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1. 원장님 지나온 삶의 여정을 보니 배움에 소홀하지 않고 많은 학식을 쌓은 것을 봤습니다. 그중에 특히 단국대 행정 철학 박사를 마치고 미국 트리니티 신학대학교에서 종교철학박사 과정도 하셨던데요, 좀 특별한 일련의 학업과정을 거친 목적은 무엇인가요?
A. 질문에 대한 답변이 좀 길어지겠는데요, 고등학교 시절 친구 모친으로 인해 서대문구 응암 장로교회에 입교했는데요, 담임 목사님이 신학을 권유하시고 미국으로 이민 가셨습니다. 그 후 저는 저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주간에는 동국대학에서 동서철학을 하면서도 목사님의 권유가 되살아나 야간에 중앙신학대학(후에 강남대학)을 동시에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안보행정석사는 나라의 분단 문제가 우선 과제라 생각되어 북한의 정체와 통일 문제를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1975년부터 미션스쿨 숭의여대에서 윤리교수가 되면서 다시 동국대에서 한국철학 석사를 받고 박사는 단국대학에서 정치행정윤리를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게 되었습니다. 1981년부터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직으로 재직하면서 1986년 미국 델라웨어대학에 교환 교수로 갔을 때 인디아나 주에 있는 트리니티 신학대학에서 종교윤리를 전공으로 종교철학 박사를 수료하게 되었습니다.
Q2. ‘한국 국민 윤리학회 상임고문’과 ‘겨레 얼 살리기 국민운동본부 학술자문위원’ 등 우리민족의 정신을 살리는 운동에 열정을 다하셨는데요, 이런 일들을 사명처럼 하시게 된 동기가 있나요?
A. 철학과 윤리를 전공하면서 1980년도에 한국 국민윤리학회에 관여하게 되고 1993년에 40대 초반 최연소 회장직을 맡게 되면서 당시 가장 큰 업적은 중국 윤리학회 회장 로국걸 인민대학 총장과 협의하여 한중윤리학회 협정을 맺은 이후 지금까지 학술 교류가 매년 교차 방문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민족의 정신 살리기 꿈의 실현은 대학 재학시 학군단(ROTC)후보생 시절부터 싹텄으며 임관 후 최전방 군 생활하면서 북한의 대남심리전으로 대남 흑색방송과 불온전단지 살포를 했는데 저한테는 북한의 실상을 공부하는 기회가 되었지요. 박정희 대통령의 1970년 8.15 경축사에서 남북 선의의 경쟁 선언으로 분단 4반세기만에 <남북이산가족 생사확인>이 적십자회담으로 추진되었고 <남북 7.4공동성명서>로 남북 고위급 정치회담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면서도 전방에서는 남북간에 긴장감이 더 고조되어 심리전과 전군 정신교육이 강화되었는데 서부전선 6군단 순회정신교육 교관으로 선발되어 개인적으로는 좋은 기회였다고 봅니다.
1973년 6월 전역 후 반공연맹 교수로서 전국 안보 순회강연 경력, 국방부 정신전력학교, 국방대학원, 중앙공무원교육원, 경찰대학, 소방중앙학교. 대기업 연수원 강사, 1976년부터 2003년까지 KBS 대북방송위원 및 해설위원 경력 등이 ‘겨레 얼 살리기 국민운동본부 학술자문위원’자격과 1981년 헌법기구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가 탄생할 때 상임자문위원으로 참여하여 해외 동포들에게도 세계 순회 통일교육 경력이 공적인 삶과 사명감으로 형성되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특히 교환 수 시절 1986년에 1년간 필라델피아에 있는 한인 방송을 통해 본인의 졸저인 <한국. 한국인. 한국정신>을 봉사로 방송한 것이 해외 동포들의 이중 문화권 이민 생활상의 어려움을 알게 되어 동포들의 문제가 재인식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봅니다. 무엇보다도 1981년부터 2012년까지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부원장, 원장 대행직으로 재직하면서 한국정신문화를 연구하고 세계화를 위해 <한국관 시정사업으로 한국 바로알리기 사업>과 <한국학 세계화 사업>를 위해 세계 주요 대학에 한국학과 설립을 위해 동분서주한 것이 열정을 넘어 민족적인 사명감으로 형성되지 않았나 봅니다.
