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은 말은 쉽지 삶으로 살아내고 증명하는 것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 모든 것을 던져야하고 내려놓아야한다. 한번도 내려놓음의 삶을 살아보지 못한 신앙인들이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라”(마16:24)라는 말씀은 넘지못할 장벽처럼 느껴질것이다. 그러나 그 장벽을 넘어보라. 영적세계의 즐거움과 영혼의 새힘이 돋아날것이다.
(1)자기를 부인하라: 하나님의 나라와 뜻을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날마다 자기를 부인해야 한다. 내가 살아나면 하나님의 뜻은 점점 멀어진다. 교회는 나를 부인하는 장소이다. 그래야 교회가 살고, 예수님의 말씀이 회복된다.
(2)자기 십자가를 지라: 하나님이 맡겨주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이 축복이다. 베드로의 길이 있고 요한의 길이 있는 것이다. 자기 십자가는 자기가 지고 걸어가라.
(3)나를 따르라: 우리의 푯대가 있다. 우리의 선장이 있다. 예수님이다. 예수님만 따르면 된다. 예수님만 따르면 물위를 걷다가 바다에 빠지지 않는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라 가다가 세상을 보면 염려 공포 낙담 실망에 넘어진다.
억지로 끌려가는 것처럼 마지못해 사명의 길을 걷지 말라. 사명의 길을 즐겁게 걸어가라.나에게 주어진 고난이라고 한다면, 정면으로 맞서서 싸우며 즐기라. 즐기는 자를 이기지 못한다.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다가 시험이 들때가 있다. 기도의 시간을 더 늘려라. 기도는 고난을 극복할 수 있는 영적 에너지를 준다.
고후4:8-10“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고후4:16-18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이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세로워지도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우리에게 닥칠 고난이라면 피하지 말고 숨지말고 도망다니지 말고 즐겨라. 왜냐하면 우리는 버림당하지 않는다, 망하지 않는다. 예수의 생명이 내게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기 때문이다.
내가 짊어져야할 사명의 십자가라고 한다면 포기하지 말고 즐기라. 사명을 즐기는 사람은 결국에는 이기게 된다.
복음을 삶으로 증명한 사도_베드로와 요한 정면승부 걸다
베드로와 요한이 예수그리스도안에서 죽은자가 부활한다고 가르쳤다. 당시 종교인들은 부활의 복음을 전하는 것을 아주 싫어했다.(행4:1,2)
성전앞에서 구걸하던 앉은뱅이를 향해서 베드로 사도가 외쳤다. “금과 은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앉은뱅이가 두발로 뛰며 걸으며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기적이 일어났다. 이 사건으로 남자만 5천명이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역사가 일어났다.
그리고 솔로몬 행각에서 베드로가 설교를 했다.
사람들이 놀랍게 여겼다. 불가능한 일이 눈앞에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어제까지는 앉은뱅이로 살았던 비굴한 인생이었다. 내가 비웃었던 사람, 불쌍하게 여겼던 사람이다. 이제는 나와 똑같이 두발로 걷고 있다. 사람들이 놀랍게 여기며 이것이 어찌 된 일이냐? 물었다. 베드로가 설교를 했다.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행3“:16).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인해서 고침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행3:19).
베드로는 이 기회를 전도의 기회로 삼았다. 그결과 남자만 5천명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다. 이 사건을 아주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기득권을 누리고 있던 종교인들이다.
베드로와 요한이 관리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과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와 요한과 알렉산더와 대제사장 문중들이 다 참석한 곳에 잡혀왔다. 베드로와 요한의 인생의 엄청난 압박감과 고난이 몰려왔다.
행4:7 “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묻되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베드로와 요한은 산헤드린 공회원 앞에서 정면으로 승부를 선택했다.
“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이르되 백성의 관리들과 장로들아. 만일 병자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한다면.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고 하나님이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말함을 보고 그들을 본래 학문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또 병 나은 사람이 그들과 함께 서 있는 것을 보고 비난할 말이 없는지라. 명하여 공회에서 나가라 하고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행4:8-15).
더 이상 할 말이 없자 베드로와 요한에게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18절)고 협박을 했다.
베드로와 요한이 당당하게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19,20)고 전했다.
이 사건의 결말은 종교인들이 처벌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위협만 가하고 석방했다. “모든 사람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이라”(21절). 아멘
내가 짊어져야할 사명의 십자가라고 한다면 그 고난을 피하지 말라. 피하면 또 다른 고난이 기다리고 있다. 고난과 정면 승부를 하라. 이왕이면 예수님과 함께 그 고난을 즐기면서 대처하라. 그 결과는 승리가 보장되었다.
