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목사]의미를 담아내는 절기 예배(시116:12-19)

  • 입력 2024.07.16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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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맥추절의 의미 이해

1)한국교회는 봄 막바지에 보리를 추수하고 7월 첫째 주일에 맥추감사주일로 드린다. 맥추라는 단어는 보리를 추수하는 일’(보리가 익는 철)이란 의미이다.

2)70년대만 해도 춘궁기가 있었다. 겨울을 지나면서 식량이 떨어져서 봄이 되면 먹을 것이 없는 가정들이 많았다. 가난한 농부에게 보리는 참 귀한 농작물이다. 겨울을 이겨내고 봄철이 지나면서 파란 새싹이 자라 열매를 맺는다. 그리고 5월말과 6월초에 보리를 추수한다. 보리는 농부에게는 배고픔을 달래주는 아주 귀한 밥이다. 깡 보리밥에 간 된장을 넣고 비벼 먹으면 그 맛이 꿀맛 같았다.

3)구약에 하나님이 반드시 지키라고 한 3대 절기는 유월절, 맥추절, 초막절이다. 맥추절은 강조점에 따라 초실절, 칠칠절, 오순절로도 부른다. 맥추절은 보리를 거두는 절기라는 뜻에 강조점을 두었고, 초실절은 처음 익은 열매를 거두는 절기라는 뜻이며, 칠칠절과 오순절은 숫자로 기록된 절기이다.

 

(1)맥추절은 감사에 초점이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맥추절은 반드시 기억해야할 감사 절기다.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간 광야 천막생활을 하다가 요단강을 건너 하나님이 주신 땅에서 처음 농사를 짓고 밀을 수확했다. 하나님은 그 기쁨과 은혜를 영원히 기억하고 잊지 말라고 하셨다. 절기의 목적은 기억하는 것이다. 은혜를 잊지 않고 기억하여 감사의 예배를 드리는 것이 절기의 정신이다.

(2)칠칠절은 계명과 말씀에 초점이 있다_칠칠절은 모세가 십계명을 받은 날을 기념하는 날이다. 하나님이 선택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계명을 주신 이유는 구원을 받은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하고 동시에 하나님만이 주인 되신다는 말씀이다. 칠칠절 정신은 말씀을 지키는 것이다.

 

(3)오순절은 임재에 초점이 있다.

 신약에서 맥추절과 오순절이 시기가 겹친다. 오순절의 기준점은 부활절로부터 시작해서 칠안식일이 지난 이튿날 즉 일요일이 오순절이다. 또한 오순절은 유월절과 부활절과 연결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월절이 되면 어린양을 잡고 무교병과 쓴나물을 먹으며 민족 해방의 날을 기념한다. 유월절은 넘어가다라는 뜻이다. 어린양의 피가 묻어있는 집은 죽음의 사자가 넘어갔다. 그러나 피가 묻어있지 않은 집은 심판받았다. 유월절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해방의 날이다. 그러나 애굽에는 죽음의 날이다. 애굽에 내린 10번째 재앙은 장자와 처음 난 가축을 죽였다. 애굽사람들에게 그 밤은 통곡의 밤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자녀와 가축의 생명을 지켜주셨다.

예수님은 누구인가? 유월절 어린양이다. 예수님은 유월절의 어린양이 되어 십자가에서 인류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우리 대신 우리의 죄 값을 생명의 피로 지불하셨다. 유월절이후 50일째 제자들은 전무후무한 성령의 역사를 체험했다. 이것을 오순절이다. 오순절이 맥추절과 겹친다.

오순절에 성령님이 강력하게 임재하셨다. 두려움과 절망에 갇혀 있던 제자들이 성령을 받고서 담대하게 복음을 전파하고 지상명령에 자신을 던졌다. 맥추 감사절은 우리에게 오신 성령님의 임재, 위로, 교통, 역사, 충만, 섭리를 기억하는 날이다.

