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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칼럼] 기쁨으로 섬기는 자가 정말 아름답다[이승희 목사의 CDN 성경연구] (16) 봉사(奉事)
NC. Cumberland University(Ph.D.), LA. Fuller Theological Seminary(D.Min.Cand.) , 총신대학교 일반대학원(Th.M.), 고려신학대학원(D.Min.), 고신대학교 신학과(B.A.), 고신대학교 외래교수(2004-2011년)현)한국실천신학원 교수(4년제 대학기관), 현)총회신학교 서울캠퍼스 교수, 현)대광교회 담임목사(서울서부노회, 금천구

1. 섬김의 하이라이트 '발 씻기심'

빅토리아 시대의 대표적 화가 Ford M. Brown의 ‘베드로의 발을 씻기는 예수님’이라는 작품이 있다. Victorian이라는 말은 ‘빅토리아조 풍의’ ‘빅토리아 시대의 사람 같은’ 뜻 외에 ‘오만 편협 인습 엄격 점잔 체면치레 흠잡기 물질주의를 특징으로 한다’는 의미로 경멸적으로 사용된다. 그 시대의 작품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예수님의 모습은 왕으로서 왕관을 벗으시고 대신 하인으로서 수건을 허리에 두르신다. 무릎은 꿇고, 머리는 숙이고, 두 손으로 정성껏 발의 물기를 닦아주고 있다(요 13:1-20). 섬기기 위해 오실 예수님의 하이라이트는 자신의 생명을 희생제물로 드리는 것이었다(막 10:45). 헬라인들은 섬김을 품위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 예수님이 제자들 앞에 무릎을 꿇고 발을 씻기는 것은 품위가 떨어지는 행동이라 치부한다. 왜냐하면 섬기기 위해서 아니라 지배하고 섬김을 받기 위해 태어났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헬라인들이다. 그들이 섬긴다고 할 때는 오로지 자신의 발전을 촉진시키거나 혹은 국가에 대하나 섬김의 경우 전체 발전을 촉진시킬 때에만 가치를 지니게 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예수님의 섬김은 당시 유대인인 제자들은 물론이거니와 헬라인들에게 충격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

<Jesus Washing Peter’s Feet>, 포드 브라운 Ford Madox Brown(1852&#8211;6)

세족식을 뜻하는 Maundy는 ‘계명’을 뜻하는 라틴어 Mandatum에 기원을 둔다. 계명은 한시적이고 일회적으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실천해야 하듯이 세족식은 어떤 전시성 행사에 등장하는 이벤트가 되어서는 안 된다. 끊임없이 낮아짐과 섬김의 중요성을 나타내는 세족식의 참된 의미는 일상의 실천이 되라는 뜻이지 순간의 이벤트로 외식해 드러내라는 의미가 아님은 분명하다. 섬김이 일상이 된 사람이 하인이다.

하인에 해당하는 ‘디아코노스’는 섬김 또는 봉사를 뜻하는 ‘디아코니아’와 같은 어원을 두고 있다. 전자에서 집사라는 말이 생겼다. 이 말은 종, 하인, 다른 사람에게 시중 드는 사람, 심부름을 하는 사람을 뜻한다. 이 모두 섬기는 자들이다. 17세기 네들란드 화가인 페르메이르가 그린 ‘우유를 따르는 여인’이 바로 그런 작품이다. 이 여인도 제자의 발을 씻기시는 예수님처럼 고개를 숙이고 두 손으로 우유를 붓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하녀가 준비하는 메뉴는 빵과 우유다. 유당을 분해하려면 락타아제라는 효소가 필요하다. 전 세계에 소화 문제없이 우유를 마실 수 있는 성인의 비율이 10%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네들란드는 우유를 소화할 수 있는 DNA를 가진 성인 비율이 90%에 이른다. 제대로 섬기고 있는 셈이다.

<The Milkmaid>, Johannes Vermeer(1658)

한글성경에서는 ‘직분’가 단수지만 헬라어성경은 ‘직분’이라는 뉘앙스보다 복수 형태로 διακονιῶν(디아코니온), 즉 ‘섬김들’이다. 섬기는 방식의 공통적인 근원이 한 분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직업으로 말하면 직이 아닌 업이다. 한자로는 '직분(職分)'과 '업(業)'이 합쳐진 말이다. 즉 '일자리'와 '일거리'가 한데 어우러진 개념이다. 그런데 우리의 관심은 오로지 전자에만 맞춰져 있다. 전자는 직위 내지 자리이고 후자는 스스로에게 부여된 과업이다. 디아코니아는 직책이 아니라 과업이다. 섬기는 것이다. 은사는 활용하는 사람 또는 섬기는 사람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다(비교. 14:4). 성령이 각 사람에게 분배한 은사와 그 은사를 따라 섬기는 자는 자신이 아닌 공동체를 향한 것이고 이웃을 향한 것이다.

국제 네트워크 사역(Network Ministries International)의 설립자이자 회장인 Bruce Bugbee는 책 ‘Discover Your Spiritual Gifts The Network Way’에서 “은사를 받은 대로 봉사할 때 우리는 능력의 종이 될 수 있고, 하나님의 능력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으며, 그들로 하여금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을 느끼게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2. 섬기는 방식은 다양한 것을 인정하라

고대 종교에서 볼 수 있는 성직자과 일반신자(priesthood-laity) 사이의 구별을 없애면서 종교적 공동체의 일원이 각각 한 몸 안에 특별한 기능을 갖고 있는 이미지를 제시한 것은 바울이 처음이다. 다양성 속의 통일성에 대한 바울의 강조는 거룩한 성삼위 하나님 한 분의 본질에 근거한다. 바울은 하나님이 다양성 속의 통일성이라는 방식으로 나누어 주신 은사들의 일관성을 강조한다. 여기에는 경쟁 혹은 비교가 있을 수 없다.

