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 시편 145:18.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 19. 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의 소원을 이루시며 또 저희 부르짖음을 들으사 구원하시리로다.

주의 일도 해야 하고 기도도 해야 하는데 만약 둘 중에 하나만 해야한다면, 당신은 무엇을 하겠습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도보다는 사역을 선택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더 쉽고 넓은 길이기 때문입니다. 외관상 기도는 보이지 않지만, 사역은 보이기 때문입니다.

크리스천에게 있어서 기도는 영적인 호흡이라는 것을 누구나 잘 알고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목사님이나 기도생활을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 기도부탁을 하고 자신은 별로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이 기도해주므로 응답을 받을 줄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과 매일 대화를 해야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호흡을 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과 같아서 하나님과의 관계도 끊어지고 숨도 끊어진 영적으로 죽은 시체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에게 왜 기도를 하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너무 바빠서 기도할 시간이 없다고 합니다. 기도를 별로 해보지 않아서 어떻게 기도해야할 줄을 몰라서 그런다고 합니다. 자기 자신보다 더 영적인 사람이 기도를 해주어야 더 효과적일 것 같아서 기도를 하지않고 다른 이들에게 부탁한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같은 사람(죄인)의 기도를 들어줄 것 같지 않아서 안 한다고 합니다. 해야할 일을 하지도 않으면서 기도한다고 되겠냐고 합니다. 내가 해야할 일을 먼저 한 뒤에 기도해야 하나님께서 들어주실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2-3)

누군가 나를 위해 기도를 해준다고 해서 나는 기도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이 성경에는 없습니다. 바쁘면 기도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도 없습니다. 또 기도를 잘 해야만 응답해준다는 말씀도 없으며, 완벽한 사람의 기도만 들어준다는 말도 없습니다. 예수께서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라고 하셨지, 먼저 자기의 일을 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도 성경도 모르는 이들은 자기 일을 먼저 해야한다고 합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성경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기도를 하되 쉬지말고 하라고 말씀합니다. 즉 하나님께 가까이 나오라고 말씀합니다. 기도는 우리를 살리는 호흡이기 때문입니다. 숨을 쉬지 않고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숨을 쉬지 못하는 사람은 죽은 사람입니다. 죽은 사람은 주의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종교적인 일은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여호와께서 빈궁한 자의 기도를 돌아보시며 저희 기도를 멸시치 아니하셨도다"(시 102:17).

우리가 주의 일과 기도 중에 한 가지밖에 할 수 없다고 한다면, 우리는 기도를 선택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살아있는 사람이 일을 할 수 있는 것이지 죽은 사람은 기도도 일도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기도를 하지 않으면서 주의 일을 한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영적으로 죽은 사람이 어떻게 주님의 일을 한단 말입니까!

영적으로 죽은 자들이 교회에서 리더의 자리에 앉아있고 중직을 맡아 교회를 이끌어가기 때문에 오늘날 교회가 주님의 몸된 구실을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에서 중직을 맡길 때에나 목회자로 세울 때에는 그가 기도를 얼마나 하고있는지, 또 그가 성경을 얼마나 읽고 묵상하며 실천하고 있는지를 파악한 다음에 맡겨야 합니다.

"이에 이 사람들을 먼저 시험하여 보고 그 후에 책망할 것이 없으면 집사의 직분을 하게 할 것이요"(딤전 3:10).

"형제들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살전 5:25).

오늘날 교회의 구성원들을 보면 어이없는 웃음이 나올 때가 많습니다. 새벽기도회나 금요기도회 등 기도회에 나오는 사람들은 평신도들이 많고, 기도회에 참석하지 않는 사람들 중의 많은 사람이 당회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교회의 공적인 기도회조차 참석하지 않는 이들을 당회에 참석시킬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그런데 더 웃을 수 없는 일은 목사가 기도회에 나오지 않는 교회입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행 2:26)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 10:25)

