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의 저자는 누가이다. 그는 사도 바울의 동역자이며 의사였고(골 4:14; 딤후 4:11) 사도행전의 저자였다. 누가는 의사의 능력으로 역사를 집필했다.

1. [눅 1:1-4] 데오빌로에게 준 예수의 내력. 누가복음 서문을 보면 누가복음은 첫 복음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당시 그리스도인들이 충만하게 알고 있던 내용(사실, narrative)은 첫 목격자와 말씀의 종들에 의해서 효과적으로 퍼졌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기록하려고 했다. 그 중 누가도 그러한 과정을 기록하여 데오빌로에게 보내주는 것을 필요로 느꼈다. 그것은 데오빌로가 더 확실한 지식을 갖도록 하기 위함이었다(4절).

데오빌로(Theophilus)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하나님의 친구”라는 뜻이기 때문에 고유명사로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뒤에 있는 ‘각하’라는 표현에 로마의 고급관리의 이름으로 추측한다. 누가복음 저술 목적은 한 개인 데오빌로를 목표로 한 것이지만(4절), 데오빌로의 후원(patron)을 받은 것으로 추측한다. 그러나 누가복음은 진리의 말씀이다. 많은 저술들이 있었지만 모두가 정경으로 보존된 것이 아니었다. 1945년에 발견된 도마복음은 정경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 외에 여러 문서들이 있었겠지만 4 복음서로 정경화되었다. 그 외에 문서들은 정경과 같지 않을 뿐더러 교회에 유익하지 않은 문서로 보아야 한다. 그 당시 사역자들은 그 문서 존재를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전혀 언급 없이 정경화 목록만을 발표했다. 교회는 교회의 가르침을 따라 성경으로 신학해야 한다.

누가복음은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을 보았겠지만 요한복음은 보지 못했을 것이다. 또 바울 등의 사도와 전도자들의 서신과 증언들에서 정립시킨 내용으로 생각할 수 있겠다.

2. [눅 1:5-25] 세례 요한 출생 고지. 유대 왕 헤롯 때, 아비야 반열에 제사장 사가랴와 그의 부인 엘리사벳이 있었다(5절). 두 사람은 하나님 앞에 의인이었다(6절). 엘리사벳은 잉태하지 못한 상태로 늙었다(7절). 두 사람은 늙어 아이를 갖지 못할 상태로 스스로와 주변에서 판정받았다. 그럼에도 굳건하게 주를 붙들며 제사장의 반차를 따라서 자기 직무를 감당했다. 사가랴가 자기 반차를 따라서 성전에서 직무를 감당할 때, 주의 사자가 나타나 아들을 줄 것과 이름을 ‘요한’이라고 계시했다(13절). 그리고 요한에 대해서 제시했다(14-17절). 요한은 주의 길을 준비하는 사역을 할 사람이었다(16절).

사가랴는 천사의 고지를 믿지 못했고, 천사는 표징으로 말을 하지 못하도록 했다(18-20절). 성전에서 나온 사가랴가 말을 못하자 사람들이 성전에서 환상을 보았다고 웅성거렸다. 표적으로 믿음을 증거받는 시대였다. 그러나 계시가 충족된 이후에는 표적으로 신앙이 증거되지 않는다. 표적으로 신앙, 경건을 증거하려는 자는 거짓 선생이다. 주의 자녀는 입술에 나온 말(언어)가 증거이다. 그러나 계시가 성취되기 전에는 표적이 계시의 권위로 사용되었다. 그럼에도 표적이 나오면 표적을 행한 사도들은 거기에서 배척당해 떠나야 했다.

이 일 후에 엘리사벳이 잉태했고 다섯 달을 숨어 있었다(24절). 엘리사벳과 사가랴는 임신이 너무 기뻐 그 기쁜 소식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상태였다. 그러나 하나님께 주신 은혜에 믿음의 확신을 가졌다.

3. [눅 1:26-38] 마리아에게 예수 출생 고지. 여섯째 달에 가브리엘이 나사렛 동네로 가서 다윗의 자손 요셉과 정혼한 처녀 마리아에게 아들을 낳을 것과 이름을 예수라고 계시했다(31절). 마태복음에서는 요셉에게 일러준 내용을 제시했다(마 1:21). 예수 출생 고지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만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E. 브루너는 성육신, 동정녀 탄생에 대해서 신뢰하지 않았다. 그러나 마가와 요한이 탄생에 대해서 기록하지 않은 것은 확실한 지식을 반복하지 않은 것이며, 마가는 예수의 창조주와 구속주의 능력, 요한은 예수께서 하나님이심을 부각시키고 있다. 즉 예수께서 하나님이심을 마가복음이나 요한복음은 강하게 제시하고 있다. 마태는 유대인에게 배격받는 하나님의 성육신을, 누가는 인류에 선포될 하나님의 성육신을 기록하고 있다.

