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1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시편은 의인과 악인, 복과 저주가 계속해서 대조되어 나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며 정직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은 사람은 의인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하며 자기 뜻대로 사는 사람은 악인으로 구별되어 나옵니다.

성경에는 "복"이라고 번역된 것이 몇 가지가 있는데, 시편 1편과 마태복음 5장 산상수훈에 쓰인 "복" (에쉬어"אֶשֶׁר")은 "~을 했을 때에 받는 결과"를 말합니다. 즉 산상수훈에 나온 것처럼 "~을 하는 자가 복이 있다"라는 의미로 쓰인 용어입니다. 즉 인간이 어떤 행동을 취했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거기에 대한 댓가(상)를 받는 복을 말합니다. 따라서 시편1편에 쓰인 "복있는 사람"은 앞으로 복을 받을 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복을 받은 자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들을 말하며, 이렇게 복을 받은 사람은 필수적으로 어떠한 언행을 해야한다는 전제 조건이 들어갑니다.

우리의 언행에는 소극적인 면과 적극적인 면이 있는데, "~을 하지말라"는 명령에 의해 "~을 하지 않는 것"은 소극적인 것이고, "~을 하라"는 명령에 따라 "어떠한 행동을 취하는 것"이 적극적인 것입니다. 시편 1편1절에는 3가지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나옵니다. 그래서 오늘은 1절을 통해 복있는 사람이 취해야 할 소극적인 부분을 살펴보겠습니다.

시편 1편1절에 보면, 복있는 사람의 행동 중에서 소극적인 3가지 면을 순서대로 나열하고 있습니다. 3살 버릇이 80까지 간다는 속담이 있듯이 우리의 습관은 반복되는 행동에서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사람은 행동하기전에 먼저 생각을 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생각한 대로 행동하게 되며 그 행동이 반복되면 그것이 습관이 되는 겁니다. 1절에 나와있는 단어들을 이러한 원리로 대입해보면, 악인의 꾀는 '생각'이며, 죄인의 길은 '행동'이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는 것은 '습관'을 말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생각과 행동과 습관을 조심해야 하는데, 이렇게 조심하는 것을 소극적인 행동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복있는 사람의 소극적인 행동 3가지를 살펴봅시다.

첫째로 복있는 사람은 생각을 조심해야 합니다.
한국 성경은 "악인의 꾀"라고 번역하고 있는데, "꾀"라는 말은 "모략, 상담, 의견, 충고, 목적, 의도"(counsel, advice, purpose) 등의 뜻을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악인의 충고나 악인의 지혜나 악인의 목적은 모두 하나님과 관계가 없는 것이므로 아무리 세상적으로 지혜스럽고 좋은 의도를 갖고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꾀"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복있는 사람은 세상의 지혜나 지식, 문화, 사고방식, 상식, 충고 등을 따라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악인의 계획에 함께 동참하지 않습니다.

