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아지는 여성인권에 대한 목소리, 시대정신인가? 성경적 가치인가?

장대선 목사 (가마산장로교회 담임, 교회를 위한 개혁주의 연구회 회원)

최근 총신대학교에서 강○○ 교수(시간강사)의 강좌가 배제된 것과 관련하여 다시 개신교에서의 여성 불평등이라는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얼핏 현대사회의 통념 가운데서 볼 때에 이 사건의 핵심은 아주 간단히 여성인권과 관련된 것으로 보이겠지만, 사실은 그 안에 교회와 세속권세와의 관계에서부터 시작하여 신학적 권위(성경의 권위)의 문제에 이르는 여러 중요한 문제들이 얽혀 있다.

기본적으로 대한민국의 ‘헌법’은 ‘자유’와 ‘평등’이라는 민주주의의 두 가지 큰 원칙에 의거하여 세워진 법체계다. 즉 세속법에서 추구하는 인간론은 기본적으로 모든 사회 구성원의 동등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성경의 법에 바탕을 두는 교회의 법에서 정의하는 인간론(남여의 동등성 뿐 아니라 독특성을 중심으로 하는 인간론)은 기본적으로 바른 신학적 바탕을 떠나서는 이해될 수 없는 독특한 성격을 내포하고 있다. 특히 고대철학에서의 법의 출발이 ‘자연법(自然法)사상’에 있었던 것에 반해, 현대의 법은 ‘사회계약론(社會契約論)’과 같은 사상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엄밀하게는 그 맥락이 다른 것이고, 더욱이 ‘신법(神法)’으로서의 교회의 법은 자연법보다도 엄밀하고 절대적인 표준으로서 그 역할을 수행해야만 한다는 점에서 세속법과는 상당히 다른 바탕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사실 ‘법’이라는 것 자체의 기원은 자연법에 기원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 즉 하나님의 법에서 기원하는 것이라는 점을 이해해야만 한다.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자연의 질서 뿐 아니라 자연을 통치하는 원리로서의 법률 또한 제정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으로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당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 1:28)”는 말씀에는 바로 그러한 하나님의 권위에서 기원하는 절대적인 자연법이 근거가 내포되어 있다. 따라서 모든 법체계들의 기원은 바로 하나님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원리 가운데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1646)은 제23장에서 ‘국가의 위정자들에 관하여’라는 제목으로 세속권세와 법률의 문제를 균형 있게(교회와 무관하지 않고 협력하는 것으로 각각 양립하는) 다루고 있다.

기본적으로 모든 세상의 기원이 하나님께 있고 그러한 세상에 관계된 모든 법과 질서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수립된 것이기에, 자연의 질서(과학)의 이해 뿐 아니라 법과 문화 등 모든 피조세계의 일들이 하나님에 관한 지식(곧 신학)이 없이는 그 본질(essence)에 접근할 수가 없는 것인데, 바로 그러한 점에서 과학과 세속의 법체계는 근본적인 한계와 오류를 내포한 채로 세상을 정복하여 다스리고 있다.

