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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블시선】 설교는 뉴텔링이 아닌 리텔링(재현)이다【이대희 목사의 바이블시선】 (14)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M.Div),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Th. M). 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 성경학박사과정(D.Litt)을 졸업했다. 예장총회교육자원부 연구원과 서울장신대 교수와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그동안 성경학교와 신학교, 목회자와 교회교육 세미나와 강의등을 해오고 있으며, 매주 월요일에 내가 죽고 예수로 사는 평생말씀학교인 <예즈덤성경대학>을 20년째 교수하고 있으며 극동방송에서 <알기쉬운 기독교이해><크리스천 가이드> < 크리스천 습관과 인간관계> < 재미있는 성경공부> <전도가 안된다구요>등 성경과 신앙생활 프로그램 담당했으며 다양한 직장 소그룹 성경공부 사역을 하고 있다. 그동안 다양한 현장 사역 경험(소형.중형.대형교회,개척과 담임목회)과 연구를 토대로 300여권의 저서가 있으며 <이야기대화식 성경연구>와 <30분성경교재 시리즈>와 다양한 실천 프로그램을 제시한 저서( “유대인 밥상머리 자녀교육법” ( 2016년 세종도서 우수도서 ). “한국인을 위한 유대인공부법” (대만번역 출간), “유대인의 파르데스공부법“ 등 다수가 있다. 현재 꿈을주는교회 담임목사. 예즈덤성경교육연구소 소장으로 있다

복음은 이미 십자가로 다 이룬 과거완료다.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없다. 복음을 전하는 설교 역시 새로운 것을 전하는 것이 아닌 이미 이루신 것을 오늘 속에 재현하는 것이다. 예배 역시 새로운 것을 기다리는 것이 아닌 다 이루신 말씀을 기억하고 재현하는 리사이틀이다

오늘날 우리가 주일에 예배에 모이는 것은 히브리어 ‘모에드’(דעומ)즉 ‘회중의 모임’ ‘절기 모임’ 인데, 이는 주의 말씀을 다시 듣기 위해서 모이는 것이다. 주의 말씀을 기억하려고 모이는 것이다. 설교의 핵심은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기억하게 하는 것이다. 설교는 사건을 설명하기 보다는 사건의 재생과 재현 작업이다. 이것은 모세의 설교집이라 불리어진 신명기와 설교자 역할을 한 선지서(미가서)의 핵심 주제다. 설교는 하나님이 행하신 사건을 오늘에 재현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말씀을 선포하는 행위다. 설교하는 순간 살아 있는 말씀으로 선포되는 복음사건이 된다. “빛이 있으라” 하시니 그대로 된 것처럼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순간 역사가 일어나는 생생한 복음사건이다. 명사와 형용사로 설명하는 것이 아닌 동사로 선포되는 살아 있는 생생한 말씀의 시간이 곧 설교 시간이다.

교회는 히브리어로 카할(소집). 헬라어로 에클레시아(밖으로 불러내다)다. 즉 “불러냄을 입은 사람들의 모임”이다. 에클레시아(Ekklesia)의 히브리적 배경은 70인역 성경에서 카할(qahal)이라는 “소집한다”에서 나왔다. 나팔로 소집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이 말씀으로 소환(미크라)하는 것을 의미한다. “Summon”(소환하다)에서 ”Sermon“(설교)가 나왔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려고 모이는 것이다. 민수기 10:10에서의 나팔을 불러 소집하는 장면과 느헤미야 8:8에서의 백성들 앞에서 율법책을 읽고 낭독하는 독서가 그 좋은 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행하신 일을 기억하기 위해 모였다.(신명기4:10, 5:15. 16:12. 출애굽기 12:42)

이것이 신약에서는 성령강림을 통하여 교회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교회 역시 모임 속에서 시작되었다(행 2 :1). 하나님의 약속하신 그 말씀을 순종하며 모인 것이 오순절 교회의 최초의 모습이다. 절기 마지막 날에 거룩한 성회로 모인 것은 말씀을 읽기 위해서다.(민수기 29:35 .역대하 7:9. 느헤미야 8:18) 특히 안식일에는 성경을 읽으려고 모였다. 신약에서 예수님이 회당에 가신 것이나(눅 4:16) 바울이 찾아간 회당과 기도처 역시 말씀을 읽기 위해 모였다.(행 13:14-15, 42, 44, 15:21 , 16:13, 17:1-2, 17:17)

이렇게 보면 구약이나 신약 모두 동일한 설교의 원리가 있다. 주의 백성들이 모일 때는 이미 주신 말씀을 읽고 듣기 위해서였다. 이런 점에서 성경 읽기(미크라)가 주된 일이었고 설교는 그것을 오늘 삶에서 재현하는 일이었다. 철저히 말씀을 드러내는 봉사자가 설교였다. 오늘날처럼 설교가 수사학적으로 조직하고 구성하는 설교가 아닌 말씀을 자체를 어떻게 기억하게 하고 재현하는가에 초점을 두었다. 그런 의미에서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곧 하나님의 말씀의 시간이었다.