잠언 1장10절을 보면 "내 아들아 악한 자가 너를 꾈찌라도 좇지 말라"(잠 1:10)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복이 없는 사람들은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께 먼저 기도하며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찾지 않고 세상의 카운셀러를 찾아다니거나 자기의 문제를 해결해 줄 사람들을 찾아다니느라 매우 분주합니다. 그래서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하면서 자기를 도와줄 사람들을 찾아다닙니다. 따라서 이런 사람은 삶 속에서의 우선순위를 다시 정립해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할 때에 우리들의 의식주 문제를 해결해주실 뿐만이 아니라 더하여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우선순위가 잘못되어 있기 때문에 자기가 원하는대로 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할 것은 먹고 사는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먼저 채워져야 하는 것입니다. 요한3서2절에서도 말씀하고 있듯이 우리의 영혼이 잘 되어야 범사가 잘 되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제일 먼저 생각이 복을 받아야 합니다.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팔게 된 것은 마귀가 그에게 생각을 넣어주었고, 그 생각대로 행동에 옮겼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복있는 사람은 행동을 조심해야 합니다.
"죄"라는 것은 "과녁에서 빗나갔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과녁에서 많이 빗나갔건, 아주 조금 빗나갔건 조금이라도 빗나갔으면 "죄"입니다. 따라서 "죄인"은 과녁 즉 하나님의 율법에서 조금이라도 빗나간 행동을 하는 것, 즉 불순종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우리는 살인과 같은 큰 죄를 지어야만 죄인인 줄로 착각하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는 사람이 바로 죄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뜻이 아닌 내 뜻대로 또는 세상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죄인의 길에 서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못된 생각이 떠올랐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면 생각에서 끝납니다. 마귀가 아무리 우리에게 생각을 넣어줄지라도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가운데 말씀위에 굳게 서있다면, 예수님처럼 말씀으로 마귀를 물리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씀의 검, 성령의 검으로 우리는 순간순간 우리를 넘어뜨리기 위하여 생각을 넣어주는 마귀를 대적하고 쫓아낼 수 있는 겁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여러분의 마음 속에 어떤 생각이 떠오를 때에 그것을 말씀에 비추어 볼 수 있다면, 그것이 성령께서 주시는 것인지 마귀가 주는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먼저 생각을 조심하게 되면 우리의 행동을 조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잠언 4장23절을 보면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으며, 잠언 3장7절을 보면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찌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찌어다"라고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행동을 조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리의 마음이 예수님을 우리의 주인으로 모시고 성경말씀으로 가득 채워야만 우리 스스로의 생각을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악을 행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셋째로 복있는 사람은 습관을 조심해야 합니다.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다"에서 "오만"이라는 말은 "자랑하다, 과장해서(부풀려서) 말하다, 무례하다, 오만하다, 경멸하다, 조롱하다, 비웃다, 무시하다"(to scorn, make mouths at, talk arrogantly to boast, scorn, mock, deride, to be inflated, scoff, act as a scorner, show oneself a mocker) 등의 의미입니다.
"앉다"라는 말은 편안한 자세를 말합니다. 자랑하고 과장하고 다른 이들을 대할 때 무례하게 말하고 비웃고 무시하는 말과 행동을 하는 것이 이미 몸에 베어서 아주 자연스럽게 습관적으로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한 언행을 해도 전혀 불편하지 않은 상태를 말합니다. 또한 그러한 습관을 가진 사람들과 어울려서 그러한 말과 행동을 즐기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것은 바리새인의 기도에서, 그리고 그들의 예수님을 향한 비난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18장 11-12절을 보면 바리새인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바리새인들은 자기들만 거룩한 사람처럼 생각하면서 다른 이들과 따로 서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기도의 내용을 살펴보면 자신의 죄와 허물에 대한 고백은 없고, 다른 이들의 허물만을 들추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에 대해서는 하나님 앞에서 감히 자랑을 늘어놓고 있습니다. 이 모습은, 겉으로는 기도하는 모습이지만 결코 기도하는 모습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의인은 한 명도 없다고 말씀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기는 의롭다고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정면으로 대결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렇게 바리새인처럼 다른 이들을 낮추고 무시하고 비난하면서 자신이 올라가려고 하는 이들이 바로 오만한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다른 이들을 무시하지 않더라도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 때면 자기 자랑을 늘어놓는 사람, 자기를 어떻게 해서든 사람들에게 알리고 인정받으려고 하는 사람, 그리고 그러한 것들이 전혀 불편하지 않고 생활화되어있어서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자연스럽고 그것과 반대의 의견을 들으면 기분이 나쁠 뿐만 아니라 말도 못하게 하는 그러한 사람이 오만한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오만한 자에 대하여 성경은 여러 곳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진실로 그(하나님)는 거만한 자(scorners)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나니"(잠 3:34)
"무례하고 교만한 자(Proud [and] haughty scorner)를 이름하여 망령된 자라 하나니 이는 넘치는 교만으로 행함이니라"(잠 21:24)
"거만한 자(scorner)를 때리라. 그리하면 어리석은 자도 경성하리라. 명철한 자를 견책하라. 그리하면 그가 지식을 얻으리라"(잠 19:25)
"교만한 자가 나를 심히 조롱(derision)하였어도 나는 주의 법을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시 119:51)
여기에서는 "오만한 자"가 "조롱"이라는 뜻으로 쓰였고, 다음 욥기에서도 '조롱'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나의 친구는 나를 조롱(scorn)하나 내 눈은 하나님을 향하여 눈물을 흘리고"(욥 16:20)
"그러므로 너희는 경만한 자(mockers)가 되지 말라. 너희 결박이 우심할까 하노라. 대저 온 땅을 멸망시키기로 작정하신 것을 내가 만군의 주 여호와께로서 들었느니라"(사 28:22)


