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철 목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은혜와 평강교회를 담임하며 30권의 저술과 글쓰기를 통해 복음 사역에 애쓰는 목회자이다

 

곡과 마곡은 무엇인가?

“곡”의 정확한 의미는 확실치 않다. 창 10장에 등장한 마곡의 이름 뜻도 불분명한데 앗시리아어 맛구그(mat-Gugu)에서 나왔다면 그리스어로 귀게스(Gyges) 곧 “리디아(Lydia)의 땅”이란 뜻이 된다. 실제로 리디아의 왕 귀게스는 에스겔보다 한 세기 전에 살았던 실존 인물이었다. 혹자(W.F. Albright)는 어둠을 뜻하는 수메르어 “국”(Gug)과 연결시키거나 앗수르 북부의 사키(Sakhi) 땅을 다스리던 가구(Gagu)로 이해했다(S.H. Hooke). 곡의 정체가 분분한 만큼 그의 정체는 더욱 오리무중이다.

또한 곡과 마곡은 고대 영국의 신화 속에 나타난 거인인 곡마곡(Gogmagog)에 비견되기도 했다. 유대교의 랍비 전통에서는 이스라엘과의 마지막 전쟁에서 명시되지는 않았어도 하나의 적대국을 가리키는 두 이름으로 보았다. 이슬람 전통에서도 곡과 마곡은 야주즈(Yajuj)와 마주즈(Majuj)란 이름으로 묘사되었고 역사적으로는 알렉산더 대왕이나 고레스 대왕에 비견되었다. 그들의 관점에서 곡과 마곡이 때로는 바그다드와 북부 이란을 유린한 투르크 민족이었으며, 13세기 중엽에는 바그다드를 파멸시킨 몽골군이 곡과 마곡으로 간주되었다. 비주류 이슬람교인 아흐마디야(Ahmadiyya) 묵시록에서는 곡과 마곡을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양대 세력으로 보았다.

 

극한 북방의 땅 러시아와 야벳의 후손들

마곡이 과연 어디인가? 하는 점은 늘 해석의 어려움과 함께 여러 견해들이 제시되었다. 그 중에서도 러시아로 보는 견해가 강하다. 정확한 위치와 관련하여 마곡을 터키 지역으로 국한시키기에는 그곳이 북쪽 지역이긴 해도 “극한 북방”이라 보기에는 어렵다는 점이 마곡을 러시아로 해석케 하는 대안이 된다. 에스겔은 곡이 다스리는 마곡 땅의 위치를 분명히 ‘극한 북방’(Far North)이라 표현한다. 한국은 극동(Far East)에 속했는데 “극한 북방”이란 묘사를 극동이란 표현에 견주면 “극북”에 해당한다. 이스라엘 북쪽 끝까지 따라 끝까지 가면 흑해를 지난 러시아임을 알 수 있다. 마곡은 원래 노아의 아들 야벳의 아들로서 흑해 연안에 자리 잡은 족속이다. 고대 세계에서는 건국자의 이름을 따서 국가의 명칭을 삼았다. 흑해 연안에 자리 잡은 마곡은 셈과 함의 자손들이 혈투를 벌이던 메소포타미아의 중원을 벗어나 북쪽으로 이동했고 결국 오늘날의 러시아 지역이 그들의 영역이 되었다고 이해할 수 있다.

성경에서 북쪽에 있는 적국은 항상 시리아, 터키, 이란을 가리켰다. 시리아 또는 셀류커스 왕조가 여섯 번, 바벨론이 열여섯 번, 앗수르가 한 번, 그리고 이란이 한 번 그런 의미로 불렸다. 이 나라들은 모두 마곡, 고멜, 도갈마, 메섹, 두발에 의해 점령되었다. 단 9:40절에는 “마지막 때에 남방 왕이 그와 힘을 겨룰 것이나 북방 왕이 병거와 마병과 많은 배로 회오리바람처럼 그에게로 마주 와서 그 여러 나라에 침공하여 물이 넘침 같이 지나갈 것이요”라 되어 있는데, 겔 38-39장과 연관시켜 해석하면 전쟁의 구체적인 양상이 더 명확해진다. 즉 마지막 날들에 있을 곡과 마곡의 전쟁은 남방왕인 이슬람 세력이 예루살렘을 공격하는 일에 북방 왕인 곡이 합세하여 유브라데 전쟁으로까지 확전되지만 오히려 이 전쟁으로 인해 북방 왕인 곡의 세력이 완전히 꺾이게 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여기에서의 남방왕이나 북방왕은 지엽적으로 애굽이나 시리아를 가리킨 것이 아니라 보다 대국적인 견지에서 이슬람 전체 세력과 극한 북방세력인 러시아로 보아야 한다.

