하신다. 섞이는 것이 간음이다. 그래서 먹는 것과 입는 것과 결혼 등 모든 부분에서 하나님께서 깨끗하다고 정하신 것을 먹으라고 하시며 부정하다고 정하신 것을 먹지 말라고 하신다. 또 두가지 이상으로 섞어서 짠 옷감으로 된 옷도 입지 말라고 하시며 혼인도 불신자와는 절대 하지 말고 반드시 정결한 크리스천끼리 결혼하라고 하신다.

▪️버닝썬 사태 = 우리의 상황

한국에서는 소돔과 고모라를 연상시키는 버닝썬 사태로 인해 무척 떠들썩하다. 본문에서 지옥에 가는 자들의 특성을 버닝썬 사태가 자세히 보여주고 있다.
버닝썬의 VIP고객은 하룻밤에 1억원 짜리 양주를 마실 만큼 부유하다. 돈이 많다보니 그들의 욕망은 나날이 불어나서 정상적인 것으론 만족하지 못한다. 결국 그들은 술객들과 마법사들이 만들어놓은 물뽕이라는 것을 사용하여 여자들을 강간하기 시작했다. 

이 물뽕(GHB)이라는 환각제는 몇 분 안으로 중추신경계가 마비되어 의식을 잃게 만든다. 그리고 몇 시간이 지나면 마약 성분이 사라져서 마약을 먹였다고 증명하기도 힘들다. 또한 무색 무취라서 술이나 음료수에 넣어도 알 수 없기에 이것을 모르는 여자들은 음료수를 마신 뒤 완전히 죽은 시체처럼 되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강간을 당해 있는 것이다.

이는 영적으로 볼 때, 개와 같은 교회의 리더들인 거짓 선생들은 이렇게 복술을 이용해서, 소위 그것이 찬양이 될 수도 있고, 치유집회라는 이름으로 다가올 수 있고, 수많은 방법으로 사람들의 감성을 터치하여 그들이 영적 환각 상태에 빠지게 하여 음행하게 한다. 

즉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감정이 터치받아서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구하고 얻도록 미혹하여 하나님이 아닌 자기의 욕망과 비전을 갈구하는 우상숭배의 자리에 있게 만든다. 그래서 주일에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왔지만, 영적으로 음행을 하고 왔으면서도 환각제에 취해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강간을 당했는지, 미혹되었는지 깨닫지도 분별하지도 못하는 것이다. 그 결과 개가 토한 것을 도로 먹듯이 매주일 또는 금요집회나 찬양예배 등 반복적으로 음행을 하러 교회에 가는 것이다.

우리는 버닝썬 사태를 보며 누구에게 손가락질을 할 때가 아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상황이 교회 안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우리 자신과 오늘날 교회의 현주소를 재확인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예배는 고리타분하고 재미가 없고 지루하므로, 우리 자신을 만족시켜줄만한 짧고 흥미로우면서도 무언가 짜릿하고 감성을 터치해줄만한 예배와 프로그램을 추구하며 그런 교회를 찾아다니는 영적 버닝썬의 VIP는 아닌지?
🔹또는 그러한 VIP가 갖고있는 돈과 명예와 권세를 얻고싶어서 찬양과 치유와 영성과 은사집회라는 이름으로 온갖 마법적이며 복술적인 것들을 동원하여 그들의 마음을 터치하고 그들의 환심을 사는데 온 정성을 기울이고 있는 술객 놀음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리고 VIP의 욕망을 만족시키기위한 희생물을 구하기 위해 교회 안에 여러 프로그램을 신설하여 전도와 선교라는 이름으로 영적 분별력이 없는 이들을 마구 끌어들여 자기도 천국에 들어가지 않고, 전도한 이들도 더욱 지옥 자식이 되도록 영적으로 그들을 강간하며 더 육적인 만족을 얻도록 더듬고 있지는 않은지?