마16:27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위그노 정신_신앙의 본질을 지켜낸 믿음의 영웅들
종교개혁의 후예들 중에 프랑스에서 개신교 신앙을 지켰던 분들을 위그노(동맹, 하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자)라고 부른다. 제네바의 종교개혁자 장 캘뱅의 신학을 따르는 16세기에서 18세기 프랑스 개신교인들을 가르치는 말이 되었다. 위그노들은 가혹했던 박해를 견디면서 신앙의 본질을 지켜낸 사람들이다.
1572년 8월 24일 발생한 위그노 학살 사건인 ‘성 바톨로매 축일 대학살’. 이 사건으로 파리에서만 3000여 명이 죽고 프랑스 전역에서 3만 명 이상이 죽임을 당했다.
(1)'광야교회시대'
18세기 프랑스 개신교 역사에 102년(1685-1787)은 고난과 핍박의 시기이다. 이 시기를 프랑스 교회사가들은 ‘광야교회시대’라고 부른다. 위그노의 씨를 말릴 정도로 박해가 냉혹했다. 강제개종을 강요당했다. 거부할 경우 투옥되거나 죽임을 당하거나 노예선에 끌려갔다. 그리고 루이 16세가 관용 칙령으로 불리는 베르사유 칙령(L`edit de Versailles, 1787.11.7.)을 선포할 때까지 102년 동안 프랑스 위기노들은 고통의 세월을 보냈다.
프랑스 개신교 위그노인들의 삶을 이해하고 프랑스인들의 정신 속에 흐르는 사상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키워드가 있다. ‘광야교회시대’, ‘위그노’, ‘위그노 십자가’, ‘레지스터’(저항하라), ‘톨레랑스’, 망치와 모루, '디아스포라 위그노' , '카미자르 정신'이다.
(2)'용기를 내라'
프랑스 최초의 개신교의 시작과 최초의 개신교 총회가 한 가정집에서 시작되었다. 집 주인은 르 비콩트이다. 부인과 아버지가 집 지하실을 개신교 예배 장소로 제공했다. 개신교도를 향한 박해의 칼날이 서슬퍼런 시대였기에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1555년에 이 집에서 프랑스 개신교 최초의 유아세례를 집례했다. 당시 개신교 목사가 없었다. 성도들은 금식과 기도를 한 후 22세 장 르 마송 드 로네(1533-1572)를 프랑스 개신교 최초의 목사로 선출하여 최초의 세례식를 집례하였다.
장 르 마송은 고위 관료 아들이었다. 아버지는 아들을 성공시키기 위해 법관 공부를 시켰다. 그는 종교개혁 사상에 매료되어 제네바로 가서 신학을 공부하게 된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자기의 모든 유산을 물려주겠다면서 개신교 사상을 버리라고 했다. 그는 신앙을 위해서 아버지의 유산을 포기했다.
(3)'고난을 감당하라'
개신교인들의 집에는 항상 '위그노 십자가'가 달려 있다. 위그노 십자가는 위그노의 정체성을 담아낸 상징물이다.
위그노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망치와 모루'는 위그노들의 박해를 상징한다. 위그노들은 “망치와 모루 사이에 놓였다는 것”은 그들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상황에 놓여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박해를 이기고 승리하는 길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성도의 인내다. 위그노들은 용기와 인내로 결국 박해를 이기고 승리했다.
둘째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망치와 모루 그림에서 부러진 망치와 성경책이 보인다. 박해의 망치를 부러뜨릴 수 있는 것은 오직 성경이다.
(4)'디아스포라의 삶을 살라'
위그노의 망명은 1572년 8월 24일에 파리에서 발생한 성 바돌로매 대학살 사건으로 더 이상 프랑스에서 개신교 신앙을 유지하며 살기 어렵게 되자. 위그노들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기 시작했다. 당시 프랑스 인구 1800만 명중 개신교 인구는 200만이었다. 그중에서 100만 명의 위그노들이 디아스포라가 되었다.
(5)'저항하라': 카미자르 정신을 회복하라
‘저항하라’는 뜻의 ‘레지스터’(Resister)는 프랑스 개신교인들의 영혼에 깊이 새겨진 단어이다. 레지스터는 개신교 신자들의 좌우명과 정체성을 대변하는 말이다.