 

야벳의 아들들과 스키타이족

메섹과 두발은 노아의 아들인 야벳의 다섯째와 여섯째아들이었다(창 10:2). 이에 근거하여 그들이 종족을 이루고 서로 결혼하여 생겨난 것이 마곡 족속이라 대체적으로 알려졌다. 메섹과 두발은 지금의 터키 북동쪽에 위치한 고대 앗수르인의 영토였던 무쉬쿠와 타발이라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이 지역은 현재의 터키 지역만이 아니라 이라크와 시리아 북부까지 포함한다. 1940년 이전에 만들어진 모든 성경 지도에는 마곡이 이라크의 바그다드 북부로, 메섹과 두발은 터키와 함께 북부 시리아와 북부 이라크 지역으로 표기되었다. 요세푸스에 따르면 마곡 족속은 북방에 살던 스키타이족으로서 그리스인들은 이들을 스키티안(Scythians)이라 불렀다. 지금의 루마니아와 우크라이나를 포함한 지역의 고대 이름 역시 스키티아(수구디아)였다. 이들은 멀리 서쪽으로는 헝가리와 터키 그리고 동쪽으로는 한반도의 신라까지 영향력을 미칠 정도로 번성했던 민족이었다.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을 야기시킨 이들은 서기 370년경 유럽 남동부를 침략한 이후 140여 년 동안 유럽 남동부와 중부에 거대한 제국을 건설한 유목민족으로서 넓은 의미로 볼 때 흉노나 훈족도 스키타이 계열에 속해 있었다. 후대의 유대인들은 마곡을 마케도니아로 보았다. 심지어는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열 지파로 해석하기도 했다. 메섹의 후손은 러시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루마니아, 우크라이나, 몰도바, 벨라루스에까지 적용되었다. 두발의 후손은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 영국, 미국, 오스트랄리아, 뉴질랜드, 캐나다, 남아프리카, 독일,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리히텐슈타인, 오스트리아, 스위스에까지 확대 적용되었다.

 

로스와 메섹과 두발 왕인 곡

로스와 메섹과 두발 왕인 곡은 주전 7세기 리디아의 귀게스(Gyges) 왕이란 해석이 있었지만 대다수 학자들은 그를 실존적 인물로 보지 않았다. 혹은 아마르나(Amarna) 서판에 나오는 아카디아인들의 신 가가(Gaga), 사비(Sabi) 왕국의 통치자 가기(Gagi), 바벨론의 신 가기 등으로 간주되었다. 나아가 곡과 마곡을 그리스와 중앙아시아에 있는 민족들인 게타이와 마사게타이 또는 투르크민족으로 보기도 했다. 혹자는 셀류커스 왕조의 중심부가 한때 북부 시리아와 두발과 메섹 지역까지 포함했던 사실을 들어 안티오커스 에파파네스로 보았다(W. White). 하지만 역사적 인물을 특정 시대마다 적용시키는 이런 해석은 일관성이 떨어져 반대로 종말론적인 인물로 상징화시켜버리는 입장도 있다. 즉 곡과 마곡이 침공할 대상도 이스라엘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로 보며 교회를 박멸하려는 온갖 사악한 세력들의 총칭으로 이해한다. 곡과 마곡을 특정화하려는 시도를 아예 세대주의적 발상이라 평가 절하시키려는 시도도 이런 해석을 선호하게 만든다. 그래도 상징적 해석보다는 구체적 인물에 적용함이 올바르다.