Q3. 현재는 한글세계화 추진 협의회를 세우고 한글의 우수성을 알리고 세계화 운동에도 나서고 있는데요, 오히려 한글을 사용하는 대한민국 국민이 한글의 우수성을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A. 우리 민족이 한글의 우수성을 모르는 것은 당연하지요. 학교 교육을 통해서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정규 교육 과정에서는 입시 위주 교육이고 영재 교육 중심이다 보니 국어교육은 홀대를 받아왔지요. 사회 환경이나 사회지도층도 되도록 모국어보다는 외래어 남발 생활을 하다 보니 한글의 우수성과 가치에 대해 모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일찍이 세계 명문대학 즉 하버드대, 소르본대, 옥스퍼드대, 동경대 언어학자들이 한글의 우수성과 과학성에 대해 입증한바 있지만 한글은 인류가 사용하는 문자들 중에서 창제자와 창제년도가 명확히 밝혀진 몇 안 되는 문자입니다. 한글의 원리는 천지인(ㅇㅡ l)을 바탕으로 그 창제 정신이 '자주, 애민, 실용'에 있다는 점에서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문자로 평가받습니다. 이러한 창제 정신과 더불어 제자(制字) 원리의 독창성과 과학성(한글의 구조와 원리, 글자모양과 입모양, 발음모양 본떠 만듬), 체계성이 매우 뛰어나 그 중요성과 가치가 더욱 명확합니다.
이러한 한글의 우수성은 국제기구에서 공인을 받기에 이르렀고 유네스코(UNESCO)에서는 해마다 세계에서 문맹 퇴치에 공이 큰 사람들에게 '세종대왕 문맹 퇴치상'(King Sejong Literacy Prize)을 주고 있지요. 이 상의 명칭이 세종대왕에서 비롯된 것은 세종대왕이 만든 한글이 가장 배우기가 쉬워 문맹자를 없애기에 좋은 글자임을 세계가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한글이 나온 훈민정음은 '백성을 가르치는 올바른 소리'란 뜻이며, 세종대왕이 1446년 공포한 한국의 국자(國字) 또는 그것을 해설한 책의 이름을 말하지요. 훈민정음은 세계에서 가장 합리적인 글이라고 알려져 있으며, 세계 문자 역사상 가장 진보된 글자라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훈민정음 창제 전에 우리 민족은 한자의 음과 뜻을 빌려 우리말로 표기했고 따라서 우리말의 특성을 충분히 반영할 수 있는 새로운 문자가 요구되었는데, 세종대왕은 남의 나라 글자인 한문을 빌려 쓰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백성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문자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한문은 우리말과 서로 통하지 않았으며, 배우기에 상당히 어려운 글자였습니다. 따라서 일반 서민들이 배우기 쉬운 새로운 문자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이에 세종대왕은 백성들의 불편을 덜어 주고 우리말의 자주성과 주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새로운 문자인 훈민정음을 창제하게 된 것입니다.
Q4. 요즘 K-POP , K-FOOD, K-DRAMA 열풍이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데,K열풍의 배경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조선조 말 근대 역사가 현대사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일본의 침략으로 국권을 상실하고 36년 동안 지배를 받는 가운데 일본의 역사 왜곡과 우리 고유한 말과 문화 말살 정책으로 민족사 단절의 영향이 컸던 것입니다. 거기다 북한의 남침으로 동족끼리 전쟁을 치룬 과정에서 온 사회는 황폐해지고 잿더미가 되는 가운데 분단선은 굳어져 우리 민족의 원상 회복은 선진국의 원조 없이 재기불능 상태였지요. 그러나 우리 민족의 전통문화 원리인 홍익인간 정신과 경천사상, 평화애호 정신은 계승되어 60-80년대 극적으로 단기간을 통해 산업화와 정보화시대, 반도체첨단을 이루어 IT시대 세계 10위권을 발전시켜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고 이제는 우리 민족의 전통 정신에서 계승된 경천사상으로 기독교 문화를 꽃피워 선교사 파송의 선두에 서고 있습니다. 나아가 삼국을 통일한 화랑도 정신과 풍류 사상에서 전승된 용맹, 흥과 기(氣), 멋, 맛 등으로 국방력과 민족의 가무를 발전시켜 오늘날 K-POP, K-FOOD, K-DRAMA 열풍을 일으키게 되었다고 봅니다.