프랑스 위그노의 상징적인 인물은 ‘마리 뒤랑’(Marie Durand, 1729.7.15.~)이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개신교 신앙으로 교육을 받으며 위그노로 성장했다. 마리 뒤랑은 1730년 7월 19살 나이에 감옥에 수감되었다. 그녀는 신앙과 양심의 자유를 위해 저항하면서 38년 동안 감옥에서 살았다. 감옥에서 동료들을 돌보며 영적 지도자 역할을 감당했다. 그녀를 상징하는 단어는 ‘저항하라’(레지스테‧Resister)이다.
마리 뒤랑은 감옥 중심에 있는 물을 길어 올리는 구멍 주위에 글을 새겼다. ‘저항하라’이다. “비진리에 저항하고, 양심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저항하고, 복음을 위해 저항하라"는 말이다. 그 글을 매 순간 바라보면서 그녀는 고통스러운 삶과 카톨릭의 회유 앞에서 흔들리는 자신을 다시 세우고 방황하는 동료들의 마음을 붙들어 주었다. 그녀가 돌에 새긴 ‘레지스테’는 이후 프랑스 개신교들의 영혼에 새겨졌다. 그것은 개신교 신자들의 좌우명과 정체성이 되었다.
(6)'개혁자로 서라'
종교개혁의 중심지에는 개혁자가 있다. 제1세대 종교 개혁자는 마르틴 루터이다. 1517년 수도사 마르틴 루터는 독일 비텐베르크 성곽 교회문 앞에 교회의 면죄부 판매를 비판하는 ‘95개조 반박문’을 게시하면서 종교개혁이 시작되었다. 루터의 개혁은 ‘사람은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라는 구원론에 방점이 있다. 루터는 구원은 믿음을 통해서 얻게 되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임을 주장했다. 루터는 중세에 무너진 성자 신학을 완성했다.
프랑스 누아용에서 태어난 장 칼뱅은 2세대 종교개혁자이다. 그는 믿음과 은혜로 구원을 얻은 성도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강조점을 두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Soli Deo Gloria)는 칼뱅 신학의 중심축이다. 칼뱅 신학은 성부 신학을 완성하였다. 칼뱅신학은 개인을 넘어 사회개혁으로 영역이 확대된다. 그는 제네바를 신정 도시로 만들려 했다.
장 캘뱅은 부르신 주님의 사명을 위한 종교개혁 완수를 위한 위대한 헌신을 상징하는 문구는 ‘즉각적으로 그리고 신실하게’이다. 개혁자로 산다는 것은 그 길을 나서기까지 망설이고 또 망설이지만 일단 부르심에 대한 확신이 서는 순간, ‘즉각적이고 신실하게’ 자신의 심장을 도려내어 주님께 드리는 삶, 그것이 개혁자의 삶이다.
‘나를 따르라’는 주님의 부르심에 제자들은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즉각적이고 신실하게’ 주님을 따랐다.
(7)'톨레랑스하라'
‘톨레랑스’(Tolerance)는 ‘관용’이라는 말이며, 라틴어 ‘tolerare’에서 온 프랑스어로 ‘참아낸다’는 뜻이다. 사전적 의미로는 ‘우리가 찬성하지 않는 것까지도 허용할 수 있는 역량’이다.
프랑스에서 실제적으로 톨레랑스가 법이 되고 사회의 보편적 가치가 되기까지 수많은 사람의 피를 흘리고 아픔을 겪었다.
다인종, 다문화, 다민족 사회로 가는 길목에서 필요한 사회적 가치는 톨레랑스의 정신이다.
(8)'5개 솔라(Sola)를 기억하라'
종교개혁은 초대교회로 돌아가려는 운동이다. 종교개혁자들은 개혁을 위한 5가지 원리와 기둥은 ‘오직성경’, ‘오직 그리스도’,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다. 루터는 ‘오직 성경’,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강조했고, 칼뱅은 여기에‘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더했다. 성경은 종교개혁의 원자료이다. 성경이외의 모든 것은 보조 자료에 불과하다.
신앙생활을 어떻게 할것인가? 우리는 늘 동일한 질문을 반복한다. 왜 질문을 반복할까? 제자의 삶을 배우지 못해서 그럴까? 아니다. 우리의 성경에 대한 앎은 포화상태이다. 단지 내려놓기 싫을 뿐이다. 내려놓고 십자가의 길을 당당하게 걷는 그 길을 피하고 싶은 것이다. 좁은 길을 걷고 싶지 않은 것이다. 즐기고 누리고 적당하게 우아하게 신앙생활하고 싶은 욕구가 더 강하기 때문이다.
나의 욕구와 욕망을 채우는 그 길을 포기하라, 그리고 위그노들이 걸어갔던 십자가의 길에 자신의 전부를 과감하게 던져보라. 그러면 신앙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