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노아에게 육식을 허락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A. (창 9:3-4) 모든 산 동물은 너희의 먹을 것이 될지라 채소 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째 먹지 말 것이니라

성경에서 명시적으로 표현되어 있지만, 의미를 명확하게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분명한 것은 노아에게 육식을 허용한 것입니다. 먼저 말씀을 기준으로 이전에 육식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창 1:29 참조)고 상상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너무나 심한 육식(피채 먹음)을 금지한다고도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노아에게 분명하게 육식을 허용한 것을 인정하면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영양분은 단백질과 지방이 필요합니다. 인간은 지방을 에너지로 삼는데, 지방을 탄수화물을 섭취하면서 발생시킵니다. 성경에서 육식을 허용하는 것은 단백질 영양소를 섭취하도록 유도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지방은 탄수화물 섭취를 통해서 축적시키도록 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채식주의자들은 지금도 식물성 단백질에서 충분히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단백질은 아미노산과 관계되어 있습니다. 식물성 단백질에서 우리 몸에 필요한 9가지 아미노산을 충분하게 취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동물성 단백질을 의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인간 몸의 구조 변화를 쉽게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성경에서는 피가 있는 육식을 금지했고, 동물성 지방 섭취 등은 금지 혹은 제한시켰습니다.

이러한 이해는 현존 생태계와 노아 이전의 생태계의 다름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좀 재미있는 이야기인데, 공룡 티라노사우로스는 대표적인 육식 파충류입니다. 동물 간 상호 육식 허용에 대한 이해도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성경에서 보면 노아 홍수 이후에 사계절 구조가 형성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창 8:22).

저는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육식을 허용한 것은 인간을 위한 배려라고 이해합니다. 그러나 그 조치에는 위험한 가이드라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구원 사역을 성취하신 지금은 음식 규례가 사라졌습니다. 먹고 마시는 것은 구원과 관계가 없습니다(롬 14:17-18), 그러나 복음의 사람은 온유와 절제의 덕을 함양시켜야 합니다. 우리는 피채 먹는 선지국이 있고, 육식에는 피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슬람 할랄(Halal)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지만, 소고기에는 피채 먹을 것입니다. 음식규례를 정확하게 지키는 집단은 유대인들입니다. 코셔(Kosher)라고 하여 돼지는 전체, 소는 피를 뺀 일부분만 육식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불교, 안식교는 육식 자체를 금지합니다. 육식은 인간에게 힘을 제공하는 필수적이고 좋은 영양소입니다. 그러나 과욕은 스테미너를 급속하게 올릴 수 있지만 여러 부작용으로 몸을 헤칠 수 있습니다. 음식에 대한 탐심도 죄의 한 모양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유익을 위해서 허락하신 법을 겸손하게 준수해야 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인간이 자기 생을 활기차게 영위하시길 원하십니다. 그러한 인생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균형잡힌 영양분 섭취입니다. 육식은 변화된 환경에서 필요한 영양분을 섭취할 수 있는 방편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육식을 허용하셨지만, 인간이나 짐승의 생명을 가볍게 여기지 않도록 명령하셨습니다(창 9:4-7). 그것인 사람이나 짐승도 생육하고 번성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경륜은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입니다. 창조의 복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가득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질서에 순종할 때 주시는 복은 생육과 번성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질서를 거부한다면 이 땅에서 생육과 번성이 쇄하여 질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하나님의 질서를 거부하는 유럽에서 나타납니다. 자녀를 출산하지 않는 유럽인들은 축소되고, 자녀를 적극적으로 출산하는 이슬람 교도들은 증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노아 언약은 보편 언약으로 분류합니다. 노아 언약 뒤에 아브라함 언약은 구속적 언약입니다. 보편 언약은 모든 인류에게 해당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섭취하는 음식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절제와 생명 존중을 요구하셨습니다. 어떤 생명이든지 경시하는 것은 하나님의 질서를 거부한 것입니다. 돼지고기를 먹지만 마음껏 섭취하는 탐욕과 즐김의 산물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영양소로 생각하는 것으로 제언하고 싶습니다.

우리시대에는 축산업이라고 해서 기업영농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적정 면적 등을 논의한다할지라도 체계적으로 비육되는 짐승은 인간에게 유익을 목표하는 것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재화획득을 위한 음식물이 인간의 몸에 섭취되는 것은 생명에 대한 경시의 한 모습일 것입니다. 그래서 농민은 기업농업이 아닌 가족농업으로 구성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채소밭이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갈아엎는 모습도 참으로 가슴 아픈 일입니다. 생산된 식물이 경제 가치로 산출하는 것은 생명 또한 경제적 가치로 계산할 것이라는 풍토임을 증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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