가브리엘이 마리아게 수태고지를 할 때, 마리아는 소식을 감당할 수 없었다(29절, 34절). 천사의 고지도 감당할 수 없는데, 고지의 내용도 감당할 수 없었다. 누가는 예수를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컫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릴 것이며 그의 나라가 무궁하리라”(32-33절)고 하셨다. 우리는 “그의 나라가 영원하다(cuius regni non erit finis, 381 콘스탄티노플 신경에서)”는 고백을 기뻐한다.

마리아는 천사의 고지를 인정하지 못했다. 천사는 다시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고 했다(35절). 두려워하는 마리아에게 위로자는 엘리사벳이다(36절). 엘리사벳은 늙은 여인의 몸이었지만 잉태한지 6개월이 되었다(36절). 천사는 마리아에게 하나님의 전능을 제시했다(37절). 마리아는 가브리엘이 전한 계시를 순종한다(38절). 인간은 하나님의 계시를 쉽게 감당할 수 없으며, 더욱이 인간이 계시자가 될 수 없다. 계시를 감당하는 것도 어렵고 계시를 전달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엘리자벳이나 마리아는 성경을 기록하지 않았다. 계시를 받았기 때문에 계시를 기록한 것이 아니다.

4. [눅 1:39-56] 마리아와 엘리사벳의 만남. 가브리엘의 계시를 받은 마리아는 빨리 유대에 사는 엘리사벳을 방문했다(39절). 사가랴의 집에 엘리사벳을 문안할 때(40절) 5개월 된 복중의 태아가 뛰었다. 이에 엘리사벳이 성령이 충만하여 큰 소리로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내 주의 어머니가 내게 나아오니 이 어찌 된 일인가 보라 네 문안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릴 때에 아이가 내 복중에서 기쁨으로 뛰놀았도다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그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라고 노래했다(42-45절, 엘리사벳의 찬가).

43절, “주의 어머니(the mother of my Lord)”는 에베소 공회의에서 테오도코스(theodokos)가 될 중요한 성경 구절로 보인다. 에베소 공회의에서 크리스토코스(Christokos)를 거부하고, 테오도코스를 정통신앙으로 결의했다. 주의 어머니(ἡ μήτηρ τοῦ Κυρίου μου)는 엘리사벳이 마리아와 태중의 아이를 반기는 외침이다.

그에 마리아도 기쁨으로 찬가를 하며 교제했다. 마리아의 찬가는 권세, 교만, 부자를 흩으시고, 약한 자를 긍휼이 여기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용이다. 마리아는 전능자의 경륜이 자기 몸에 이루어진 신비를 감당하지 못하고 오직 찬양과 경배로 순종했다. 마리아는 엘리사벳이 만삭이 되는 3개월을 함께 있었다(56절).  

5. [눅 1:57-66] 세례 요한의 출생. 엘리사벳이 해산(解産) 일에 아들을 낳았다. 낳은 후 팔일에 할례할 때, 엘리자벳이 이름을 “요한”이라고 해서 모두가 작명법을 다르게 해서 기이하게 생각했다(58-59절). 사가랴가 서판으로 동의했다(62-63절). 그리고 사가랴의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이 가능할 때 곧바로 하나님을 찬양했다(64절). 하나님의 백성에게 가장 큰 벌은 입을 열어 하나님을 찬양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의 일은 유대 산골까지 두루 퍼졌다. 이 일을 들은 모든 사람들은 그 아이의 미래에 대해서 주목했다. 그것은 주께서 그 아이와 함께 하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66절).

5. [눅 1:67-80] 사가랴의 찬가. 사가랴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예언했다(67절).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다윗의 집을 일으키시며,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을 선포했다. 이것은 조상 아브라함에게 맹세하신 것이며, 자녀들이 성결과 의로 두려움 없이 하나님을 섬기는 시대이다. 이 일을 위해서 자기 아이가 준비할 것이다(76절). 그것은 죄사함으로 말미암은 구원을 알리며(77절), 하나님의 긍휼, 죽음에서 평강으로 인도하실 이를 준비하는 일이다(78-79절). 요한은 자라며 심령이 강해지며 이스라엘에 등장하기 까지 빈들에서 거주했다(80절).

6. 전능하신 하나님, 주의 오심을 신비는 1세기에도 감당하지 못했고, 21세기인 지금에도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지식이고 은혜입니다. 주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그 지식을 소유할 수 있도록 허락하시니 고맙습니다. 그 은혜의 보고를 깊이 간직하며 땅끝까지 전파하게 하옵소서. 주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시는 그 지식을 묵도하는 복을 주시니 고맙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date. 2nd. 2019.11.27. 형람서원 고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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