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세 번째 : E. 예수의 명령(8:22-56)2 거라사 귀신(26-39)축출과 이방선교

  • 입력 2021.09.14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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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인호 박사와 함께 가는 누가복음 산책 (33)

 

임인호 박사 / 서울신학대학, 호서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호서대학교대학원 신약학박사, 서울신대-호서대-중앙신학교 외래교수 역임, 동인교회 담임목사
임인호 박사 / 서울신학대학, 호서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호서대학교대학원 신약학박사, 서울신대-호서대-중앙신학교 외래교수 역임, 동인교회 담임목사

1. 도착과 만남(26-27a)

누가의 내용은 마가 내용과 차이가 있지만 구성의 기본 골격은 마가의 것을 유지합니다. 건너편으로 가자는 예수의 말씀과 말씀대로 배를 타고 건너가 도착한 곳은 거라사인의 땅입니다. 이 지역에 대해서 누가는 갈릴리 맞은 편이라 말합니다. ‘맞은 편(ajntipevran 안티페란)’은 신약성경에서 유일하게 여기에만 사용된 단어로, 마가와 마태의 페란(pevran)’안티(ajntiv)’를 결합한 단어입니다. 누가가 이렇게 잘 사용하지 않는 단어로 이 부분을 수정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안티대조하여’ ‘반대하여의 의미가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누가가 강을 건너 도착한 거라사인의 땅은 단순히 강 건너편이 아니라 그 이상의 의미로 유대 반대편 지역, 이방이라고 말합니다.

2. 귀신들린 자 묘사(27b-29)

풍랑을 극복하고 이방 지역에 도착한 예수 일행을 귀신들린 자가 맞이합니다. 누가는 이 사람이 이 도시 사람으로 옷을 입지 않고 집에도 거하지 않고 무덤에 거주한다고 말합니다. 그가 벗었다는 것은 짐승 같다는 의미이며, 무덤에 거주한다는 것은 그가 산자가 아니라 죽은 자들과 함께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유대전승에서 무덤 사이에 거처한다는 것은 미쳤다는 것을 보여 주는 표지입니다. 그리고 짐승은 이방인의 비유로 유대인들이 자주 사용한다는 것도 의미가 있어 보입니다.

마가는 귀신들린 자가 쇠사슬로 묶여 있다가 그것을 부수었고, 이제는 더 이상 쇠사슬로 제어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밤낮 무덤 사이에서 소리치고 자기 몸을 해친다고 묘사합니다. 이에 비해 마태는 간단하게 사납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귀신들린 자에 대한 각 복음서의 묘사의 차이는 무엇 때문입니까?

풍랑 이야기는 예수가 누구인가?’하는 기독론적 질문과 함께 바람과 물도 순종하는 분으로 연결됩니다. 이런 예수는 이방 거라사인의 땅에서 귀신들린 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로 언급됩니다. 이 표현은 3복음서 모두 비슷합니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은 누가복음이 예수를 그리는 모습입니다. 귀신은 예수를 정확하게 압니다. 그런데, 그는 예수를 자기를 괴롭히는 존재로 인식합니다. 귀신의 이런 반응을 누가는 예수께서 귀신에게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명령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이점은 마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이 표현은 마가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여겨도 좋습니다.

예수께서는 귀신에게 어떤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방식으로 예수가 귀신에게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말했다고 표현합니다.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더러운 귀신의 원어적 표현은 더러운 영(tw'/ pneuvmati tw'/ ajkaqavrtw)’으로 누가에 5번 더 나옵니다. ‘명령꾸짖음으로 더러운 귀신이 축출됩니다(4:36; 9:42). 이 모습은 앞의 풍랑 이야기에서 바람과 물결을 꾸짖어 잔잔하게 하는 예수 모습과 같습니다. 예수의 꾸지람으로 바람과 물결이 잔잔해진 것처럼 귀신도 예수의 말씀에 의해 쫓겨나갑니다. 귀신이 예수를 보고 부르짖으며 예수 앞에 엎드립니다. ‘엎드리다는 용어는 누가복음에 2번 사도행전에 1번 더 나오는데, 그 의미가 모두 긍정적입니다. 귀신들린 자가 예수 앞에 엎드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이며,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부르는 것도 어떻게 생각해야 합니까? 귀신도 예수가 엎드려야(예배) 할 분이며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제대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귀신은 그런 예수가 자기를 괴롭힌다고 생각합니다. 예수가 누구인지 제대로 알고 그를 경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예수와 자기와의 관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함으로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귀신의 다른 모습을 기억하며 간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3. 예수의 질문과 귀신의 태도(30-33)

