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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람성경] 누가복음 2 장. 구유에 뉘신 예수와 12세 유년시절

누가복음 2장은 예수 나심에 대해서 제시하는데, 복음서 중에서 가장 자세하게 묘사했다. 그 중 하나는 12세에 예수의 행적을 제시한 것이다. 30세(~가량)의 예수의 생애에 대한 제시도 누가복음 2장이 유일하다. 참고로 많은 예수 탐구가들은 1-30세의 예수를 탐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칼 바르트도 예수는 1-30세까지 제언했다. 그러나 복음서에서 예수는 30세 이후 3년(추측) 공생애에 집중하고 있다. 30세에 포함된 12세의 예수 행적은 많은 신비가 있어 이해할 때 많은 주의가 필요하다.

1. [눅 2:1-7] 베들레헴 구유에 뉘신 예수. 누가는 세례 요한의 출생 후에 예수 나심에 대한 기사를 제시했다. 참고로 누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birth)’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요셉과 마리아가 나사렛에서 베들레헴으로 간 것은 수리아(Syria) 총독(proconsul, hegemoneuo) 구레뇨(Quirinius, 퀴리니우스)가 호적을 시행한 것 때문이었다(1-2절). 처음이라는 단어가 ‘프로테’인데, ‘처음’과 ‘이전’이라는 뜻이 있다. 요세푸스가 제시한 것처럼 구레뇨는 AD 6년에 총독에 부임했다. 즉 “AD 6년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으로 부임되기 전에 있던 호적령”이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예수 탄생을 이해할 때에 헤롯의 죽음을 기점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필자는 누가가 데오빌로에게 가장 근접한 시점의 인물로 예수 탄생을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데오빌로와 구레뇨와 어떤 관계성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참고로 헤롯은 BC 4년으로 확정적이고, 헤롯은 죽기 전에 베들레헴에 있는 생후 2 년된 아이 살해 명령을 내렸다(마 2장). 예수 탄생은 주후(A.D)로 했다가, 4년의 오차가 발생해서 B.C 4년으로 사용하고 있다. 예수의 탄생 시기는 BC 6-7년으로 볼 수도 있다.

로마는 인구조사를 14년 주기로 했다고 한다. 14년 전이면 BC 8년이 된다. 구레뇨는 BC. 12년에 영사였고, AD 6년경에 칙임총독(勅任總督, Legatus Augusti)이 되어 AD. 16까지 수리아에서 수행했다. 빌라도는 AD 26-36년까지 유대총독(procurator Augusti = praefetus Iudaeae, 1961년에 발굴된 비문에서)이었다. 간혹 procurator와 praefectus(Prefect)을 연결하여 빌라도의 총독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당시 총독은 군사권과 사법권을 가지고 있었고, 두 직책에 대해서는 연구가 진행 중인 상황이다. 그러나 로마 식민지에서 통치자(군사권, 사법권)인 것은 정확하다. 로마 식민 통치에 대해서 아직 명료한 체계(직분)이 나타나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성경으로 보면 식민지 행정권은 분봉왕, 군사권, (입법)사법권은 로마 총독이 행사하는 분립 통치 체계로 볼 수 있다. 민주주의에서는 입법권과 사법권을 분립시켰다. 조선시대 지방행정관은 사법과 행정을 단독자로 집행했다.

요셉은 나사렛에서 거주했는데 호적령 때문에 다윗의 동네 베들레헴으로 이동해야 했다(4절). 만삭인 약혼녀 마리아와 함께 이동해야 했다(5절). 호적령이 시행되었다는 것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아이도 호적령에 의해서 등재되었다고 볼 수 있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아이는 로마 식민지 유대땅에 다윗의 가문의 후손이었다.

해산한 날이 차서 강보에 싸서 구유에 뉘었다(7절). 구유에 누여진 아기를 놓고 여러 해석이 있다. 최근 고고학적 발굴도 유대의 정상적인 집안 구조로 이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누가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기 때문에 누유에 누었다고 보고하고 있다(7절). 호적령 때문에 베들레헴에 온 수많은 다윗 가문의 자녀들은 다윗의 추손께서 오심에 관심이 없고, 로마 황제의 명령에 순종하기에 여념이 없는 모습이다. 그 로마 황제의 식민지의 한 생명으로 아기가 등재되었다.