자, 여기서 오늘날의 설교를 다시금 돌아보자. 헬레니즘식 설교는 사람이 자기의 의도대로 설교문을 3대지 등으로 본문을 나누어 설교문을 작성하거나 주제를 정하여 새로운 이야기를 전하고 그것을 수사학과 말의 큰 힘으로 사람을 설득하는 설교방식이다. 이것은 우리가 주로 지금까지 행했던 방식의 설교다. 하지만 헤브라이즘 설교방식은 그와 다르다. 본문 자체가 말하도록 하는 설교방식에서 차이가 있다.

본문을 가능한 생생하게 살려 오늘의 현장에서 재현하는데 초점이 있다. 말씀을 재현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본문을 잘 기억하게 하면서 그 안에서 하나님과 만남을 이루고 각자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깨달음을 얻게 하는데 목적이 있다. 말씀 다시 하기는 과거의 성경 말씀을 어떻게 오늘에 재현하는 것이며 이것이 오늘날 설교의 핵심이다.

본문에 충실하면서 청중으로 하여금 본문 속으로 이야기와 사건으로 보고 깊게 빠지게 하여 그것을 오늘에 각자 재생시키는 것이 설교다. 설교는 과거의 말씀을 오늘의 말씀으로 다가 오게 하는데 있다. 설교자는 이것을 위해서 청중들을 본문의 사건 속으로 들어가도록 안내 하는 역할자이다. 설교자는 질문과 대화를 하면서 청중들이 말씀 이야기 속에 동화되도록 하는 것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예를 들면 모세가 신명기를 통해 설교하는 방식이다. 과거에 일어났던 하나님의 행하신 일을 일인칭 내러티브 이야기식으로 전한다. 그리고 그것이 오늘 속에서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 이야기한다. 신명기의 내용은 출애굽기 내용의 반복이지만 과거의 반복이 아닌 내용이 더 사실적이고 오늘 청중에 맞추어 있다

모세는 과거의 출애굽기에 나오는 20장의 십계명을 오늘 신명기 5장에서 내용을 재생하여 말한다. 하지만 출애굽기 20장과 신명기 5장의 십계명은 비교하면 조금 양상이 다르다. 십계명을 받은 배경이 들어가 있어서 출애굽기 보다 더 사실적이고 내용이 더 흥미롭게 다가온다. 본질 내용은 같지만 세부 내용이 더 추가되었고 오늘의 삶에 더 실천하는데 초점을 두 말씀을 전한다.

신명기 32장의 모세의 노래는 지금까지 내용을 시로 구성하여 다음세대가 노래로 암송하여 부를 수 있게 하였다. 철저히 성경에 근거한 노래 메시지다. 그리고 32장은 긴 축복기도문으로 마무리한다. 신명기는 오늘 설교에서 전하는 구조를 그대로 가지고 있다. 철저히 말씀을 근거하여 그 말씀을 오늘 차세대들에게 생생하게 재생하는 설교방식을 따르고 있다.

성경 인물들은 한결같이 논리적으로 풀어 설명하고 깨닫게 하는 헬라식의 명사설교가 아닌 오늘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선포하고 그 말씀을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헤브라이즘의 동사설교였다. 그런 이유로 초대교회는 말씀이 흥왕하는 역사가 일어났다. 구약의 정신을 그대로 이어온 설교가 행해졌다고 볼 수 있다.

마치 성령의 역사가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그리스도의 영인 것처럼 설교 역시 철저히 본문 말씀을 어떻게 오늘 현장에서 사건으로 선포되느냐에 설교의 핵심이 있다. 이렇게 되면 설교하는 순간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면서 그 자리에서 병 고침도 받고 회개와 삶의 변화가 일어난다. 설교 속에 말씀의 선포 기능이 살아나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2천 년 전. 더 오래전 4천 년 전의 사건이 오늘 속에 생생하게 재현되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행하신 일을 보게 하느냐가 설교자의 사명이다.

 

 

이대희 목사  smd63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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