Q5. 미국이 세계 일류 국가가 된 이유 중 하나가 그들의 언어라고 생각합니다. 영어는 지금까지는 만국 공통어처럼 사용되고 있는데요, 우리나라 한글이 영어 못지않게, 아니 영어를 뛰어넘어 만국 공통어가 될 수 있을까요?
A. 그렇다고 봅니다. 한글의 원리는 천지인(天地人)의 사상이 내포되어 있어 자연 만물의 소리를 가장 유사하게 표현할 수 있고, 과학 기술이 산술급수적으로 되지는 않지만, 경쟁력으로는 영어보다 문자 생성의 속도를 7배나 빠르게 작성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는 점이 특징이지요. 특히 오늘날 미국 사회를 지배하는 가치는 과학 기술의 발달과 물질만능주의인 물신주의(fetishism)가 팽배하여 미국을 세운 금욕, 근검, 검소, 절약주의로 표상되는 청교도 정신(puritanism)이 기독교 문화 쇠퇴로 많은 사회문제가 야기되어 세계를 향도할 정신적 가치가 약화하고 있습니다. 반면 한국은 기독교문화 유입 200년 만에 전 세계적으로 선교사가 파송되어 기독교 중심 문화권이 변경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더군다나 한국의 전통적인 신앙문화는 믿음을 토대로 신을 모시고 사는 시천주(侍天主) 신앙을 통해 특히 그 배후에 경천사상, 숭천사상, 동학사상이 민족문화에 바탕하고 있어 기독교문화가 단기간 내에 발전하게 되어 세계 중심국이 되었다고 봅니다. 서양의 14세기부터 16까지 일어난 르네상스 인본주의의 문화는 건국의 시조인 단군왕검께서 계승시켜 온 선하고 유익한 <홍익인간> 정신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Q6. 한글의 세계화 운동에 있어서 극복해야 할 과제는 무엇이 있을까요?
A. 먼저 한반도의 분단을 극복하고 해외 800만 한민족 Diaspora(이산 민족)를 민족정신 문화적 측면에서 통합력을 형성하는 일이라고 봅니다. 한반도 평화적인 통합을 위해서는 해외동포들의 2세, 3세들의 모국어 생활이 일상화 되어야겠지요. 그 가운데서도 일본의 조총련의 조선어와 민단의 한국어를 통일시키는 일이 급선무라 생각합니다. 두 번째는 현재 유엔의 6개 공용어에 이어 한글이 일곱 번째로 인정받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 한국의 국력 신장은 물론 K-Culture의 세계적인 보편화로 확산되고, 지구촌에 파송되는 선교사들의 언어도 영어와 현지어도 좋지만 한류 바람을 타고 한국어를 도구로 한 선교 사업이 더욱 효율적인 성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 봅니다.
Q7. 한글 세계화 추진협의회는 언제 발족이 되었으며, 현재 동참하고 있는 회원들은 어떤 유형 이며 운영방식은 어떻게 진행되나요?
A. 개인적으로는 1967년 대학 시절부터 문맹 퇴치 차원에서 농촌 봉사활동을 한글 계몽운동으로 시작했으며 1971년 군 생활에서도 지역의 군부대 기지촌 사람들을 위해 교회를 빌려 새마을 한글 교실을 운영하면서 꿈을 키웠고 1986년에 미국 교환교수 시절에는 델레웨어대학과 필라델피아 탬플대학 등에 유학 온 외국인 특히 일본인들에게 한글을 가르쳐 경험을 쌓게 되었지요. 한국정신문화연구원(한국학 중앙연구원)재직시 정부의 지원으로 세계유명대학에 한국어학과 및 한국학강좌를 개설하여 오늘날 한국어 강좌는 세계명문 400개 대학에 개설되었습니다.
