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종교개혁은 13-14세기 르네상스의 시대조류와 함께 진리를 찾는 종교개혁 전 개혁자들의 끊임없는 정진에 있다. 1517년 10월 31일은 루터가 비텐베르크 예배당 정문에 95개조 반박문을 게시한 날이고, 그 날을 종교개혁의 기원으로 삼고 있다. 10월 31일은 11월 1일 전 날이다. 11월 1일은 만성절(All Saints' Day, 萬聖節)이다. 지금도 미국에서는 할로윈데이(Holloween Day, All Saints' Eve)로 알려진 서양 축제일이다. 할로윈데이를 보면 만성절의 성격을 예측할 수 있다. 엄숙한 국경일(stiller Feiertag)이지만 만성(萬聖, all hollow)과 교류하는 날로 보아야 한다. 루터가 우연한 10월 31일이 아니라, 만성절에 많은 시민들의 관심이 고조되는 날에 반박문을 게시했다는 것이다. 칼빈도 1533년 만성절에 콥(Nicolas Cop, 1501-1540) 총장 취임 연설이 문제될 때, 연설문 작성에 연루된 사건으로 망명자가 되었다.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은 구텐베르크 인쇄 기술과 함께 유럽 전역에 확산되었고, 교황주의의 권위는 큰 위기를 맞이했다. 그 위기를 구원한 것은 1534년 이냐시오 데 로욜라(Ignatius Loyola, 1491-1556)에 의해 설립된 예수회(Societas Iesu)였다. 예수회가 주도하여 1545년 12월에 트렌트 공회의(1545-1563)를 개최했다. 트렌트 공회의가 개최된 후 1546년 2월에 루터(1483-1546)가 소천되었다. 트렌트 공회의가 마친 1563년 후 칼빈(1509-1564)이 소천되었다.

종교개혁은 루터와 칼빈이 두 진영에서 주도했지만, 교황주의를 강력하게 저항하는 개혁 진영을 방패로 다수의 위험 사상이 발생했다.

첫째 세르베투스(Michael Servetus, 1511-1553)이다. 세르베투스가 “화형되었다”고만 인지하지만, 세르베투스주의가 현재까지 엄청난 위세를 발휘하고 있다. 세르베투스주의는 소시누스주의(혹은 소키누스주의, Socinianism)로 그리고 유니테리언(Unitarian Universalism)으로 변형되었다. 유니테리언 사상은 회중파가 세운 하바드 대학까지 확산되었다. 소시누스주의는 이신론과도 연관되어 있다. 개혁파 진영에서 소시누스주의에 대해서 수 많은 비판을 쏟았지만 그 영향력을 막지 못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둘째, 재세례파(Anabaptist)이다. 제세례파의 사상은 지상천국 사상을 기본으로 한다. 목적을 위해 수단을 정당화하기 때문에, 급진적 평화주의와 폭력주의(토마스 뮌쳐)가 병존한다. 재세례파는 교육 분야로 영역을 확장시켜, 교육 방법론에서 재세례파의 흔적을 지울 수 없다. 재세례파는 신학과 사회 분야에서 그 영향력을 절대로 무시할 수 없다. 침례파를 “16세기 영국의 비국교도운동 및 재세례파에 기원을 두는 개신교의 한 교파”라고 “나무위키”에서 제시하고 있다.

셋째, 루터파에 있는 오시안더(Andreas Osiander, 1498-1552)이다. 오시안더의 사상은 루터에 의해서 거부되었고, 루터 사후(死後)에 루터파 양 진영에서 모두 거부되었다. 그런데 오시안더의 특이한 사례는 개혁파 진영에서 오시안더에 대한 비판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칼빈은 적극적으로 오시안더에 대해서 거부를 펼쳤다. 칼빈 이후 오시안더의 사상에 대해서 정확하게 거부하는 학자가 없다. 루터파에서는 몇 연구가 존재하지만, 큰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 오시안더의 사상은 개혁파 진영에도 유입되었을 것이다. 오시안더의 사상에 대해서 면밀하게 연구해야 할 긴박한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유니테리언주의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고, 오시안더의 사상은 그리스도의 신성이 합일되는 것을 주장한다. 누구나 신성 합일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오시안더의 체계는 교묘하기 때문에 오시안더의 체계를 파악하지 못하면 무지불식간에 편승하게 될 것이다. 마치 신천지를 거부하지만 신천지를 옹호하고 있는 모습과 동일하다. 오시안더는 루터파와 칼빈에게서 철저하게 배격되었다.

필자는 “루터는 선포하는 복음 설교를 강조했고, 칼빈은 완전한 신학 체계에 근거한 복음 설교를 강조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개혁된 교회는 선포된 설교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복음을 선포하는 설교자를 합당하게 양육하고, 그 설교자의 설교를 합당하게 듣고 지키는 구도가 개혁파가 추구하는 구도이어야 한다. 거짓 선생은 절대로 자기를 존경하라고 주장하는데, 교주가 되어 있다. 참 선생은 합당하게 가르치는 자를 존경하라고 권면한다(롬 13:7, 딤전 4장). 그래도 선지자를 공경하지 않는 것은 구약시대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는 모습이다.

종교개혁 이후 범람하는 거짓 교설들이 난무하는 것은 성경 시대에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모든 인류가 거짓 가르침을 좋아하는 것으로 증명된다. 구원을 주는 지식은 오직 하나님께서 택한 자들만이 사랑하는 복음이고 보화이다. 그 지식의 근원인 주 하나님을 믿음으로만 가능한 것이다. 주 하나님을 바르게 믿는 개혁파가 참된 기독교이고 참 교회이다. 칼빈은 구주의 이름만을 아는 것으로 부족하다고 제시하며, 천상의 주 하나님께서 하시는 삼중 사역(triplex munus Christi, 선지자, 왕, 제사장)을 믿고 묵상해야 한다고 제시했다(『기독교강요』, 2권 15장 1절; 박해경, 『칼빈의 기독론』(서울: 아가페, 2004)).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