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거역하고 부인하는 자들

 

최종인 목사, 평화교회담임, 성결대, 중앙대석사, 서울신대박사, 미국 United Thological Seminary 선교학 박사, 공군군목, 성결대학교, 서울신학대학교 외래교수

현대인에게 정신건강이 중요함은 많은 연구결과에 나와 있다. 또한, 성도들의 삶이 정신적 충격에 노출되기 쉽다는 것과 정신건강이 영적 건강과 직결되어 있음을 누구든지 느낄 수 있다.

따라서 성도들은 본인의 육체적 건강뿐 아니라 정신건강을 위해서도 관심 두고 불필요한 것은 과감히 거절하고 좋은 것은 따라가도록 애써야 한다. 시편 2편에는 어리석은 자의 모습이 나온다. 우리들의 정신건강을 위해 피해야 할 모습이기도 하다. 우리가 피해야 할 어리석은 자는 누구인가?

 

분노하는 자들이다. 여기서 열방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이방 민족들을 지칭한다. 분노한다는 것은 히브리어 ‘라가쉬’로 음모를 꾸민다. 반역을 꾸민다는 단어이다. 즉 하나님을 등지고 거역하는 자들을 말한다. 신앙은 정신건강에 많은 유익을 준다. 찬송이나 기도가 마음을 상쾌하게 하고, 예배드림이 마음에 안정과 평안을 주는 것은 이미 익히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는 하나님을 부인한다. 그러니 그의 마음에 평안이 없고 불안이 가득한 것이다. 헛된 일을 꾸미는 자들이다. 헛된 일에 해당하는 ‘리크’는 헛되고 가치 없는 것이다. 꾸민다는 것은 입으로 중얼거리며 무언가를 깊이 생각하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본문에 나오는 이 단어는 미완료형으로 하나님 나라를 방해하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세력들의 집요함을 보여준다. 헛되고 가치 없는 것을 계속 생각하는 것은 정신건강에 절대 해롭다.

자기의 세력을 믿고 나서는 자들이다. 분노하고, 헛된 일을 꾸미는 자의 실체이기도 하다. 즉 그들은 세상의 군왕들이며, 관원들이다. 시편 본문은 2절의 세상의 군왕과 4절의 하늘에 계신 이를 대조하여 보여주고 있다. 세상의 군왕들이 많은 사람을 통치하는 권력자들이지만 결국 땅에 속한 자라는 한계가 있다. 절대 주권을 가진 하나님의 피조물인 주제에 거룩하신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이다.

자신의 한계를 모르는 인생은 정신건강에도 해롭다. 서로 꾀하는 자들이다. 세상의 군왕들과 함께 역시 세상의 관원들이 나서서 모의하며 대적하는 것이다. 본래 관원들은 무겁다. 유력하다. 중요하다는 뜻의 ‘라잔’에서 나온 명칭이다. 그만큼 중요하고 유력한 인물들이 그 힘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도리어 반역을 꾀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지 않은가?

자신들의 힘으로 자유롭게 살려는 자들이다. 그들은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버리자’라고 모의한다. 하나님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스스로 자유롭게 살고자 하는 악한 의도를 보여준다. 인간은 조금 성장하고 살만하게 되면 하나님의 은혜에서 벗어나 죄를 지으며 마음대로 살려는 성향들이 있다. 그런 인생들은 절대 정신적으로 안정을 얻을 수 없다.

이런 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대응은 무엇인가? 첫째는 웃으시고, 비웃으신다(4절). 하나님의 관점에서 인간이 대적하고 반역하며, 하나님의 계획에서 벗어나려 하는 행위들은 가소롭다는 것이다. 둘째로 분노로 그들을 놀라게 하신다(5절). 셋째로 심판하신다.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리며, 질그릇같이 부수신다(9절). 넷째로 깨닫게 하신다. 지혜를 얻어야 하며, 교훈을 받으라고 권하신다(10절). 무거운 교훈으로 받아야 한다.

어리석은 자의 특징을 보면서 현대에도 비슷한 사람들이 많음을 느낀다. 하나님은 어리석은 자들을 잠깐 지켜보시며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지만, 그가 돌아오지 않을 때는 심판을 단행하신다. 하나님을 떠나고 거역하는 자는 마음이 편안할 수 없다. 늘 불안하고 안정이 없다. 정신건강에 가장 해로운 것은 불안정한 마음이니 속히 회개하고 돌아와 평안을 누려야 한다. 어리석은 자들은 교회 안에도 있다.

사도 바울이 분토와 같이 이미 버렸던 세상의 지식과 명예와 욕심을 현대교회는 오히려 붙들고 내려놓을 줄 모른다. 어리석은 자는 다름 아닌 나의 모습이다.

하나님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내 힘으로 살려고 얼마나 애쓰는가? 잠시 형통할 때는 자기 생각이 옳은 줄로 착각한다. 결국,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의 때에 어리석음을 깨닫는다. 3500여 년 전의 다윗의 시가 오늘을 비추어줌에 새삼 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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