 

(4)초실절은 강조점은 첫 열매이다.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린다는 의미이다. 처음 열매를 드린다는 것은 하나님이 나의 주인 됨을 고백하는 믿음이며, 첫 열매를 드린다는 것은 하나님만이 나의 주인 됨을 선포하는 것이다.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포도즙 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3;9-10).

제가 목사가 된 것도 처음 열매이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성경말씀을 문자대로 믿었다. 항상 처음 수확한 소산물들은 먼저 하나님 앞에 받쳤다. 아들 중에 처음난 아들이라 저를 하나님께 받친 것이다. 부모님의 첫 열매인 아들은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한다. 목사가 되어야 한다. 단순하지만 온전한 믿음으로 드린 것이다. 그런 믿음과 기도와 바램들이 모여 시간이 지나 신학을 하게 되고 목회자가 되었다. 말씀을 순수하게 믿고 그대로 실천하고 바라보는 것은 참 좋은 신앙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좋은 절기는 반드시 지키라고 명령하셨다.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네 토지에서 처음 거둔 열매의 가장 좋은 것을 가져다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지니라”(23:16,19).

아버지는 항상 사람에게나 하나님에게는 가장 좋은 것을 드렸다. 이것은 좋은 신앙의 태도이다. 우리가 사람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하나님과 교회를 어떤 태도로 섬길 것인가? 태도가 믿음의 질을 결정한다. 아버지는 본인은 찌꺼기를 드셔도 대접하는 것은 최상의 것을 대접했다. 이것이 신앙이다.

섬김이란 무엇인가? 내가 먹고 싶은 것 다 먹고, 쓰고 싶은 것 다 쓰고, 누릴 것 다 누린다면 이웃을 섬길 수 없다. 섬김이란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주신 은혜의 선물임을 알고,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아낌없이 기쁨으로 내려놓는 것이다. 이것이 성숙한 신앙의 모습이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한결같다. 하나님과 교회와 이웃을 향한 태도가 참 성실하다. 깊이와 존중하는 마음이 있다. 이것이 믿음의 유산이다.

 

2.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의 특징

1)감사의 고백이 살아 있다.

(1)감사란 히브리 말로 기억한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기억한다는 것이다.

(2)119편은 개인적인 구원을 체험한 시인이 하나님께 드린 찬양시이다. 시인은 절대적인 위기 상황에서 하나님이 자신의 기도를 응답하셨다. 위기에서 건져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반드시 지키겠다고 다짐하는 시다.

시인은 자신에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모든 은혜를 기억하면서 무엇으로 그 은혜에 보답 할꼬생각하고, 그러면서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이것은 구원의 기쁨을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겠다는 것이다. 감사와 찬양은 구원받은 성도들의 마땅한 도리이며 의무이다(33:1). 찬양과 기도는 구원 받은 성도들의 궁극적인 모습이다. 내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하는 것이 구원받은 성도들의 가장 아름다운 신앙적인 모습일까? 바로 진심이 담긴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3)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감사의 고백이 살아있다. 고백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감사의 고백이고, 둘째의 불평과 원망의 고백이다. 감사는 일어서는 에너지이다. 그러나 원망은 넘어뜨리는 에너지이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감사의 고백이 넘친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분들은 건강한 고백이 살아 있다.

 

2)사명을 향한 열정이 있다.

제자들이 성령충만받았다. 성령충만 받기 전에는 고백도 잘하지만 시험에 넘어지기도 잘했다. 그러나 오순절날 성령체험을 한 후 하루아침에 제자들의 고백과 행동이 달라졌다. 더 이상 종교지도자들의 협박이 무섭지 않았다. 더 이상 로마군사가 두렵지 않았다. 제자들은 어디서든지 예수님을 증거 하는데 자신을 받쳤다. “다른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4:12)

종교지도자들이 베드로를 협박한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경고한다.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은 종교지도자들의 협박 앞에 굴복하지 않았다.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4:19-20).

