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구 박사(전 총신대, 대신대 총장)

2012년 그 해 여름, 나는 영국 런던에서 열린 한인청소년 여름 집회에 초청을 받았다. 비행기 표를 사고 호텔예약도 끝났다. 더구나 그때 꼭 가보고 싶은 북아일렌드의 벨 파스트(Belfast)로 가는 비행기표와 호텔도 예약이 끝났다. 벨 파스트는 스코틀렌드 장로교인들이 많이 진출해서 장로교 역사에 귀중한 자료들도 있을 것 같아 집회 일정과 여행에 부풀어 있었다. 

나는 집회 가기 전에 자주 가던 분당 서울대 병원에 검진을 갔더니 전립선 암이라고 판정을 받았다. 나는 화들짝 놀랐다. 해외집회를 앞두고 이런 판정이 나왔으니 앞이 캄캄했다. 의사에게 내 사정을 말했다. “목사로서 집회를 미룰 수 없고, 더구나 이미 비행기표를 사둔 형편이라 수술을 미룰 수 없느냐”했더니 의사가 하는 말이 “알아서 하세요”라고 했다. 그런데 그 말이 더 무서웠다. 그래서 당장 입원을 하고 수술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입원한 후 암 수술을 하기 전에 각종 신체검사를 다 했다.

그런데 갑자기 주치의가 심각하게 말하기를 「지금 상태로 전립선 암 수술을 할 수 없습니다. 그보다 환자분은 먼저 심장수술을 해야 합니다. 그러니 심장내과로 가십시오」라고 했다. 전립선 암 수술을 받겠다고 입원했던 내가 청천벽력같이 심장수술이라니, 앞이 보이지를 않았다. 신체 검사 중에 확인 한 것은 나의 관상동맥이 거의 막혀서 급히 심장 수술을 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결론을 얻었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진행을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이고 인간적으로 말로 다할 수 없는 공포감이 밀려와서 앞뒤가 구분이 안되었다. 아직도 할 일이 많이 있는데 죽으면 안될 것 같았다. 

그 때 나는 기도하는 중에 칼빈(John Calvin)목사의 일평생 모토가 「나는 내 심장을 주께 드리나이다(I offer my heart to Lord)」라는 생각이 떠 올랐다. 그래서 나는 생각하기를 ‘70이 넘도록 내게 달아준 심장을 주님이 원하시면 드리겠습니다’라고 마음으로 결단하고 A4용지 5장을 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거기다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와 축복이 얼마나 컸는지에 대한 감사의 내용을 번호를 매기면서 쓰기 시작했다. 

내가 앞두고 있는 수술의 내용은 관상동맥 우회 수술이었다. 요즘 흔히 하는 시술이 아니고 가슴을 20cm 가량 찢고, 심장으로 가는 관상 동맥을 완전히 교체하는 수술이었다. 그런데 나의 감사의 첫 번 제목은 이랬다.

「하나님 아버지! 전립선 암 수술을 받으러 입원했다가 심장 수술까지 받게 하신 것을 감사합니다」로 시작해서 감사가 터지기 시작했다. 

검은 볼펜과 붉은 볼펜으로 10가지씩 번갈아 묶어 가면서 감사조건을 써 내려 갔는데, 수술실로 들어가기 전까지 꼭 200가지 감사를 썼다. 하나님 앞에 200가지 감사를 글로 남기니 수술도, 죽음도,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심장 개복 수술을 받았고 수술을 끝낸지 7시간만에 다시 눈을 떴다. 하나님의 은혜였다. 그리고 일주일을 입원하고 집에서 몇 달 동안 요양을 하고 다시 힘 있게 일하게 되었다. 

나는 30여년 전에 천마산 기도원에서 125가지 감사를 쓴 일도 있지만 200가지의 감사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그 때 쓴 200가지 감사를 나는 지금도 내 성경에 그대로 갖고 다니면서 간증하고 있다. 인간의 힘으로 어찌 할 수 없는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도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할 수 있으면 하나님의 더 큰 은혜와 축복을 받을 수 있음을 확신한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기도하는 중에 생사를 넘나드는 절망의 순간에도 그는 이렇게 기도했다.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욘2:10). 아멘.

지금까지 여기까지 오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
나중에 「아름다운 동행」에서 연말 「감사」페스트벌이 열릴 때 200가지 감사로 나는 특별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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