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지런히 공부한 것을 전하는 말쟁이, 설교자

  • 입력 2020.12.04 08:53
글자 크기
프린트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말씀 사역자에게 고하는 말씀 (23)

한명철 목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은혜와 평강교회를 담임하며 30권의 저술과 글쓰기를 통해 복음 사역에 애쓰는 목회자다
한명철 목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은혜와 평강교회를 담임하며 30권의 저술과 글쓰기를 통해 복음 사역에 애쓰는 목회자다

훈련을 통해 습득된 말쟁이, 설교자

다시 설교 주제로 돌아가자! 한 표현에 집중된 힘을 분산하여 전체로서의 메시지에 일종의 장력을 높이려 프레임 같은 꾸밈을 사용한다. 명사에는 형용사의 꾸밈을, 동사에는 부사의 꾸밈으로 프레임을 짜 맞춘다. 기본적인 꾸밈만 가해도 주어와 동사의 얼굴이 빛난다. 반드시 명사는 이름값을 해야 하고 동사는 동작에 책임을 져야 한다. 형용사는 명사를 위해 존재하고 부사는 동사를 위해 존재한다. 허나 그 꾸밈이 지나치면 보약이 독약 된다. 형용사는 명사의 적이 되고 부사는 동사의 적이 된다. 이 둘의 사용은 극약 처방이어야 한다. 한 단어, 심지어 ‘은/는/이/가/을/를’ 같은 조사 하나 선정하는데도 고도의 세밀함과 명민함이 요구된다. 한 문장에서 같은 조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조심한다. 물론 이런 과정을 아예 묵살하고 물 흐르듯 설교를 전개하는 이들도 간혹 있다. 구어에서야 문제될 것이 없지만 문어로 보면 문장이 산만하고 어지럽다.

우리 중에는 타고난 말쟁이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대개는 설교에 문외한으로 태어나 자랐다. 어느 날 은혜를 받거나 다양한 이유들로 인해 신학교 문을 두드렸고 필요한 과정을 끝내면서 목사가 되었다. 목사가 되어 한 교회를 맡고나서부터 설교는 이제 식사나 수면처럼 일상적인 것이 되었고 설교에 관한 생각이나 부담은 숨 쉬는 것처럼 일체가 되다시피 했다. 뜨거운 사명감이든 차가운 책임감이든 오랜 동안 설교를 해온 입장에서 설교자는 말로 사는 사람이 된 것은 자타가 공인하는 바다. 그렇다면 훈련을 통해 습득된 말쟁이라도 되어야 옳지 않은가?

부지런히 공부한 것을 전하는 말쟁이, 설교자

주전 5~4세기 때부터 아테네는 세계문화의 중심지로서 이름을 날렸다. 아테네는 고대세계에서 최고 지성의 산실이었다. 페리클레스 같은 정치가에, 데모스테네스 같은 웅변가에, 소포클레스와 유리피데스 같은 극작가에, 소크라테스와 플라토와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철학자는 고도 아테네를 빛낸 인물이었다. 신들의 고향으로서 온갖 신화들이 전해진 신비의 도시였으며, 인류의 등불 같은 민주제도의 발상지이기도 했다. 아테네는 모름지기 작은 거인과 같은 인류사의 보배였다.

예정된 방문이 아니라 환상을 따라 달려갔던 마게도냐에서 강하게 불어 닥친 박해의 역풍을 피하려 바울이 찾은 곳이 아테네였다. 거기에서 실라와 디모데와 합류하기를 기다리던 바울은 남는 시간을 이용해 아테네를 한번 쭉 돌아보았다. 발길을 옮길 때마다 아름다운 조각물에 매료되었으나 그것들이 하나같이 우상인 것을 알고는 열화 같은 분노를 느꼈다. 그래서 바울은 팔을 걷어붙이고 유대인 회당과 저자거리를 찾아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설득했다. 물론 논쟁의 주제는 종교적인 문제였다. 결국 바울은 아테네의 양 극단 세력인 에피큐러스 학파와 스토익 학파에 속한 철학자들과 논쟁하기에 이르렀다.

바울의 색다른 내용에 흥미를 느낀 자들이 그의 말 듣기를 원했다. 그때 바울을 지칭한 것이 바로 “말쟁이”란 표현이다. 이렇게 해서 태어난 것이 저 유명한 아레오바고 법정에서의 설교다. “말쟁이”(bubbler, 헬라어로는 spermologos)란 말은 남을 조롱할 때 사용하던 풍자적 언어였다. 문자적으로는 논밭에서 여러 씨앗이나 곡식을 바쁘게 쪼아 먹는 새들을 표현한 말이었다. 길가에서 씨앗들을 먹고사는 “띠 까마귀”(rook)를 그렇게 불렀는데 사기꾼의 의미로 전용되었다. 고물시장을 찾는 폐품 수집가에게도 이 말이 적용되었지만 가장 많게는 남의 사상을 가로채 의미도 모르면서 자신의 것 인양 퍼트리던 변변치 못한 사람들을 나타내는데 사용되었다.