2. [눅 2:8-21] 베들레헴 목자가 목격한 천군천사의 찬송. 베들레헴 목자를 레갑 족속(참고 렘 35장)으로 분석하는 연구자들이 있다. 드라마틱한 상상(dramatic imagine)으로 사실 관계를 규명하기 어렵다. 베들레헴의 목자들이 목축한 양들은 성전 제물로 드려졌다고 제시하기도 한다.

베들레헴 목자들이 자기 양 떼를 지킬 때에(8절), 주의 사자가 곁에 있는 영광을 목격했다(9절). 그들은 천사들이 외치는 찬송 소리를 들었다.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10-12절)하고 수많은 천군이 천사들과 하나님을 찬송하며 화답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14절).

천사와 천군의 찬송 소리를 들은 목자들은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보고 부모에게 전했다(17절). 마리아는 목동이 전한 천사의 찬가를 마음에 새겼다(19절). 목자들도 자기들이 듣고 본 모든 일로 인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찬송하며 돌아갔다(20절).

아이가 팔일에 이르러 할례를 받았고 이름을 예수라 했다(21절). 이는 천사에 의해 계시를 받음에 순종한 것이다.

3. [눅 2:22-40] 성전 정결 예식에서 만난 메시아를 기다리는 두 사람, 시므온과 안나. 베들레헴에서 할례를 받고, 정결기간이 끝나자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22절). 성전에 들어갔을 때에 제사장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축복하며 찬송했다(26-32절). 그리고 어머니 마리아에게 예수의 행적에 대해서 미리 전했다(35절). 그럼에도 후일에 마리아는 예수를 잡으러 갔다. 마음에 들어간 지식이 활성화되는 것은 오랜 기간이 걸리기도 한다. 일단 로마 카톨릭이 주장하는 마리아무흠설은 복음서에 근거하지 않는다.

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는 선지자가 있었다(36절). 여기에서 특이한 것은 아셀 지파가 건재한 것이다. 유다와 베냐민 지파는 순수 혈통을 유지했을 개연성이 있지만, 10지파는 앗수르 혼혈정책으로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셀 지파가 건재하며 주의 오심을 기다리고 있었다. 엘리야에게 보여주신 남은자(7000명)는 앗수르의 혼혈정책과 타락한 사마리아에서 부패에서도 남아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안나는 84세, 약 60년 이상을 홀로 지내며 주의 오심을 기다렸다. 믿는 자의 인내가 여기 있다.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the grace of God)가 그의 위에 있었다(40절). 카리스는 은혜와 감사(thanks) 호의(favor), bless(복 마카리오스) 등으로 번역할 수 있다.

4. [눅 2:41-52] 12살에 예수. 베들레헴이 아닌 나사렛으로 간 요셉과 마리아는(참고 마태 2장) 매년 예루살렘을 방문했다(41절). 예수께서 12세 때에도 절기의 관례를 따라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42절).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예수가 없는 것을 하룻길을 가면서 확인했다(44절). 예루살렘 방문이 집단적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참고, 크리스마스 전용 영화, 나홀로집에). 예수도 부모와 일행이 없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예수는 성전에서 선생들과 이야기하고 있었고, 부모는 일행을 먼저 보내고 예수를 찾으러 근심하며 왔다. 이것을 예수께서 비유하신 99마리 양과 한 마리 잃어버린 양에 연결하고 싶다.

예수는 근심하며 찾은 부모님의 모습에 자기가 어디 있는지 알았을 것이라고 하셨다(48-49절). 예수는 나사렛에서 부모에게 순종했고, 마리아는 모든 말을 마음에 두었다.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카리티, 5485)스러워졌다(52절). 40절과 52절 번역이 명료하게 이해되지 않는다. grace, favor로 나뉘고, favor가 다수 번역이다.

5. 전능하신 하나님, 주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심(Cur deus homo)을 어떻게 이해하며 어떻게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보고 만진 사도들도 감히 놀람으로만 표현했습니다. 주의 신비를 보오니 저의 죄과가 보입니다(O felix culpa mea). 죄된 몸으로 오셨기 때문에 그 오심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습니다. 십자가의 은혜가 있기 때문에 담대하게 주의 오심을 고백하며 믿나이다. 주의 지식을 주어 감히 주의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복과 능력을 주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date. 2nd. 2019.12.04. 형람서원 고경태

고경태  ktyhb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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