오늘날 우리가 회복해야할 가치는 열정이다. 사명을 향한 열정이 없이는 한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앞으로 나아가는데 편안하게 안전하게 고속도로 위에 레드카페가 깔아놓은 편안한 길을 걸어가도록 모든 여건과 환경을 조성해주지 않는다. 스스로 없는 길을 만들어야한다. 거칠은 길을 열어가야 한다. 개척자 정신이 필요하다. 사명에 향한 열정이 없다면 앞으로 한발자국도 나갈 수 없다. 주님을 뜨겁게 만난 분들은 한결 같이 열정이 있다.

 

3)기도한다.

주님을 사랑하는 분들은 한결 같이 기도를 좋아한다. 기도는 나는 부족하며, 주님의 은혜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고백이다. 작은 성공은 기도 없이도 가능하다. 하나님 없이도 얼마든지 성공이 가능하다. 그러나 큰 성공은 하나님 없이는 불가능하다. 대를 이어가는 믿음의 거룩한 유산은 기도 없이는 하나님 없이는 불가능하다. 내 힘으로 되는 일이 그리 많지 않다.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의미 있고 가치 있고 거룩한 사역은 기도 없이는 불가능하다. 하나님 없이는 불가능하다. 복음을 체험한 사람들은 기도하기를 좋아한다. 내 힘보다는 하나님의 힘이 절대적으로 크다는 것을 안다.

 

4)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함께라는 공동체 정신을 좋아한다.

 예수님을 깊이 인격적으로 만난 사람들은 나보다는 너와 함께 하는 것을 선택한다. 하나님이 나에게 지식, 물질, 건강, 일터를 주셨는데 그것이 단순히 나를 위해 모두 소비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이웃과 함께 하라는 거룩한 메시지로 받는다.

세상을 열어가는 사람들을 보면 한결같이 방향이 다르다. 그들은 자신의 전부를 내려놓고 낭떠러지에 있는 이웃을 돌본다. 사회의 도움을 주는 삶을 선택한다. 자신의 유익보다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 내려놓음의 삶을 결정한다.

강도만난 사람이 죽게 되었습니다. 종교인들은 보고 그냥 지나쳤다. 그런데 사마리아인이 불쌍히 여기고 그를 데려다가 잘 돌봐주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누가 강도만난 사람들의 이웃이냐?고 질문했다. 사마리아인입니다. “너도 가서 이와같이 하라”(10:37). 이것이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의 걸어가야 할 공동체 정신이다. 공동체 정신은 누군가의 유익을 위해 살아가는 정신이다.

 

5)드림을 좋아한다.

나님께 드리는 것을 좋아한다. 주님을 만난 사람들은 가장 소중한 것을 주님께 드리기를 좋아합니다. 땅에 보물을 쌓는 것보다 하늘에 보물을 쌓는 것을 선택한다. 우리나라 언어 중에 고봉이라는 단어가 있다. 고봉은 넘치도록 담는다는 의미이다. 고봉이란 단어는 시골에서 많이 쓰던 용어이다. 이웃에게 쌀이나 농산물을 줄 때 이런 단어를 많이 사용했다. 장사하는 분들이 시골을 다니면서 물건과 농산물을 물물 교환한다. 그때 부모님은 장사하는 분에게 항상 고봉으로 담아주셨다. 고봉은 넉넉한 농부의 인심이 담겨져 있는 우리의 옛 모습이며 정겨움이 담겨진 사랑의 표현이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사람과의 관계도 인색함으로 하지 말고 넉넉함으로 정을 주고받는 것이 더 아름답다. 이것이 구원받은 성도의 모습이다. 넉넉함으로 이웃의 아픔과 돌봄이 더 크게 보이는 것이 축복이다.

최원영목사. 본푸른교회, 본헤럴드대표. 서울신대신학박사., 등
최원영목사. 본푸른교회, 본헤럴드대표. 서울신대신학박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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