개들과 술객들이 하는 행위는 여자인 교회를 환각제로 무감각하게 만들어서 자신이 영적으로 강간을 당했는지도 모르게 한다. 그들은 여자인 교회를 인격체로 보지 않고 물건 다루듯 아무렇지도 않게 복술과 음행을 한다는데 문제가 심각하다.

버닝썬의 관계자들은 VIP에게 물뽕을 먹고 무의식상태에 빠진 여자들의 사진을 전송하여 “빨리 드시러 오라”는 문자를 보내기도 했는데, 이것이 바로 베드로후서 2장 14절에서 말씀하는 것이다.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범죄하기를 쉬지 아니하고 굳세지 못한 영혼들을 유혹하며 탐욕에 연단된 마음을 가진 자들이니 저주의 자식이라.”

▪️음행의 결과 = 살인

우리는 생명의 떡이신 그리스도와 그분의 말씀을 먹어야 한다. 그러나 아담 이후의 모든 인류는 먹음직하고 보암직하며 지혜롭게 할만큼 우리의 마음을 만족시켜주는 것을 먹으려고 한다. 그것이 바로 선악과 사건이며, 그것이 음행이며 살인이며 우상숭배이다.

영적으로 음행을 저지른 순간 우리는 주님을 죽인 살인자가 된 것이다. 우리의 음행으로 예수께서 그 음행의 죄값을 치루기 위하여 이땅에 제물로서 죽으러 오셨기 때문이다.

부부간의 성행위는 자녀를 낳기 위해 필요한 것이며 아름다운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촬영하여 사고 팔며 상업화하는 순간, 하나님께서 주신 아름다운 성이 포르노가 되는 것이며 강도의 소굴로 변하는 것이다.

이러한 포르노를 통해 아내인 우리가 남편되신 주님을 머리로 모시지 않고, 내 뜻대로 내가 원하는대로 살아가는 것이 그렇게 포르노와 같이 더러운 짓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선악지식나무를 먹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머리됨을 부인하고 내가 머리가 되겠다고 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주권을 찬탈한 것이다.

그런데 주님은 요한복음 15장 포도나무의 비유를 통해 우리가 주님께 붙어있지 않고 떨어져 나가는 순간 아무 열매도 맺을 수 없고 결국 말라 비틀어져 불 속에 던져진다고 하신다. 그런데도 성령이 없는 짐승과 같은 인간들은 자기 주권을 찾겠다고, 인권을 회복하겠다고 하면서 자기가 머리가 되려고 한다. 이것을 성경은 주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것으로 죽음이라고도 하고 이를 행음 또는 이혼이라고 한다.

주님은, 인간이 결코 남편과 아내를 나눌 수 없으며, 말라기에서 주님은 이혼하는 것을 미워하신다고 한다. 고멜과 같이 끊임없이 남편을 버리고 음행을 저지르는 우리를 계속해서 다시 데려다놓고 자식을 낳게 하며 나중에는 예수님이 은 30에 팔린 것과 똑같은 속전(보리 한 호멜 반, 은 열다섯)을 주고 고멜과 같은 우리를 마귀의 노예시장에서 값주고 사오셔서 살려내시는 주님. 그분은 어떤 댓가를 치르고 다시 데리고 올지언정 결코 이혼을 원치 않으신다.

그러나 우리의 입에서는 조금만 맘에 들지 않으면 헤어지자는 소리가 거침없이 나온다. 그리고 각방 쓰는 것이나 별거도 쉽게 하며 심지어 이혼하고 재혼하는 일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특히 부모들이 며느리나 사위가 맘에 들지 않으면 자녀들에게 이혼을 강요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끔찍한 범죄인 줄 모르고...

유대인들은 결혼을 ‘성화’(sanctification)로 생각한다. 남편인 주님과 아내인 교회가 점점 더 가까와 지고 하나가 되어가는 과정을 성화라고 하듯, 부부의 사랑이 점점 더 성숙해지고 하나가 될 수 있는 과정이 결혼생활이기 때문이다.