교회의 공적인 기도회에 나오지 않고, 함께 교회를 위한 기도를 하지 않는 사람들의 머리에서 무슨 생각이 나오겠습니까? 지극히 인본주의적인 사람의 생각이 나옵니다! 기도는 평신도들이 하고 교회의 중요한 회의는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이 한다면, 그 교회의 미래는 불보듯 뻔한 것 아닙니까? 숨을 쉬기 귀찮다고 숨을 쉬지 않으면서, 몸은 움직여야하니까 인공호흡기를 갖다대고 생명을 유지한들 그것이 살아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인공호흡기를 떼는 순간, 그는 시체와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의 역할을 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말하는 인공호흡기는 다른 이들의 기도입니다. 교회에서 정작 가장 많이 기도해야할 목사와 장로들은 기도하지 않고, 평신도들만 열심히 기도하는 교회가 바로 이렇게 언제 죽을지 모르는 교회입니다. 인공호흡기인 기도하는 평신도들이 떠나는 순간, 살아있으나 죽은 교회입니다.

"...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계 3:1)

"마침 사가랴가 그 반열의 차례대로 제사장의 직무를 하나님 앞에 행할쌔 제사장의 전례를 따라 제비를 뽑아 주의 성소에 들어가 분향하고 모든 백성은 그 분향하는 시간에 밖에서 기도하더니"(눅 1:8-10)

아무도 숨을 대신 쉬어줄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혹시 당신은 현재 당신의 호흡을 목회자나 성도들에게, 부모님이나 배우자에게 또는 다른 사람에게 맡겨놓지 않으셨습니까? 또는 다 죽어가게 되어 어쩔 수없이 다른이들을 찾아가 기도를 부탁하면서 인공호흡기로 간신히 삶을 유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엡 6:18)

엄마 뱃속에 있는 태아가 탯줄을 통해 영양분을 공급받지만 탯줄이 끊어지면 태아는 죽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에게 하실 말씀이 많으시며, 하늘의 신령한 만나를 공급해주고 싶어하십니다. 그런데 현재 당신의 상태는 어떠합니까? 스스로 탯줄을 끊어놓고 영양분이 필요없다고 하고있지는 않습니까? 숨을 쉬지 않으면서도 정신력으로 버틸 수 있으며 긍정의 힘(생각)이 호흡(기도)보다 중요하다고 스스로에게 가짜 평안으로 기만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 6:7)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계 3:19)

우리가 삶 속에서 실패하는 가장 큰 원인은 대화의 기술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대화"라고 하면, 말을 많이 해야한다고 착각합니다. 그런데 "대화"의 가장 기본은 "잘 듣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말을 경청할 수 있을 때에 우리는 오해없이 대화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많은 말을 하는 것보다 주님의 말씀을 들을 줄 아는 것이 아버지의 뜻을 아는 방법입니다.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나서 백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외치시되 들을 귀있는 자는 들을찌어다. 제자들이 이 비유의 뜻을 물으니 가라사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다른 사람에게는 비유로 하나니 이는 저희로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눅 8:8)

많은 이들이 대화를 한 뒤에, 상대방이 한 말은 거의 기억하지 못하고 자신이 한 말만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말했으니까" 상대방이 내 말을 들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상대방도 마찬가지로 생각할 경우, 대화가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서로가 자신의 주장을 주입시키려고 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내 주장만 하는 것은 일방적인 말이지, 대화가 아닙니다. 대화란, 상대방의 말을 충분히 이해한 뒤에 그 사람의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배려하면서 접촉점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내 주장만 내세우려고 할 때에, 그렇게 되지 않을 경우 원망과 불평과 비난이 입에서 흘러나오게 됩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찌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찌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키우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사 1:18-20)

주님은 아무 말씀도 하지 못하시도록 혼자만 말하지 말고, 주님과 대화 하십시오. 일방적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달라는 말만 하지 말고, 내 사정만 알아달라고 하지 말고, 한참 부르짖기만 하고 돌아서지 말고, 내가 한 마디 했으면, 주께서 나에게 하시는 말씀도 들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새벽 미명에 왜 하나님을 찾으셨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였습니다. 사역을 아버지의 뜻대로 하기 위해 아버지와 의논하며 대화해야 할 필요성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그렇게 하셨는데 하물며 피조물인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도 않고 하루를 살겠다는 그 교만함은 과연 어디에서 나오는 만용일까요?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막 1:35)