실제로 바울 당시에는 남의 사상을 여기저기서 주워 모아 자기의 생각인 것처럼 퍼뜨리는 순회철학자들이 많았다. 그래서 그들을 경멸하던 아테네 시민들은 자신들이 평생 듣지 못한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십자가 죽음과 몸의 부활을 듣게 되었을 때 바울이 여기저기서 끌어 모은 이교의 사상들을 전하는 것이라 여겨 그를 “스페르몰로고스”(말쟁이)라 불렀던 것이다. 이런 역사적이고 어원적 배경 아래서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솔직해지면 그대와 나는 영락없는 말쟁이다. 당연히 말쟁이여야 한다. 단지 바른 설교자를 지향하고 사이비 설교자를 지양하는 관점에서 나와 그대는 출처 불분명한 자료나 표절에 가까운 퍼나르기식 전달만은 피해야 마땅하다. 그러기 위해선 부지런히 공부에 임해야 한다.

설교공부에 있어서 평생학습자, 설교자

이 글의 골자는 “공부”다. 필자의 작은 경험에 관해 약간 언급함을 용서해주길 빈다. 필자가 평생학습자(Life-long learner)이길 원해서 말씀과 기도를 배우고 익히는 일에 목숨을 걸다시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말씀과 기도를 연구하는 자체가 즐겁다. 천천히 꾸준하게(slow and steady) 공부하면서 새로운 세계를 접하고 안목이 열릴 때면 기쁨이 넘친다. 몰입해서 얻는 것은 환희다. 설교를 준비하는 과정에 가슴 뛰고 전할 때의 존재감은 충일하다. 설교 준비를 짐스럽게 여겼다면 진작 즐길 거리 찾아 노닐었을 것이다.

설교공부에 게으른 설교자는 가장 기초적인 자질이 없어 좋은 설교를 만들어 전하기에 역부족이다. 자신의 재능이나 경험만을 믿고 공부하지 않을 뿐 아니라 공부하는 설교자를 까거나 비웃는 무뢰배는 퇴출되어야 모두에게 이롭다. 공부하는 것이 부끄러운 게 아니라 공부하지 않음이 수치스런 일이다. ‘젊어선 공부에 매달려도 2~30년 말쟁이 노릇을 했으면 경험에 의지하는 게 맞다’는 주장이 대세일지라도 이런 흐름을 거스르지 못하면 새로운 차원은 열리지 않는다.

철저한 연구와 훈련을 동료 삼는, 선교자

훈련과 공부는 끝 간 데를 모르는 법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라! 무작정 휘두른 펀치에 강한 상대가 쓰러지는 법은 없다. 그 한방이 결정적 한방이 되기 위해선 무수히 땀으로 목욕한 훈련의 기간이 있다. 1977년 약관 17세의 나이로 11전 11승 무패 100% 케이오우를 자랑하며 지옥의 저승사자로 불리던 카라스키야를 복서 홍수환이 적지 파나마의 링 위에서 4전5기의 신화를 일군 날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었다. 돌주먹에도 정신 줄을 놓지 않는 뚝심과 한방과 함께 무수히 날렸던 주먹질이 강자를 캔버스에 드러눕게 만들었다. 한 편의 설교를 위해 무수한 밤을 하얗게 새우지 않고 영혼을 얻기 위한 극렬한 싸움터에 나설 생각은 버려야 옳다. 복싱이나 설교나 운명의 한방은 무수한 가격의 훈련과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초인적 의지의 결과물이다.

글쓰기 훈련의 첫 걸음에 해당하는 방법을 말하련다. 기초적인 문장표현을 익히고 질 좋은 글쓰기 훈련에 적극 임해라! 힘과 장력의 완급을 조절하며 메시지를 메시지답게 만들어 전하려면 메시지를 언어와 문자에 담는 훈련에 돌입해야 한다. 언어를 익혀야 구어체에 강하고 글자에 정통해야 문어체에 강하다. 꾸밈이란 적당하면 문장에 힘과 유려미가 더하지만 과하면 10계명 준수를 위해 조성된 613개의 세부조문처럼 핵심에 가 닿기도 전에 매력적인 도우미 모습에 시선을 빼앗겨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한다. 문어체와 구어체의 비율은 7:3, 또는 8:2 정도가 적당하다.

한 편의 설교를 작성함에는 고도의 준비성과 정성, 전문가다운 기술이 요구된다. 쉽게 만들면 세워지기 힘들다. 그런 자세에서 비롯된 설교가 아니라면 죄다 쓰레기통에 내버려야 한다. 그것이 청중을 배려하는 최적의 마음가짐이며 당신을 설교자로 세우신 주님의 뜻을 훼손치 않음이다. 설교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주변적인 것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표정, 눈동자의 움직임과 눈높이의 정도, 손발의 사용과 몸 전체를 사용하는 바디 랭귀지의 정도, 음성의 고저강약, 눈물과 웃음의 적정량, 어느 것 하나 만만한 것이 없다. 그래서 설교가 어렵고 그러기에 철저한 연구와 훈련만이 끝까지 믿을 동료다.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