▪️양다리 걸친 종교생활 = 음행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찌니라 하니 백성이 한 말도 대답지 아니하는지라”(왕상 18:21)

고린도전서 6장에서는 그리스도의 지체와 창기의 지체를 말씀한다. 우리가 열심히 성경대로 살려고 애를 쓰면 나중에 큰 상급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하는 모든 종교적 행위들이 바로 창기의 지체를 만드는 것이다. 성경은 우리의 의를 이루기 위해 힘쓰는 것이 주께 힘써서 반역하는 것이라고 한다(롬 10:2-3).
다윗을 보면, 그는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범할 때에도 철저히 율법을 지켰다. 율법에 월경을 하는 여인을 부정한 여인이라고 한다(겔 18:6, 22:10, 36:17). 그래서 생리 중에 있는 여인과 관계를 하면 안 되었다. 사무엘하 11장을 보면, 다윗이 유부녀인 밧세바를 보고 음행하려고 하는 순간에도 그녀가 부정한지를 살핀 후 부정하지 않음을 알고 했던 것이다.

“다윗이 사자를 보내어 저를 자기에게로 데려 오게 하고 저가 그 부정함을 깨끗케 하였으므로 더불어 동침하매  저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삼하 11:4)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도 다윗처럼 열심히 주일에 교회에 가서 탈진하도록 봉사하며 매일 새벽예배도 빠지지 않고 나가며 성경 말씀대로 순종하며 사는 것 같지만, 사실 다윗처럼 자기의 욕심을 버리지 못해서 그렇게 열심히 자기가 생각하는 선을 행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다윗처럼 정작 마음은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면서 입으로는 주님을 사랑하며 주님을 위해 살기 원한다고 잘도 거짓말을 한다. 간음을 하면서도 율법을 철저히 지킨다. 주일 성수와 십일조 생활 등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남들보다 모범적이며 성실히 교회생활을 한다.

그런데 그러면서 자신의 민낯인 음행을 감추기 위해 살인을 저지른다. 가짜 남편이 진짜 남편을 죽인다. 이는 우리의 음행으로 인해 우리의 신랑이신 주님을 죽이게 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이 인생이며 이것을 들추어내는 것이 빛이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고멜과 다윗과 같은 음란한 음녀라는 것을 드러내시기 위해 주께서 오신 것이며, 바벨론과 애굽 즉 옛 성전이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것을 알려주러 오신 것이다. 그리고 구원자라는 예수와 똑같은 이름의 호세아 선지자의 삶을 통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음란한 우리를 대신해서 값을 치르시고 흠없고 정결케 해서 신부로 삼으신다는 것이 계시록과 성경 전체의 내용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도 열심히 충성하고 봉사해서 상급을 받겠다고 발버둥친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당신이 지극히 큰 상급이라고 하셨고(창 15:1), 성전에서 봉사하는 레위인들에게는 하나님이 그들의 기업이라고 하셨다(신 10:9). 하나님보다 더 큰 상급이 어디에 있으며, 더 좋은 기업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가지는 나무에 붙어있기만 하면 된다. 이제는 제발 우리 자신이 스스로 무언가 할 수 있다며 긍정적 사고방식을 갖고 자기 의식을 개발하며 머리가 되려고 하는 음란한 마음을 버리자. 

우리 자신이 현장에서 잡힌 간음한 여인이라고 밝히 드러내시는 말씀 앞에서 나는 아니라는 거짓말을 하고싶은 유혹을 뿌리치고, “제가 죄인 중에 괴수입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도록 성령충만함을 위하여 기도하자.

†he 2nd Life Foundation 뉴 욕 퀸 즈 교 회            
Pastor Esther Soo-Gyung Kim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As for me and my house, we will serve the LORD!
(Joshua 24:15)

김수경목사  kimsoogyu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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