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한폐렴을 처음으로 알린 의사 리원량 사망 후, 그의 유서가 중국 대륙을 흔들다.

【리원량유서】나는 갑니다. 훈계서 한 장 가지고!

1985-2020

동이 트지 않았지만 나는 갑니다!
가야 할 시간, 나루터는 아직 어둡고, 배웅하는 이 없이 눈가에 눈송이만 떨어집니다. 그립습니다. 눈송이가 눈시울을 적십니다.

캄캄한 밤은 어둡고, 어두움에 집집마다 환하던 등불조차 떠올릴 수 없습니다. 일생 빛을 찾았습니다. 스스로 반짝인다 자랑했습니다. 온힘을 다했지만 등불을 켜지는 못했습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어젯밤 눈바람 무릅쓰고 나를 보러 왔던 여러분! 가족처럼 저를 지키며 밤새 잠 못 이루던 여러분 감사합니다. 하지만 연약한 인간에게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나는 본디 평범하고 보잘것 없는 사람입니다. 어느날 하나님이 나에게 그의 뜻을 백성에게 전하라 하셨습니다.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누군가 나에게 태평한 세상에 소란피우지 말라며, 도시 가득 화려하게 피어 있는 꽃이 보이지 않냐고 말했습니다!

전 세계가 지금의 안녕을 계속 믿게 하기 위해 나는 단지 마개 닫힌 병처럼 입을 다물었습니다. 선홍색 인장으로 내 말이 모두 동화 속 꿈이라고 인정했습니다. 왕관을 쓴 치명적인 황후는 반란을 위해 속세에 내려오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천하는 다시 북적거렸습니다. 누구도 몰랐습니다. 거대한 비극이 곧 성문을 잠그리라고는.

이후 하늘이 대노하고 산하는 시들고 나는 병들었습니다. 내 가족까지 모두 병들었습니다. 우리는 천 송이 만 송이 눈보라처럼 송이송이 흩날렸습니다. 봄이 오고 강물이 녹으면 가족과 만나리라 기대했습니다. 그 때가 되면 노란 유채꽃밭에 앉아 흩날리는 꽃 송이 송이 새며 하루 일 분 일 초를 보내리라 여겼습니다.

기다렸습니다. 어젯밤 눈 내리기를 기다렸습니다. 하나님이 내 머리 쓰다듬으며 말했습니다. 착하지, 나와 같이 가자. 인간은 가치가 없어! 이 말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비록 인간은 빈한하고 하늘은 따뜻한 곳이더라도 말이죠. 저승으로 가는 다리를 건너기 두렵습니다. 고향을 떠올려도 다시는 가족을 만나지 못할 것입니다.

사실 나의 기개는 보증서 한 장으로 죽었습니다. 나는 계속 햇볕이 비치듯 살아 생명을 노래하고 소나무 잣나무를 찬미하고 싶었습니다. 이 나라 이 땅을 깊이 사랑했습니다. 이제 내 육신은 죽지만 한 줌 재가 되기 전에 조용히 고향의 검은 땅과 하얀 구름을 떠올립니다. 어린 시절을 떠올리니 바람은 마음껏 춤추고 눈은 새하얗게 티 한 점 없습니다.

삶은 참 좋지만 나는 갑니다. 나는 다시는 가족의 얼굴을 쓰다듬을 수 없습니다. 아이와 함께 우한 동호(東湖)로 봄 나들이를 갈 수 없습니다. 부모님과 우한대학 벗꽃 놀이를 할 수 없습니다. 흰구름 깊은 곳까지 연을 날릴 수도 없습니다. 나는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아이와 만나기를 꿈꿨습니다. 아들일지 딸일지 태어나면 뜨거운 눈물을 머금고 사람의 물결 속에서 나를 찾을 것입니다. 미안하다, 아이야! 나는 네가 평범한 아버지를 원했음을 잘 안다. 하지만 나는 평민 영웅이 되었구나.

하늘이 곧 밝습니다. 나는 가야합니다. 한 장의 보증서를 들고서, 이 일생 유일한 행낭입니다. 감사합니다. 세상의 모든 나를 이해하고 나를 동정하고 나를 사랑했던 모든 이들. 나는 당신들이 모두 동트는 새벽을, 내가 산마루 건너기를 기다릴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 피곤합니다.

이번 생애 태산보다 무겁기를 바라지 않았습니다. 새털처럼 가볍기를 두려워 하지도 않았습니다. 유일한 바램은 얼음과 눈이 녹은 뒤 세상 모든 이가 여전히 대지를 사랑하고 여전히 조국을 믿기를 희망합니다. 봄이 와 벼락이 칠 때 만일 누군가 나를 기념하려는 이가 있다면 나를 위해 작디작은 비석하나 세워주기 바랍니다! 우람할 필요 없습니다. 내가 이 세상을 왔다 갔음을 증명해 줄 수만 있으면 됩니다. 이름과 성은 있었지만 아는 것도 두려움도 없었다고.
내 묘지명은 한 마디로 충분합니다.

