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63편은 다윗이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인해서 유대광야로 피신하고 머물고 있을 때 지은 시이다. 이 시를 비탄시라고 부른다. 본시는 대적의 행악에 대한 고발이나 원수의 멸망을 기원하는 것이 아니라, 대적에게 쫓겨 다니는 자신의 곤핍한 심정에 대한 고발적인 시이다.
다윗은 자신의 참담한 심정을 구원의 하나님께 내려놓고 의지한다(1절).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입니다.” 다윗의 진실한 신앙고백이다. 인생의 초라한 순간에 누구를 찾는가가 그 사람의 신앙과 인격이다. 우리가 믿든 안 믿든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다. 우리의 왕이다. 우리의 구원자요, 치료자이다. 고백이 병들지 않기를 바란다. 언어가 그 사람의 내면을 대변해주는 것이다. 언어가 병들지 않아야 복을 받는다.
유대광야는 어떤 땅인가?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이다.’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환경에서 다윗은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라고 고백한다.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한다” ‘갈망’이란 무엇인가? ‘몹시 사모하는 것’이다. 다윗은 나의 영혼이 주를 몹시 사모한다고 고백하고 있다.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한다. ‘앙모’라는 말은 ‘바라본다는’ 것이다. 나의 육체가 주를 바라본다고 한다. 고난속에 있던 다윗은 주님의 은총을 몹시 사모하면서 바라보고 있다. 고난속에서 사는 길은 하나님을 사모하고 바라보는 것이다. 위를 바라보아야 한다. 나의 창조자를 바라보는 것이 고난을 통과하는 지혜이다.
오늘 우리시대는 하나님에 대한 갈망이 점점 식어가고 있다. 하나님에 대한 갈망의 자리에 세상을 향한 갈망으로 끊임없는 욕망으로 채워져 가고 있다. 세상에 대한 갈망이 점점 극대화되면서 하나님의 영광의 자리는 점점 그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이것이 우리시대의 아픔이다. 교회는 물질도 건물도 사람도 풍부하지만 하나님을 더 이상 갈망하지 않는다. 어느 듯 인간들의 모임정도로 전락해가고 있는 듣듯 세상 냄새가 진동한다.
성경의 사람들은 우리와 달랐다. 그들은 여호와의 임재를 갈망했다. 여호와를 앙모했다. 시편기자는 신앙고백이 그립다.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시73:25,26).
주님을 사모할 때 그분에게서 모든 것이 나온다. 다윗은 성전에 건축할 모든 재료를 준비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감사 기도를 드렸다. 역대상29장 10절 이하를 보면 모든 것이 주님께로부터 비롯된다고 고백을 한다.
이 땅에서 승리하는 비결이 무엇인가? 오직 하나님을 갈망하는 것이다. 이것이 문제를 푸는 열쇠이다.
우리들의 갈급함과 믿음의 선배들이 갈급함과는 많은 차이가 난다. 우리들은 사소한 것들을 갈망하지만 신앙의 선배들은 하나님 그 자체를 갈망했다.
우리가 절망속에 있을 때, 우리가 너무 쇠약할 때, 새 힘을 얻는 원천이 어디서 나오는 가? “···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사40:27 이하). 이것이 진리이다.
우리 시대에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영광을 갈망해야 한다. 우리시대는 소돔과 고모라 시대와 같이 성적으로 타락했다. 노아시대와 같이 부패했고 모든 생각이 죄악으로 달려가고 있다. 지구촌은 질병과 전쟁과 배고픔과 환경재앙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 지구촌이 사는 길이 하나있다. 하나님을 갈망해야 한다.
1863년 4월 30일은 미국 독립 87년만에 영적 대각성을 추구한 거룩한 날로 기억한다.
미국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청교도인들이 세운 나라이다. 미국의 출발은 신앙이다. 그런데 80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면서 신앙이 무너져가고 있었다. 미국 상원의원들이 한 마음으로 민족적 기도와 자기를 겸비를 위해 하루를 정해서 기도할것을 링컨대통령에게 요청했다.
1863년 4월 30일 목요일로 지정하고 그날에 국가적 겸손과 금식과 기도의 날로 선언했다. 일상적이고 세속적인 모든 일을 멈추고 공공 예배 장소나 각자의 집에 함께 모여, 그날을 여호와께 거룩하게 지키고, 그 엄숙한 취지에 걸맞게 신앙적 의무를 겸손히 이행하기를 전국민들게 요청했다.
그날에 미국 국민들은 금식하며 회개를 촉구했던 내용이다.
(1)자신의 죄악을 겸손하게 진실로 회개하여 긍휼과 용서를 받자
(2)여호와만을 하나님으로 모시는 민족만이 복되며, 민족과 모든 사람들의 의무이다
(3)민족도 개인도 하나님의 징벌을 받을 수 있다. 남북전쟁의 끔찍한 재난이 우리의 뻔뻔스러운 죄악의 결과이므로 회개하자
(4)우리는 엄청난 축복을 받았다. 그런데 지금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있다. 인구가 늘고, 경제가 성장하고, 평화를 주셨다. 그런데 하나님을 잊었다. 우리가 무너지지 않는 성공에 취한 나머지 우리가 너무 자만하여 구속하고 보존하시는 은혜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고 있다. 우리가 지금해야 할 일은 겸손히 무릎끊고 나라의 죄악을 자백하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링컨 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미국인들은 그날에 금식하며 하나님을 다시 갈망했다. 주님의 임재와 용서와 긍휼과 섭리를 사모했다. 전국민이 영적 대각성 운동을 했던 것이다.
이 땅에 그리스도인들은 국란을 통해서 일사각오의 정신이 필요하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서 세상이 교회를 함부로 대한다. 감히 함부로 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영광이 가득찬 교회가 되기를 갈망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영광이 가득하면 세상은 교회를 존경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갈망이 사라진 교회는 세상사람들로부터 짓밟힌다. 이 사실을 잊지말아야 한다.
초대교회는 가장 이상적인 공동체를 만들었다. 주님이 원하시는 교회의 모습이다. 초대교회와 오늘날 교회를 비교하면 오늘날 교회가 더 합리적인 구조이고 어쩌면 더 이상적이고 완벽하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가 잃어가고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초대교회에는 오직 하나님만 갈망하고 사모하는 신앙이 있었다. 오직 예수그리스도 한분만 있으면 됐다. 여기서부터 모든 결단과 거룩한 헌신과 온전한 순종의 신앙이 나왔다. 우리가 초대교회의 신앙으로 돌아가자고 말을 하는 것은, 바로 주님 한 분만 있으면 됩니다. 라는 신앙을 회복하자는 의미이다. 우리는 초대교회의 모습이 회복되기를 위해 갈망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영광이 가득히 임하니 초대교회는 세상과 다른 삶의 방식을 추구했다.
세상 모든 곳에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이 존귀하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갈망해야 한다. 오늘날 코로나 바이러스 전염병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예측이 잘 안된다. 위기가 곧 신앙의 쇠락으로 이어지면 안된다. 국란앞에서 온 국민이 하나님을 갈망하고 사모하고 열망하며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이 이 땅을 거룩하게 회복하는 길이다. 주님을 갈망할 때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의 문제도 풀 수 있는 에너지를 얻는다. 오히려 기도의 자리로 나오라, 말씀을 사모하라, 조국을 위해 눈물로 회개 기도하라. 국란을 오히려 신앙으로 풀어갈 때, 위기를 극복하고 성장의 기회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