우리가 아침에 일어나서 성경을 묵상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때론 직접적으로 말씀을 주시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 성경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주님의 뜻을 알려주십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성경을 통해 말씀을 들으려고 하지 않고 성령의 음성을 듣기를 원합니다. 물론 그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성경을 배제한 상태에서는 잘못된 길로 빠질 수 있으므로 항상 성경을 가까이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그 음성이 성경적인지 비성경적인지를 알 수 있으며 성령의 음성인지 마귀의 음성인지를 분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마 11:27, 눅 10:22)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노하심을 격동하여 광야에서 시험하던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히 3:7-8)

진실하게 기도하는 사람은 주의 일을 하지말라고 해도 두손을 걷어부치고 일을 합니다. 주님과 소통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가 하나님과 사람들을 위해 무슨 일을 해야하는 지를 말씀해주시기 때문입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게 하라"(빌 2:13-14)

진실하게 기도하는 사람 즉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이에게 하나님께서는 마음의 소원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해야할 비전을 주십니다. 그래서 그 비전을 마음에 품고 그것을 향해 쉬지않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며 무슨 일을 당해도 기뻐하며 주의 일을 감당합니다. 그래서 결국 그 비전을 이루게 하십니다. 즉 기도의 응답을 받게 하십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사역자는 사명을 감당하기 전에 먼저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소명과 사명을 받습니다. 인간적인 꿈인 명예욕과 권세욕과 물욕을 모두 십자가에 못박아 자신을 부인한 사람만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비전을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일을 하려는 사람은 먼저 일을 하기 전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로 서있어야 합니다. 그분과 매일 정기적인 대화가 이루어져야만 합니다. 그리고 내 말보다 주님께서 더 많이 말씀하시도록 기도의 시간을 잘 할애해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고 먼저 주의 일을 하지 마십시오. 차라리 사역을 하지 않을지언정 기도는 반드시 해야합니다. 주의 일을 한다고 바빠서 기도할 시간이 없다면 그 일을 중단해야 합니다. 속지 마십시오. 지금 하고있는 어떠한 일로 인하여 기도할 시간이 없고, 예배의 자리에 나올 수 없다면 그 일을 속히 내려놓고 먼저 예배의 자리에 나아가십시오.

"저희가 평온함을 인하여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저희를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시 107:30)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마 15:28)

"소망이 더디 이루게 되면 그것이 마음을 상하게 하나니 소원이 이루는 것은 곧 생명 나무니라"(잠 13:12)

그 동안 나의 기도는 어떠했는가? 귀를 막고 입만 열고있지는 않았는가? 그 동안 나의 대화는 어떠했는가? 상대방의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고, 내 주장만 하지 않았는가?

"저희의 독은 뱀의 독 같으며 저희는 귀를 막은 귀머거리 독사 같으니 곧 술사가 아무리 공교한 방술을 행할찌라도 그 소리를 듣지 아니하는 독사로다"(시 58:4-5).

오늘, 그 동안 사람들과 해왔던 대화와 기도의 태도를 살펴봅시다.

만약 누군가가, 내가 하는 말투와 내가 하는 이야기 방식으로 나에게 똑같이 말 한다면, 나는 과연 좋아할까?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기분 나쁠 것인가? 내가 말하는 그대로 나에게 한다면, 감사할 것인가? 아니면 혹시 싸움이 일어나지는 않을까? 내가 기분이 나쁠 때 부모님이나 배우자에게 하듯 내 자녀나 배우자가 나에게 똑같이 한다면 어떨까? 내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에게 내가 했던 말을 나도 똑같이 듣는다면?