2012년 정년퇴직 후 해외 초청대학에 가서 한국학 강의를 하는 중 한글 세계화 사업을 하는 분들을 접하게 되었는데 대표적인 분이 선교사 출신 손영국 회장인데. 그는 영국 옥스퍼드대학 출판사 발행 세계 동화책들을 영어, 한국어, 중국어, 베트남어 4개 국어로 디지털화한 것을 알게 되었고 한글 세계화 사업을 같이 하게 되었으며, 또 한 분은 부산 한글 학회에서 한글 운동을 하시는 장덕진(한글 전파에 열정을 가진 대학 후배 정인선 이사의 소개로 알게 됨)선생이 개발한 <세종 규칙 한글>전자책과 출판된 책의 도움이 컸다고 봅니다. 위 세 분을 만나 교재와 디지털 교육 자료가 확보되면서 본격적인 교류 협의 결과 2022년에 한글 세계화 추진협의회를 발족하게 되었습니다. 회원은 국내와 국외로 구분하고 한글 세계 화운동 취지에 단순참여자는 준회원으로, 한글 공부를 위한 구독자를 비롯한 적극적 후원과 실제 한글 강사 요원, 선교 현장에서 활동하는 선교사 분들, 지구촌에서 친 한국파를 비롯한 한글을 통한 한민족 문화전도사 등을 정회원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Q8. 한글 세계화 추진협의회의 세분된 활동 영역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고, 현 한국어와 조선어를 통합하는 과정은 어떻게 진행해 나가실 계획인지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A. 활동 영역은 국내와 국외로 구분하고 국내는 지방자치와 협의하여 다문화 가족을 주 대상으로 지원하며 또한 중소기업 중앙회와 연계하여 해외 취업자들의 한글 필요성을 지원하도록 합니다. 해외는 각 나라에 지회를 두고 사명감을 가진 전문가를 세워 운영하도록 합니다. 특히 일본에서 이념 대립으로 대치하고 있는 조총련의 조선어와 민단 측의 한국어를 각각 전문가를 찾아 운영할 계획인데 민단 측은 조선족으로서 일본에 귀화한 인재를 찾았고, 조총련측은 본인이 잘 아는 오청달 오사카 경법대학 이사장 측과 협의 중입니다. 양측 책임자가 세워지면 한글로 통합하는 세미나를 자주 개최하고 교차 유학 방문 교육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Q9. 한글의 세계화 운동을 추진함에 있어서 가장 큰 자원이나 동력은 어디에 있을까요?
A. 한글 세계화 큰 자원은 첫째, 무엇보다 한민족 800만 해외동포들이며, 둘째, 점진적으로 늘어나는 세계 대학의 한국학과 한국어 프로그램인데요, 제가 직접 다니면서 지원한 대표적인 것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미국의 하버드, 컬럼비아, 하와이, UCLA, 버클리,워싱턴,일리노이, USC, 알래스카대학 등, 카나다의 브리티쉬컬럼비아, 토론토대학 등, 영국의 옥스퍼드,세필드, 런던 대학 등, 독일의 보큼, 함부르크, 하이델베리그 대학 등, 호주의 오스트리아 국립대, 모나쉬대학 등, 중국의 북경대, 연변대,중앙민족대, 절강대, 난징대, 항죠우대, 산동대, 복단대, 상하이대, 청도해양대, 난케대학 등, 일본의 동경대, 동경외대, 델리대학 등입니다. 셋째, 전 세계에서 활동하시는 선교사역과 해외 진출기업을 통한 한글교육, 외교부 산하에 있는 전 세계 한국문화원과 각 나라 지역 교회에 있는 한글학교와 연맹하여 한글 세계화로 유엔 공용어라는 궁극적 목표를 달성하고자 합니다.
동력으로는 80년대 미국 MIT 대학에서 유태계 펀드로 유학생들의 IQ 조사를 했는데 한국인이 가장 우수하여 발표를 하지 않았던 적이 있지요. 유태인보다 한국인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던 같습니다. 그 후 스위스 쮜리히 대학이 국민소득과 성장에 대한 민족 IQ의 연관 관계 조사에서 한국이 1위로 발표된 바도 있고요. 우리 민족의 축복받은 명석한 두뇌와 한민족 건국이념에 나타난 경천애인과 숭천사상이 계승된 신바람(神風) 민족문화의 특성이 세계적인 기독교문화와 융합 일치하여 그 우수성이 인류문화의 각 분야에서 한류문화바람을 일으켰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Q10. 원장님이 말씀하시는 ‘한글 리듬 인공지능’은 무엇인가요?