그러므로 복있는 사람은 먼저 생각을 조심하고, 말과 행동을 조심하며 반복되는 언행으로 말미암아 형성되는 습관을 조심하는 사람입니다. 사무엘상 2장3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심히 교만한 말을 다시 하지 말것이며, 오만한 말을 너희 입에서 내지 말찌어다.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보시느니라"(삼상 2:3)

미국에서 남북전쟁이 벌어졌을 때에 북군 참모진들이 회의를 하는 가운데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서 우리 북군의 편이 되어 승리하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그때 링컨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편이 되어서 도와달라고 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설 수 있도록 각자 회개할 것은 회개하고 각오를 새롭게 하도록 기도합시다."
링컨의 말은 복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오늘 우리가 복있는 사람이 되고싶다면 먼저 우리의 생각을 조심해야 하며 무엇보다 생명의 근원이 되는 우리의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다시 한 번 생각해봅시다.
"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복이 없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아갑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과 다른 새로운 맛에 이끌려서 자꾸만 그것을 따라다닙니다. 그러면서 그것을 "자유함"이라고 착각합니다. 그러다보면 따라다니기만 했는데 어느새 자기가 그 죄인의 길에 서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죄인의 길에 일단 우뚝 서게 되면 아예 그 자리에 자리를 깔고 앉아서 즐기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일단 소극적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다른 세상의 문화와 지식과 법을 따라가지 말고 그것을 쳐다보지도 말아야 합니다. 다윗이 범죄한 것은 먼저 보면서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지금도 우리에게 먼저 보도록 하고 듣게 하고 알아보게 하여서 자기를 따라오도록 부추깁니다. 그리고 한 번 보고나면 또 보고싶어져서 자꾸만 거기에 빠져들어가서 결국 그 자리에 서게 하고 마지막에는 아예 "여기가 좋사오니"라고 하면서 그것을 즐기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생각을 조심하며 행동을 조심하며 습관을 조심하는 가운데 올 한 해가 복있는 사람으로서의 생활로 이어져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기원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삶에 적용해야 할 것들을 생각해봅시다.
 

세상에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복을 받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데 비해 나는 어떠한가?

나도 복을 받기 위하여 교회를 다니며 종교생활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내가 받기 원하는 복과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이 같은가, 아니면 약간 또는 많이 다른가? 다르다면 왜 다르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복을 받고 싶은만큼 성경에서 하라고 명령하는 일들을 잘 하고 있는가?

아니면, 도둑놈 심보처럼 내가 할 일은 하지 않으면서 복만 받기를 원하며 살지는 않았는가?

나는 바리새인처럼 오만한 마음을 갖고 다른 이들을 무시하며 살지는 않았는가?

나는 나를 드러내며 나를 자랑하는 것이 어느새 습관처럼 되어있지는 않은가?

나는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바리새인처럼 하나님과 정면 대결하며 살지는 않았는가?

그러면서도 하나님께서 기도를 응답해주지 않는다고 불평하지는 않았는가?

나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문제를 내가 해결해보려고 동분서주 하지는 않았는가?

나는 하나님보다 사람들에게 더욱 인정받기 위하여 바쁘지는 않은가?

나의 주된 관심 즉 나의 우선순위는 어디에 있는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인가? 아니면 나의 명예인가?

나는 하나님께서 내편에 서달라고 기도하는가, 아니면 매일 매순간 회개하며 정결한 신부로서 하나님 앞에 서기 위하여 애를 쓰고 있는가?

복있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에서 조금이라도 빗나간 일에 동조하거나 적당히 타협했던 것을 과감히 내려놓을 수 있겠는가?

내려놓을 수 없다면 왜 그렇다고 생각하는가?

나에게 닥칠 물질적, 정신적 손해가 두려워서가 아닌가?

그 동안 내 속에 있었던 모든 불의를 지금 모두 주님 앞에 내려놓자. 다른 이들과 경쟁하며 그들보다 더 높아지고 유명해지려고 했던 오만함을 내려놓자. 좁고 협착하여 사람들이 찾지 않는 길로 가라고 하신 그 복된 길을 저버리고 넓고 칭찬을 받고 영광을 받는 멸망의 길로 가려고 했던 모든 악한 생각을 내려놓자.