4세기 말엽의 교부 암브로시우시는 곡을 고트족이라고 확신하였다. 7세기 때는 성지를 위협했던 이슬람 군대를 곡과 마곡으로 간주하였다. 13세기경에는 러시아의 전신인 키예프공국이 몽골군에게 망하고 헝가리도 쑥대밭이 되었는데 유럽인들에게 곡은 바로 공포의 대상인 몽골군이었다. 16세기의 루터는 터키를 곡과 마곡으로 보았다. 다수의 기독교인들 역시 곡과 마곡을 로마 황제나 교황 또는 터키족으로 보았다. 19세기에 들어서면서 로스를 러시아로 해석하는 분위기에 편승하여 “메섹”과 “두발”을 러시아의 도시인 모스크바와 토볼스키라는 주장이 힘을 얻었고 그렇게 적용한 스코필드 관주성경에 의해 유명해졌다. 그러나 모스크바의 역사는 850년에 불과하므로 옛적 도시 메섹과 동일시하기는 쉽지 않다. 또한 히브리어 “로스”는 “족장” 또는 “머리”로 423번 번역되었는데 이 로스를 러시아와 동일시하는 것도 실제로 어려움이 있다. 결국 로스가 러시아인가? 아니면 터키 지역인가? 에 따라 해석의 지평은 달라진다.

 

임박한 중동전(中東戰)과 러시아와 터키

로스와 메섹과 두발이 어디인지를 아는 것은 임박한 중동에서의 세계적인 전쟁을 예측함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이 지역들은 모두 이스라엘보다 북쪽에 위치해 있다. 에스겔이 예언서를 쓸 당시에는 이스라엘을 위협할 만한 세력이 흑해 연안이나 북방 지역에는 없었다. 마곡의 일족인 대표적 북방민족인 스키타이 역시 이스라엘을 공격한 적이 없었다. 로스나 메섹이나 두발의 이름으로 이스라엘 북방에 세워진 나라는 사실 어디에도 없었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바이킹 족의 일파인 ‘루스’족이 등장하여 지금의 키예프 일대를 장악하고 원주민 슬라브족을 정복하며 서기 880년에 ‘키예프 공국’을 건국했는데 이것이 현재 러시아의 전신이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루스족은 자연히 슬라브족에 동화되었고 루스족의 명칭을 따라 러시아라는 이름이 역사에 등장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러시아인들을 멸시하여 로스케라 부르는데 이는 러시아인을 뜻하는 ‘루스키’에서 나온 말이다.

혹자는 로스를 러시아로 해석하면서 덩달아 메섹과 두발을 러시아와 연관시켜 오늘날의 도시 이름에 연관시킨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메섹은 “크다”, “길다”를 뜻하는 이름이다. 앗수르의 역사 기록물에 따르면 메섹과 두발의 후손인 타발리(Tabali)와 무스키(Mushki)가 적으로 언급되었는데 고대 작가들도 티바레니(Tibareni)와 모스키(Moschi)에 대해 다루었다. 메섹은 영어식 발음으로서 히브리어 발음은 ‘메스케우’ 혹은 ‘메스헤우’다. 러시아의 수도인 ‘모스크바’의 현지 발음은 ‘모스코우’(Moskow)다. 모스크바의 원래 명칭도 ‘모스케우’ 혹은 ‘모스헤우’인 점도 메섹을 모스크바로 이해하는 단서가 된다. 역시 ‘두발’도 러시아의 ‘토볼스크’(Tobolsk)를 가리키는 것으로 본다.

다시 말하지만 로스를 러시아로, 메섹을 모스크바로, 두발을 토볼스크로 해석하는 견해는 스코필드 성경에서 비롯되었다. 일단의 인종학자들과 역사학자들은 대홍수 후에 소아시아의 인종들이 카스피해와 흑해를 넘어 북쪽으로 이동했으며 오늘날 우리가 아는 러시아인 로스 지역에 정착하고 살았다. 세계적 히브리 언어학자인 게세니우스(W. Gesenius)도 곡이 러시아이며 메섹과 두발이 오늘날의 모스크바와 토볼스크라 주장했다. 현재의 토볼스크는 시베리아의 주도요 러시아에서 손꼽히는 군사요충지다. 이런 해석은 상당히 흥미를 유발시키지만 발음이 비슷한 점 외에 그렇게 단정 지을 만한 역사적 자료나 증거가 충분치는 않다. 어쨌든 마곡의 왕 곡은 ‘로스’와 ‘메섹’과 ‘두발’의 왕으로 묘사되었다. 로스와 메섹과 두발을 발음과 유사한 러시아, 모스크바, 토볼스크로 해석한다면 곡이 이 지역의 왕이라 부른 점을 이해하기가 훻씬 수월하다. 왜냐하면 모스크바는 유럽 러시아의 중심부요 토볼스크도 시베리아의 중심부임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에 당연히 곡은 러시아의 실질적인 지도자를 가리킨다.