과연 그 동안 나는 어떠한 말을 해왔을까? 깊이 묵상해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나 자신의 대화에 대해 깊이 반성하는 시간을 가져보고, 하나님 앞에서 깊이 회개하는 시간을 가져봅시다. 그럴 때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을 것이며, 다른 이들의 말도 마음으로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깨달아 겸손히 순종하는 열매를 맺어 봅시다. 나의 본분은 하나님 아버지를 찬양하며 기쁘시게 하는 것이며 이웃을 내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받은 은혜와 감사의 제목은?

 

[기도]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대화의 방법을 잘 몰라서 일방적으로 저 혼자만 떠들다가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사라져버렸다가 또 필요하면 찾아와서 저 혼자 일방적으로 말하고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기회조차 드리지 않았던 저의 잘못된 대화 방식을 깨닫게 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막무가내였던 저를 불쌍히 여기시사 그래도 가끔은 제 기도를 들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저희 같으면 무시하거나 따끔하게 벌을 주었을텐데, 아버지께서는 저희의 무지를 아시고 무던히 참아주셨음을 생각할 때에 얼마나 감사하고 감사한지요!

기도를 제대로 못한 것처럼 사람들과의 대화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제 생각만 옳다고 생각하며 그것을 관철시키기 위해 제 주장만 내세우며, 저와 의견이 다르면 무시하였으며,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비웃는 말을 거침없이 했던 죄인입니다. 저의 이 교만한 언사가 주님 보시기에 얼마나 미련한 것인지요?

제 속에 성령님보다 저 자신이 너무 크게 자리잡고 있어서 제 고집과 제 이기심이 저를 주장하고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저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귀가 없었고, 다른 이들이 저에게 하는 말을 들을 자세를 갖추지 못했습니다. 저의 이 견고한 진을 말씀으로 깨뜨려주시고 온전히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만들어주옵소서. 그리하여 이제부터는 제가 입을 여는 것보다 귀를 열어서 잘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항상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찌어다"라고 하셨는데, 그 동안 저는 들을 귀가 없었고 입만 갖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것도 귀를 막은 귀머거리 독사처럼 다른 이들에게 독을 머금은 말을 거침없이 하여 상처를 주며 살았던 것은 아니었는지 두렵습니다.

이제는 입을 열기 전에 먼저 들을 줄 아는 제가 되어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람들을 섬겨줄 줄 아는, 대접받고 싶은 대로 먼저 대접하라는 주님의 말씀대로 실천하며 살기를 소망합니다. 그러하오니 저의 속 사람을 새롭게 변화시켜 주옵소서.

그 동안 사람들에게 인정받기만 원하여 외모만 치중하던 것을 버리고 속 사람이 성령 안에서 강건하여지기를 원하오니 오늘도 성령 충만케 하옵소서. 눈에 보이는 사역은 열심히 했지만, 보이지 않는 기도생활을 소홀히 했던 것을 고백하오니, 주의 일을 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 앞에서 아버지의 뜻을 깨달아 알게하여 주옵소서. 먼저 기도하고 사역하셨던 예수님처럼 저도 기도하기 전에는 아무 것도 하지말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이제부터는 주께서 주시는 마음의 소원을 품고 주께서 원하시는 삶을 향해 전진하게 하옵시며, 겸손히 낮아져서 많은 사람을 주께로 돌아오도록 섬겨줄 수 있는 제가 되도록 온전히 저의 마음을 주장하여 주옵소서. 쉬지말고 기도함으로 항상 주님과 동행하기를 원하오니 세상의 취미와 오락과 제가 추구하는 정욕적인 것들을 다 끊을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이제는 그러한 것들을 통해 즐거움을 얻었던 것이 어제의 일이 되게 하시며, 오늘부터는 주님 한 분 만으로 만족하며 주님 때문에 기쁘며 주님의 일을 할 수 있어서 감사할 수 있도록 저를 인도하여 주옵소서. 그래서 주님의 기쁨이 되며, 주님의 귀한 일꾼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주여, 도와주옵소서. 제 힘으로도 능으로도 되지 않고 오직 주의 성령으로만 가능하오니 주여, 저를 도와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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