사실 강 교수에 대한 문제는 ‘정교분리(the separation of religion and politics)’로 되어 있는 세속법의 원칙이 엄밀하게는 성립하기 어려운 모순을 내포하고 있음을 드러내 보이는 사건으로, 종교적인 문제에 세속법이 전혀 관여하지 않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종교기관 또한 세속법과 무관하게 성립할 수 없이 긴밀히 연계하여 있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즉 엄밀히 하면 개신교의 교육기관이라 할 수 있는 총신대학교의 문제(신학대학원과는 조금 다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교의 설립취지와 건학이념에는 분명 장로교단의 정체와 가치가 담겨 있다)에는 장로교단의 교육취지와 교육부의 정책이 미묘하게 중첩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세속법에서 규정하는 여성의 문제는 인권과 관계되어 동등성을 추구하는 가운데 있기 때문에, 여성이라는 젠더(gender) 또한 그 본래의 성격과 달리 남성과의 동질(同質)을 견지하고 있다. 반면에 교회법의 기반인 성경은 여성과 남성의 문제를 동질성 가운데 다룬다기보다는 그 독특성으로 다루고 있는데, 그 독특성의 성격을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할 때에 자칫 차별(差別)로 비칠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강 교수는 그러한 오류를 인터뷰 가운데서 충분히 드러냈는데, “여성 혐오는 2000년 기독교 역사에서 남성교부들, 남성 신학자들과 남성 목사들의 가부장적 신학과 성경해석으로 진리와 교리라는 명분 속에 침전돼 있었어요. 남성직제의 과잉 강조가 불러온 '기독교의 악'이라는 의미이죠. 대안이라면 먼저 성정체성, 성역할의 인식전환을 위해 여성과 신학적 논의 및 토론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까지 교회론, 목회론, 상담, 교육, 설교, 예배, 행정 및 정치 담론은 남성에 의한, 남성을 위한 신학이었기 때문에 성과 관련한 신학과 신앙, 영성 등에 대해 여성입장의 재정립이 필요해요.”라는 발언에서부터, “여성의 신학적 확신의 초점은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은 성을 초월하시는 인격적이신 분이십니다. 지금까지 남성의 하나님으로만 강조되어 왔다면 이제부터라도 여성의 하나님을 말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라는 발언과 “한국교회의 미래를 위해 교육과 예배, 전도, 선교, 봉사, 행정과 정치영역에서 여성리더십을 활성화해야 합니다. 또 신학대학원에서 여교수 채용 및 여성리더십과 관련된 과목들을 개설해 줄 것을 제안하고자 합니다.”라는 발언에 이르기까지 전형적인 여성신학(feminism)의 입장에 서있다. 그러한 여성신학의 입장이야말로 인본주의신학인 자유주의신학(Liberal Christianity)이 ‘인권(人權)’이라는 주제와 더불어 세속의 가치관과 강하게 융합하는 주제이니, 총신대학교의 문제는 사실상 여성신학을 근거로 하는 자유주의신학이 대한예수교장로교 합동교단에 공적으로 확고하게 자리하게 되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학교 측의 입장이 뚜렷한 신학적 근거를 전혀 제시하지 않는 점이다. 사실 그러한 여성신학의 내용을 담은 자가 ‘총신(총회신학)’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학교의 학부과정에서 그동안 교수로 봉직해 왔다는 것부터 이미 문제의 발단을 용인하고 있었던 것인데도, 어찌 보면 자치규정인 학칙이나 행정적인 요건 가운데서 강 교수의 문제를 다루는 것은 강 교수의 문제에 내포된 심각한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대처다. 여성교수의 강의라고 하더라도, 그가 가르치는 내용은 장로교회의 신학에 위배되거나 벗어나지 않는 것이어야만 하는 것이 ‘총신’이라는 명칭에 합당한 교육자세라는 점을 강조해야 마땅한 것이다.

최근 김○○ 교수의 칭의론이 점점 분명하게 그 파장을 넓혀가고 있는데, 그의 신학이 갖는 자유주의적인 성격은 그가 바로 성경의 권위문제를 사회·문화적 재해석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분명하게 그 성격을 보여주고 있다. 바로 그러한 바탕 가운데서 성경의 모든 구절들이 당시의 문화 혹은 사회적 배경 가운데서 이해되며, 거기에 약간의 원어상의 문법적인 재해석이 가미될 때에 비로소 자유주의신학의 모토(motto)들이 현실적인 신학적 기반을 확보하게 되는 것인데, 이에 따라 교부(a Church Father)들을 비롯하여 정통 신학자들의 성경해석상 일관성이 다시 한 번 중요하게 대두되는 것이다.

이러한 추세들로 보건데, 국내의 장로교단들이 자유주의신학의 명백한 영토가 될 날이 그리 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 시대야말로 가장 엄밀한 장로교 신학의 재조명과 지지(支持)가 유일한 대안이다. 적당한 장로교 신학으로는 결코 인간 중심의 시류(the trend of the world)를 막아내지 못한다. 굳건하고 분명한 신학이 빠진 개혁이란, 터진 제방 위에 쌓아올리는 모래주머니에 불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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