“그는 세상의 모든 이를 위하여 말을 했습니다(他爲蒼生說過話).”

사망한 의사 리원량

우한폐렴의 존재를 세상에 처음 알린 중국 우한중심병원 안과 의사 리원량(李文亮·34)씨가 지난 2월 7일 새벽 2시 58분 사망했다. 그는 우한교회 성도였다.

우한폐렴의 확산 위험에 대한 처음으로 경종을 울리고 대책을 호소했던 의사가 자신도 환자 진료 중 우한폐렴에 걸려 끝내 숨졌다고 중국 연합보(聯合報)가 2월 7일 보도했다. 리원량은 지난 1월 8일 발열 증상을 나타냈고 지난 2월 1일 확진 판정을 받았다. 병세는 6일 급속히 악화됐다가 결국 7일 새벽 기관 쇠약에 의한 심정지로 숨졌다. 

그는 우한폐렴 발생 초기 이 사실을 은폐·축소하려던 중국 공산당의 어두운 모습을 드러낸 상징적인 인물로 유명하다. 그는 작년 12월 30일 신종 사스 확진 환자 7명이 발생했다는 병원 문건을 얻게 됐다. 리원량은 그날 동창인 의사 7명이 같이 있는 웨챗 단체 대화방에서 화난(華南)수산물도매시장에서 신종 사스 확진 환자들이 발생했다는 글을 올렸고, 이후 이 사실은 인터넷에 급속히 전파돼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이후 중국경찰 공안은 리원량과 다른 의사 친구들을 체포하여 이들이 유언비어를 퍼뜨려 사회 질서를 해쳤다면서 '훈계서'를 받았다. 훈계서는 조사자가 위법 사실을 인정하고 반성한다는 내용이 담긴 문건이다. 우한폐렴 사태로 중국 공산당의 부실했던 초기 대응에 관한 비판이 커진 가운데 중국에서는 새로운 질병을 세상에 알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리원량의 재평가 요구가 높았다.

리원량은 지난 1월 30일 중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헛소문을 퍼뜨리지 않았으며 그저 모두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려고 했다고 밝혔다. “만일 그때 모두가 이 사실을 중시했다면 아마도 오늘의 전염병 폭발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리원량은 또 다른 중국 언론과의 문자 인터뷰에서 “현재 전염병이 확산 중인데 나는 도망가는 병사가 되지 않겠다. 회복되면 일선에서 싸울 것”이라고 심경을 토로했다.

그는 우한폐렴 확산 초기 마스크 등 아무런 보호 장비 없이 환자를 돌보다가 감염됐다. 그가 1월 31일 SNS에서 자신의 상태를 이렇게 밝혔다.

“12월 30일 한 환자의 검사 보고를 봤는데 사스 바이러스와 일치하는 게 많다는 내용이었다. 그 후 감염된 한 환자를 진료한 뒤 10일 기침이 나고 11일엔 열이 생겼으며 12일 입원하게 됐다. 당시 어떻게 사람 간 전염이 없고 의료진 감염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느냐고 생각했다. 이후 입원해 몇 차례 검사했는데 모두 음성으로 나왔지만, 여전히 호흡이 곤란해 활동할 수 없다. 치료를 잘 받아 조속히 퇴원하겠다” 

2월 1일 리원량은 웨이보(微博) 문자를 통해 우한폐렴 확진 판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리고 2월 6일 그가 위중하다는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우한 중심병원 SNS에는 그의 쾌유를 기원하는 댓글이 50만건 가까이 쇄도했다고 AP통신이 전했다. 그의 아내는 둘째를 임신중이었다고 불룸버그 통신은 전했다. 그는 축구를 좋아했고, 손홍민의 팬이기도 했다.

한편 중문과 교수와 중국에서 15년 사업했던 분에게 자문을 해보니, 이 글의 한글 번역이 매우 탁월하다고 평가했다. 그만큼 중국의 젊은 인테리들은 한시를 줄줄 외우는 등 문장력이 뛰어나다고 했다. 그래서 더욱 그의 죽음이 안타깝다. 중국 수뇌부는 리원량의 사망이 가져올 파장을 염려하여 무조건 살리라는 특별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그래서 심정지 후 3시간여 동안 심패소생술을 하고 전기충격을 가해서 갈비뼈가 부스러지고 가슴이 다 너덜너덜 해졌다는 소식이 더욱 안타깝다. 공산사회에서의 인민은 체제유지를 위한 소모품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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