오늘 여러분이 무슨 생각과 말과 행동을 하건 그때마자 "내가 지금 복있는 사람인가?"를 질문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분명히 어떤 생각과 말과 행동을 해야하는지 정답을 알게 될 겁니다. 악인을 피하십시요. 그들의 말은 듣지도 말고 조금이라도 귀를 기울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악인을 따라가지 않는 것! 그것이 복있는 사람의 소극적인 행동입니다. 오늘은 일단 소극적인 행동부터 시행해 봅시다. "무엇을 하라"는 적극적인 것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하지 말라"는 소극적인 것부터 할 수 있어야 되기 때문입니다.

기도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 오늘도 큰 은혜를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그 동안 제가 생각해왔던 복의 개념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복의 개념이 차이가 있었던 것을 깨닫게 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기복적인 풍습에 젖어있는 저희의 삶 속에서 행함이 없이 그저 복만 받아누리고 싶어서 교회를 다니며 하나님을 믿는 이들이 많은데, 저도 그런 부류에 속했었음을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은혜도 있지만, '복'이란 개념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했을 때에 받아 누릴 수 있는 '상'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으면서 복만 받고 싶은 것이 죄인들이 마음인 것 같습니다. 저 역시 하나님의 말씀에는 별로 관심이 없이 그저 습관적으로 교회를 다니며 교회생활을 했지만, 실제적으로는 성경에 대해 너무 무식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성경말씀을 알고자하는 간절한 마음도 없었습니다. 그저 남들에게 기죽지 않기 위해, 또는 남들보다 많이 안다고 자랑하기 위해 상식적으로 알고싶을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알고있는 상식과 대립되는 성경말씀을 누군가가 이야기하면, 그와 끊임없이 논쟁을 벌였습니다. 그것을 받아들일 마음의 여유가 없었고, 그것을 받아들인다면 제 자신을 굽혀야 한다는 생각에 결코 제 자존심을 구길 수가 없었습니다. 다른 이들의 말을 듣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들의 입을 막은 것이 주님 앞에서 심히 교만한 것이라는 것을 전혀 알지도 못하고 습관적으로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또한 바리새인처럼 하나님과 정면에서 대결할 때도 종종 있었습니다. 그 동안 저는 제가 하나님의 반대편에 서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오늘 깨닫게 해주셔서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은 그렇지만, 지금 세상에 누가 그렇게 말씀대로 사느냐고 하는 말이 큰 지지를 받으며 거기에 따라가지 않으면 미운오리새끼 취급을 당하기에 왕따가 싫어서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왔음을 또한 고백합니다.

온 우주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 아버지보다 제 상황을 해결해 줄 사람들을 찾아다녔던 것도 주님 앞에 내려놓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보다 제 의식주 문제가 더 급급했기에 하나님의 의는 뒷전에 모셔두었었던 저였습니다.

제 속에 너무나 견고한 마귀의 요새가 크게 자리를 잡고 있었음을 고백하오니, 주여 저를 불쌍히 여기사 제 속에 있는 더럽고 추악한 견고한 진을 주님의 말씀으로 산산히 부서뜨려주옵소서. 성령께서 강하게 역사하셔서 제 속에 있는 단단하고 고집스런 굳은 마음을 제하여 주시고, 부드럽고 온유한 주님의 마음으로 변화시켜 주옵소서.

그래서 주 안에서 생각이 복을 받으므로 복있는 자의 언행을 함으로 경건한 습관이 제 삶 속에서 배어나오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저의 변화된 삶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놀라게 하시며, 그들의 입에서 "복있는 자"라는 칭호를 받으며 살아갈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옵소서.

이제는 진정으로 복있는 자로서 먼저 소극적으로 세상을 따라가지 않고, 교만하지 않으며 겸손히 주님께서 하지말라고 하신 것들을 금하며 살기를 원하오니 오늘도 저에게 성령충만함을 허락하여 주셔서 하나님께서 하지말라고 하신 것들을 아무리 하고싶어도 하지 않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넓고 영광스러운 길을 버리고 좁고 협착하여 많은 이들이 꺼리고 가지 않으려고 하는 길, 손가락질 하는 그 길을 기쁨으로 찬송하며 갈 수 있도록 오늘도 저를 이끌어주옵소서.

복있는 자로 저를 불러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와 찬송을 드리며 저주속에 있던 저를 영원히 복있는 자로 바꾸어주기 위하여 저 대신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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