교회에서 은사라고 말하는 것을 밖에서는 재능이나 능력이라고 표현한다. 강점이라고 할 수 있다. 세상 사람들은 공부면 공부, 일이면 일, 운동이면 운동 어느 하나 못하는 게 없으면 모두들 부러워하는 선망의 대상이다. 바울이 고린도전서 12장과 로마서 12장에서 은사의 통일성(unity)과 다양성(diversity)을 설명하기 위해 몸의 이미지를 사용하는 것은 고대 세계에서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바울이 이런 비교를 일반적인 환경에서 취하여 교회 공동체를 설명할 때 사용하였다. 고린도전서 12:12-31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인 개개인을 몸의 지체들에 비교한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인 것은 분명하다. 몸은 분명 하나이지만 여러 지체로 구성되어 있다. 몸이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각 지체가 유기적으로 각자의 기능을 잘 감당해야 다이나믹하게 살 수 있다. 가령 한 몸에 속한 지체들 가운데 핏줄은 막혀 있고, 혈압은 높고 당뇨지수가 높으면 몸이 제 기능을 할 수 없다. 이로 보건데 몸의 통일성(unity)이라는 것은 몸을 이루고 있는 지체들이 각자의 기능이 원활하게 움직일 때, 즉 다양성(diversity)이 제대로 작동할 때 가능하다. 교향악의 3대 요소로 첫 번째 꼽는 것이 다양성(diversity)의 원리이다. 교향악은 여러 악기로 구성된다. 그리고 그 악기마다 소리가 각각 다르다. 현악은 현악의 소리를 내고 관악기는 관악 소리를 낸다. 아름다운 조화와 통일을 이룬다. 다양성(diversity)이 통일을 이룬다.

교향악의 한 장면

 

3. 예수님은 우리로 다양하게 섬기게 하신다.

그리스도인은 어떤 영적 은사를 소유한 그리스도인이냐 하는 존재(됨됨이)보다 오히려 하나님이 주신 은사로 어떻게 섬기느냐, 즉 '그리스도인의 디아코니아'와 깊은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성령의 열매와 다르다. 하지만 Peter Wagner는 ‘Discover Your Spiritual Gifts’라는 책에서 모든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인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면, 그리스도인의 역할과 성령의 열매가 비슷하다고 말한다. '역할'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마땅히 감당해야 할 보편적 의무이지만,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구성원 몇 사람에게만 허락하시는 매우 특별한 능력이다.

교회의 각 지체들은 서로의 섬김과 역할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 다른 지체가 자신과 비교하거나 경쟁해서는 더더욱 안 된다. 몸의 지체가 그러하지 않는 것처럼 교회의 지체들도 서로의 은사 또는 섬김과 강점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 시기하거나 멸시해서는 안 된다. 몸의 통일성(unity)은 지체들의 다양성(diversity)에 있다. 다양성(diversity)에 의해서만 한 몸이 된다. 만약 지체는 많은 데 각자 따로 움직이면 한 몸이라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몸으로 존재할 수 없다. 건강하고 정상적인 몸이라면 각 지체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각자 자신의 기능을 백분 감당할 때 건강한 몸으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나와 다른 사람이나 나보다 더 잘 섬기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인정할 뿐만 아니라 그 사람에게 주신 은사 또는 강점을 존중해야 한다. 날다람쥐처럼 자신이 만능멀티태스킹이라 생각해서는 안 된다. 날다람쥐나 누고재를 아는가? 주변에 날다람쥐처럼 다섯 가지 재주를 가진 사람이 있어도 부러워하거나 비방해서는 안 된다. 사실 날다람쥐가 날고 타고 헤엄치고 파고 달려도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것이 없다. 오서오능(鼯鼠五能)이요, 팔방미인(八方美人)과 비슷하다.

오지랖만 넓어 이것저것 집적대면 결국 큰일을 이룰 수가 없다. 달란트 비유에서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다섯 달란트에 비하면 절반도 안되고 한 달란트를 받은 종에 비해 겨우 한 달란트 밖에 많지 않다. 그러나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자신보다 많이 받은 사람과 비교하며 기가 죽거나 경쟁심에 사로잡혀 우울하지 않았으며 한 달란트 받은 사람과 비교하며 우쭐대지 않았다. 주인이 자신의 능력을 알아주신 것으로 믿고 옆을 볼 겨를이 없이 곧장 나가 장사하였다. 주인이신 하나님도 다섯 달란트를 남긴 종에게 더 잘 했다고 비교하지 않는다. 작은 일에 충성한 것에 칭찬이 있다. 바울은 이것을 믿음의 분량이라고 말한다.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맞는 믿음의 분량을 따라 은사를 주신다. 우리에게는 천부적인 강점들이 있다.

<생각이 내가 된다>, 이영표, 2018.5, 두란노

국가대표 축구 선수 출신인 이영표의 책 ‘생각이 내가 된다’에서 하나님이 주신 사명에 대한 깨달음을 이렇게 설명했다. “나의 사명은 세 딸들의 아빠로서, 한 아내의 남편으로서, 누군가의 친구와 이웃으로서, 축구 선수 이영표로서, 그리스도인 이영표로서 오늘 허락된 이 하루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그의 사명문에서 누구의 지배자나 누구로부터 섬김을 받는 자가 아닌 누군가의 존재로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는 의연한 모습을 보게 된다.

 

 

이승희 목사  titeioslee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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