A. 21세기 세계가 벽두부터 정보산업화 발전으로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시대가 다가오기 시작하면서 우리 민족에게는 천운의 기회가 오기 시작했다고 봅니다. 한글이 과연 서양의 알파벳이나 중국의 한자를 제치고 ‘세계 통일(공용) 문자’가 될 수 있을까? 충분히 가능하다는 길이 이미 열렸고, 문자로서의 한글의 큰 장점은 풀어쓰기를 하는 로마자 알파벳과는 달리 낱소리를 모아 소리(음절)를 표기 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로써 이 세상 모든 말들을 한글로 표기하고 그 운율을 리듬분석해 주는 ‘한글 리듬 인공지능’(Hangeul Rhythm AI)을 개발하여 인간이 사용하는 모든 휴대폰과 컴퓨터, 자동차 등에 탑재시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를 지구촌 모든 나라와 민족들에게 보급하여 전 세계인들이 일상생활에서 사용케 함으로써 <한글>이 ‘세계 통일(공용) 문자’가 될 가능성이 유일하게 입증된 셈입니다.
이제 우리는 <한글> 연구에 더욱 박차를 가하여 우수한 성능의 <한글 리듬 인공지능>을 개발하고, <한글>이 빠른 시간 안에 80억 인류가 사용하는 약 7,000종의 모든 언어를 다 적을 수 있는 ‘세계 통일(공용) 문자’가 되도록 하는 방안을 수립하여야 합니다. 실제로 놀랍게도 연이어 세계 문자 올림픽대회에서 우리의 한글이 금메달 획득했다는 사실이 입증되었습니다.
2009년 5월 한글이 금메달을 딴 서울에서 열린 제1회에 이어 세계 문자 학회에 따르면, 2012년 10월 1일부터 4일 까지 태국 방콕에서 열린 제2회 세계문자올림픽 대회에서도 세계 27개국 문자 중(한글, 영어, 러시아, 독일, 우크라이나, 베트남, 폴란드, 터키, 셀비아, 불가리아, 아이슬란드, 에티오피아, 몰디브, 우간다, 포르투갈, 그리스, 스페인, 남아공, 한국, 인도, 울드, 말라야람, 구자라티, 푼자비, 말라시, 오리아, 뱅갈리, 캐나다) 한글이 1위에 올랐다는 사실이 전 세계에 알려졌습니다.
이서행李 瑞 行 회장
-주요학력
1986년 미국 Delaware대학 정치학과 교환교수
1987년 단국대학교 대학원 졸업(행정철학 박사)
1988년 미국 Trinity Theologlcal Seminary종교철학박사
2009년-(현) 중국연변대학 겸임교수, 명예교수
2012년 일본 오사카 경법대학 초빙교수
-주요경력
1982~2012 한국학 중앙연구원 교수(구 한국정신문화연구원부원장)
1976~현 감사원 및 전국공무원연수원 강사, 국방대학, 경찰대, 한국체육대, 경기대학원, 동 국대대학원, 고려대대학원, 서울대대학원강사
1978~(2005) KBS 해설위원(사회교육국 대북방송)
1981~2013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상임위원(미주와 유럽 교포대상 순회교육 강사)
1993~1994 한국국민윤리학회 회장, 상임고문
2000~2005 K-TV 방송 해설위원
2000~(현)남북학술교류위원회 남측위원장
2004~(현) 세계평화통일학회 회장, 상임고문
2003년~(현) 겨레얼살리기국민운동본부 학술자문위원
2007. 1~(현) 6.15 남북공동선언 학술위원회 상임대표, 고문
2008. 11.7-2012.8 한국학중앙연구원 부원장, 원장대행
2010~2011 행정안전부 제5대 국새제작위원장(차관직)
2012년-(현)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2013~2016 대한당구연맹 고문
● 1985년 11월 27일 국민훈장 석류장
● 2001년 12월 31일 국민훈장 동백장
● 2012년 8월 30일 홍조근정훈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