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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모큐티】만인제사장설에 대한 이해임성모 웨슬리안조직신학연구소장

만인제사장설에 대한 질문을 자주 받는다. 간단히 설명하겠다.

 

1. 구약시대에는 제사장이 있었다. 

2. 신약시대에는 오직 예수님이 대제사장이시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오직 예수님만이 대제사장이시다. 구약의 모든 제사 제도의 완성이다. (히 9: 25-26).

3. 모든 신자는 하나님 앞에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로 말미암아 나아간다. 구약적 제사장과 제사 제도는 무용하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신자는 제사장이다 (벧전 2: 9). 그리스도를 통해 직접 하나님 앞에 나아간다는 뜻이다. 거룩한 제사장 백성이라는 뜻이다. 경배하며 사는 백성이란 의미다. 

4. 당연히 목회자도 제사장이다. 그러나 목회자만 제사장은 아니다. 모든 신자가 제사장이듯 목회자도 제사장이다. 그렇다면 목회자가 다른 신자와 구별되는 점은 무엇인가? 
목회자는 설교하고 가르치고 성례전을 집행하는 제사장이다. 목회자가 없으면 교회는 중구난방이 된다. 교회가 산으로 간다. 

5. 목회자는 설교와 가르침을 잘하고 성례전을 온전하게 행하는 것에 전력투구해야 한다. 그게 목회자다. 다른 것을 아무리 잘해도 일차적인 임무를 잘 수행하지 못하면 존경도 권위도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6. 목회자는 권위주의에 사로잡혀 자신만을 제사장과 일치시키는 비성경적 주장을 하지 말아야 한다. 평신도는 만인제사장설을 오해하여 목회자 없이 교회가 운영될 수 있을 것 같은 엉뚱한 망상에 사로잡히지 말아야 한다. 

7. 교회내 직분이 서로 다르다. 계급은 아니지만 서로 다르다. 모든 신자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끼지' 이르러야 한다 (엡 4: 1-16).

임성모 웨슬리안조직신학연구소장

◆초대교회는 로마제국에게 대단한 위협이었다. 데모를 해서가 아니었다. 사회구조 개혁을 추구해서가 아니었다. 초대교인들이 로마제국과 전혀 다른 삶의 양식(사랑, 섬김, 약자에 대한 배려, 용서, 예수님만이 유일한 왕 등)을 실천했기 때문이었다.

전무후무한 초대교회의 삼위일체적 삶의 양식은 오랜 탄압에도 불구하고 점점 확산되어 갔다. 결국 견디다 못한 로마제국은 기독교를 껴앉아 로마 문화에 동화시켜 버렸다. 교회는 서서히 복음적 삶을 잃어버렸다. 그리스도인답게 살려는 이들은 사막으로, 수도원으로 후퇴했다. 세속화된 중세 교회에 반기를 들고 초대교회적 복음과 삶으로 돌아가자고 한 게 종교개혁자들이다.

얼마전 가톨릭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어떻게 된 게 개신교가 중세 가톨릭 같으냐. 감독 선거, 총회장 선거 때 엄청난 금품이 오고 간다며?"

내가 속한 교단 감독회장 대행을 곧 선출한다. 그리고 차기 연회 감독 후보자들이 왕성하게 선거권자들을 접촉하고 있다. 연회에서는 벌써부터 현금봉투를 돌린 후보자 얘기가 돌고 있다.

지금 한국 교회는 초대교회와 전혀 다른 의미에서 사회에 위협이 되고 있다 (사회가 더 낫다거나 모든 개교회가 다 그렇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신학교를 중퇴하겠다며 학생이 말했다. “학교에는 자유주의 신학과 신비주의만 남았습니다. 배울만한 신학이 없어요.” 듣던 이들이 다 놀랐다. 둘 사이에는 큰 간격이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유주의 신학은 필연적으로 신비주의에 빠진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자유주의 신학은 이성을 부정적으로 활용한다. 기독교 교리를 부정하는 데 주안점을 둔다. 삼위일체니 성육신이니 예수의 신성이니 다 부정해 버린다. 따라서 신앙이 남아나질 못한다. 따라서 신앙을 최소한 지키려 발버둥치는 이는 또는 신앙은 없더라도 목회를 하려고 하는 이는 신비주의에 매달린다. 남미해방신학자들이 사회학적 신학을 하다가 피곤해지자 영성을 중시하게 된 것과 비슷하다.

둘째, 자유주의 신학에 거부감을 갖고 있는 이는 일찍부터 경험에 매달린다. 누가 뭐라해도 독특한 체험이 그를 지탱해주는 힘이다. 문제는 자신의 체험을 해석할 수 있는 신학적 틀을 갖추지 못한 채 졸업한다. 신학에 대한 부정만 배운다. 신학 폐기론자가 된다. 성서와 교리에 대한 체계적 이해 없이 목회를 시작하게 된다. 지식이 없으므로 설교와 가르침이 온통 경험 얘기다.

꽤 잘나간다는 목사 설교를 들어봤다. 하나님 음성을 직접 들었다고 주장했다. 나는 혀를 찼다.

간곡히 부탁한다. 제발 그런 흰소리는 이제 중단하자. 그런 체험이 있다하더라도 강단에서 그런 얘기는 이제 그만하자. 목사의 권위는 체험에 있지 않다. 그렇다면 신비주의 체험이 많은 집사 권사가 더 권위가 있단 말인가? 

목사의 권위는 일차적으로 설교의 권위다. 체험으로 권위를 세우려 하지 말고 성서 공부 처음부터 다시 하기 바란다. 교리 공부도 기초부터 다시 시작하고...

◆교인 숫자가 너무 적거나, 숫자적으로 대형 교회가 되었을 때 둘 다 목회자에게 위기다.

전자의 경우, 목회자가 자신감을 잃거나 침체되기 싶다. 후자의 경우, 목회자가 교만해지거나, 성취감 이후 허무 때문에 잘못된 쾌락에 몰입하거나, 지나친 스트레스 때문에 무력해지기 쉽다.

작은 교회 목회자는 교회 작은 것을 신학적으로 사회학적으로 변명하지 말고, 교회 부흥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부흥은 다양하게 찾아온다. 그러나 부흥은 필연이다. 큰 교회 목회자는 큰 교회와 자신을 identify하지 말아야 한다. 목회자는 주님의 도구일 뿐이다.

교회가 작으면 더 기도할 기회가 된다. 교회가 크면 더 겸손을 가다듬을 계기가 된다. 어느 곳이든 하나님 앞에 성숙하는 기회를 삼자. 교회가 작아서 또는 커서 자기 영혼을 잃어버리지 않기를!

목회자는 오직 설교와 가르침과 성례전을 위해 부름 받았다. 다른 모든 것은 부차적이다. 다른 것은 다소 부족해도 괜찮지만 설교와 가르침과 성례전 집행이 미숙한 것은 용납이 안된다. 최고 수준이 될 때까지 갈고 닦아야 한다.

목회자가 자신의 임무와 책임을 망각하고 교단 정치하러 다니고 사회 운동하러 다니고 놀러 다니는 것도 문제다. 설교와 예배 준비와 목양에 최선을 다하고 남는 시간에 그런 일도 하기 바란다. 교회는 이름만 걸어놓고 정신은 다른 데 팔려 있는 삯군 목자들이 되지 않도록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임성모  webmaster@bonh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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