예수가 귀신의 이름을 묻자, 귀신은 군대(legewvn)라 대답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답한 것에 대해서 누가는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귀신이 말한 군대는 예수가 물은 이름에 대한 답변이라고 여기기가 쉬습니다. 하지만 뒤의 설명을 통해 군대는 이름이 아니라, 자신이 얼마나 힘이 있는 지를 드러내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의 물음에 귀신은 동문서답한 것입니다. 자기가 힘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 귀신이 예수에게 여러 번 간구합니다. ‘무저갱으로 들어가라고 말하지 말라간구하였고, 주변에 있는 많은 돼지 떼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허락해 달라 간구합니다. 예수가 허락하자, 귀신은 사람에게서 나와 돼지에게로 들어갑니다. 힘 있는 군대 귀신이 예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뿐만 아니라 힘이 있는 귀신이 예수에게 여러 번 간구합니다. 이런 모습을 통해서 누가는 예수가 이방지역에서도 능력자라는 것을 드러냅니다.

돼지에게로 들어간 군대 귀신(레기온)은 호수를 향해 비탈로 돌진해 몰살합니다. 레기온은 알려진 대로 로마 군단을 지칭하는 용어입니다. 실제 갈릴리에는 로마 제10군단이 주둔하였는데, 이 군단의 깃발이 돼지였습니다. 이를 통해 귀신이 들어간 돼지는 단순한 돼지가 아니라 로마군대를 상징할 수 있다는 주장의 근거가 됩니다. 돼지는 유대적인 시각에 의하면 더러운(불결한) 짐승이기 때문에(11:7; 14:8) 더러운 귀신의 거처로 돼지는 적절합니다. 돼지와 함께 귀신이 몰살하여 사라집니다. 하지만 이것으로 이야기가 끝나지 않습니다.

4. 귀신 축출의 의미-이루어진 일(34-39)

새로운 단락은 귀신의 몰살을 본 사람의 전파로 전개됩니다. 이 부분은 4부분(34-35a, 35b-35d, 36-37, 38)으로 구성되었으며, 각 부분은 3개 동사를 중심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첫 번째 부분(34-35a)3개 동사(도망치다, 알리다. 나아온다)는 모두 이루어진 일과 관련됩니다. 즉 앞의 돼지들의 호수 몰살과 연결됩니다. 두 번째 부분(35b-35d)3개 동사(가다, 보다, 두려워하다)는 귀신나간 자가 온전하여 예수의 발아래 앉아 있는 모습과 연결됩니다. 이들이 와서 본 것이 이것이고, 이것 때문에 이들은 두려워합니다. 세 번째 부분(36-37)3개 동사(고하다, 구하다, 돌아가다)는 귀신 들렸던 자의 구원을 중심으로 언급됩니다. 이것을 알려준 것 때문에, 사람들을 두려워 예수가 떠나기를 구하였고, 예수는 돌아갑니다. 네 번째(38-39)에 사용된 3개 동사(청하다, 보내다, 가다)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행한 것, 예수가 자기에게 행한 것입니다. 귀신 나간 사람은 예수와 함께 있기를 요구하였고, 예수는 이 사람을 파송하며, 그는 전파하여 나아갑니다.

각 부분의 중심을 이룬 이 4개의 말, ‘이루어진 일’, ‘귀신나간 자가 온전해짐’ ‘귀신 들렸던 자의 구원그리고, ‘하나님이 행하고, 예수가 자기에게 행한 것은 유사한 의미로 이 이야기에서 말하는 중요한 개념이 무엇인지를 말합니다.

5. 마무리

거라사 귀신 이야기는 복음이 전파되어야 할 이방의 선교 현실이 녹녹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시작부터 충돌이 발생하지만(27) 내용은 전파(선교)하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40). 그 지역 사람들의 요구로 예수께서 떠나야 했지만(37) 귀신들린 후 회복된 사람은 예수를 환영하며 예수와 함께 있기를 청하며, 예수의 명령대로 온 도시에 자기에게 행한 예수를 전파합니다. 바로 이 사람을 통해서 이방 선교의 가능성을 드러냅니다.

예수께서는 귀신들렸던 자를 구원합니다(36)’ 이것은 하나님이 행하고 예수께서 행하신 것입니다. 구원의 역사가 유대 밖 갈릴리 반대편 이방 땅 거라사인 지역에서 일어납니다. 이방에서도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납니다. 이것을 통해서 누가는 복음이 이방지역에도 전파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방 선교는 유대인들이 풀어야 할 오랜 과제였습니다. 요나 이야기에서 드러난 것처럼 이방에 가서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것은 선지자도 싫어할 정도로 당시 유대인들의 현실입니다. 풍랑 이야기에 이런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풍랑(풍조)을 극복하고 도착한 이방에서 자신을 가로막는 귀신을 예수는 사람에게서 쫓아내며 돼지떼와 함께 제압합니다. 이방으로 가자고 말한 예수께서는 이방에서도 능력을 행합니다. 이렇게 누가는 이방에 복음을 전파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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