이에 반해 도시의 역사가 충분히 길지 않고 로스를 러시아에 대응시킬 만한 결정적 자료의 부족으로 인해 로스와 메섹과 두발이 러시아가 아니라 터키 지역을 가리킨다고 보는 해석도 강하다. 역사가 헤로도투스나 요세푸스, 그리고 다수의 주석가와 상당수의 앗수르 고대 문서들은 모두 로스와 메섹이 고대의 폰투스 지역, 소아시아 북부, 흑해의 남동 지역 즉 현재의 터키 지역에 해당함을 언급하였다. 이런 배경에서 메섹과 두발이 터키이건 러시아이건 간에 두 개의 해석은 여전히 유효하며, 어떤 경우라 해도 그들 두 지역이 이스라엘의 북쪽에 위치한다는 사실만은 변함없다. 시편 기자는 메섹을 포악하고 싸움을 좋아하는 야만스런 민족으로 표현하려 했다(시 120:1-7)

 

오스만의 영광을 꿈꾸는 에르두안 터키 대통령

터키의 현 통치자는 에르두안(Erdogan)이다. 2003년부터 총리로 재직하다 2014년 터키 최초로 치러진 직선제 선거에서 압승하여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2018년부터 연임중이다. 그는 절대 왕정의 상징인 베르사유궁전보다 크고 화려한 대통령궁을 신축했다. 집무실과 방만 1,000개가 넘고 백악관의 30배 규모로서 인도에서 공수한 녹색 대리석, 네델란드산 목재, 바닥에 깔린 융단만 105억에 이르고 건축비가 무려 7,500억이 소요되었다. 대통령 연봉은 646억원에 달한다. 200만의 국민들이 하루 4,500원으로 살아가는데 노동자출신인 그의 연봉과 씀씀이는 의아스럽기 짝이 없다.

2016년 에르두안의 독재정치에 반감을 품은 일부 군부세력들이 쿠데타를 모의했으나 정보력을 쥔 푸틴의 도움으로 사전에 방지했다. 일부에서는 군부쿠데타를 몰아낸 민중의 승리라 추켜세우지만 배후에는 독재의 막강한 영이 도사리고 있다. 이로 인해 5만 명 이상의 반대파가 숙청, 체포, 구금되었다. 이슬람 국가들 중에서 친미적 성향이 강했고 나토의 일원국으로 EU가입을 적극 추진하는 터키에는 미국의 핵무기가 있어 언제든 대전쟁을 일으킬 소이가 충분히 있다. 위대한 미국을 세우려는 트럼프대통령처럼 에르두안은 오스만의 영광을 재현코자 자주 무리수를 두고 있다. 바벨론의 영광을 재현하려던 후세인은 제거되었고 페르샤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이란의 지도층과 앗수르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시리아의 독재자들 역시 그 운명은 순탄치 않을 것이다. 터키의 푸틴이란 별칭으로 대중적 인기와 강력한 통치력을 지닌 그가 어떤 행보를 보일지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운다.

독립 이후 거의 1세기 가까이 서방세계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나토회원국으로 중동의 이슬람 세력을 어느 정도 저지하던 터키가 언제 반(反)서방 대열에 합류하거나 이슬람 국가들의 맹주로 복귀하려 시도할 지는 아무도 모른다. 강력한 군대를 보유한 터키가 트럼프와 알력을 보이며 푸틴과 밀월관계를 지니고 있는 것도 심상치 않다. 2019년 9월 4일 에르두안 대통령은 한 기념식장에서 “핵보유국들(5국)이 터키의 핵무장을 금지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라고 공언했다.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처럼 비공식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을 길을 터키도 모색할 수 있다는 뉘앙스가 풍기기 때문이다. 러시아와의 군사협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미국과 마찰을 빚고 있는 가운데 나온 발언이라 그냥 흘러들을 수만은 없는 대목이다. 중동의 맹주 자리를 넘보는 터키의 이스라엘에 대한 자세도 이전에 비해 상당히 강경노선으로 급선회했다. 이는 미국이 중동 지역에서 등을 돌리자 그 자리를 선점하려는 러시아가 터키와의 선린관계를 앞세워 실력자로 자리 잡으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이스라엘과의 우호에도 공을 들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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